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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尙書不答 屨及花園,
양상서부답 구급화원
春雲鳴鳴咽咽 泪痕染瀾,
춘운명명열열 루흔염란
양상서는 대답치 아니하고 신을 끌면서 화원에 이르니,
춘운이 흐느껴 울어 눈물 흔적이 선명했다.
乃奉納幣物曰:
내봉납폐물왈
이에 폐물幣物을 받들어 올리면서 말하기를,
“賤妾以小姐之命, 來侍相公已有年矣,
천첩이소저지명 래시상공이유년의
“천첩이 소저의 명을 받고
와서 상공을 모신지 이미 여러 해 되었는데,
偏荷盛眷 恒功感愧, 神妬鬼猜 事乃大謬,
편하성권 항공감괴 신투귀시 사내대류
특별히 후한 은애恩愛를 입어 항상 무척 감격해 하였으나,
신이 투기하고 귀신이 시기하여 일이 크게 잘못되어서,
小姐婚事無復餘望.
소저혼사무복여망
소저의 혼사는 되돌릴 수 있는 여망餘望이 없게 되었습니다.
賤妾亦當永訣相公 歸侍小姐,
천첩역당영결상공 귀시소저
天乎地乎 鬼乎人乎!
천호지호 귀호인호
천첩도 또한 마땅히 상공과 영원히 이별하고
돌아가서 소저를 모시겠습니다.
아!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귀신이시여! 사람이시여!”
仍飮泣聲如縷矣.
잉음읍성여루의
가늘게 계속 흐느껴 울었다.
尙書曰:“吾方欲上踈力辭 皇上庶或回聽,
상서왈 오방욕상소력사 황상서혹회청
상서가 이르기를,
“내 바야흐로 상서를 올리어 극력 사양하면
황상께서 혹시 마음을 돌리고 들으실 지도 모르며,
設未能得聽, 女子許身於人 則從夫禮也,
설미능득청 여자허신어인 즉종부례야
春娘夫豈背我之人哉?”
춘낭부기배아지인재
설령 듣지 않으신다 해도
여자가 남에게 몸을 허락하였으면
지아비를 따르는 것이 예이거늘,
춘낭은 어찌 나를 등지는 사람이 되려 하는고?”
春娘曰: “賤妾雖不明 亦嘗聞古人緖論矣,
춘낭왈 천첩수불명 역상문고인서론의
춘낭이 대답하기를,
“천첩이 비록 불명하오나
또한 일찍이 고인의 서론緖論을 들었으니,
豈不知女子三從之義乎?
기부지녀자삼종지의호
어찌 여자가 가야 할 삼종三從의 의義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春雲情事有異於人,
춘운정사유리어인
妾曾自吹葱之日 與小姐遊戱,
첩증자취총지일 여소저유희
춘운의 정사情事는 다른 사람의 경우와 다르니,
첩은 일찍이 어릴 적부터 소저와 함께 노닐고
及至毁齒之歲, 與小姐居處
급지훼치지세 여소저거처
忘貴賤之分, 結死生之盟,
망귀천지분 결사생지맹
또 나이가 들어서는 소저와 함께 거처하여
귀천貴賤의 신분을 잊고 사생死生의 맹세를 맺은,
吉凶榮辱 不可異同,
길흉영욕 불가리동
春雲之從小姐如影之隨形,
춘운지종소저여영지수형
소저와 길흉영욕을 달리함은 아니 되오며,
춘운이 소저를 좇음은 그림자가 형체를 따름과 같사온데,
身固旣去 則影豈獨留乎?”
신고기거 즉영기독류호
몸이 이미 떠났다면
그림자가 어찌 홀로 머무를 수가 있겠습니까?”
尙書曰:
상서왈
“春娘爲主之誠可謂至矣.
춘낭위주지성가위지의
상서가 이르기를,
“춘낭의 주인을 위한 정성은 지극하다 할 만하구나.
但春娘之身與小姐異, 小姐東西南北唯意擇路,
단춘낭지신여소저리 소저동서남북유의택로
다만 춘낭의 몸은 소저와는 다르니,
소저는 동서남북에서
오직 뜻대로 길을 택할 수 있으려니와
春娘從小姐事它人, 得無有妨於女子之節乎?”
춘낭종소저사타인 득무유방어녀자지절호
춘낭이 소저를 좇아 다른 사람을 섬김은
여자의 절행節行에 어찌 거리끼는 바가 없겠느냐?”
春雲曰:“相公之言到此,
춘운왈 상공지언도차
不可謂知吾小姐也.
불가위지오소저야
춘운이 대답하기를,
“상공의 말씀이 이에 이르니,
저와 소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小姐已有定計, 長在吾老爺及夫人膝下,
소저이유정계 장재오노야급부인슬하
소저께서 이미 정한 계책計策이 있는데,
우리 노야와 부인의 슬하에서 오래 계시다가
待過百年之後潔身斷髮, 去托空門發願於佛前,
대과백년지후결신단발 거탁공문발원어불전
백 년이 지난 뒤를 기다리어서 몸을 깨끗이 하고 머리를 깎아
공문空門에 가서 의탁하여 부처 앞에서 발원하길,
世世生生 誓不爲女子之身,
세세생생 서불위녀자지신
春雲蹤跡 亦將如斯而已.
춘운종적 역장여사이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맹세코 여자의 몸이 되지 않으려 하시니
춘운의 종적蹤跡 역시 이와 같을 뿐입니다.
相公如欲復見春雲,
상공여욕부견춘운
相公禮幣復入於小姐房中然後,
상공례폐부입어소저방중연후
상공께서 만일 춘운을 다시 보려고 하시면
상공의 예폐禮幣가 소저의 방 속으로 다시 들어간 연후에
當議之矣, 不然則今日卽生離死別之日也.
당의지의 불연즉금일즉생리사별지일야
마땅히 논의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오늘이 바로 생리사별生離死別하는 날일 것입니다.
妾任相公使令者專矣,
첩임상공사령자전의
荷相公恩愛者久矣.
하상공은애자구의
첩은 상공께 모든 것을 맡기고
영을 듣는 데에 전념하였으며,
상공의 은애를 입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報效之道惟在於拂枕席奉巾櫛,
보효지도유재어불침석봉건즐
而事與心違到此地頭.
이사여심위도차지두
오직 침구寢具를 정갈히 하고
남자 시중드는 데에는 첩이 있었으며,
일과 마음으로 섬긴 지 이에 이르렀습니다.
只願後世爲相公犬馬,
지원후세위상공견마
以效報主之忱矣 惟相公保攝保攝.”
이효보주지침의 유상공보섭보섭
후세에 상공의 개와 말이 되어
주인을 위하는 정성을 힘껏 바치려 하오니
오직 상공께서는 몸을 보전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向隅呼咷者半日,
향우호도자반일
乃翻身下階再拜而入.
내번신하계재배이입
모퉁이를 향하여 돌아앉아서 반나절이나 흐느껴 울다가,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가 재배하고 안채로 들어가 버렸다.
尙書五情憒亂 萬慮膠擾,
상서오정궤란 만려교요
仰屋長吁撫掌 頻唏而已.
앙옥장우무장 빈희이이
양상서는 오정五情이 심란하고
무슨 일에나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푸른 하늘을 우러러 깊은 한숨을 쉬고
손을 어루만지며 자주 탄식할 뿐이었다.
乃上一䟽言甚激切
내상일소언심격절
其疏曰:기소왈
바로 상소문을 올렸는데 언사가 매우 격절하였다.
그 상소문에 쓰이기를,
“禮部尙書臣楊少游,
예부상서신양소유
謹頓首百拜 上言于皇帝陛下,
근돈수백배 상언우황제폐하
“예부상서 신 양소유는
삼가 돈수頓首 백배하옵고,
말씀을 황상폐하께 올리나이다.
伏以倫紀者王政之本也, 婚姻者人倫之始也.
복이륜기자왕정지본야 혼인자인륜지시야
엎드려 아뢰건대,
윤기倫紀는 왕정의 근본이요, 혼인은 인륜의 시작이라.
一失其本 則風化大壞 而其國亂,
일실기본 즉풍화대괴 이기국란
그 근본을 한번 잃은즉
풍화風化가 크게 무너져서 그 나라가 어지럽고,
不謹其始 則家道不成而其家亡,
불근기시 즉가도불성이기가망
有關於家國之興衰者, 不其較著乎?
유관어가국지흥쇠자 불기교저호
그 처음을 삼가지 아니한즉
그 가도家道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그 집이 망하나니,
국가의 흥망성쇠에 관련됨이 어찌 현저치 않으리이까?
是以聖王哲辟,
시이성왕철벽
未嘗不留意於是,
미상불류의어시
그러므로 성왕 철벽께서는
미상불 이에 유의하시어
欲治其國 必以植倫紀爲重,
욕치기국 필이식륜기위중
欲齊其家 必以定婚姻爲先者,
욕제기가 필이정혼인위선자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함에
반드시 그 윤기를 붙드는 것으로써 그 중함을 삼고
그 집을 가지런히 하고자 함에
반드시 혼인을 올바르게 함으로써 으뜸을 삼았나이다.
臣旣已納幣於鄭女, 且已托跡於鄭家,
신기이납폐어정녀 차이탁적어정가
則臣固有妻也固有室也.
즉신고유처야고유실야
신이 이미 예폐를 정녀에게 보내었고
또한 자취를 이미 정가에 의탁하였사온즉,
신은 이미 처가 있고 가정이 있는 것이옵니다.
不意今者 歸妹之盛禮,
불의금자귀매지성례
遽及於無似之賤臣,
거급어무사지천신
뜻밖에도 이제 황상의 누이를 시집보내려는 성례盛禮를
갑자기 못난 천신賤臣에게 말씀하시니,
臣始疑終惑震駭悚惕,
신시의종혹진해송척
신은 처음과 끝이 어리둥절하여 깜짝 놀랍고 두려우며
實不知聖上之擧措朝家處分,
실부지성상지거조조가처분
果能盡其禮 而得其當也.
과능진기례 이득기당야
성상께서 취하신 조처와 조가朝家의 처분이
과연 그 예禮를 다하고,
또한 그 예에 타당한 것이었는지 실로 알지 못하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