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대중가요
-100명의 시인 설문 조사 분석
전 윤 호 | 시인

시와 노래 가사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세계 다른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시인들과 대중가요의 가사는상호교류가 많은 관계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시인의 경우는 대중가요와 일정한 금을 긋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여가 미미하다. 이번 조사는 시인들이 우리의 대중가요 가사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조사를 위해서 원로시인에서부터 신예시인에 이르기까지 시인 100명에게 가사가 좋다고 생각되는 대중가요 3편씩을 고르도록 요청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시인들은 김춘수, 황금찬, 홍윤숙, 김광림, 정진규, 이근배, 신달자 같은 원로, 중진급 시인에서 안도현, 함민복, 장석남, 이산하, 이윤학, 성귀수 같은 젊은 시인들까지 망라돼 있다.

차별을 두기 위해 가장 좋은 것 순으로 세 곡씩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순위를 매겨 1위 곡은 3점, 2위는 2점, 3위는 1점으로 통계를 냈다. 응답한 시인과 노래들은 전기한 바와 같고 통계를 내서 점수 합산으로 10위까지 고르고 점수에 관계없이 표수로 등수도 매겨보았다. 애초의 취지를 살려 등위별로 점수를 매긴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봄날은 간다> ― 34점
2. <킬리만자로의 표범>― 23점
3. <북한강에서> ― 22점
4.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15점
5.<한계령> ― 11점
6.<아침이슬> ― 9점
7-8.<가시나무> ― 8점,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 8점
9-10. <그 겨울의 찻집> ― 7점, <황성 옛터> ― 7점

그리고 11위권으로 6점을 받은 <떠나가는 배>, <목포의 눈물>, <서른 즈음에>가 있다. 점수를 무시하고 단순히 표를 받은 수로 등위는 다음과 같다.

1. <봄날은 간다> ― 16표
2. <킬리만자로의 표범 > ― 10표, <북한강에서> ― 10표
4.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7표
5. <한계령> ― 6표
6-9. <그 겨울의 찻집> ― 4표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 4표
<서른 즈음에> ― 4표
<가시나무> ― 4표
10. <아침이슬> ― 3표

이하 모두 3표임, <떠나가는 배>, <목포의 눈물>, <겨울 애상>, <푸르른 날>,

<황성 옛터>, <직녀에게>, <우리가 어느 별에서>, <사의 찬미>, <그때 그 사람>

그간 우리의 대중가요사에 발표된 곡의 수를 생각할 때 나이와 연령이 다르고 제각각 개성이 강한 시인들에게서 1표 이상의 표를 얻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라 생각된다. 선정 기준에 있어서도 어떤 시인은 가사만을 따지고 또 어떤 시인은 가사뿐만 아니라 노래도 좋아야 한다고 했으며 일부러 기성시인의 시를 가사로 쓴 것은 뺀 경우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자신들이 좋아서 즐겨 부르는 노래들로 선정했기 때문에 빠르거나 비트가 강한 댄스곡이나 록보다는 노래방이나 주연에서 노래가 가능한 발라드나 전통가요가 많았다. 아무튼 상위 5위 <한계령>까지 점수별로나 표수별로나 같은 곡들이 나왔다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고르게 지지했다는 결론이 된다.

1위를 한 <봄날은 간다>의 경우 원곡 외에도 한영애 같은 가수들이 꾸준히 리메이크를 한 덕도 있다고 할 것이다. 두 곡 이상이 선정된 작사가들이 받은 표를 순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 정태춘 ― 17명(5곡) <북한강에서>, <시인의 마을>, <애고 도솔천아>, <떠나가는 배>, <탁발승의 새벽 노래>
2. 양인자 ― 15명(4곡) <서울서울서울>, <킬리만자로의 눈>, <그 겨울의 찻집>, <큐>
3. 하덕규 ― 10명(2곡) <한계령>, <가시나무>
4. 송창식 ― 5명(5곡) <나의 기타 이야기>, <선운사>, <새는>, <사랑이야>, <우리는>

한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공동 1위 :
조용필 ― 18명(5곡) <서울서울서울>, <킬리만자로의 눈>, <그 겨울의 찻집>, <큐>,

<허공>
정태춘 ― 18명(6곡) <북한강에서>, <시인의 마을>, <애고 도솔천아>, <떠나가는 배>,

<탁발승의 새벽노래>, <봉숭아>
3. 양희은 ― 16명(3곡)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아침이슬>, <한계령>
4. 백설희 ― 16명(1곡) <봄날은 간다>
5. 송창식 ― 13명(9곡) <나의 기타 이야기>, <선운사>, <새는>, <사랑이야>, <우리는>, <상아의 노래>, <푸르른 날>, <그대 있음에>, <고래사냥>

송창식의 경우 가장 많은 곡이 선정됐으며 그 중에 문인의 가사가 3곡(서정주, 김남조, 최인호) 있다는 점에서 가장 문학적인 풍모를 지닌 가수라 할 만하다.

시와 가사가 일맥상통한다고는 하나 시인들이 좋아하는 가사들은 자신들이 쓰는 시에 비해 어느 정도 감정의 과잉이나 감상적인 측면이 용납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가사와 시의 차이점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인이면서 대중가요 가사를 본격적으로 쓴 경우는 많지 않다. 서정주, 김남조, 고은, 문정희, 정호승 시인 등의 기존에 발표된 시에 곡을 붙인 경우가 있는데 이번 통계에서는 아무래도 시는 분리해 생각하는 시인들이 있어 선정되는 데는 불리한 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중가요 가사의 문제점을 말할 때 흔히 거론되는 천편일률적인 사랑 타령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은 역시 시인들다운 안목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노래나 메시지가 강한 노래가 특별히 더 선호된 경향은 보이지 않으며 일상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노래들이 애호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의 경우 시인들의 시가 곧 노래이기도 한 명곡이 많고 시인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아예 음유시인으로 대접받는 격조 높은 대중가수가 많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는 시인들의 대중가요에 대한 인식이나 참여가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대중가요가 가장 발달한 영어권의 경우에도 시에 못지않은 격조 높은 가사들이 많은 데 비해 유독 동양문화권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대중문화를 경시하는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 탓일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한국의 대중가요는 이제 한반도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문화상품이 되었다. 대중가요의 가사도 천편일률적인 사랑타령을 벗어나 한 단계 발전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시인들의 가요에 대한 사랑과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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