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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監謂秦氏曰:
태감위진씨왈
“皇上欲復見楊尙書詩故, 小宦承命來收矣.”
황상욕부견양상서시고 소환승명래수의
태감이 진씨에게 말하기를,
“황상이 부채에 쓴 양상서의 시를 다시 보고 싶어 하시니
소환小宦이 명을 받들어 가지러 왔소이다.”
秦氏泣謂曰:“薄命之人死期已迫,
진씨읍위왈 박명지인사기이박
偶和其詩題於其尾, 自犯必死之罪.
우화기시제어기미 자범필사지죄
진씨가 울면서 말하기를,
“박명한 사람이 죽을 때가 이미 다되어,
우연히 그 시의 끝부분에 그 시제詩題에 화답하는 글을 써서
스스로 꼭 죽을죄를 범하였나이다.
皇上若見之 則必不免誅戮之禍,
황상약견지 즉필불면주륙지화
與其伏法而死, 毋寧自決之爲快也,
여기복법이사 무령자결지위쾌야
황상이 만일 그것을 보시면
필시 주륙誅戮의 화를 면치 못할 것인 즉,
법에 걸려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결하여 유쾌한 것이 낫습니다.
方將以此殘命, 付於三尺之下 而身死後,
방장이차잔명 부어삼척지하 이신사후
揜土一事 專恃於太監,
암토일사 전시어태감
바야흐로 이 쇠잔한 목숨이
장차 삼척三尺(형구刑具의 이름) 아래에서 끝나면 이 몸이 죽은 후에
암토揜土(흙이나 덮어서 겨우 지내는 장사葬事) 일은 오직 태감만을 믿겠으니,
伏乞太監哀之憐之 收瘞殘骸,
복걸태감애지련지 수예잔해
無令爲烏鳶之食 幸甚幸甚.
무령위오연지식 행심행심
바라건대 태감은 나를 불쌍하고도 가련히 여기시어
나의 잔해를 거두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지 않게 해 주면
이만 다행한 일이 없을 듯하나이다.”
太監曰:“女中書何爲此言也?
태감왈 녀중서하위차언야
聖上仁慈寬厚逈出百王,
성상인자관후형출백왕
태감이 대답하기를,
“여중서는 어찌 그런 말씀을 하는고?
성상께서는 인자 관후仁慈寬厚하심이
여러 왕 가운데서도 유독 뛰어나시니
或者終不可罪, 設有震疊之威,
혹자종불가죄 설유진첩지위
我當出力救之, 中書隨我而來.”
아당출력구지 중서수아이래
간혹 끝내는 죄를 아니 주실 듯하고,
설령 진노震怒하는 위엄을 보이신다 해도
내 마땅히 나서서 힘껏 구할 것이니
중서는 나를 쫓아오라.”
秦氏且哭且行 隨太監而去,
진씨차곡차행 수태감이거
太監使秦氏立於殿門之外, 入以諸詩 進於上.
태감사진씨립어전문지외 입이제시 진어상
진씨가 울며 나서서 태감을 좇아가니
태감이 진씨를 전문殿門 밖에 세워 두고
모든 시들을 가지고 들어가 황상께 드렸다.
上留眼披閱 至秦氏之扇, 尙書所題之下 又有它詩,
상류안피열 지진씨지선 상서소제지하 우유타시
訝之問於太監 太監告曰:
아지문어태감 태감고왈
황상이 찬찬히 펼쳐보시다가 진씨의 부채에 이르러서는
상서의 글 아래에 또 다른 사람의 시가 있는지라,
황상께서 그것을 의아히 여겨 태감에게 물으시니
태감이 고하기를,
“秦氏謂臣云 不知皇爺有裒取之命,
진씨위신운 부지황야유부취지명
猥以荒蕪之語續題於其下, 此死罪必不貸也,
외이황무지어속제어기하 차사죄필불대야
“진씨가 신에게 이르되
황상께서 그것을 거두어들이라는 명을 내리실 줄도 모르고
외람되이 어지러운 말들을 그 아래에 계속해서 써 놓았으니,
이 죽을 죄는 필연 용서받기가 어렵도다 하고,
仍欲自死 臣開諭而止,
잉욕자사 신개유이지
領率而來矣.
령솔이래의
이에 스로로 죽으려 하거늘,
신이 알아듣도록 잘 타일러 행동을 멈추게 하고
그녀를 거느리고 왔나이다,”
上又詠其詩詩曰:
상우영기시시왈
황상이 또 그 시를 읊조리니,
시에 이르기를,
紈扇團如秋月團 환선단여추월단
憶曾樓上對羞顔 억증루상대수안
初知咫尺不相識 초지지척부상식
却悔敎君仔細看 각회교군자세간
깁부채 둥근 것이 가을 달처럼 둥근데
지난번 누각위에서 수줍은 얼굴 마주한 것 기억하노라
처음에 지척에서 서로 알아보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오히려 후회하노라 그대 자세히 보라 할 것을
上見畢曰: “秦氏必有私情也.
상견필왈 진씨필유사정야
황상이 다 보시고 말씀하기를,
“진씨가 사사로운 정情이 있음이 틀림없도다.
不知何處與何人相見, 而其詩意如此耶?
부지하처여하인상견 이기시의여차야
然其才足惜 而亦可獎也.”
연기재족석 이역가장야
어느 곳에서 누구를 서로 보았기에
그 시의 뜻이 이와 같은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지만 그 재주는 훌륭하고 또한 권장할 만하도다.”
使太監召之 秦氏伏於階下,
사태감소지 진씨복어계하
叩頭請死
고두청사
태감으로 하여금 그녀를 부르게 하니
진씨가 계단아래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고 죽음을 청하매,
上下交曰:
상하교왈
“直告則當赦死罪. 汝與何人 有私情乎?”
직고즉당사사죄 여여하인 유사정호
황상께서 하교하기를,
“곧바로 고하면 마땅히 죽을죄를 용서해 주리라.
네 어떤 사람과 사정私情이 있느뇨?”
秦氏又叩頭曰: “臣妾何敢抵諱於嚴問之下乎?
진씨우고두왈 첩신하감저휘어엄문지하호
진씨가 또 머리를 조아리고 여쭙기를,
“신첩이 어찌 감히 엄문嚴問하신 사실을 숨기겠나이까?
臣妾家敗亡之前, 楊尙書赴擧之路,
신첩가패망지전 양상서부거지로
適過妾家樓前,
,
적과첩가루전
신첩의 집안이 패망하기 전에,
양상서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때마침 첩의 집 누각 앞을 지나다가,
臣妾偶與相見和其楊柳詞
신첩우여상견화기양류사
送人通意與結婚媾之約矣.
송인통의여결혼구지약의
신첩과 우연히 서로 보고서
그 양류사楊柳詞를 화답하고
사람을 보내어 뜻을 통하여
함께 혼인 약속을 맺었나이다.
頃當蓬萊引見之日, 妾能解舊面 而楊尙書獨不知故,
경당봉래인견지일 첩능해구면 이양상서독부지고
지난번 황상께서 그를 봉래전으로 불러 보시는 날
첩은 옛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으나,
양상서만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妾戀舊興感撫躬自悼, 偶題胡亂之說,
첩연구흥감무궁자도 우제호란지설
첩이 옛 생각과 느낌이 절실하여 몸소 옛 일을 회상하고 슬퍼하다가
우연히 난삽한 글을 지었는데,
終至於上累聖鑒, 臣妾之罪萬死猶輕.”
종지어상루성감 신첩지죄만사유경
끝내 황상께 폐를 드리게 되었으니,
신첩의 죄 만번 죽어도 오히려 가볍겠나이다.”
上悲憐其意乃曰:
상비련기의내왈
“汝云以楊柳詞結婚媾之約, 汝能記得否?”
여운이양류사결혼구지약 여능기득부
황상은 그 뜻을 불쌍히 여기어 이에 이르시기를,
“네가 양류사楊柳詞로써 혼인 언약을 맺었다고 말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있겠느뇨?”
秦氏卽繕寫 以上上曰:
진씨즉선사 이상상왈
“汝罪雖重汝才可惜, 且御妹愛汝殊甚故,
여죄수중여재가석 차어매애여수심고
진씨가 바로 그것을 베껴 써서 황상께 드리니 황상이 말씀하기를,
“너의 죄가 비록 중하나 너의 재주가 아깝기도 하고,
또한 어매御妹가 너를 유독 심히 사랑하는 까닭에
朕特用寬典赦汝重罪,
짐특용관전사여중죄
汝其感篆國恩 殫渴心誠, 以事御妹宜矣.”
여기감전국은 탄갈심성 이사어매의의
짐이 특별히 관용을 베풀어 너의 중한 죄를 사하니,
너는 나라의 은혜에 감읍하고
또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어매를 섬기라.”
卽下其紈扇,
즉하기환선
秦氏拜受 惶恐頓謝而退.
진씨배수 황공돈사이퇴
곧 깁부채를 내려 주시니
진씨가 절하여 받고,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은혜에 감사드리고 물러갔다.
是日上陪太后而坐, 越王自楊尙書家來入朝,
시일상배태후이좌 월왕자양상서가래입조
以楊尙書曾已納聘之意奏,
이양상서증이납빙지의주
이날 황상이 태후를 모시고 앉아 있는데,
월왕이 양상서의 집으로부터 돌아와서 입조入朝하여
양상서가 일찍이 약혼 예물을 받은 사실을 아뢰니,
皇太后不悅曰:
황태후불열왈
“楊少游爵至尙書,양소유작지상서
宜知朝廷事軆 而何其固滯若是耶?”
의지조정사체 이하기고체약시야
황태후 즐겁지 않게 말씀하기를,
“양소유 벼슬이 상서에 이르렀으니
마땅히 조정의 사체事軆를 알 것이거늘
그 편벽과 고집이 어찌 이 같을꼬?"
上曰: “少游雖已納聘 與成親有異,
상왈 소유수이납빙 여성친유이
황상이 대답하시기를,
“소유가 이미 혼약을 하였다 하나
이는 결혼례를 치른 것과는 다르니,
朕面諭 則似不可不從也.”
짐면유 즉사불가부종야
짐이 만나 타이르면
짐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