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翰林大笑曰: “大丈夫當國事受重任,

한림대소왈 대장부당국사수중임

死生此不可顧, 區區私情 安足論乎?

사생차불가고 구구사정 안족론호

한림이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대장부가 나라 일을 당하여 중임重任을 맡았으니

생사를 또한 돌아보지 못하겠거늘,

구구한 사정私情을 어찌 마음대로 의논하겠는가?

春娘無作浪悲 以傷花色, 謹奉小姐穩度時日,

춘낭무작랑비 이상화색 근봉소저온도시일

待吾竣事成功 腰懸如斗大金印, 得意歸來也.”

대오준사성공 요현여두대금인 득의귀래야

춘낭은 부질없이 슬퍼하여 꽃 같은 얼굴을 상하지 말고,

삼가 소저를 받들어 편안한 마음으로 얼마동안

나를 기다리면, 사업을 마쳐 성공한 후에

말[斗]과 같이 큰 금인金印을 허리에 차고

득의양양하게 돌아오리라.”

卽出門乘車而行.

즉출문승거이행

곧, 문을 나서 수레를 타고 떠나갔다.

至洛陽 舊日經過之跡 尙不改矣.

지락양 구일경과지적 상불개의

행차가 낙양洛陽에 다다렀는데,

지난날 지나갔던 자취들은 아직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當時以十六歲藐然一書生,

당시이십육세막연일서생

着布衣跨蹇驢 搰搰棲棲行色艱關,

착포의과건려 골골서서행색간관

당시에 십육 세의 막연한 한낱 서생으로서

베옷을 걸치고 다리를 저는 당나귀에 걸터앉아

골골서서搰搰棲棲 하며 행색이 구차하였었는데,

不啻如蘇秦十上之勞矣, 才過數年建玉節駈駟馬,

불시여소진십상지로의 재과수년건옥절구사마

洛陽縣令奔走除道, 河南府尹匍匐導行,

락양현령분주제도 하남부윤포복도행

소진蘇秦이 열 나라위에 군림한 공로와는 같지 않다 할지언정

겨우 몇 년이 지나 옥절玉節을 세우고 사마駟馬를 몰고 가며,

낙양 현령이 분주히 길을 고치고

하남 부윤河南府尹이 공손히 길을 인도하니,

光彩照耀於一路, 先聲震懾於諸州,

광채조요어일로 선성진섭어제주

閭里聳觀行路咨嗟 豈不誠偉哉?

려리용관행로자차 기불성위재

광채가 한길에 밝게 비치고,

미리 알려진 명성이 여러 주를 떨며 두렵게 한즉,

마을 사람들이 행로行路를 조용히 바라보며 부러워하는데,

어찌 정말 위관偉觀이 아니겠는가?

翰林先使書童, 往探桂蟾月消息,

한림선사서동 왕탐계섬월소식

書童往蟾月之家 重門深鎖,

서동왕섬월지가 중문심쇄

한림이 먼저 사동으로 하여금

계섬월의 소식을 알아보라 하여

서동이 섬월의 집을 찾았으나

중문重門은 굳게 잠기고

畫樓不開 惟有櫻桃花,

화루불개 유유앵도화

爛開於墻外而已 訪於隣人卽曰:

란개어장외이이 방어린인즉왈

화루畫樓도 열지 않은 채,

아직 앵두꽃만이

담 밖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을 뿐이어서

이웃 사람을 만나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蟾月去年春與遠方相公, 結一夜之緣,

섬월거년춘여원방상공 결일야지연

其後稱有疾病 謝絶遊客, 官府設宴 托故不進矣.

기후칭유질병 사절유객 관부설연 탁고부진의

“섬월이 지난 해 봄에 먼 고장의 상공相公과 더불어 하룻밤 인연을 맺은

후로는 병이 있다고 핑계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사절하며

관가에서 베푼 잔치에도 그 이유를 들어 나아가지 아니하더니,

未幾佯狂 盡去珠翠之飾, 改着道士之服 遍遊山水,

미기양광 진거주취지식 개착도사지복 편유산수

尙未還歸 不知其方在何山矣.”

상미환귀 부지기방재하산의

얼마 안 가서 거짓 미친 체하며

구슬과 비취 따위의 패물붙이들을 다 떼어 버리고,

도사道士의 의복으로 바꿔 입고는 두루 산수山水를 구경하는데,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였으니, 어느 산에 있는지 그 정처를 알지 못합니다.”

書童以此來報, 翰林歡意 遂沮若墜深坑,

서동이차래보 한림환의 수저약추심갱

過其門墻 撫迹潛辛, 夜入客館不能交睫.

과기문장 무적잠신 야입객관불능교첩

서동이 돌아와 이 연유를 아뢰니,

한림의 기쁘고 즐거운 마음이

마침내 깊은 갱坑에 떨어지는 것과 같이 막혀

그 문門과 담을 지나면서, 남몰래 그 자취를 어루만지고

밤에 객관客館에 들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府尹進娼女十餘人而娛之, 皆一時名艶也.

부윤진창녀십여인이오지 개일시명렴야

明粧麗服三匝圍坐, 前者天津橋上諸妓 亦在其中矣.

명장려복삼잡위좌 전자천진교상제기 역재기중의

부윤이 기생 십여 명을 보내어 즐거이 해 주려는데,

모두가 한 때에 곱기로 이름난 자들이었다.

아름다운 단장과 화려한 의복을 차려입고 삼면으로 둘러 앉았는데,

전번에 천진루天津樓 위에 있던 여러 기생들도 또한 그 중에 있었다.

爭姸誇嬌欲睹一眄, 而翰林自無佳緖不近一人,

쟁연과교욕도일면 이한림자무가서불근일인

翌曉臨行 遂題一詩於壁上. 其詩曰:

익효임행 수제일시어벽상 기시왈

아름다움을 겨루고 교태를 자랑하며 한 번 눈여겨보기를 바랐지만,

한림은 자연 아무런 흥취가 없어 한 사람도 가까이함이 없이

이튿날 새벽 떠날 즈음에 마침내 한 수의 시를 벽 위에 지어 놓았다.

그 시에 읊기를,

雨過天津柳色新 우과천진류색신

風光宛似去年春 풍광완사거년춘

可憐玉節歸來地 가련옥절귀래지

不見當壚勸酒人 불견당로권주인

비 내린 천진 지나니 버들 빛 새로워

풍광은 완연히 지난 봄과 같건만

가련타, 옥절玉節은 다시 찾아 왔는데

술자리에 술 권하던 이 보이지 않네

寫吃投筆 乘軺取其前路而去,

사흘투필 승소취기전로이거

諸妓立望行塵只切慙赧而已.

제기립망행진지절참난이이

시 쓰기를 마치자 붓을 던지고 수레에 올라 앞길을 취하여 나아가니,

여러 창기娼妓들이 우두커니 서서 가는 길에 이는 먼지만을 바라보고

다만 무척 부끄러워 무안해할 뿐이었다.

爭謄其詩納於府尹, 府尹責衆娼曰:

쟁등기시납어부윤 부윤책중창왈

서로 다투어 그 글을 베껴서 부윤에게 바치니,

부윤이 여러 창기들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汝輩若得楊翰林之一顧, 則可增三倍之價 而一隊新粧,

여배약득양한림지일고 즉가증삼배지가 이일대신장

皆不入於翰林之眼, 洛陽自此無顔色矣.”

개불입어한림지안 락양자차무안색의

“너희들이 만일 양한림의 한 번 돌아봄을 얻었다면,

세배나 그 값을 더할 수 있었을 것인데,

한 무리나 새로 단장을 하고서도

모두 한림의 눈에 들지 못하였으니,

이로부터 낙양 땅이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

問於衆妓知翰林屬意之人, 揭榜四門訪蟾月去處,

문어중기지한림속의지인 게방사문방섬월거처

以待翰林復路之日.

이대한림부로지일

여러 창기들에게 한림의 마음에 있는 사람을 알아내도록 묻고,

네 문에 섬월이 간 곳을 찾아내는 방문榜文을 붙이도록 하며,

한림이 다시 길을 지나는 날을 기다렸다.

翰林至燕國絶徼之人, 未曾賭皇華威儀 見翰林,

한림지연국절요지인 미증도황화위의 견한림

如地上祥麟 雲間瑞鳳,

여지상상린 운간서봉

한림이 연나라에 다다르니, 아득한 변방 사람들이

일찍이 황화皇華의 위의를 보지 못하였다가 한림을 보니,

상서로운 땅 위의 기린 같고 구름 속의 상서로운 봉황과 같기에,

到底擁車塞路, 無不以一覩爲快,

도저옹거색로 무불이일도위쾌

而翰林威如疾雷 恩如時雨,

이한림위여질뢰 은여시우

마침내는 다투어 수레를 둘러싸고 길을 메우면서

한 번 보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림의 위엄이 빠른 우레와 같고

은혜는 때를 맞춰서 내리는 비와도 같아서

邊民亦皆欣欣, 鼓舞嘖舌相稱曰:

변민역개흔흔 고무책설상칭왈

“聖天子將活我矣.”

성천자장활아의

변방 백성들이 역시 기뻐하며,

북치고 춤을 추면서 서로 다투어 이르기를,

“성천자聖天子가 장차 우리를 살리실 것이로다.”

翰林與燕王相見, 翰林盛稱天子威德朝廷處分,

한림여연왕상견 한림성칭천자위덕조정처분

以向背之執順逆之機, 縱橫闢闔 言皆有理,

이향배지집순역지기 종횡벽합 언개유리

한림이 연왕과 서로 만나서는,

천자의 위덕威德과 조정의 처분을 자주 일컬으며,

향배向背의 세력과 순역順逆의 도리를 역설함에는

이치를 잘 알아듣도록 타이르는데,

滔滔如海波之瀉, 凜凜如霜颷之烈,

도도여해파지사 름름여상표지렬

燕王瞿然而驚 惕然而悟,

연왕구연이경 척연이오

도도함이 바다 물결을 뒤치는 듯하고,

늠름함이 추상같아서, 연왕이 놀라며 두려워하더니,

곧 사리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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