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卽使宮女以御前琉璃硯甲,
즉사궁녀이어전류리연갑
白玉筆床 玉蟾蜍硯滴,
백옥필상 옥섬서연적
곧 궁녀들을 시켜 어전에 유리 벼룻집과
백옥 필상筆床과 옥섬서연적을
移置於尙書席前,
이치어상서석전
상서의 자리 앞으로 옮겨 놓게 하셨고,
諸宮人已承乞詩之命矣, 各以華牋羅巾畵扇,
제궁인이승걸시지명의 각이화전라건화선
擎進於尙書前,
경진어상서전
모든 궁인들이 이미 상서의 글을 받으라는 어명을 들었으므로
각각 예쁜 종이, 비단 수건과 그림 부채를
상서 앞에 공경히 바치니,
尙書醉興方高詩思自湧,
상서취흥방고시사자용
遂拈彤管 次第揮洒, 風雲焂起雲煙爭吐,
수접동관 차제휘세 풍운숙기운연쟁토
상서가 바야흐로 취흥이 돌아 시상詩想이 저절로 용솟음쳐서
드디어 채색 붓을 들어 차례로 시를 쓰는데,
풍운이 별안간 일고 운연雲煙이 다투어 일어나는지라
或製絶句 或作四韻,
혹제절구 혹작사운
或一首而止 或兩首而罷,
혹일수이지 혹양수이파
혹은 절구를 짓기도 하고, 혹은 사운四韻도 지으며,
한 수를 쓰다가 그치기도 하고, 두 수를 다 쓰기도 하였는데
日影未移 牋帛已盡.
일영미이 전백이진
해 그림자가 아직 옮기지 아니하여
종이와 비단이 이미 소진되었다.
宮女以次跪進於上,
궁녀이차궤진어상
上一一鑑別 箇箇稱揚,
상일일감별 개개칭양
궁녀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어 상감께 바친즉,
상감께서 하나하나 감별하시고
개개의 것들에 칭찬하시며
謂宮娥等曰:
위궁아등왈
“學士亦旣勞矣 特宣御醞.”
학사역기로의 특선어온
궁녀들에게 이르시기를,
“학사가 또한 이미 수고하였으니,
궁중에서 빚은 술로 특별히 대접할 것이로다.”
諸宮女或擎黃金盤,
제궁녀혹경황금반
或把琉璃鍾 或執鸚鵡杯, 或擎白玉床
혹파류리종 혹집앵무배 혹경백옥상
모든 궁녀가 혹은 황금 쟁반에 받들어 올리기도 하고
혹은 유리로 만든 술병으로 올리기도 하며,
혹은 앵무 술잔을 잡고
혹은 백옥상白玉床을 내오는데,
滿酌淸醴 備列佳肴,
만작청례 비열가효
乍跪乍立 迭勸迭進,
사궤사립 질권질진
그 위에는 좋은 술이 가득하고,
맛좋은 안주가 차려져 있었으며,
잠깐 꿇어앉았다 잠깐 서면서
다투어 바치고 다투어 권하므로,
翰林左受右接 至十餘觥.
한림좌수우접 지십여굉
한림은 좌우 두 손으로 받은 것이 십여 잔에 이르렀다.
韶顔已酡 玉山欲頹,
소안이타 옥산욕퇴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벌써 붉어지고
아름다운 자태가 무너지고자 하거늘,
上命止之 又敎曰:
상명지지 우교왈
황상께서 그만두도록 명하시고
또 하교下敎하기를,
“學士詩句可直千金,
학사시구가직천금
眞所謂無價寶也.
진소위무가보야
“학사의 시 한 구절은 천금과 맞먹을 만하니,
이는 진실로 이른바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보석이로다.
詩曰 投之木果 報以瓊琚,
시왈 투지목과 보이경거
모시毛詩에 이르기를,
‘모과[木果]를 던지니 경거瓊琚로 갚는다’하였으니
爾輩以何物 爲潤筆之資乎?”
이배이하물 위윤필지자호
너희들이 무슨 물건으로 윤필지자潤筆之資를 하려느뇨?”
群娥 或抽金釵 或解玉珮,
군아 혹추금채 혹해옥패
或卸指環 或脫金釧,
혹사지환 혹탈금천
궁녀들 중에는 혹은 금비녀를 빼거나 혹은 옥패도 떼어 내고
또는 가락지를 빼고 금팔찌를 빼기도 하여,
爭鬪亂擲 頃刻成堆.
쟁투란척 경각성퇴
다투듯이 어지러이 던지니,
눈 깜짝할 사이에 더미를 이루었다.
上召謂黃門曰:
상소위황문왈
“爾收取尙書所用筆硯及硯滴,
이수취상서소용필연급연적
황상께서 내시를 불러 이르기를,
“너는 상서가 쓰던 필연筆硯과 연적硯滴
宮娥潤筆之物,
궁아윤필지물
隨尙書而去 傳給於其家.”
수상서이거 전급어기가
그리고 궁녀들이 내 놓은 물건들을 거두어
상서를 따라가서 그 집에 전하여 주도록 하라.”
尙書叩頓謝恩 欲起還仆,
상서고돈사은 욕기환부
上命黃門扶掖而出,
상명황문부액이출
상서가 머리를 조아려 사은謝恩하고
일어나다가 다시 자리에 쓰러지는지라
황상께서 내시에게 부축하여 데리고 나가도록 명하니
至宮門 騶從齊擁上馬.
지궁문 추종제옹상마
궁문에 이르러
추종騶從들이 일제히 옹위하여 말에 태웠다.
歸到花園 春雲扶上高軒,
귀도화원 춘운부상고헌
解其朝服而問曰:
해기조복이문왈
양상서가 돌아와 화원에 이르니
춘운이 붙들어 높은 난간으로 올리고
그의 조복을 벗기며 묻기를,
“相公過醉 誰家酒乎?”
상공과취 수가주호
“상공께서 지나치리만큼 취하셨는데,
뉘 집에서 술을 드셨습니까?”
翰林醉甚 不能答已而,
한림취심 불능답이이
한림이 몹시 취하여 대답할 수가 없을 뿐인데,
蒼頭奉賞賜筆硯
창두봉상사필연
及釵釧首飾等物, 積置於軒上,
급채천수식등물 적치어헌상
하인이 황상께서 상으로 주신 필연筆硯과
비녀, 팔찌와 머리 장식품 등의 물건을 받들어
험함위에 쌓아 놓으니,
尙書戱謂春雲曰:
상서희위춘운왈
상서가 희롱삼아 춘운에게 말하기를,
“此物皆天子賞賜春娘者也,
차물개천자상사춘낭자야
我之所得 與東方朔誰優?”
아지소득 여동방삭수우
“이 물건 모두 천자께서 춘낭에게 상으로 내리신 것이니,
나의 소득이 동방삭東方朔과 견주어 누가 더 낫소?”
春雲更欲問之,
춘운갱욕문지
翰林已昏倒 鼻息如雷.
한림이혼도 비식여뢰
춘운이 다시 묻고자 하나,
한림은 이미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코 고는 소리가 마치 천둥과도 같았다.
翌日高舂 尙書始起盥洗矣,
익일고용 상서시기관세의
이튿날에 무척 늦게서야
상서가 비로소 일어나 손과 낯을 씻는데,
閽者走告曰:“越王殿下來矣.”
혼자주고왈 월왕전하래의
문지키는 자가 달려와서 고하기를,
“월왕越王 전하께서 오십니다.”
尙書驚曰: “越王之來 必有以也.”
상서경왈 월왕지래 필유이야
상서가 깜짝 놀라 말하기를,
“월왕이 왕가枉駕하시니 필연 일이 있도다.”
顚踣出迎王 上座施禮,
전부출영왕 상좌시례
엎어지고 넘어질 듯 급히 나아가 왕을 맞이하여
상좌에 앉히고 예를 베푸니,
年可二十餘歲,
년가이십여세
眉宇炯然 眞天人也.
미우형연 진천인야
나이는 대략 이십여 세인데,
얼굴이 형연炯然하여 정말 천인天人과 같았다.
尙書跪問曰:
상서궤문왈
“大王枉屈於陋地 抑有何敎?”
대왕왕굴어루지 억유하교
상서가 꿇어앉아 묻기를,
“대왕께서 누추한 곳에까지 왕림하시니,
무슨 가르치심이 있나이까?”
王曰:“寡人竊慕盛德雅矣,
왕왈 과인절모성덕아의
玆奉上命來 宣聖旨矣.
자봉상명래 선성지의
왕이 대답하기를,
“과인은 은근히 경의 성덕盛德을 사모하여 왔는데,
이제 황상의 명을 받들고 와서 성지聖旨를 전하오이다.
蘭陽公主正當芳年, 朝家方揀駙馬矣,
란양공주정당방년 조가방간부마의
난양공주가 정말로 꽃다운 나이가 되어
조가朝家에서 바야흐로 부마駙馬를 간택하려고 하는데,
皇上愛尙書才德, 已定釐降之儀,
황상애상서재덕 이정리강지의
황상께서 상서의 재주와 덕을 매우 사랑하시어
공주 혼사의 의논을 정하시고,
先使寡人諭之,
선사과인유지
詔命將繼下矣.”
조명장계하의
과인으로 하여금 먼저 이 일을 알리라 하신 것이니,
장차 계하繼下는 황상의 명을 받게 되리이다.”
尙書大駭曰:
상서대해왈
“皇恩至此 臣首至地,
황은지차 신수지지
상서가 깜짝 놀라며 아뢰기를,
“황상의 은혜가 이 정도까지 이르니 신은 머리를 들 수 없나이다.
過福之災 有不暇論,
과복지재 유불가론
복이 지나치면 재앙이 생긴다 함은 말할 나위없는 것이오며,
而臣與鄭司徒女子,
이신여정사도녀자
約婚納聘已經歲矣.
약혼납빙이경세의
신은 정사도의 딸과
약혼하여 예물까지 받은 지 여러 해가 지났사오니,
伏望大王以此意 奏達於皇上.
복망대왕이차의 주달어황상
대왕께서는 이 뜻을 황상께 아뢰어 주시기를 엎드려 바라나이다.”
王曰:“吾當歸奏於天階而惜乎!
왕왈 오당귀주어천계이석호
皇上愛才之意已歸虛矣.”
황상애재지의이귀허의
왕이 대답하기를,
“내가 돌아가서 마땅히 황상께 아뢰려니와, 아깝도다!
황상께서 인재를 사랑하시는 뜻이 이미 허사로 돌아갔도다.”
尙書曰:“此關係人倫之大事 不可忽也.
상서왈 차관계인륜지대사 불가홀야
臣當請罪於闕下矣.”
신당청죄어궐하의
상서가 여쭙기를,
“이 관계는 인륜 대사이오니 소홀히 할 수 없나이다.
신이 마땅히 궐 아래에서 죄를 청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