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卽辭歸 尙書入見司徒, 以越王之言告之,
왕즉사귀 상서입견사도 이월왕지언고지
왕이 곧 작별하고 돌아가자 상서가 들어가 정사도를 보고,
월왕의 말한 바를 아뢰고,
春雲已告於閤下矣, 擧家遑遑莫知所爲,
춘운이고어합하의 거가황황막지소위
司徒慘沮不能出一言,
사도참저불능출일언
춘운은 이미 부인에게 그 사실을 고하였기에
온 집안이 황황遑遑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사도는 비참하고 마음이 상하여 한 마디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尙書曰: 岳丈勿慮 天子聖明,
상서왈 악장물려 천자성명
守法度重禮儀,
수법도중례의
상서가 아뢰기를,
“악장岳丈은 염려치 마옵소서.
천자께서 덕망이 높고 밝으셔
법도를 지키고 예의를 중히 여기시니,
必不壞了臣子之倫紀, 小婿雖不肖,
필불괴료신자지륜기 소서수불초
誓不作宋弘之罪人矣.”
서부작송홍지죄인의
반드시 신하의 윤기倫紀를 어지럽게 아니하실 것이오매,
소서小婿가 비록 불초하오나
맹세코 송홍宋弘의 죄인은 되지 아니하오리다.”
先時 太后出臨蓬萊殿,
선시 태후출림봉래전
窺見楊少游 心甚喜悅,
규견양소유 심심희열
지난번에 태후께서 봉래전에 나오셔서
양소유를 몰래 보고, 마음에 몹시 흡족히 여겨
謂皇上曰: “此眞蘭陽之匹也,
위황상왈 차진란양지필야
吾旣親見 更何議乎?”
오기친견 갱하의호
황상께 이르시기를,
“이 자는 진실로 난양의 배필이 될 자로,
내가 이미 몸소 보았는데
어찌 다시 의논할 게 있겠는고?”
卽使越王先諭於楊少游.
즉사월왕선유어양소유
天子方欲命召 而面諭矣,
천자방욕명소 이면유의
바로 월왕을 시켜 먼저 양소유에게 알려 주었다.
천자께서는 장차 양소유를 부르도록 명을 내려서
직접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하셨는데,
上在別殿, 忽思昨日少游詩才筆法,
상재별전 홀사작일소유시재필법
俱極精妙 更欲親覽, 구극정묘 갱욕친람
황상은 별전에 머물던 중
문득 어제 양소유가 지은 시재와 필법
모두가 극히 정묘精妙한 것이 생각나
다시 친히 보시고 싶어서
使太監盡收女中書等所受詩牋.
사태감진수녀중서등소수시전
태감太監을 시켜 여중서女中書등이 받아 가진
시전詩牋을 모두 걷어 들이도록 하였다.
諸宮人皆深藏於篋笥 而惟一宮人,
제궁인개심장어협사 이유일궁인
모든 궁녀들이 다 상자에 깊이 넣어 두었는데,
오직 한 궁녀만이
持題詩畵扇 獨歸寢所,
지제시화선 독귀침소
置之懷中 終夕悲啼, 忘寢廢食
치지회중 종석비제 망침폐식
시를 쓴 그림 부채를 가지고 홀로 침소에 돌아가
품속에 간직하고 밤새도록 슬피 울며 침식을 전폐하였으니,
此宮女非他人也,
차궁녀비타인야
姓秦名彩鳳 華州秦御史女子.
성진명채봉 화주진어사녀자
이 궁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채봉彩鳳인
화주 땅 진어사秦御史의 딸이었다.
御史死於非命 沒入於宮掖, 宮人皆稱秦女之美,
어사사어비명 몰입어궁액 궁인개칭진녀지미
어사가 비명에 죽자 대궐 안 계집종으로 들어왔는데,
궁인들이 모두 진녀의 아름다움을 일컬어 주거늘,
上召見之 欲封婕妤, 時皇后有寵 嫌秦女之太美,
상소견지 욕봉첩여 시황후유총 혐진녀지태미
황상께서 그를 불러 보시고 궁녀로 봉하고자 하자,
그때 황후께서는 그녀를 아끼지만
진녀가 심히 아름다움을 꺼리시어,
白於上曰: “秦家女可合昵侍至尊,
백어상왈 진가녀가합닐시지존
而陛下殺其父而近其女,
이폐하살기부이근기녀
황상께 간하기를,
“진가의 딸은 폐하를 가까이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폐하께서 그 아비를 죽이고 그 딸을 가까이 하심은,
恐非古先哲王 立刑遠色之道也.”
공비고선철왕 립형원색지도야
옛날에 밝은 임금이 형벌을 세우고
색을 멀리 하던 도리에 어긋날까 염려되나이다.”
上從之 問於秦氏曰: “汝知文字乎?”
상종지 문어진씨왈 여지문자호
황상께서는 그 말을 따르시고,
진녀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글을 아느냐?”
秦女曰: “菫卞魚魯矣.”
진녀왈 근변어로의
진녀가 대답하기를,
“가까스로 어魚와 노魯를 구별할 정도입니다.”
上命爲女中書 使掌宮中文書,
상명위녀중서 사장궁중문서
仍令進往皇太后宮中, 陪蘭陽公主 讀書習字,
잉령진왕황태후궁중 배란양공주 독서습자
황상이 명하여 여중서女中書를 삼아 궁중 문서를 맡게 하시고,
거듭 황태후 궁으로 나아가
난양공주를 모시고 글도 읽고 글씨도 익히게 하시니,
公主大愛秦氏妙色奇才, 視如宗戚 跬步相隨,
공주대애진씨묘색기재 시여종척 규보상수
不忍一時分離.불인일시분리
공주가 진녀의 묘색기재妙色奇才를 지극히 사랑하여
종친과 왕실의 외척같이 여기고,
약간 움직일 때도 항상 같이 다니며
차마 잠시도 서로 나뉘어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秦氏是日侍太后往蓬萊殿,
진씨시일시태후왕봉래전
仍承上命與女中書等, 乞詩於楊尙書,
잉승상명여녀중서등 걸시어양상서
진녀가 이 날 태후를 모시고 봉래전에 나아가
이에 황상의 명을 받들어 여중서들과 더불어
양상서의 시를 받을 때,
尙書之七竅百骸 曾已銘鏤於秦氏之心肝矣,
상서지칠규백해 증이명루어진씨지심간의
豈有不知之理哉?기유부지지리재
상서의 몸의 모든 부분이
일찍이 이미 진씨의 마음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었으니,
어찌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었겠는가?
秦女生存 尙書旣不能知之,
진녀생존 상서기불능지지
况天威咫尺 亦不敢擧目.
황천위지척 역불감거목
진녀가 생존해 있으리라곤 상서는 일찍이 알 수도 없었거니와
하물며 천위天威가 지척에 있으니
또한 감히 눈을 들 수도 없었으리라.
秦女一見 尙書心如火熾,
진녀일견 상서심여화치
莊悲匿哀
장비익애
진녀는 상서를 한 번 보고는,
마음이 불타는 듯 슬픔이 솟구치나, 쓰라림을 숨기고,
恐被人知,
공피인지
痛情義之不通,
통정의지불통
다른 사람이 수상히 여길까 두려워하며,
인정과 의리가 통하지 못함을 마음 아프게 여기고,
悲鸞緣之難續, 手把團扇 口詠淸詩,
비란연지난속 수파단선 구영청시
옛 인연을 잇기가 어렵게 되었음을 못내 탄식하며,
손에 둥근 부채를 들고 맑은 시를 읊조리며,
一展一吟 不忍暫釋 其詩曰:
일전일음 불인잠석 기시왈
한 번 펼 적마다 그 시를 읊조리고 차마 잠시도 놓지 못하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紈扇團團似明月 환선단단사명월
佳人玉手爭皎潔 가인옥수쟁교결
五絃琴裏薰風多 오현금리훈풍다
出入懷裏無時歇 출입회리무시헐
깁부채가 둥글둥글 밝은 달 같은데
가인의 옥수로 희고 맑음 겨루더라
오현금 속에 훈풍 많으니
마음속으로 드나들어 쉴 때 없구나
紈扇團團月一團 환선단단월일단
佳人玉手正相隨 가인옥수정상수
無路遮却如花面 무로차각여화면
春色人間摠不知 춘색인간총부지
깁부채가 둥글둥글 달 한 바퀴 돌아
가인 옥수가 정히 서로 따르네
꽃같은 얼굴 가리는 길 없는데
봄 빛 사람 내내 알지 못하네
秦氏詠前一首而歎曰:“楊郞不知我心矣.
진시영전일수이탄왈 양랑부지아심의
我雖在宮中, 豈有承恩之念哉?”
아수재궁중 기유승은지념재
진씨가 앞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양랑은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내 비록 궁중에 있으나,
어찌 임금의 은혜를 받을 생각을 하겠는가?”
又詠後一首而歎曰:“我之容貌 他人雖不得見之,
우영후일수이탄왈 아지용모 타인수부득견지
또 뒤의 한 수를 읊조리며 탄식하기를,
“내 얼굴을 자기가 비록 볼 수는 없지만,
楊郞必不忘於心 而詩意若斯, 咫尺誠如千里矣.”
양랑필불망어심 이시의약사 지척성여천리의
양랑은 필연 마음으로는 잊지 아니하였을 터인데,
글 뜻이 이와 같으니 지척이 실로 천리 같구나.”
仍憶在家之時與楊郞, 唱和楊柳詞之事,
잉억재가지시여양랑 창화양류사지사
거듭 예전에 집에 있을 때 양랑과
양류사楊柳詞를 화창和唱하던 일을 생각하니
悲不自抑 和淚濡筆, 續題一詩於扇頭 方吟哢矣,
비불자억 화루유필 속제일시어선두 방음롱의
,
슬픔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여 눈물이 돌아 붓을 적시거늘,
부채머리에 시 한 수를 이어 쓰고
바야흐로 읊으며 자조하고 있는데,
忽聞太監以上命來索畵扇,
홀문태감이상명래색화선
秦氏骨驚膽落 肥肉自顫,
진씨골경담락 비육자전
홀연 태감太監이 황상의 명령으로
그림 부채를 와서 찾는다는 소리를 들으니
진씨는 뼈가 으스러지며 간이 떨어지는 듯하고
살이 찢어지는 듯하여 저절로 사지를 떨며,
叫苦之聲 自出於口曰: “我其死矣 我其死矣.”
규고지성 자출어구왈 아기사의 아기사의
입에서는 괴로운 탄성이 저절로 나와 부르짖기를,
“나는 죽었구나. 나는 죽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