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삼당파시인의 한 사람인 손곡 이달의 시를 일별하고 그의 제자인 허균이 쓴 <손곡산인전>을 읽어본다.

손곡蓀谷 이달李達

이달(李達) /p.315:

호는 蓀谷, 자는 益之. 박순의 문인으로 어머니가 기생인 미천한 출신. 그의 제자 許筠(1569-1618,본관 陽川)의 <蓀谷山人傳>(p.475)이 있다. 허균 남매에게 시를 가르침.

*許 曄─ 筬⋅封(荷谷)⋅楚姬(蘭雪軒,1563-1589)⋅筠(蛟山,1569-1618)

*封 이하 삼남매는 江陵 金氏 소생.

서학書鶴〉/315 *자화상적인 시

獨 鶴 望 遙 空 먼 하늘 바라보던 외로운 학 한 마리

夜 寒 擧 一 足 쌀쌀한 밤에 다리 하나 들고 서다.

西 風 苦 竹 叢 가을 바람에 대숲도 괴로운데

滿 身 秋 露 滴 온 몸이 가을 이슬에 젖었네.

〈무장도중茂長道中〉

六月長沙路 유월에 장사의 길을 가노라니

歸人觸暑行 길가는 이들도 더위 속을 간다.

孤村逢暮雨 외진 마을에서 저녁비 만나

獨坐聽流鶯 홀로 앉아 꾀고리 소리 듣는다.

在世長爲客 한 세상 길이 나그네 되어

行年已半生 내 나이 하마 오십일세.

何時竹林下 어느 때에 대숲 아래

棲息掩柴荊 사립문 닫고 살려나.

*掩(엄);가리다,닫다. 柴(시);섶,왜소한 잡목. 荊(형);굴싸리,광대사리,가시나무,매.

허균/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실기(實記)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o-seol/son-kok-san-bu-in-jeon.htm

조선 중기에 허균 ( 許筠 )이 지은 한문소설. ≪ 성소부부고 惺所覆 螺 藁 ≫ 권8 전(傳)에 들어 있다. ‘ 손곡산인 ’ 은 곧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 ( 李達 )이 강원도 원주 손곡에서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제목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손곡산인전 〉 주인공 이달은 그의 어머니가 미천하였으므로 세상에 쓰이지 못하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시재(詩才)가 뛰어나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시풍이 송시(宋詩)에서 당시(唐詩)로 들어가기까지 오랜 기간 수련과정이 필요했다. 이달의 성격은 매우 특이하였다. 그는 예법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도전적인 언행을 자행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그를 증오하거나 질투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나 시에 대한 재주가 뛰어나서 그의 불손한 행동을 감싸고도 남았다. 〈 손곡산인전 〉 의 구성은 이달의 생애와 외사씨(外史氏)의 평으로 되어 있다. 외사씨의 평은 곧 작자 자신의 목소리이다. 평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하는 전문학(傳文學)의 전통적 구성방법을 그대로 빌려쓰고 있다. 이 작품은 내용이 너무 짧다.

그래서 사건전개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작자의 주인공에 대한 관찰과 묘사의 특이함이 특기할만하다. 이 점은 작자가 주인공의 시제자(詩弟子)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 손곡산인전 〉 의 주제는 주인공의 불우한 일생을 통하여 당시의 모순된 사회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작자는 적서차별에 의하여 능력은 있으나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던 한 인간의 불우한 일생을 작품으로 형상화시켜 모순된 사회를 비판하려고 하였고, 불우한 한 시인의 특이한 일생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 손곡산인전 〉 은 작자 허균의 사회개혁사상의 문학적 반영하였다. 허균의 나머지 4편의 전과 함께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모든 계열의 한문단편 형성에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 참고문헌 ≫

惺所覆부藁, 李朝漢文小說選(李家源, 民衆書館, 1971), 許筠全集(成均館大學校大東文化硏究院, 1972),

許筠의 漢文小說硏究(金武憲, 江陵敎育大學論文集 5, 1973), 許筠의 傳에 대한 考究(姜東燁, 韓國漢文學硏究 2, 1977), 許筠的思想及其文學(李家源, 東方學志 25, 1980).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blog.naver.com/osj1952/100008931035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 실기(實記)

-허균(許筠)

蓀谷山人李達字益之(손곡산인리달자익지)

: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로
雙梅堂李詹之後(쌍매당리첨지후) : 쌍매당(雙梅堂) 이첨 의 후손이다.
其母賤(기모천) : 그는 어머니가 천인(賤人)이어서
不能用於世(불능용어세) :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居于原州蓀谷(거우원주손곡) :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以自號也(이자호야) : 자신의 호(號)로 하였다.

達少時(달소시) : 달(達)은 젊은 시절에
於書無所不讀(어서무소불독) :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綴文甚富(철문심부) :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爲漢吏學官(위한리학관) :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有不合(유불합) :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棄去之(기거지) :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종최고죽경창) : 고죽 최경창과
白玉峯光勳遊(백옥봉광훈유) : 옥봉 백광훈을 따라 노닐며

相得懽甚(상득환심) :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기뻐하고
結詩社(결시사) : 시사(詩社)를 결성하였다.
達方法蘇長公(달방법소장공) : 달은 한창 소장공을 본받아,
得其髓(득기수) : 그 요체를 터득하여
一操筆輒寫數百篇(일조필첩사수백편)

: 한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적어 냈으나
皆穠贍可詠(개농섬가영) : 모두 농섬(穠贍)하여 읊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一日思菴相謂達曰(일일사암상위달왈)

: 하루는 사암[박순] 정승이 달에게 말해주기를
詩道當以爲唐爲正(시도당이위당위정)

: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되네.
子瞻雖豪放(자첨수호방) : 자첨[소식]의 시는 호방(豪放)하기는 하지만
已落第二義也(이락제이의야) : 이미 당시의 아래로 떨어지네."하였다.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수추가상태백악부가음)

: 그리고는 시렁 위에서 이태백(李太白)의 악부(樂府)ㆍ가음시(歌吟詩),
王孟近體以示之(왕맹근체이시지)

: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達矍然知正法之在是(달확연지정법지재시)

: 달은 깜짝 놀란 듯 정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遂盡捐故學(수진연고학) : 드디어 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歸舊所隱蓀谷之莊(귀구소은손곡지장)

: 예전에 숨어 살던 손곡(蓀谷)의 전장(田莊)으로 돌아갔다.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취문선태백급성당십이가)

: 《문선(文選)》과 이태백 및 성당(盛唐)의 십이가․
劉隨州(류수주) : 유 수주
韋左史曁伯謙唐音(위좌사기백겸당음)

: 위 좌사와 백겸의《당음(唐音)》까지를 꺼내서
伏而誦之(복이송지) : 문을 닫고 외었다.


夜以繼晷(야이계귀) :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膝不離坐席(슬불리좌석) :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凡五年(범오년) : 이렇게 하여 5년을 지내자
悅然若有悟(열연약유오) : 어렴풋이 깨우쳐짐이 있었다.
試發之詩(시발지시) : 시험삼아 시를 지었더니
則語甚淸切(칙어심청절) : 어휘가 무척 청절(淸切)하여
一洗舊日熊(일세구일웅) : 옛날의 수법은 완전히 씻어졌었다.

卽倣諸家體而作長短篇及律絶句(즉방제가체이작장단편급률절구)

: 그리하여 당 나라 여러 시인들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장편(長篇)ㆍ단편(短篇) 및 율시(律詩)ㆍ절구(絶句)를 지어냈다.
鍛字聲揣律摩有不當於度(단자성췌률마유불당어도)

: 글자와 구절을 단련(鍛鍊)하고성음(聲音)과 운율(韻律)을 췌마(揣摩)하면서, 법도에 부당함이 있으면
則月竄而歲改之(칙월찬이세개지)

: 달이 넘고 해가 가도록 개찬(改竄)을 거듭하였다.


凡著十餘篇(범저십여편) :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 10여 편을 지어서
乃出而詠之諸公間(내출이영지제공간)

: 비로소 세상에 내놓고 여러분들 사이에서 읊자,
諸公嗟異之(제공차이지) : 모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깜짝 놀랐었다.
崔白皆以爲不可及(최백개이위불가급)

: 최고죽(崔孤竹)ㆍ백옥봉(白玉峯) 등도 모두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고,
而霽峯荷谷一代名爲詩者(이제봉하곡일대명위시자)

: 제봉․ 하곡과 같은 당대의 시로 이름난 분들이
皆推以爲盛唐(개추이위성당)

: 모두 성당(盛唐) 풍의 시를 짓는다고 추켜 세웠다.

其詩淸新雅麗(기시청신아려) : 그의 시는 청신(淸新)하고 아려(雅麗)하여
高者出入王孟高岑(고자출입왕맹고잠)

: 수준 높게 지은 것은 왕유ㆍ맹호연ㆍ고적(高適)ㆍ잠삼(岑參)에 버금하고,
而下不失劉錢之韻(이하불실류전지운)

: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ㆍ전기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自羅麗以下(자라려이하) : 신라(新羅)ㆍ고려(高麗) 이래로
爲唐詩者皆莫及焉(위당시자개막급언)

: 당시(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寔思菴鼓舞之力(식사암고무지력)

: 정말로 사암(思菴)이 고무시켜 준 힘이었으니,
而其陳涉之啓漢高乎(이기진섭지계한고호)

: 그것은 진섭이 한 고조(漢高祖)의 창업을 열어 준 것이라고나 할까.

達以是名動東國(달이시명동동국)

: 달은 이 때문에 이름이 우리나라에 울렸고,
貴之而捨其爲人(귀지이사기위인)

: 귀하게 여겨져 그의 신분은 놓아두고도
稱譽不替者(칭예불체자) : 칭찬해 마지 않는 분들로
詞林三四鉅公也(사림삼사거공야)

: 시문(詩文)에 뛰어난 3-4명의 거장(巨匠)들이 있었다.
而俗人之憎嫉者(이속인지증질자)

: 그러나 속인(俗人)들 중에는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比肩林立(비견림립) : 줄줄이 이어 있어,
屢加以汚衊(루가이오멸) : 여러 번 더러운 누명을 덮어씌우며
寘之刑網(치지형망) : 형벌의 그물에 밀어 넣었지만
卒莫能殺而奪其名也(졸막능살이탈기명야)

: 끝내 죽게 하거나 그의 명성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達貌不雅(달모불아) : 달은 용모가 아담하지 못하고
性且蕩不檢(성차탕불검) : 성품도 호탕하여 검속(檢束)하지 않았다.
又習俗禮(우습속례) : 더구나 시속(時俗)의 예법에 익숙하지도 못하여
以此忤於時(이차오어시) : 이런 것들 때문에 시류(時流)에 거슬렸었다.

而善談今古(이선담금고) : 그는 고금(古今)의 이야기를 잘했으며,
及山水佳致(급산수가치) :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喜酒(희주) : 술을 즐겨 마셨다.


能晉人書(희주능진인서) : 진(晉) 나라 사람에 가깝도록 글씨도 잘 썼다.
其中空洞無封畛(기중공동무봉진) : 그의 마음은 툭 트여 한계가 없었고,
不事產業(불사산업) : 먹고 사는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아서
人或以此愛之(인혹이차애지)

: 사람들 중에는 이 때문에 더 그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平生無着身地(평생무착신지) : 평생 동안 몸을 붙일 곳도 없어
流離乞食於四方(류리걸식어사방)

: 사방으로 유리(流離)하며 걸식(乞食)까지 했으니,
人多賤之(인다천지) :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窮厄以老(궁액이로) : 그렇지만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갔음은,
信乎坐其詩也(신호좌기시야)

: 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던 탓이었다.
然其身困而不朽者存(연기신곤이불후자존)

: 그러나 그의 몸이야 곤궁했어도 불후(不朽)의 명시를 남겼으니
豈肯以一時富貴(기긍이일시부귀) : 한 때의 부귀로
易此名也(역차명야) :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으랴!

所著殆失盡(소저태실진) :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데
不佞粹爲四卷以傳云(불녕수위사권이전운)

: 내가 가려서 4권으로 만들어 전해지게 하였다.

外史氏曰(외사씨왈) :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朱太史之蕃(주태사지번) : 태사(太史) 번은
嘗觀達詩(상관달시) : 일찍이 달의 시를 보았다.
讀至漫浪舞歌(독지만랑무가) : 만랑무가(漫浪舞歌)라는 시를 읽고서는
擊節嗟嘗曰(격절차상왈) : 격절차상(擊節嗟賞)하면서 이르기를
斯作去太白(사작거태백) : "이 작품이 이태백(李太白)의 시에서
亦何遠乎(역하원호) : 또한 어찌 멀리 있겠는가."했으며,
權石洲韠見其斑竹怨曰(권석주필견기반죽원왈)

: 석주(石洲) 권필도 달의 반죽원(斑竹怨)이라는 시를 보고서,
置之靑蓮集中(치지청련집중) : "청련(李太白)의 시집 속에 넣어도,
具眼者不易辨也(구안자불역변야)

: 안목(眼目) 갖춘 사람일 망정 판별하기 쉽지 않으리라."했었다.
此二人者(차이인자) : 이 두 사람이
豈妄言者耶(기망언자야) : 어찌 망언(妄言)을 할 사람이겠는가.
噫達之詩(희달지시) : 슬프다, 달의 시야말로
信奇矣哉(신기의재) : 진실로 기특했었다.

[계단식 농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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