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내 생각에 누대 현판은 모조리 케케묵은 시들이라, 비록 청신한 구절이 있다 하더라도 가려내기 쉽지 않으니, 지을 필요가 없다. 임자순(林子順)이 언젠가 가학루(駕鶴樓)를 지나갔는데, 판시(板詩)가 많아 만여 개나 되므로, 그 되지 않은 잡소리를 싫어하여 관리(館吏)를 불러 말하기를,

“이 현판들은 관명(官命)으로 만든 것이냐? 아니면 안 만들면 벌을 주었느냐?” 하니,

그의 말이,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말고 싶으면 안 만들지요. 어찌 관명이나 처벌이 있겠습니까.” 하자,

자순이,

“그렇다면 난 짓지 않겠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이 다 웃었다.

임진왜란에 적이 관사를 불살라 남은 게 없었으며, 불사르지 않은 곳은 현판을 철거하여 불 속에 던져버렸다. 아마 하늘도 시가 높은 벽에 걸려 있는 것을 싫어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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