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ELIOT 의 '황무지' 읽기 19

 IV. Death by Water 수장[水葬]



제 4부 Death by Water는 전체 5부로 나누어진 황무지 시 가운데 가장 짧다.
Phlebas the Phoenician, a fortnight dead, 
Forgot the cry of gulls, and the deep sea swell
And the profit and loss.


죽은 지 보름지난 ‘페니키아’ 상인 ‘플레바스’는
갈매기 울음도, 깊은 바다 물결도
남고 밑지는 것까지도 잊어버렸다.

[제 1부 The Burial of The Dead 46행을 떠올리게 된다.Here, said she, 46

Is your card, the drowned Phoenician Sailor,
(Those are pearls that were his eyes. Look!)
그녀가 말했다, 여기 당신의 카드가 나왔어요,  
물에 빠져죽은 페니키아의 뱃사람이에요, 
(보세요! 그의 두 눈은 진주로 변했잖아요.)

당시 ‘소소트리스’부인의 카드 점괘에는 ‘물에 빠져죽은 페니키아의 뱃사람’이 나왔는데, 
남고 밑지는 것까지도 잊어버렸다.’ 는 구절에서 상인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 current under sea
Picked his bones* in whispers.  As he rose and fell
He passes the stages of his age and youth
Entering the whirlpool.

바다 속 물결은 
속삭이며 그의 뼈 발라냈다. 그가 물맴이로 들어와 
그속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는 청춘과 노년의 고비 고비를 다시 겪었다.               


제 3부, The Fire Sermon 208행에 등장하는 Smyrna의 상인 Mr. Eugenides는 
건포도(currant)를 거래하는 상인이었고, 지금 여기 죽어서 물속에 있는 ‘페니키아’ 
상인 ‘플레바스’는 물결(current)과 거래(?)하고 있다. 
Mr. Eugenides와 Phlebas는 동일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페니키아의 뱃사람 = 페니키아의 상인 = Smyrna의 상인 = 물에 빠져 죽음.


Gentile or Jew
O you who turn the wheel and look windward,
Consider Phlebas, who was once handsome and tall as you.

그대가 기독교도이든 유대인이든 
오 그대가 바람과 맞서는 키잡이라면 
플레바스도 한때 그대처럼 멋지고 늘씬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런데 이 대목에서 Phlebas를 선각자로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결국 동일한 인물의 다양한 형상을 나타낸 것이다.]
제 4부  ‘Death by Water’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물에 의한 부활, resurrection은 없다는 견해와  
또 하나는 부활과 재생을 위한 희생적 죽음이라는 견해이다. 
 
고대로부터 Alexandria에서는 매년 풍요의 신 Adonis의 두상[頭像]을 바다에 
집어던지고 일주일 후에 건져 올리는 예식이 있다고 한다. 즉 두상[頭像]에게 
물에 의한 죽음을 내리고 일주일 후에 부활시키며,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Phlebas는 상업적 손익계산도 잊었다는 구절에서 부활을 위한 정화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옳다.  그러나 죽은 지 보름이 되었다는 구절에서, 즉 보름 
동안이나 죽어있다는 구절에서 부활은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하지만 일주일이니, 이주일이니 시간을 정하는 것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주장하는 
것뿐이지 않은가?죽음으로써 육신을 떠나고, 현세와 전생의 죄악을 떠나,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어, ‘원초적 無 의 세계’로 즉 ‘자연의 大母, GREAT MOTHER'에게로 돌아가는 것,
이는 Phlebas가 선각자가 되는 것처럼 어느 특정인에게만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결국 부활이나 윤회나 비슷한 것이 아닐런지... 해탈이나 정화나 같은 것을 다르게 부르는 것뿐이 아닐런지...

‘Death by Water’라는 제목을 어찌 번역하는 것이 적당할까 생각해본다. 
수사[水死], 익사[溺死], 물에 의한 죽음, 물 죽음, 물과 죽음...  이런 말들을 썼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글에서는 죽음으로써 주검과 그의 생애가 정화되는 과정을 그리려한 것으로 보아 
수장[水葬]은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여러분도 이 시를 읽고 선택해주시기 바란다. 
많은 의견 교환들 있기를 바라며 제 4부를 마친다.

이필한 [의사, 서울사대부고19회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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