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ELIOT 의 '황무지' 읽기 16
3.The Fire Sermon 불의 설교 05
강을 덮었던 천막 걷히고, 간당거리던 마지막 잎새들
축축한 강둑으로 가라앉는다. 바람은 소리 없이
황토벌판을 건넌다. 강물의 정령들도 떠났다.
고이 흘러다오, 정든 ‘템즈'여, 내 노래 끝날 때까지.
강물은 빈 병도, 샌드위치 포장지도,
비단 손수건도, 마분지 상자도, 담배꽁초도,
그 어떤 여름밤의 증거물도 품지 않았다. 강물의 정령들은 떠났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 도회지 중역들의 빈둥대는 자제들도
떠나버렸다, 주소조차 남기지 않고.
‘레만’ 물가에 앉아 나는 울었노라...
정든 ‘템즈'여, 고이 흘러다오, 내 노래 끝날 때까지,
정든 ‘템즈'여, 고이 흘러다오, 내 노래 크지도 길지도 않으리니.
그러나 내 등에 부딪치는 한 줄기 찬바람 속에 나는 듣노라,
뼈다귀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입이 찢어져라 낄낄대는 웃음을.
쥐 한 마리 강둑 풀밭사이로
진흙투성이 배때기 끌고 슬쩍 지나가는
어느 겨울날 저녁 나는 가스탱크 뒤로
탁한 운하에 낚시 드리우며
나의 형왕[兄王]이 난파당한 것을 묵상했고
그에 앞선 부왕[父王]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얀 알몸들은 낮은 습지에 뒹굴고
백골들은 비좁고 메마른 다락방에 버려져
해마다 쥐들 발길에만 뒤채이며 덜그럭거린다.
하지만 내 등 뒤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엔진소리, 경적소리, 그들은
‘스위니’를 샘터의 '포터'부인에게 데려다 주리라.
'포터'부인과 그 딸을 비추는
오, 휘영청 밝은 달이여
소다수로 발을 씻는 그들에게
오, 둥근 천정아래 아이들 합창소리여!
짹 짹 짹
쩍 쩍 쩍 쩍 쩍 쩍
그리도 무지막지 욕보았구나.
테레우
허황된 도시
한 겨울 한낮의 누런 안개 속에서
‘스미르나’의 상인 ‘유게니데스’씨는
수염도 깎지 않고, 주머니엔
런던 입항 운임 및 보험료 매주(賣主)부담인
건포도와 일람불(一覽拂)증서들 잔뜩 지닌 채,
‘캐논’ 가 호텔에서 점심을 들자고
주말에는 ‘메트로폴’에서 놀자고
상스런 불어로 내게 청하더군.
보랏빛 시간, 인간의 두 눈과 등짝이 책상머리 떠나
위를 향하고, 인간의 엔진도 털털거리며
대기하는 택시처럼 기다리는 시간,
나, 쭈그러진 여인의 젖가슴 달린 늙은이, 비록 눈멀었으나
남녀 사이를 고동치는 ‘티레시아스’는 볼 수 있노라,
이 보랏빛 시간을, 귀가를 재촉하는 이 한때를,
뱃사람을 바다에서 집으로 데려오고
타이피스트도 돌아와 아침 설거지하며,
난로에 불붙이고 통조림 음식들 늘어놓게 하는 이 저녁을.
창 밖에는 위태로이 널린
콤비네이션 팬티들 마지막 햇살 받고 ,
밤이면 침대 되는 소파 위에는
양말과 슬리퍼, 속옷과 코르세트들 쌓여있다.
쭈그러진 젖가슴 달린 늙은이, 나 ‘티레시아스’는
그 광경을 보고 그다음 일 예언하며 -
나 또한 예약된 손님 기다렸노라.
He, the young man carbuncular, arrives,
그가, 여드름투성이 젊은이가 도착했다,
A small house agent's clerk, with one bold stare,
눈매 당돌한 그는 소형주택업자의 서기이며,
One of the low on whom assurance sits
‘브래드퍼드’ 전쟁졸부의 실크해트처럼
As a silk hat on a Bradford millionaire.
자신만만한 하류계층이었다.
[# Bradford ; 영국 북부의 모직물 생산하는 공업도시,
제 1차 세계대전 때 전쟁졸부들이 생겨났다. ]
The time is now propitious, as he guesses,
딱 알맞은 시간이로군, 그는 헤아린다,
The meal is ended, she is bored and tired,
식사도 끝났고 여자는 나른하니
Endeavours to engage her in caresses
그녀를 껴안으려 애를 쓴다면
Which are still unreproved, if undesired.
바라지 않았더라도 뿌리치지 않으리라.
[# 욕정이라는 면에서 젊은이도 Tereus와 다를 바없다.]
Flushed and decided, he assaults at once;
얼굴 붉히며 작정하고 단숨에 덤벼든다,
Exploring hands encounter no defence;
더듬는 손길은 아무 방어도 만나지 않는다.
His vanity requires no response,
사나이의 허영은 반응을 원치 않으며,
And makes a welcome of indifference.
여자의 무관심을 도리어 반기고 있다.
(And I Tiresias have foresuffered all
Enacted on this same divan or bed;
I who have sat by Thebes below the wall
And walked among the lowest of the dead.)
(그리고 나 - ‘티레시아스’는 침대건 소파건
이런 데서 행해지는 일들은 모두 겪어봤노라,
‘테베’의 성벽아래 앉아있기도 했고,
가장 천한 천민들 주검사이를 걷기도 했노라.)
[# Thebes 성벽아래에서 Antigone와 Oedipus대왕을 만난 일,
지하에서 Odysseus를 만나 길을 안내하던 일을 떠올린다.]
Bestows one final patronising kiss,
사내는 마지막 생색내는 키스를 하고,
And gropes his way, finding the stairs unlit...
불 없는 계단을 더듬어 내려간다...
She turns and looks a moment in the glass,
그녀는 돌아서서 거울을 잠시 들여다보며
Hardly aware of her departed lover;
떠나버린 애인 따위는 지워버리고
Her brain allows one half-formed thought to pass:
되다만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운다,
'Well now that's done: and I'm glad it's over.'
‘그래, 이제 그건 끝났어, 끝나서 시원하구나.’
When lovely woman stoops to folly and 253
아름다운 여자가 어리석음에 빠져
Paces about her room again, alone,
홀로 자기 방을 거닐 땐,
She smoothes her hair with automatic hand,
그녀 손은 자동적으로 머리칼 매만지며,
And puts a record on the gramophone.
축음기에 레코드를 거는 것이리니.
[# 253 ; Oliver Goldsmith의 소설, ‘The Vicar of Wakefield (Wakefield의 목사)’에
나오는 시에서 인용. 유혹에 빠진 목사의 딸, Olivia가 처음 유혹당한 곳에 돌아와
부르는 노래. 1766 작품.
When lovely woman stoops to folly 아름다운 여자가 어리석음에 빠져
And finds too late that men betray 남자의 배신을 너무 늦게 알아챘다면
What charm can sooth her melancholy, 어떤 마술이 그녀 우울 달래고,
What art can wash her guilt away? 어떤 재주가 그녀 죄악 씻어줄까?
The only art her guilt to cover, 그녀의 죄책감 덮어주고,
To hide her shame from every eye, 만인의 눈길로부터 수치심 감추며,
To give repentance to her lover 연인의 가슴 저미도록 회개하는
And wring his bosom -- is to die. 단 하나의 예술은 -- 죽음뿐.
[# 옛날 Olivia가 가졌던 자책감 같은 것을 현대의 이 타이피스트는
전혀 모르는데, 황폐하게 변한 도덕률을 드러내기 위해
옛글을 인용하여 대비한 것이다. ]
[# 영국 문학평론가인 스티븐 스펜더는 〈황무지〉의 호소력을 “우리 모두가 폐부 속
깊이 느낀 사실적 심리를 적확하게 그려냈기 때문” 이라고 분석한 뒤 ‘스타킹과 슬리퍼와
속옷과 콜셋이 널린 너저분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타이피스트와 여드름쟁이 점원의
정사’를 사실성의 백미로 꼽는다.
하지만 〈황무지〉는 여성 점술가에서 소다수에 발을 씻는 거리의 여인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여러 단면을 담아낸 ‘현대성의 엔솔로지 (anthology, 명시선집)’라 할 수 있다.
〈황무지〉가 물꼬를 튼 덕분에 이때부터 도시의 경험이 시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의 출발이다. ]
이필한 의사 [서울사대부고 19회사이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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