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임제(林悌)의 자는 자순(子順)이니 나주인(羅州人)이다. 만력(萬曆 송신종(宋神宗)의 연호) 정축년(1577, 선조10)에 진사가 되었다. 본성이 의협심이 있고 얽매이질 않아서 세속과 맞질 않았으므로 불우했고 일찍 죽었다. 벼슬은 의제 낭중(儀制郎中 예조정랑 겸 지제교(禮曹正郞兼知製敎)의 별칭)에 그쳤다.
죽은 뒤에 어떤 이가 ‘역괴(逆魁 정여립(鄭汝立)을 말함)와 더불어 시사를 논하면서 항우(項羽)는 천하의 영웅인데 성공치 못한 것이 애달프다 말하고 나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무함했는데 그 말이 삼성(三省)에 전해지자 그 아들 지(地)를 국문하니 지(地)가 그의 선친이 지은 오강(烏江)에서 항우를 조상한다는 부(賦)를 올리므로 인하여 용서받아 변방에 귀양 가게 되었다.
그의 평사 이영*을 보내는 시[送李評事瑩詩]는 다음과 같다.
朔雪龍荒道 삭설용황도
陰風渤澥涯 음풍발해애
元戎掌書記 원융장서기
一代美男兒 일대미남아
匣有干星劍 갑유간성검
囊留泣鬼詩 낭유읍귀시
邊沙暗金甲 변사암금갑
閨月照紅旗 규월조홍기
玉塞行應遍 옥새행응편
雲臺畫未遲 운대화미지
相看豎壯髮 상간수장발
不作遠遊悲 부작원유비
북방 눈 내리는 용황의 길
음산한 바람 부는 발해 바닷가
원융의 서기를 맡은 이는
일대의 미남아로다
칼집엔 별을 찌르는 칼 있고
주머니엔 귀신도 울릴 시가 들었네
변방 모래 바람 금갑옷에 자욱한데
쪽문 위의 달 홍기를 비치누나
옥문관 걸음 어딘들 안 가리오
공신각에 화상 걸기 머지 않으리
바라보니 머리카락 곤두세우고
먼 길 떠날 슬픈 빛 짓지 않네
시격(詩格)이 양영천[楊盈川: 당(唐)의 양형(楊炯)]과 매우 비슷하다.
제(悌)의 호는 백호(白湖), 벼슬은 북평사(北評事)를 지냈다. 《잠영보(簪纓譜)》를 상고해 보면 ‘제(悌)의 맏아들은 탄(坦)이고 호는 한정(閒亭)인데 벼슬을 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기(垍)인데 호는 월창(月牕), 벼슬은 좌랑(佐郞)이다.’ 하였다.
탄(坦)은 혹 지(地)의 개명(改名)이 아닌지?
백호(白湖)의 규원시(閨怨詩)는 다음과 같다.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 읍향리화월
열다섯 살 월계 아가씨
남보기 부끄러워 말도 없이 헤어졌네
돌아와 겹문 닫고는
배꽃에 비친 달 보며 울었네
산사시(山寺詩)는 다음과 같다.
半夜林僧宿 반야림승숙
重雲濕草衣 중운습초의
巖扉開晩日 암비개만일
棲鳥始驚飛 서조시경비
한밤중 숲 속에 중이 자는데
무거운 비구름이 초의를 적시누나
느지막에 사립을 여니
깃든 새 그제서야 놀라서 나네
*영(瑩)은 고성인(固城人)으로 자는 언윤(彦潤), 호는 남고(南皐)이니 청파(靑坡) 육(陸)의 손자로 벼슬은 목사(牧使)를 지냈다.
'한문학 > 학산초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정의 현판시 / 학산초담 11 (0) | 2010.02.09 |
---|---|
허봉 / 학산초담 10 (0) | 2010.02.09 |
허난설헌 / 학산초담 08 (0) | 2010.02.08 |
백광훈 / 학산초담 07 (0) | 2010.02.08 |
최경창 / 학산초담 06 (0) | 2010.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