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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朱熹, 1130년 10월 18일 ~ 1200년 4월 23일)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 주문공(朱文公)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이라는 존칭이나 봉호로도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가지가 있다. 시호(諡號)는 문(文), 휘국공(徽國公)이다. 송나라 복건성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받았다. 그는 유학을 집대성하였으며 오경의 참뜻을 밝히고 성리학(주자학)을 창시하여 완성시켰다.
주희는 주염계, 이정(二程)으로 대표되는 이전 송학의 흐름을 이어받아 이를 집대성하고 종래 유교가 불교와 도교에 비해 사상적인 약점이었던 이론적 결여를 보완하는 우주론적, 인간론적 형이상학을 수립하게 된다. 이로써 한당의 훈고학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윤리학으로서의 본래성을 되찾는 한편 그것을 우주론적인 체계 속에 자리잡게 하고자 했다.
이후 주자의 철학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를 지배하는 주도 이념으로 자리잡는다. 사후 송 영종 연간에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송 이종 연간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었으며 신국공(信國公)으로 추봉되었다가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고쳐 봉해졌고 문묘에 배향 종사되었다. 주돈이의 학통을 계승한 연평(延平) 이동(李侗)의 제자이다.
생애
송나라 휘주徽州(현재 복건성 삼명시 우계현)에서 아버지 위재(韋齋) 주송(朱松)과 어머니 축씨(祝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하고 근엄하여 말수가 적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다. 어려서는 부친의 지기인 호적계(胡籍溪)·유백수(劉白水)·유병산(劉屛山)에게 사사(師事)하였고 과거급제 이후에는 주돈이와 정호 등의 학통을 이은 연평(延平) 이동(李侗)을 찾아가 사사, 명도(明道) 이천(伊川)을 사숙하여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후 유교 경전을 탐독하고 풀이 주석을 교정하고 공자, 맹자 등의 사상을 풀이하였는데 이것이 하나의 학문이 되어 성리학으로 발전하였다. 19세의 나이에 과거 시험에 등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관직에 나아가서는 황제에게 요순의 덕치(德治)를 설명하며 봉사(封事)와 상서(上書)로 누천만언(屢千萬言)을 개진하였으나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한탁주 등 관료들의 미움을 받아 만년에는 모함을 당하고 기인으로 몰리는 등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의 학문을 성리학 또는 주자학이라 하는데, 고대 경전의 주해 외에 유교의 주류인 이기심성(理氣心性), 거경궁리(居敬窮理)의 학설을 제창하여 그 학문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서로는 주역본의계몽(周易本義啓蒙)·시집전(詩集傳)·대학중용장구혹문(大學中庸章句或問)·논어맹자집주(論語孟子集註)가 있고, 소편(所編)에는 논맹집의(論孟集義)·중용집략(中庸集略)·효경간오(孝經刊誤)·소학서(小學書)·통감강목(通鑑綱目)·근사록(近思錄)·주자집(朱子集) 등을 남겼다. 1200년에 졸하니 사망당시 향년 71세였다. 송 영종 때 문공(文公)의 시호가 내려지고 송 이종 연간에 태사(太師)로 추증되었으며 신국공(信國公)으로 추봉되었다가 다시 휘국공(徽國公)으로 고쳐 봉해졌고 문묘에 배향 종사되었다.
사상
이기론(理氣論)
이기론은 우주 만물의 구조를 이(理)와 기(氣)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이기론에 따르면 우주 만물은 이와 기가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여기서 이는 만물을 낳는 근본 원리를 말하며, 기는 만물을 생성하는 재료를 말한다. 주자는 모든 사물이 이와 기의 결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으며[理氣不相離], 동시에 원리로서의 이와 재료로서의 기의 역할이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이와 기는 서로 뒤섞일 수 없다[理氣不相雜]고 보았다. 주자는 모든 사물은 이(理)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의 측면에서는 똑같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만물이 서로 다른 것은 기(氣)의 맑고 흐림 또는 바르고 치우침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1]
심성론(心性論)
심성론은 이기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적 구조와 본질을 규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심성론에 따르면 심(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괄한다[心統性情]. 성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이치(理)로, 본연지성(本然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눌 수 있다. 본연지성은 기질의 영향을 받기 이전의 순선한 것이고,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이 기질의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사람의 본연지성은 동일하지만 기질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기질지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한 정은 성이 외부의 사물에 감응(感應)하여 나타난 감정으로 사단과 칠정을 말한다.[2]
거경궁리론(居敬窮理論)
거경궁리론은 도덕을 실천하여 인격적으로 완성된 군자나 성인이 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다. 주자에 따르면 순선한 본연지성이 온전히 드러나기 위해서는 본연지성이 기질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수양이 필요하다. 그는 이를 위해 먼저 인간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참모습을 밝게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格物致知]. 그래서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먼저 알아야 그에 맞는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을 강조하였다. 주자는 이와 더불어 선한 본성을 보존하고 함양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살펴 경계해야 한다[存養省察]고 주장하였다. 주자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을 통해 인간은 천리를 보존하고 이기적 욕망을 제거하여[存天理去人欲] 이상적 인간이 될 수 있다.[3]
경세론(經世論)[편집]
경세론은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이론이다. 주자는 자신을 먼저 수양하고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는 수기안인(修己安人)의 원리에 근거하여, 수양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닦는데 그치지 않고 제도·법률·생산 등과 같은 사회적이고 현실적인 문제까지도 적극적으로 해결할 것을 강조하였다.[4]
이기이원론과 태극도설
우주만물을 형이상학적인 이(理)와 형이하의 기(氣)로서 구성되어있다고 보고, 인간의 본성은 선한 이가 발하여 나타나는 것이나 불순한 기로 인하여 악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이와 기로 이뤄진 우주와 만물이 생성되고 움직이는 운동법칙, 원리로서 태극(太極)을 제시한다.
이상의 개념들을 통해 주자는 주염계의 태극도설, 정이의 성즉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주자는 동시에 젊은 시절 탐독했던 불교와 도교의 사상에서 받았던 영향에서 착안하여 유학의 사상적 이학적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에 기여했다.
저서
주자문집
주자문집(朱子文集)은 주희가 쓴 문장을 집록(集錄)한 100권의 책이다. 여기에 수록된 주자의 글은 실로 다종다양하다. 특히 그의 상주문(上奏文) · 사면문(辭免文) · 기(記) · 공이(公移) 등등은 주자의 구체적인 정치활동이나 정치사상을 아는 데 지극히 중요한 자료이다. 또 서간문(書簡文) · 잡저(雜著) · 기(記) 등은 주자의 학문사상을 아는 데 있어 《어류(語類)》와 함께 필독해야 할 부분이다. 기타 이 문집 100권은 별집(別集) · 속집(續集)을 합하여 주자의 사상이나 역사적 성격을 전체적으로 규정하는 점에서 필요 불가결한 자료이나, 종래 주자를 논하는 사람 가운데서 문집을 자세히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주자 연구에 있어서 새로운 설이나 해석을 제공할 수 있는 자료적 보고(寶庫)라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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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性理學) 12세기에 남송의 주희(朱熹)가 집대성한 유교의 주류 학파이다. 성리학의 어원은 주희가 주창한 성즉리(性卽理)를 축약한 명칭이다.
성리학은 집대성한 주자(주희)의 이름을 따서 주자학(朱子學)이라고도 하고, 송나라 시대 유학이란 뜻에서 송학(宋學), 송나라와 명나라에 걸친 학문이라고 해서 송명이학(宋明理學)이라고도 하며, 송나라 시대 이전 유학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새로운 기풍의 유학이라는 뜻에서 신유학(新儒學), 정호(程顥)와 정이(程頥)에서 주희로 이어지는 학통이라는 뜻에서 정주학(程朱學), 정주 성리학(程朱性理學), 정주 이학(程朱理學)으로도 불리고, 이학(理學) 또는 도학(道學)이라고도 한다. 특히 중화권에서는 송명리학(宋明理學), 서구권에서는 신유학이라고 주로 칭한다.
학문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수양, 수기)를 위한 학문)이다.
주자의 집대성
주자의 학문은 북송에서 일어난 신경향의 학술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또 사서[2]를 특별히 중요시하여 주석을 하였고, 《대학》의 〈성의〉(誠意)장의 주해는 죽기 3일 전까지 계속해서 수정했다.[3]
이기론(理氣論)
이기론에서는 정이천의 2원론(二元論)을 계승하여 다시 더욱 상세·엄밀하게 체계화하였다. 형이상적, 형이하적 논리 구별을 분명하게 하였다. 또 주돈이의 태극론(太極論)도 받아서 태극(太極)은 오직 1개의 이(理)의 자(字)라고 규정하여, ‘이(理)=태극(太極)=도(道, 형이상)’와 ‘기(氣)=음양5행(陰陽五行, 형이하)’인 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음양2기(陰陽二氣)의 교감에 의해 생성되는 개체와 상즉불리(相卽不離)인 것이라고 말하였다.[3]
도덕론(道德論)
도덕론에서 이천이 명(命)·성(性)·이(理)·심(心)을 동일하게 보았기 때문에 ‘성즉리(性卽理)’, ‘심즉리(心卽理)’라고 한 데 대하여, 주자는 ‘성즉리(性卽理)’만을 취하고 심(心)은 형이하적(形而下的)인 것, 즉 음양2기(陰陽二氣)의 작용이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사람의 성(性)은 이(理)이고 지선(至善)한 것이며 사람의 본연의 것이라고 하였다. 심(心)은 이(理)가 있는 곳, 이가 작용하는 장소이다. 또한 심(心)의 발동은 이(理)에 의하여 있게 되는데, 그 이야말로 사람에게 본래의 성(性)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본연의 성(性)이 지선(至善)하지만 현실에는 악도 존재하고 악인도 있다. 그것은 기품[4]에 과불급(過不及)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理)=태극(太極)’이라고 하는 형이상적인 것은 항상 사사물물(事事物物) 속에 있다. 사사물물이 없으면 따라서 이(理)는 없다. 즉 1물(一物)에 ‘1리(一理)=1태극(一太極)’이 있는 것이다. 논리적 과정을 말하면 이(理)가 있어야 물(物)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물(物)이 없는 이(理)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이기(理氣)에 선후는 없다고 한다. 또 주자에 의하면 1물(一物)에 1태극(一太極)이 있는데, 이 이(理)는 즉 만물의 이(理)이다. 달이 호수나 냇물에 비쳐도 달은 원래 하나의 것이다. 일반자(一般者)·형이상자(形而上者)는 항상 개체에 내재하여 개체를 통하여 일반자는 실현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가 도덕론에 적용되면 사람은 자기의 본연의 성(性)(理)을 회복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덕을 완성하는 것이며, 개별적 인간은 실천에 의하여서만 일반자로서의 ‘도(道)~이(理)-성(性)’을 구현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3]
수양론(修養論)
수양론은 우선 격물치지(格物致知)이며 궁리진성(窮理盡性)인 것이다. 주자에 의하면 사사물물의 이를 궁구한다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나를 궁구하는 것이며 나를 다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물(物)의 이(理)’와 ‘심(心)의 이(理)’와의 통일적인 파악에는 아직 불충분한 점이 있었다. 육상산이나 명나라 왕양명이 그 정곡을 찔러 비판했다. 조선에서는 기존의 고려 말, 정몽주의 <의리론>을 그의 제자 하연은 이를 더욱 심화하여 조선 절의파 사대부의 사상을 <수양론>으로 발전시켜 계승한 대표적인 성리학자가 되었다.[5]
후대에 미친 영향
주자학이 송대 이후 끼친 영향은 지극히 크다. 주자학은 주자의 생전에 있어 지방관적, 재야적(在野的) 입장에서의 사상을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원(元)·명(明)을 거쳐 청조에 이르기까지 관학적(官學的)인 아카데미즘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주자학은 조선이나 일본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의 성리학 수용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안향이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들여와 연구한 데서 비롯되었으며,[6][7] 성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그 체계를 파악해 크게 일가를 이룬 이는 백이정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하연·이언적·이황·김인후·기대승·이이 등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면서,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여 정신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을 중시하는 주리설과 인간의 감성을 중시하고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주기설 등이 나오게 되었다. 주리설은 영남지방에서 발전하여 '영남학파'라고 하는데, 이언적·이황·류성룡·김성일로 이어졌으며, 주기설은 기호지방에서 발전하여 '기호학파'라고 하는데 서경덕·김인후·기대승·성혼·이이에 이르러 완성되었고 김장생 등에게 이어졌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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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론(理氣論)은 자연의 존재법칙을 연구하는 성리학의 이론이다. 이기론은 이학(理學)·기학(氣學)이라고도 부르며, 우주론보다 심성론에 치중했기 때문에 심학(心學)이라고도 일컫는다.[1]
중국 송대에 이기2원론을 창설한 철학자는 정이(1033~1107)로, 그 이전의 주돈이·소옹(召雍)·장재(張載)·정호(程顥) 등에 있어서는 아직 이기론이 확립되지 않았다. 그런데 주희의 철학, 즉 성리학은 이 모든 학설을 종합하여 집대성한 것이며, 특히 주돈이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정이의 이기설을 종합한 것이다.[1][2]
이론
리와 기의 본래 의미
리는 본디 옥(玉)의 결이나 무늬를 뜻하는 단어로 사물의 자연스러운 조리, 순조롭게 일을 이루기 위해 지켜야 할 질서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리 개념은 사상사적 변천을 거쳐 의미를 확장해 가게 되는데, 특히 한․당대 불교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추상적 성격이 강해진다. 송대 정주학이 정립되면서 리는 우주를 이루고 만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법칙 내지 원리를 의미하게 된다.
기 역시 중국전통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개념 가운데 하나다. 기는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운동작용을 통해 세상만사를 이루는 모종의 에너지로, 인간을 비롯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생명은 기의 유행에 따른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기는 비록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은 아니지만 만물을 이루는 기본요소라는 점에서 물질적인 속성을 가진다. 자연현상과 인간 삶의 물리적․질료적 기반을 기로 보는 세계관은 신유학의 기 개념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3]
이기론의 성립
주희에 의해 확립된 이기론은 성리학의 토대가 되는 존재론이다. 리와 기는 본래 짝을 이루는 개념이 아니었으나 중국 송대에 신유학 체계가 정립되면서 세계를 구성하는 두 범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주희는 별개의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리와 기를 대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거대한 이론체계를 구성한다. 주희에 따르면 우주만물은 리와 기의 결합으로써 존재한다. 리는 천하의 사물이 ‘그와 같이 이루어진 근거[所以然之故]’이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법칙[所當然之則]’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는 그러한 근거와 법칙에 의거하여 현상세계를 구성하는 실질적인 질료가 된다. 리는 추상적인 원리로서 형체를 갖지 않는 존재인 까닭에 현상세계에서 리의 실현은 기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 면에서 존재론적으로 리와 기는 상보적이며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不相離]라 할 수 있다. 반면 리와 기는 각각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의 존재로 그 범주를 달리 하기에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관계[不相雜]이기도 하다.
아울러 리와 기에는 도덕적인 선악의 의미가 부여된다. 선악의 관점에서 볼 때 리는 절대적으로 선한 반면 기에는 선과 악이 섞여 있다. 성리학에서는 각각의 사물에게 부여된 리를 성(性)이라고 하는데, 리가 보편적으로 동일한 만큼 만물의 본성 역시 똑같이 선하다고 본다. 그러나 동일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각각의 사물을 구성하는 기에는 맑음과 탁함, 온전함과 치우침[淸濁偏全] 등의 차이가 있다. 그러한 기의 차이에 따라 각각의 존재마다 선악의 정도차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리는 만물에 공통적으로 내재한 동일성과 보편적인 선을 보장하는 개념이며 기는 만물 간에 존재하는 차별성과 선악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4]
리와 기는 서로가 전연 다른 것(決是二物)이지만, 현상의 세계는 모두 리의 법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므로 리와 기는 항상 서로 떠나려 아니한다(不可分開). 그러므로, 우주의 시원(始源-본체)에 있어 벌써 현상으로 될 가능성을 가진 리와 기는 동시에 실재한다. 따라서 주희의 철학을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이라 한다. 리와 기는 본래 선후를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근원을 미루어 보면 모름지기 먼저 리가 있어야 한다. 본원에서 논한다면 리가 있은 뒤에 기(현상물)가 있는 것이요, 품부(稟賦, 현상)에서 논한다면 기가 있은 뒤에 리가 따라서 갖추어진다. 이 말은 우주 발생론적으로 리와 기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리는 이기무선후(理氣無先後)의 형이상학이며 또 인식론적 고찰이다. 여기서 주희는 기가 있으면 리가 있고, 기가 없으면 리가 없다 하여 이기동시(理氣同時)를 명백히 하였다.[1][5]
체(體)·용(用)
이기론에 있어서 이기를 논함에는 리를 '체(體)', '기'를 '용(用)'이라 한다. '체'는 부동의 본체로서 형이상자(形而上者)요, '용'은 동(動)의 작용으로서 형이하자(形而下者)다. 여기서 말하는 형이상·형이하는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본체와 현상의 개념이 아니고, 동과 부동의 작용면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므로 리와 '기'는 다 같이 본체로서 형이상자를 가리킨다.[1]
성(性)·정(情)
이기론에서 심성을 논함에는 '성(性)'을 체로서의 리, '정(情)'을 용으로서의 기로 봄으로써 리와 '기'는 '성'과 '정'에 해당한다. 주희는 '이기이원론'의 입장에서 성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성'은 '심(心)'의 리요, '정'은 '성'의 '용'이며, '심'은 '성'·'정'의 주(主, 주재)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이요,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는 '정'이며, 인(仁)으로써 사랑하고, 의(義)로써 미워하고, 예(禮)로써 사양하고, 지(智)로써 아는 것은 '심'이다. '성'은 '심'의 갖춘 바 리요, '정'은 '성'이 물(物, 대상)에 접하여 동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맹자의 이른바 '인·의·예·지' 4덕(四德)은 '심'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性)으로서 '체'요,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작용인 '4단(四端)'은 '정'(情)으로서 '용'이며, '심'은 '성'과 '정'을 합한 것으로 '성'·'정'의 주재이다.[1]
맹자의 이른바 '4단(四端)' 이외에도 정으로서 '희·노·애·구·애·오·욕(喜怒愛懼哀惡欲)'의 7정(七情),[6] 그리고, 4덕에 신(信)을 가하여 '5상(五常)'이라 하는데 5상은 '성'의 덕으로서 이에 해당한다.[1] 구성의 선악의 문제에 있어 주희는 장재와 정이의 성설(性說)을 계승하여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 즉 天地之性)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누고, 본연지성은 이로써 순선(純善)이며, 기질지성은 겸이기(兼理氣)로서 유선악(有善惡)이라 한다. 이것은 종래의 성설을 종합한 것이며, 이일분수설(理一分殊說)에 입각하여 우주(하늘)와 인성(사람)을 일관적으로 해명한 것이다.[1]
논쟁
리와 기에 대한 설명은 주희의 어류(語類)에 산재해 있으므로 전체적, 체계적인 것이 아니어서 후대의 학자들의 이해가 서로 달라 조선 유학에 있어 시비의 불씨가 되었다.[1]
4덕·5상·4단·7정 및 4정 등은 조선 유학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일으킨 문제들로, '이·기·성·정'의 문제가 제기되었다.[1]
조선의 이기론
이기론은 조선시대에 와서 심오하게 탐구되었는데, 기를 주로 보는 주기파(主氣派), 리를 주로 보는 주리파(主理派), '이'와 '기'를 다 같이 동(動, 즉 發)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과 기대승의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 또 주리설과 주기설을 절충한 이항과 장현광의 절충파 등이 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극단적 유리론(唯理論)과 유기론(唯氣論)으로 발전한다.[1]
더욱이 중국 명대의 양명학(陽明學)이 조선에 유입되어 일부 학자들이 전공하게 됨으로써 양명학파(陽明學派)가 형성되었고 심학이 크게 융성하여 이른바 사단칠정논쟁(四端七情論爭) 또는 '사칠이기설(四七理氣說)'이 성행하였고,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1]
서경덕은 이기이원론(理氣二原論)을 일원론적으로 보려고 노력하여 태허(太虛)를 기(氣)의 본체로서 일기(一氣)요, 선천(先天)이라고 하고, '일기'가 음기·양기의 이기(二氣)로 갈라져 후천(後天)이 생긴다고 주장하여 주기적(主氣的) 경향을 보인데 대하여, 이황은 이기이원론을 취하고,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곧 기대승의 '이기공발설(理氣共發說)'과의 논쟁, 이른바 퇴·고논쟁(退高論爭)을 일으켰고, 이 논쟁이 다시 뒤에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주장하는 이이(李珥)와 '이기분속설(理氣分屬說)'을 주장하는 성혼(成渾)간의 율·우논쟁(栗牛論爭)으로 발전하였다. 즉, 이황의 '이발(理發)', 이이의 '기발(氣發)'이란 상반되는 견해는 다음 주리파(主理派)와 주기파(主氣派)의 양대진영으로 갈리어 드디어 '심즉리(心卽理)'란 극단적인 대립을 이루기까지 되어 조선왕조 철학계의 논쟁점이 된다. 이황을 지지하는 주리파는 영남지방에서, 이이를 지지하는 주기파는 경기·호서 등지에서 성행하였으므로 영남학파 기호학파라고도 각기 일컬어졌다. 양파는 모두 자파(自派)의 학문적 근거를 성리학의 대성자 주희에게 구하려 하였다. 주기파의 송시열과 한원진(韓元震)의 공저 《주자언론동이고》(朱子言論同異考)는 주희의 어록을 세밀히 조사함으로써 주기론의 근거를 고증하였고, 이에 대해 주리파의 이진상(李震相)의 저술인 《이학종요》(理學宗要)에서는 주희의 어록이 '이발'을 주장한 것이 틀림없다고 변증하였다. 송시열은 그의 스승 김장생을 통하여 물려받은 이이의 기발이승을 논리적으로 추연(推演)하여 사단칠정이 모두 '기발'인 까닭에 '사단'도 순선(純善)일 수는 없고, '칠정'과 마찬가지로 불선(不善)도 있다 하여 당시에 논란이 되었다.[1]
노수신(盧守愼)은 성경(誠敬)과 전인(專一)의 공부방법에 치중하고, 심학에 있어 나흠순(羅欽順, 1465~1547)이 도심(道心)을 '체', 인심을 '용'이라 한 것을 지지하여 말년에는 선학(禪學)에 기울어졌다.[1]
https://www.youtube.com/watch?v=8l-GpTiBKqs&t=189s
https://www.youtube.com/watch?v=QHxQSouMCaY
https://www.youtube.com/watch?v=U6IxL_nN3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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