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18
生出至樓前 方欲跨驪, 蟾月忙步而來謂生曰 :
생출지루전 방욕과려 섬월망보이래위생왈
양생이 누각 앞에 이르러 당나귀에 걸터앉으려 향할 때
섬월이 바쁜 걸음으로 달려와 양생에게 말하기를,
“此路南畔有粉墻,
차로남반유분장
墻外有櫻桃盛開, 此乃妾家.
장외유앵도성개 차내첩가
“이 길 남쪽 가에 분장한 담이 있는데,
담 밖에 앵두화櫻桃花가 무성하게 핀 이 곳이 첩의 집입니다.
相公須先往訪得此家,
상공수선왕방득차가
待妾還歸 妾亦從此往矣.”
대첩환귀 첩역종차왕의
상공께서 모름지기 먼저 가시어 이 집에 들러
첩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면 첩 또한 이곳으로 뒤 따라 가겠습니다.”
生點頭而諾南向而去.
생점두이낙남향이거
양생은 머리를 끄덕이며 승낙하고 남쪽으로 향하여 갔다.
蟾月上樓謂諸生曰 :
섬월상루위제생왈
섬월이 누각 위에 있는 여러 서생들에게 묻기를,
“諸相公不以妾爲陋, 以數闋之歌卜今夜之緣,
제상공불이첩위루 이수결지가복금야지연
將何以處之耶?”
장하이처지야
“여러 상공이 첩을 더럽다 아니하시고
여러 곡의 끝남으로 오늘밤의 인연을 점복占卜하였는데
장차 어찌 처신하여야 합니까?”
諸人猶不舍愛慕之情 答曰 :
제인유불사애모지정 답왈
여러 사람들이 오히려 애모愛慕의 정을 버리지 않고
답하여 말하기를,
“楊哥客也. 非吾輩中人,
양가객야 비오배중인
何可以此爲拘乎?”
하가이차위구호
“양가는 객입니다. 우리 무리 중의 사람이 아니니
어찌 거리낄 것이 있습니까?”
互相和應終無定論,
호상화응종무정론
蟾月以冷談應之曰 :
섬월이냉담응지왈
서로 화답에 응하여 정론定論을 내리지 못하니
섬월이 쌀쌀하게 대답하여 말하기를,
“人而無信妾不知其可也. 座上娼樂非不足也,
인이무신첩부지기가야 좌상창악비부족야
諸相公盡其不盡之興. 妾適有病 未侍坐終宴矣.”
제상공진기부진지흥 첩적유병 미시좌종연의
“사람에게 믿음이 없음이 옳은 일이라고 첩은 알고 있지 않습니다.
좌상의 창악娼樂이 부족치 아니하니,
여러 상공께서는 다하지 못한 흥을 다 하십시오.
첩은 몸이 불편해 잔치가 다할 때까지 앉아 모실 수가 없겠습니다.”
乃緩步而出, 諸人旣初有約,
내완보이출 제인기초유약
且見其冷談之色, 不敢出一言矣.
차견기냉담지색 불감출일언의
이에 느린 걸음으로 나오니
여러 사람들이 처음에 한 약속도 있고
또 섬월의 냉담한 모습을 보고,
감히 한마디 말도 꺼내지 못하였다.
此時楊生往住店, 搬移行李趁黃昏,
차시양생왕주점 반이행이진황혼
往尋蟾月之家,
왕심섬월지가
이때 양생은 여관에 가서
행장行裝을 옮겨, 황혼 무렵
섬월의 집을 찾아가니
蟾月先已還家, 掃中堂燃華燭,
섬월선이환가 소중당연화촉
悄然而待之.
초연이대지
섬월이 이미 먼저 집에 돌아와
중당中堂을 쓸고 화촉을 밝히며
기운없이 양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楊生繫驢櫻桃樹下, 往叩重門,
양생계려앵도수하 왕고중문
蟾月聞剝啄之聲, 跕屣出迎曰 :
섬월문박탁지성 접시출영왈
양생이 당나귀를 앵두나무 아래에 매어 놓고
중문重門에 가서 두드리니,
섬월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신발을 끌고 천천히 나와 맞으며 말하기를,
“下樓之時郞先而妾後,
하루지시랑선이첩후
妾已先到 而郞何後也?”
첩이선도 이랑하후야
“누각 아래에서 낭군이 먼저 가고 첩이 뒤에 왔거늘,
첩이 이미 먼저 도착했는데 낭군은 어찌하여 뒤에 오십니까?”
楊生曰 :
양생왈
양생이 말하기를,
“以主人而待客可乎? 以客而待主人可乎?
이주인이대객가호 이객이대주인가호
眞所謂非敢後也, 馬不前也.”
진소위비감후야 마부전야
“주인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지요?
손님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옳은지요?
진실로 이른 바 감히 뒤늦게 오려 한 것이 아니라
말[馬]이 나아가지 않아서입니다.”
遂相與扶携而入, 兩人相對其喜可知.
수상여부휴이입 양인상대기희가지
마침내 서로 부축하고 함께 들어가
두 사람이 서로 대하니 그 기쁨을 알 만 하였다.
蟾月滿酌玉盃, 金縷衣一曲侑之,
섬월만작옥배 금루의일곡유지
芳姿嫩聲, 能割人之腸 而迷人之魂,
방자눈성 능할인지장 이미인지혼
섬월이 옥배玉盃에 술을 가뜩 따르고,
금루의金縷衣라는 노래 한 곡을 불러 술을 권하니,
아리따운 자태와 간드러진 소리가
능히 사람의 간장을 끊을 듯, 사람의 혼을 혼미케 하여,
生情不能抑相携就寢, 雖巫山之夢 洛浦之遇,
생정불능억상휴취침 수무산지몽 락포지우
未足以踰其樂矣.
미족이유기락의
양생은 솟구치는 정을 자제치 못하고, 서로 이끌어 잠자리에 드니
곧 무산巫山의 꿈과 낙포洛浦의 만남도
그 즐거움이 이를 넘을 수 없었다.
至夜半蟾月於枕上謂生曰 :
지야반섬월어침상위생왈
한밤중에 이르자 섬월이 침상에서 양생에게 말하기를,
“妾之一身自今日, 已托於郞君矣,
첩지일신자금일 이탁어랑군의
妾請略暴情事, 惟郞君俯察而憐悶焉.
첩청략폭정사 유랑군부찰이련민언
“첩의 한 몸을 오늘부터 이미 낭군께 의탁하였습니다.
청컨대 첩의 정겨운 사연을 대강 말씀드리겠으니 낭군께서는 다만 굽어 살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妾本韶州人也, 父曾爲此州驛丞矣,
첩본소주인야 부증위차주역승의
不幸病死於他鄕,
불행병사어타향
첩은 본래 소주韶州 사람으로
부친이 일찍이 이 고을의 역승驛丞이 되었는데,
불행이도 타향에서 객사하니,
家事零替故山超遞, 力單勢蹙無路返葬,
가사영체고산초체 력단세축무로반장
繼母賣妾於娼家, 受百金而去,
계모매첩어창가 수백금이거
가사가 구차하게 되고, 고향 산은 멀고,
힘과 기세는 다만 움츠러들어 이장할 길이 없기에,
계모가 첩을 창가娼家에 팔아 백금百金을 받아 가버리니
妾忍辱含痛, 屈身事人 只祈天或垂憐,
첩인욕함통 굴신사인 지기천혹수련
幸逢君子復見日月之明.
행봉군자부견일월지명
첩은 욕됨을 참고 설움을 머금은 채
몸을 굽혀 사람들을 섬기면서 다만 하늘에 기원하고 간원하였는데,
다행히도 군자를 만나 일월의 밝음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而妾家樓前 卽去長安道也.
이첩가루전 즉거장안도야
첩의 집 누각 앞은 곧 장안長安으로 가는 길입니다.
車馬之聲 晝夜不絶,
거마지성 주야부절
來人過客 孰不落鞭於妾之門前乎?
래인과객 숙불락편어첩지문전호
거마車馬 소리가 밤낮으로 그친 적 없으며
오가며 지나가는 손들
그 누가 첩의 집 문 앞에서 말채찍을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從來四五年間 眼閱千萬人矣,
종래사오년간 안열천만인의
尙未見近似於郞君者,
상미견근사어랑군자
지난 사오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눈 여겨 보았으나,
아직껏 낭군과 조금이라도 닮은 이를 못 보았는데,
今何幸遇我郞君 至願已畢.
금하행우아랑군 지원이필
이제 어찌 다행히 우리 낭군을 만났으니,
염원은 이미 다 이루어졌습니다.
郞若不以妾鄙夷之, 則妾願爲穛爨之婢,
랑약불이첩비이지 즉첩원위착찬지비
敢問郞君之意如何.
감문랑군지의여하
낭군께서 만일 첩을 더럽다고 멸시하지 않으신다면,
곧 첩은 밥 짓고 물 긷는 종이 되길 원하니,
낭군의 뜻이 어떤지 감히 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