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 8
"此地卽大唐國淮南道秀州縣也.
차지즉대당국회남도수주현야
"이 땅은 곧 대당국大唐國 회남도淮南道 수주현秀州縣 이다.
此家卽楊處士家也, 處士乃汝父親,
차가즉양처사가야 처사내여부친
其妻柳氏乃汝慈母也.
기처유씨내여자모야
이 집은 곧 양처사의 집이니,
처사는 너의 부친이고,
그 처 유씨는 너의 자애로운 모친이다.
汝以前生之緣爲此家之子,
여이전생지연위차가지자
汝須速入毋失吉時."
여수속입무실길시
네가 전생의 인연으로 이 집 아들이 되는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들어가 좋은 때를 잃지 말아라."
性眞卽入見則處士戴葛巾穿野服,
성진즉입견즉처사대갈건천야복
坐於中堂對爐煎藥,
좌어중당대로전약
성진이 곧 들어가 보니 처사는 갈건을 쓰고 야복을 꿰매어 입고
중당에 앉아 화로에 약을 달이고 있는데
香臭靄靄然襲矣,
향취애애연습의
房內隱隱有夫人呻吟之聲矣.
방내은은유부인신음지성의
향내가 자욱하여 사람에 젖었고,
방 안에서는 은근히 부인의 신음소리가 났다.
使者促性眞入房中,
사자촉성진입방중
性眞疑慮逡巡,
성진의려준순
사자가 성진을 재촉하여 '방 안에 들라' 하는데,
의심스러워 근심하여 머뭇머뭇거리니
使者自後推擠, 性眞蹶然仆地,
사자자후추제 성진궐연부지
神昏氣窒 若在天地飜覆之中者然.
신혼기질 약재천지번복지중자연
사자가 몸소 뒤에서 밀치니, 성진이 놀라서 땅에 엎드리며
정신이 아득하고 숨이 막혀 천지가 번복하는 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性眞大呼曰 :
성진대호왈
'救我救我'
구아구아
성진이 크게 부르짖었다.
"나를 구해 주세요, 나를 구해 주세요."
而聲在喉間不能成語,
이성재후간불능성어
只小兒啼哭之作聲矣.
지소아제곡지작성의
허나 소리가 목구멍에서만 나며, 말을 이룰 수가 없었는데
다만 어린애 울음소리만 나왔다.
侍婢走告於處士曰 :
시비주고어처사왈
"夫人誕生小郞君矣."
부인탄생소랑군의
시비가 달려가 고하였다.
"부인께서 사내 아기를 낳으셨습니다."
處士奉藥碗而入,
처사봉약완이입
夫妻相對滿面歡喜.
부처상대만면환희
처사가 약탕관을 조심스레 들고 들어와
두 내외가 서로 마주 대하는데, 즐거움이 얼굴에 가득하였다.
性眞飢則飮乳, 飽則止哭,
성진기즉음유 포즉지곡
當其始也, 心頭尙其蓮花道場矣,
당기시야 심두상기연화도장의
성진은 배고프면 곧 젖을 먹고 배부르면 곧 울음을 그쳤는데,
그가 갓 나서는 마음에 오히려 연화도량 일을 기억하였지만,
及其漸長, 知父母之恩情然後,
급기점장 지부모지은정연후
前生之事 已茫然不能知矣.
전생지사 이망연불능지의
그가 점점 자라나 부모의 은정을 안 연후에는
전생의 일은 이미 망연히 알 수가 없게 되었다.
處士見其兒子骨格淸秀,
처사견기아자골격청수
撫頂而言曰 :
무정이언왈
처사가 그 아이의 골격이 청수淸秀함을 보고,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此兒必天人謫降也.”
차아필천인적강야
名之曰少遊, 字之曰千里.
명지왈소유 자지왈천리
“이 아이는 하늘 사람이 적강謫降한 것임에 틀림없다.”
고 하며, 이름을 소유少遊라 하고, 자字를 천리千里라 하였다.
流光水駛犀角日長,
유광수사서각일장
於焉之間已至十歲,
어언지간이지십세
세월이 물같이 빨리 흐르고 무소뿔이 나날이 자라듯이
어언 간에 이미 열 살이 되었는데,
容如溫玉眼若晨星, 氣質擢秀智慮深遠,
용여온옥안약신성 기질탁수지려심원
魁然若大人君子矣.
괴연약대인군자의
용모는 고운 옥 같고 눈은 샛별 같으며,
기질은 남달리 빼어나고 지혜와 생각이 깊고 원대하여
빼어남이 마치 대인군자와 같았다.
處士謂柳氏曰 :
처사위유씨왈
처사가 유씨에게 말하기를,
“我本非世俗之人,
아본비세속지인
而與君有下界因緣故,
이여군유하계인연고
“나는 본래 세속 사람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하계下界에 인연이 있기 때문에
久留於烟火之中, 蓬萊仙侶寄書招邀者已久,
구유어인화지중 봉래선려기서초요자이구
而念君孤子不能決去.
이념군고자불능결거
오래 속세의 인간 속에 머물렀는데,
봉래산 신선 친구가 글을 보내어 부른지는 이미 오래 되었으나
부인의 외로움을 염려하여 아직 가겠다는 결정을 못하고 있었소.
今皇天默佑, 英子斯得,
금황천묵우 영자사득
聰達超倫頴睿拔萃,
총달초륜영예발췌
이제 하늘이 조용히 도우셔서 이렇듯 영민한 아들을 얻었으니
총명하며 맑고 슬기로움이 예사 아이들보다 특별히 뛰어나니,
眞吾家千里駒也.
진오가천리구야
君旣得依倚之所,
군기득의의지소
진실로 우리 집안이 천리로 뻗을 것이오.
부인이 이미 의지할 곳을 얻었고,
晩年必將覩榮華 而享富貴也,
만년필장도영화 이향부귀야
此身去留 湏不介念也.”
차신거류 수불개념야
늘그막에는 필연 장차 영화를 보고 부귀를 누릴 것이니,
이 몸이 떠나서 없더라도 모름지기 걱정할 필요가 없겠소.”
一日衆道人來集於堂上,
일일중도인래집어당상
與處士或騎白鹿, 或驂靑鶴向深山而去,
여처사혹기백록 혹참청학향심산이거
하루는 도인道人의 무리들이 내려와 당상堂上에 모여
처사와 함께 혹은 흰 사슴을 타고,
혹은 푸른 학을 타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니,
此後惟往往自空中, 寄書札而已,
차후유왕왕자공중 기서찰이이
蹤跡未嘗到家矣.
종적미상도가의
그 후에는 비록 왕왕 공중으로부터 서찰書札을 보내올 따름이고,
그 종적蹤跡은 아직껏 집에 이르지 아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