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만 부르면 왜 목이 메일까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1위, <봄날은 간다>
천 양 희 | 시인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작사:손로원, 작곡:박시춘, 노래:백설희) 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나는 언니들이 부르던 유행가를 동요보다 먼저 따라 불렀다. 뜻도 모르고 귀동냥으로 배운 유행가를 어린 내가 왜 그토록 청승스럽게 잘 불렀는지 모르겠다.
노랫말이나 가락을 전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냥 따라 부른 유행가였지만 나는 그 노래들이 그냥 좋았다. 어떤 노래는 두세 번만 들으면 금방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봄날은 간다>를 제일 좋아했고 잘 불렀다. 그 노래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른 첫 유행가였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란 첫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 이 대목을 부르고 나면 왠지 나도 모르게 슬픈 무엇이 느껴졌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때 내가 알던 유행가는 <봄날은 간다>와 한참 뒤에 배운 <꿈꾸는 백마강>이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로 시작되는 <꿈꾸는 백마강>도 좋았지만 내 정서로는 <봄날은 간다>가 더 좋았던 것 같다.
내 고향의 뒷산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었다. 절골에는 산제비가 날아다녔고 성황당도 있었다. 우리 농장 둑에 올라서면 바로 낙동강이 보였다. 그런 저런 이유로 <봄날은 간다>를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나는 그때부터 유행가 잘 부르는 아이로 알려져 동네 어른들도 얼핏하면 유행가 한 곡조 부르라고 성화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동요를 더 많이 배웠지만 나는 동요보다는 유행가 쪽에 더 마음이 끌렸었다. 말하자면 못말리는 악동인 셈이었다.
부모들도 그 소문을 들었을 텐데도 꾸지람을 들은 적은 없었다. 아마 모르셨으리라. 엄한 교육을 시킨 아버지가 아셨더라면 아마도 나는 유행가의 ‘유’자도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행가는 어른의 노래이고 동요는 어린이의 노래이니 유행가를 부르지 못하게 했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숨어서라도 불렀을 것이다. 그때부터 시인의 기질이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유행가를 계속 불렀던 것은 담임 선생님이 내가 부르는 유행가를 좋아했던 탓도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너는 시인이 될 거야’라고 하셨던 선생님이 어느날 내게 물으셨다. ‘너 유행가 잘 부른다면서? 내 앞에서 한 곡 불러 볼래?’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동요가 아닌 유행가를 아이들이 부르면 안 된다는 것도 모르고 잘 부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야단은커녕 빙그레 웃으시면서 어디 한번 불러보라고 조르셨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서는 어렵고 부끄러워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 봄소풍을 갔었는데 놀이시간에 선생님이 불쑥 나더러 유행가 한 곡 불러보라 하셨다. 그때는 망설이지 않고 <봄날은 간다>를 구성지게 불렀다. 아이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선생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이 노래는 동요가 아니고 유행가지만 우리나라 여인들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라면서 참 잘 불렀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그때 선생님의 눈에 고이던 눈물을 보았다.
예쁜 선생님에게도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생각하다 시집 간 내 언니를 떠올렸다. 그 언니가 잘 불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다. 사랑하던 사람과 맺어지지 못하고 부모의 뜻대로중매 결혼을 했던 그 언니는 특히 연분홍색을 좋아해서 친정에 올 때는 꼭 분홍색 옷을 입고 왔었다. 그 언니는 친정에 오면 잊지 않고 뒷동산에 있는 성황당과 암자를 찾았다. 마치 누구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꼭 들렀다 가곤 했다. 내 언니는 성황당 돌탑에 돌 몇 개를 정성스레 올려놓고 무엇인가 빌었다.
성황당 고갯길을 넘으면 성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었다. 암자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갈 때 언니의 분홍치마가 바람에 휘날렸다. 앞서 가던 언니가 나지막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울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봄바람에 휘날리던 연분홍 치마와, 언니의 눈물을 잊지 못한다. 가끔 노래방에서 <봄날은 간다>를 부를 때면 그때가 생각나서 나도 조금 울 때도 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도, 내 언니도 왜 그 노래만 부르면 눈물이 고이고 목이 메었을까. 나는 오늘도 우리네 여인의 애환이 담긴 <봄날은 간다>를 부르며 여인의 애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어린 시절의 <봄날은 간다>를 그리워한다.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귀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으로 견인해 가는 안개 <북한강에서> (0) | 2010.07.14 |
---|---|
이선영 /고독한 이의 불타는 영혼 <킬리만자로의 표범> (0) | 2010.07.14 |
황금찬 /노랫말에 얽힌 30년대 문단 삽화 (0) | 2010.07.14 |
전윤호 /시인과 대중가요 (0) | 2010.07.14 |
오광수 /시인들의 18번 (0) | 2010.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