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주소에는 노천명의 대표작 몇 편을 수록하였다. 1909년 3월 법률 6호로 민적법(民籍法)이 공포됨으로써 여성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http://blog.paran.com/kydong/24738970
볼일이 있어 충북 앙성에 있는 사슴농장에 들렀다. 어떤 농장에서는 꽃사슴을 키우기도 하는데, 대개는 덩치가 송아지보다 큰 알레스카산 엘카를 키운다. 농장주인의 말로는 한 5년 키워야 상품 가치가 있는 녹용이 생산되기 때문에 새끼를 낳는 암놈은 경제성이 없어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옥수수, 소맥 등을 주원료로 하는 배합사료는 25Kg 들이 한 포대에 7천원 하던 사료값도 지금은 만원을 호가하여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그 이유라 했다. 풀만 먹여서는 기대하는 녹용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료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란다.
사슴농장의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게 아니라 뿔이 잘려서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한번씩은 엉덩이에 마취주사를 맞고 까무러쳐 뿔이 잘려나가도록 비몽사몽의 꿈길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슴 >
-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작가 노트]
여성시의 선구자; 노천명
노천명(盧天命,1912-1957)
황해도 출생. 이화여전.
본명 기선. 병마에 시달려 天命으로 바꿈.
불우한 일생. 자전적 문학- 서정시의 기본.
작품 <사슴>은 처녀시집 《산호림(珊瑚林)》(1938)에 수록된 초기 시작품.
‘사슴의 시인’으로 애칭.
여성적 지적 시풍으로 생의 고뇌와 현실의 차가움을 주로 노래한 시인.
독신으로 지낸 건 짝사랑한 유부남 때문임.
(아래 기록을 보면 노천명의 처절한 사랑이 짐작될 겁니다.)
<사슴>에서도 情人(애인) 기다림.
애인은 유부남. 보성고보. 노동경제학 전공자.
노천명이 연극에 참여했는데 그가 관객으로 와서 만나기 시작함.
친일 훼절- “조선의 딸들이여”- 정신대 권장.
해방 후 연인 월북. 시인은 6.25때 도강 안하고 애인 기다림.
애인은 고위층으로 서울에 내려옴. 사회과학원 원사.
시인은 전쟁이 끝나고 20년 징역형 받음.
김광섭의 구명운동으로 전국교도소 돌며 친공 친일 참회.
[참고] 시집 《사슴》(1936)은 백석의 시집.
1.자전적 문학세계
- 사회 역사의식 부족
“댓돌 밑에 우는 귀뚜라미처럼 나는 그대를 기다린다.”
2.민속연희 풍물시 <남사당>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3.현실적 수난과 고통 <면회>
옥중시. “언니 앞에 머리를 숙이다”
4.평범한 여인의 행복론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
현실도피, 패배의식. 이름 때문에 수난.
절망적 몸부림 통해 찾은 평등의식
[결론] 여성시를 개척한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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