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17
生曰 : “諸兄之詩成之已久,
생왈 제형지시성지이구
未知桂卿已歌何人之詩乎?”
미지계경이가하인지시호
양생이 말하기를,
“여러 형들의 시가 경지에 들은 지 이미 오래인데,
계경이 누구의 시를 노래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까?”
王生曰 : “桂卿尙靳一闋淸音,
왕생왈 계경상근일결청음
櫻脣久鎖玉齒未啓,
앵순구쇄옥치미계
왕생이 대답하기를,
“계경이 아직도 맑고 깨끗한 소리를 아껴,
앵두 같은 입술을 오래도록 꼭 다문 채 옥 같은 이를 열지 아니하여
陽春絶調猶不入於吾儕之耳,
양춘절조유불입어오제지이
고상한 가곡의 뛰어난 곡조가
우리들 귀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는데,
桂卿若不故作嬌態, 則必有羞澁之心而然也.”
계경약불고작교태 즉필유수삽지심이연야
계경이 만약 교태를 부리는 까닭이 아니라면
곧 필연 부끄러워 머뭇거리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生曰 : “小弟曾在楚中,
생왈 소제증재초중
雖或衣樣畵芦作一兩首詩,
수혹의양화호작일양수시
양생이 말하기를,
“소제가 일찍이 초楚나라에 있을 때,
비록 간혹 남의 것을 모방하고 흉내 내어 한 두수의 시를 지어 보았으나,
而卽局外之人也. 與諸兄較芸 恐未安也.”
이즉국외지인야 여제형교운 공미안야
곧 관 밖의 사람입니다.
여러 형들과 더불어 재주를 비교함은 아마도 미안한 일이 될 것입니다.”
王生大言曰 : “楊生容皃美於女子矣,
왕생대언왈 양생용모미어여자의
又何無丈夫之意耶?
우하무장부지의야
왕생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양생이 용모 아름답기가 여자와 같거늘,
또 어이 이리도 장부의 뜻이 없습니까?
聖人有言曰 :當仁不讓於師,
성인유언왈 당인불양어사
又曰其爭也君子,
우왈기쟁야군자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어진 일을 당하여는 스승에게도 사양치 아니한다 하였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다툼이 곧 군자라 하였으니,
第惡楊兄無詩才也, 苟有才也 豈可徒執僞嫌乎?”
제오양형무시재야 구유재야 기가도집위혐호
만일 양형이 시재가 없다면 부끄럽겠지만,
다만 재주가 있다면 어찌 부질없이 고집하여 겸양해 합니까?”
楊生雖外飾虛讓, 一見桂娘豪情已不制矣,
양생수외식허양 일견계낭호정이부제의
양생은 비록 면치레로 사양하는 체했지만,
언뜻 보니 계낭의 호상豪爽한 정을 이미 억제할 수 없어,
見諸生座傍尙有空箋,
견제생좌방상유공전
生抽其一幅 縱橫走筆 題三章詩.
생추기일폭 종횡주필 제삼장시
여러 서생들의 자리 옆에 아직껏 빈 시전詩箋이 있음을 보고
양생이 그 중 한 폭을 뽑아
종횡으로 붓을 날려 3개의 장으로 된 시를 지었다.
此如風檣之走海, 渴馬之奔川,
차여풍장지주해 갈마지분천
諸生見其詩思之敏捷,
제생견기시사지민첩
이는 바람 만난 배가 바다를 달려가고,
목마른 말이 시내로 달려가는 것 같아,
여러 서생들은 그 시정詩情의 민첩함과
筆勢之飛動 莫不驚訝失色矣.
필세지비동 막불경아실색의
붓 힘의 날아 움직임을 보고,
놀라 의아해하며 얼굴빛을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楊生擲筆於席上 謂諸生曰 :
양생척필어석상 위제생왈
양생이 자리위에 붓을 던지고
여러 서생들에게 말하기를,
宜先請敎於諸兄, 而今日座中桂卿卽考官也.
의선청교어제형 이금일좌중계경즉고관야
納卷時刻恐不及也.”
납권시각공불급야
“마땅히 여러 형씨들에게 먼저 가르침을 청해야 하나,
오늘은 좌중의 계경이 곧 시험관입니다.
글을 바칠 시각이 지났는지 두렵습니다.”
卽送其詩箋於桂卿 其詩曰 :
즉송기시전어계경 기시왈
곧, 그 시전을 계경에게 보냈는데,
그 시에 읊기를,
楚客西遊路入秦 초객서유로입진
酒樓來醉客陽春 주루래취객양춘
月中丹桂誰先折 월중단계수선절
今代文章自有人 금대문장자유인
초나라 손님이 서쪽에 놀러 가는 길에 진나라에 들려
주루에 와 낙양 봄에 취하였구나
달 가운데 붉은 계수나무 누가 먼저 꺾을까?
당대의 문장이 스스로 다 모였구나
天津橋上柳花飛 천진교상류화비
珠箔重重映夕暉 주박중중영석휘
側耳要請歌一曲 측이요청가일곡
錦筵休復舞羅衣 금연휴복무라의
천진교 위에 버들 꽃 날고
구슬발 주렁주렁 저녁 빛에 비치는구나
귀 기울여 듣고자 노래 한 곡조
그대 비단 자리에서 다시 춤추는 것을 쉬라
花枝羞殺玉人粧 화지수살옥인장
未吐纖歌口已香 미토섬가구이향
待得樑塵飛盡後 대득량진비진후
洞房花燭賀新郞 동방화촉하신랑
꽃가지가 옥인의 단장을 부끄러워하니
가녀린 노래 미처 나오기도 전에 입이 이미 향기로우네
대들보 먼지 날기 다한 뒤를 기다려
동방에 화촉 밝혀 신랑을 하례하리라
蟾月乍轉星眸霎然看過,
섬월사전성모삽연간과
檀板一聲淸歌自發,
단판일성청가자발
섬월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언뜻 굴려 잠시 대충 보더니,
단판檀板 (박자를 맞추는 목판) 한 소리에 맑은 노래를 스스로 낸즉,
嫋嫋如縷 咽咽如訴,
뇨뇨여루 인인여소
간들거림은 가는 실과 같고
빨라지는 북 소리는 울부짖는 것과 같았으며,
鶴唳靑田 鳳鳴丹丘,
학려청전 봉명단구
秦箏奪其群 趙瑟失其曲,
진쟁탈기군 조슬실기곡
학이 청전靑田에서 눈물을 흘리고,
봉황이 단구丹丘에서 우는 듯,
진쟁秦箏 (진나라의 아쟁)은 그 소리를 빼앗으며,
조슬趙瑟 (조나라의 비파)은 그 곡조를 잃었으니
滿座皆灑然易容.
만좌개쇄연역용
만좌의 사람들은 넋을 잃고 낯빛을 고쳤다.
初諸人傲視楊生許令作詩矣,
초제인오시양생허령작시의
及其三詩皆入於蟾月之歌喉,
급기삼시개입어섬월지가후
처음에 여러 사람이 양생을 업신여기다가 시를 짓도록 허용하였고,
세 수의 시가 모두 섬월의 노래에 오르게 되자
憮然敗興相顧無言,
무연패흥상고무언
欲讓蟾月於楊生 則近於無膽,
욕양섬월어양생 즉근어무담
크게 낙담하여 흥은 깨어지고 말없이 서로 둘러보는데,
섬월을 양생에게 사양하고자 하나,
쓸개가 없는 노릇인 듯하고,
欲背座中之初約 則難於失信.
욕배좌중지초약 즉난어실신
面面直視嘿嘿癡坐.
면면직시묵묵응좌
좌중에서 처음에 한 언약을 저버리고자 하지만,
곧 실언하기도 어려워서
얼굴을 서로 똑바로 보며 묵묵히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楊生知其氣色, 倏起告辭曰 :
양생지기기색 숙기고사왈
양생이 그 기색을 알고
벌떡 일어나 작별을 고하여 말하기를,
“小弟偶蒙諸兄款接,
소제우몽제형관접
叨叅盛宴旣醉且飽,誠切感幸.
도참성연기취차포성절감행
“소제가 우연히 여러 형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아
외람되이 성대한 잔치에 참석하여,
이미 취하고 또 배부르게 먹었으니
참으로 실로 고맙고 행복합니다.
前路尙遠行色甚忙, 未得終日吐話,
전로상원행색심망 미득종일토화
他日曲江之會, 當罄此餘情矣.
타일곡강지회 당경차여정의
앞길이 아직 멀고 행색行色이 매우 바빠
종일토록 털어놓고 말할 수 없으니,
후일 곡강曲江에서 열리는 과거 급제 뒤풀이 잔치에서
마땅히 남은 정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乃從容下去, 諸生亦不肯挽止矣.
내종용하거 제생역불긍만지의
하고, 천천히 내려가니,
여러 서생들이 또한 만류하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