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오탁번의 시를 대하며 ‘시란 무엇인가’ 다시 묻게 된다. 여러분들의 생각과 비교하며 음미해 보기 바란다. 중복되기도 하지만 일간지도 함께 본다.

 

 

시란 무엇인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220460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칠레 시인 네루다는 '시'를 정의해 달라는 물음에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시가 곧 삶인 시인들에게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인생이란 무엇이냐는 질문만큼이나 난처한 질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계간 '시인세계'가 가을호(통권 25호)를 통해 44명의 대표 시인들에게 이 어리석고도 난처한 질문을 던졌을 때 시인들은 원고지 2매 분량의 짧은 글에서 44색의 다양하고 독특한 시론(詩論)을 풀어냈다.

물론 네루다처럼 시 정의의 당혹감과 어려움을 먼저 드러낸 시인들도 적지 않았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큼 황당한 물음도 드물 것"이라는 김종길 시인은 시를 '높이 뜨는 느낌'이라고 한 에드거 앨런 포의 정의를 우선 빌린 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고양감의 실체를 '깨달음'으로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정희 시인은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며 "그러므로 오늘은 시인에게 있어 시는 건강과 같다고 말해 둔다"고 덧붙였다.

이근배 시인은 "나는 시를 모른다"고 운을 뗀 후 "굳이 들이대자면 시는 '개똥참외'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먼저 본 사람이 따먹는다. 이미 따먹은 개똥참외는 다른 사람은 딸 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인들의 시론은 그 자체로 시적이다.

신달자 시인은 시는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이라고 했으며 장석주 시인은 "부재의 씨앗이 자라나서 맺은 열매가 바로 시"라고 말했다.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나에게'라는 단서를 붙인 천양희 시인은 "절망이 부양한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며 내 삶에서 무서운 권력을 쥐고 있는 단독정부의 수반"이라고 표현했다.

오탁번 시인은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라고 했고, 이가림 시인은 "언어의 탄환으로 명중시킨 진실의 과녁"이라고 시를 정의했다.

언어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점을 시의 본질로 들기도 했다.

이건청 시인은 시는 "어떻게 하면 국어사전과 다르게 '말'들을 운용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으며 이승하 시인은 "극점의 언어, 극한의 언어"라는 말로 시를 정의했다.

허만하 시인은 "다른 방법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언어 실천"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김광규 시인은 "시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라고 표현했으며 박형준 시인은 "삶 혹은 시는 허기진 사람에게 약동한다"고 말했다.

문인수 시인은 "절경은 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야말로 절경이다. 그래, 절경만이 우선 시가 된다. 시, 혹은 시 쓴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결국 사람 구경일 것이다"라는 말로 시를 시답게 하는 특징으로 '사람 냄새'를 들기도 했다.

mihye@yna.co.kr

 

 

“시는 … 허기진 사람에만 약동하는 그 무엇” [중앙일보]

계간 ‘시인세계’ 국내 대표 시인 44인이 말하는 시론 특집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262120


“장자도 말했고 공자도 말했고, 40여 년 전 저 아득한/미아리 낡은 강의실에서 목월도 말했고 미당도/말했고 김구용도 학생들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며/말했고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동리도 불쑥 한 마디/했던 그것! 오늘은 나도 한마디 할란다, 똥이야!”

‘시(詩)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김종철 시인이 불쑥 내어놓은 답시다.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가 가을호 특집으로 국내 대표 시인 44인이 말하는 시론을 다뤘다.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 했다. 그럼에도 44명의 시인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는 데 동참했다.

쉰 해 가까이 시를 지은 이근배 시인은 “나는 시를 모른다”고 맨 첫줄에 적었다. 시인은 “굳이 들이대자면 시는 ‘개똥참외’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개똥참외는 콩밭 매다 우연히 눈에 띄는 것, 먼저 발견한 사람이 따 먹는 것이다. 노시인은 “시라는 개똥참외는 어디 가서 찾지? 먼저 따먹은 시인들이 밉다”고 적었다. 문정희 시인도 먼저 “시가 무엇인가 묻지 말라”고 말한다.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 그러므로 오늘은 시인에게 있어 시는 건강과 같다고 말해둔다.”

시를 대하는 방식, 혹은 삶의 방식으로 시를 정의한 시인들도 여럿이다.


“한때 내게 시는 ‘끝까지 가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겠다. 시는 적당적당히 가는 것이다. 시는 흔들리는 삶의 어쩔 줄 모르는 언어다.”(김중식)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가 바로 시다.”(오탁번)

시인들의 시론에는 시작(詩作)의 고통도 뚝뚝 묻어난다.

“비계살 많은 내 시의 살갗이 축축 늘어지고 굳은 살이 배길 때면 시퍼런 작둣날 위에 올라선 무당처럼 가끔씩 중얼거려보는 이 한 줄, 시라기보다 그것은 이제 무슨 주문처럼 느껴진다. 섬뜩하다.” (손택수)

시는 “시인이 선택한 가시면류관”(나태주)이며, “허기진 사람에게만 약동”(박형준)하는 무엇이다.

시란 시인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는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신달자)이며 “‘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나’의 출몰”(김행숙)이고, “몸이며 생성”(정진규)이다. “극점의 언어, 극한의 언어”(이승하)인 시는 “언어의 탄환으로 명중시킨 진실의 과녁”(이가림)이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김광규)이기도 하다. 이승훈 시인은 “시는 없다”고 적었다. “시와 비시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에 시를 고집하는 것은 폭력이고 우리 시단엔 이런 의미로서의 조폭들이 너무 많다.”

이경희 기자

 

시인에게 시를 묻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08140131

계간 시인세계 ‘시인 44명의 한마디’ 가을호 특집

[은자주]동아닷컴 기사에 다른 글을 보완하여 짜깁기하였다.


시란 무엇인가.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시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를 무엇이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시를 사랑하고 시를 아끼는 이들이라면 실마리라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지 않을까.


20일 발행되는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가을호(25호)는 이 궁금증에 대해 조금이나마 해갈이 될 만하다. 한국 문단을 움직이는, 현재 활동 중인 시인 44명이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자의 깨달음을 내놓았다.

물론 몇몇 시인 “시가 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숱한 낮밤, 시를 쓰고 찢은 이들에게 묻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못 견뎌서 해보는 거외다.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실컷 울고 싶을 때 그러한 처지에 놓였을 때 그것, 시라는 물건을 몇 줄 적어본답니다요. 병신같이 쭈그리고 앉아 끼적거려 보는 겁니다요, 하하.’(원로시인 김규동)

시는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슴에 뭔가 이리도 넘쳐서’ 토해낸다. 그러니 뭐라고 대답해도 좋다. 김종철 시인은 그래서 ‘똥’이라 했다.


“장자도 말했고 공자도 말했고, 40여 년 전 저 아득한/미아리 낡은 강의실에서 목월도 말했고 미당도/말했고 김구용도 학생들에게 담배를 빌려 피우며/말했고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동리도 불쑥 한 마디/했던 그것! 오늘은 나도 한마디 할란다, 똥이야!”


이근배 시인의 ‘개똥참외론’

나는 시를 모른다. 쉰 해 가까이 시인이라는 헛이름을 달고 품팔이를 해오고 있으면서 정작 시를 써보겠다고 붓을 들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보이는 것이 없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를 만나본 일이 없다.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몸짓을 하고 어떻게 태어나며 어디로 가는지? 만나본 일이 없는 까닭에 '무엇'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언젠가 '도깨비'라고 한 것도 분명 있기는 있는데 그래서 자주 씨름도 해보기는 하는데 그놈의 생김새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굳이 들이대자면 나는 시는'개똥참외'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든 먼저 본 사람이 따먹는다. 이미 따먹은 개똥참외는 다른 사람은 딸 수가 없다. 개똥참외는 콩밭을 매다가 우연히 눈에 띈다지만 시라는 개똥참외는 어디가서 찾지?

먼저 따먹은 시인들이 밉다.


그 때문에 문정희 시인은 “시는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속성 탓에 시에 대한 정의는 언제나 완벽한 정의가 아니기 쉽다”고 했다. 웬만했으면 박남철 시인은 “손을 턱에다 괴고 사진 찍어서 잡지에 발표해보기”라고 정의했을까.

시인들의 정의는 그들의 시만큼 넓고 깊다. ‘내 뼈 안에서 울리는 내재율’(신달자 시인)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오탁번 시인)라고 했다. ‘전달을 바라면서도 대중성을 경멸하는 아름다운 양면성’(허만하 시인)이며 ‘너무나도 확실한 물증’(이수익 시인)이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하니, “요즈음 시는 내게 어제 심은 작약 다섯 그루”라는 정진규 시인의 말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 속엔 긍정과 희망의 햇살 또한 함께 숨쉰다. 허영자 시인이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 하는 것도, ‘빈방에 꽂히는 햇빛’(강은교 시인)이며 ‘삶에 낙관주의를 심어주는 것’(이성부 시인)이라 시를 부르는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결국 시인들에게 시란 자신과 이음동의어였다. “살아 있는 시의 혼을 담아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시인의 몫”(김종해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에게 ‘나 이상도 나 이하도 아닌’(정일근 시인), ‘높이 뜨는 느낌으로 얻는 깨달음과 깨침’(김종길 시인)이었다. 그렇게 시는 ‘내 삶의 단독정부’(천양희 시인)가 된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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