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n6WaTObHRJM

 

시셀 슈사바, Auld Lang Syne - 초기 애국가의 곡조/ You Raise Me Up (0) 2019.09.29

 

시셀 슈사바, Auld Lang Syne - 초기 애국가의 곡조/ You Raise Me Up

Auld Lang Syne - Sissel https://www.youtube.com/watch?v=UOwNBP_B1xo *작별(作別, Auld Lang Syne, 올드 랭 사인)은 스코틀랜드의 가곡이자 작자가 확실한 신 민요이다. 스코틀랜드의 시인인 로버트 번스가 17..

kydong77.tistory.com

 

아래에서 알고 싶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이름을 클릭하면 그 분들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접기

한민족의 시조, 단군

 

단군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 현존하는 사서 중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처음 언급된다. 한민족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민족적 자주 의식의 상징이다. 단군은 고조선의 첫 임금이다. 기원

100.daum.net

최초의 영웅이자 신화가 된, 주몽해상왕국을 이룬, 근초고왕

 

주몽

동명성왕(東明聖王). 고구려의 건국 시조(재위 B.C. 37~B.C. 19년). 《삼국사기》에 따르면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하백의 딸 유화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알에서 탄생했다고

100.daum.net

최강의 정복 군주, 광개토대왕비운의 군주, 성왕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진흥왕

 

광개토대왕

고구려 19대 왕(재위 391~412년).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이다. 최초로 연호를 사용했다. 연호는 영락으로 재위 시에 영락대왕이라고 불렸다. 동부여를

100.daum.net

 

진흥왕

신라 제24대 왕(재위 540~576년). 신라에 의한 삼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553년 백제가 점령했던 한강 유역의 요지를 공취하고, 이듬해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을 전

100.daum.net

고대 음악의 마에스트로, 우륵

고대 미술의 금자탑, 담징

최초의 여성 군주, 선덕여왕

 

선덕여왕

신라 제27대 왕(재위 632~647년). 신라 최초의 여왕이다. 자장법사를 당에 보내 불법을 수입했고, 분황사, 첨성대, 황룡사 9층탑을 건립했다. 647년에 상대등 비담과 염종

100.daum.net

살수대첩의 영웅, 을지문덕고구려의 마지막 방어선, 연개소문삼국 통일의 주역, 김춘추

 

을지문덕

고구려의 장군. 수나라 군대를 살수에서 물리친 살수대첩은 을지문덕의 전략에 의한 것이다. 을지문덕은 고구려 영양왕 때의 명장이다. 그의 독특한 이름에 대해서는 ‘을지’라는 성이 고

100.daum.net

 

김춘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재위 654~661년). 신라 제29대 왕으로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다. 신라 왕권의 전제화를 확립했고, 당나라의 율령제를 모방하여 관료 체제를

100.daum.net

덕과 지혜, 용맹을 모두 갖춘 명장, 김유신한국 불교의 횃불, 원효

 

김유신

신라의 장군. 본관은 김해,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12대손이다. 당나라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를 정벌했다. 이후 당나라군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며 삼국 통일을 이룩했

100.daum.net

 

원효

신라의 승려. 속성은 설, 법명은 원효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중 간밤에 마신 물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대오했다는 일화를 남겼으며, 평생 불교 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100.daum.net

한국 불교 사상의 토대를 닦은, 의상고구려를 계승한, 대조영세계의 명장, 고선지풍수지리설을 제창하다, 도선공부의 신, 최치원시대를 앞서 간 선구자, 장보고

 

의상

신라의 승려. 화엄종의 개조이다. 661년 문무왕 때 해로로 당나라에 가서 지엄의 문하에서 현수와 더불어 화엄종을 연구하고 670년 귀국했다. 676년 부석사를 짓고 화엄종을 강론

100.daum.net

 

최치원

신라 시대의 학자. 경주 최씨의 시조.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이다. 879년 황소의 난 때 고변의 종사관으로서 〈토황소격문〉의 기초를 작성해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8

100.daum.net

백제의 부활을 꿈꾼 영웅, 견훤사라져 간 통일의 꿈, 궁예

고려 시대접기

민족 대통일의 위업을 이루다, 왕건소통을 강조한 재상, 최승로역사상 최고의 외교관, 서희고려 불교의 원류, 의천

 

왕건

고려 제1대 왕 태조(재위 918~943년). 혼인 관계를 통해 호족 세력을 통합하고자 29명에 이르는 많은 후비를 두었다. 918년 궁예를 폐위하고 후삼국을 통일했다. 고려를 세

100.daum.net

 

의천

천태종의 개조. 고려 제11대 왕 문종의 넷째 아들로 열한 살 때 경덕국사 난원 밑에서 승려가 되어 구족계를 받았다. 교종과 선종의 일치를 주장하며 고려 불교의 융합을 실현하여,

100.daum.net

 

고려 시대 불교계의 대립

교종(敎宗)은 경전과 가르침을 중시하는 불교의 교파로 천태종과 화엄종이 대표적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 시대에 유입된 이후 발전을 거듭해 신라 하대 5교, 즉 보덕의 열반종, 자장의

100.daum.net

교종(敎宗)은 경전과 가르침을 중시하는 불교의 교파로 천태종과 화엄종이 대표적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 시대에 유입된 이후 발전을 거듭해 신라 하대 5교, 즉 보덕의 열반종, 자장의 계율종, 원효의 법성종, 의상의 화엄종, 진표의 법상종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통일 신라 말에 유입된 선종은 이론이나 지식에 치우친 교종과 달리 참선을 통해 직접 진리에 도달할 것을 강조했다. 선종은 교종의 주류인 화엄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세를 키웠다. 선종은 화엄종보다는 자신들이 높은 차원의 도를 닦는다고 주장하며 우위를 입증하는 데 열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실제로 화엄종의 많은 승려들이 선종으로 전향했고, 화엄종 사원을 선종 사원으로 바꾸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화엄종의 세력이 쉽게 수그러든 것은 아니다. 9세기 말 화엄종은 ‘화엄 결사(結社)’라는 일종의 자체 반성을 통해 세를 지켜 나갔다.

 

고려의 동북방을 개척한, 윤관선진적 지식인, 김부식칭제건원의 무산된 꿈, 묘청무신의 시대를 연, 정중부무신 시대의 전성기를 구가한, 최충헌

 

김부식

1145년 《삼국사기》를 완성했다. 《삼국사기》의 체재를 작성하고 사론을 직접 썼다. 묘청의 서경천도론을 반대했고, 서경천도 일파가 군대를 일으키자 원수로서 반란군을 제압했다. 김

100.daum.net

무신 시대 문인의 애환, 이규보민족 문화의 보고 《삼국유사》, 일연〈다정가〉를 지은 고려의 문장가, 이조년박학다식한 고려의 지성인, 이제현화약의 선구자, 최무선의생활을 뒤바꾼, 문익점

 

일연

1268년 운해사에서 대덕(大德) 100여 명을 모아 대장경낙성회를 조직하고 맹주가 되었다. 한국 고대 신화와 설화 및 향가를 집대성하여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고려의 승려이자

100.daum.net

 

 

이제현

명문장가로 정주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조맹부 서체를 도입했다. 1320년 충선왕이 모함으로 유배되자 원나라에 그 부당함을 밝혀 1323년 풀려나게 했다. 저서로 《효행록》, 《익재

100.daum.net

좌절된 개혁, 공민왕

혼돈의 시대에 개혁을 꿈꾸다, 신돈고려 최후의 보루, 최영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

 

최영

1359년, 1361년에 홍건적이 창궐했을 당시 이를 격퇴한 무장이다. 흥왕사의 변, 제주 호목의 난을 진압했으며, 1376년에는 왜구가 삼남 지방을 휩쓸자 홍산에서 적을 대파했다

100.daum.net

 

정몽주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했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주자가례》에 따라 개경에 5부 학당과 지방에 향교를 세워 교육 진흥을 꾀했다. 이방원과 나눈 〈단심가〉를 통해

100.daum.net

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접기

변방의 무장에서 새 왕조의 주인으로, 이성계

 

이성계

조선의 제1대 왕 태조(재위 1392~1398년). 고려의 무장으로 랴오둥 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고 조선을 창업했다. 사대주의, 배불숭유(排佛崇儒)

100.daum.net

500년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다, 정도전태종의 치적 뒤에 자리한 장자방, 하륜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청백리의 표상, 황희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왕위 찬탈자인가, 위대한 군주인가, 세조모사가인가, 지략가인가, 한명회단종을 향한 일편단심, 성삼문국력을 신장시킨 외교와 국방의 달인, 신숙주사림의 영수, 김종직비운의 폐왕, 연산군

 

세종

조선왕조 제4대 왕(재위 1418~1450년). 이상적 유교 정치를 구현했고, 훈민정음 창제, 측우기 등 과학 기구 제작 등을 통해 조선의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는 데 기여했다.

100.daum.net

도학 정치를 꿈꾼 급진적 이상주의자조광조조선 최초의 자연철학자, 서경덕조선 주리철학의 선구자, 이언적중세의 봉건적 질서에 반기를 들다, 임꺽정동방의 주자, 이황조선의 주자학을 일구다, 조식동서 분당의 시대, 정인홍어린 천재에서 희대의 정치가로, 이이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한 재상, 유성룡한국 해전의 역사를 새로 쓰다, 이순신

 

이언적

주리적 성리설을 주장했고, 이 설은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설이 되었다. 손숙돈과 조한보 사이에 벌어진 ‘무극태극’ 논쟁에 참여하여, 주리적 관점에서 양자의 견해를

100.daum.net

 

이황

이기호발설을 중심으로 영남학파를 형성했고, 이이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기호학파와 대립하며 동서 붕당과도 연관되었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기대승과 8년에 걸친 논쟁을 벌이며

100.daum.net

 

서경덕

‘이(理)’보다는 ‘기(氣)’를 중시하는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 황진이, 박연폭포와 함께 개성을 대표한 송도삼절로 지칭되며,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일화가 유명하다. 서경덕은

100.daum.net

 

조광조

중종 때 사림의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 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훈구파를 억제하기 위해 현량과 실시, 위훈 삭제 등 급진적 개혁 정치를 단행했다. 사림파의 과격한 언

100.daum.net

 

임꺽정

조선 중기 양주의 백정 출신 도둑으로 일명 임거정 혹은 임거질정이라고도 한다. 명종 대의 정치적 혼란과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황해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관아를 습격하고 창고를

100.daum.net

 

이순신

조선 시대의 명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옥포 대첩, 사천포 해전, 당포 해전, 제1차 당항포 해전, 안골포 해전, 부산포 해전, 명량 대첩, 노량

100.daum.net

조선 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허준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 정여립홍길동의 아버지, 허균

 

허준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냈으며, 1610년에 《동의보감》을 완성하여 조선 한방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구급방》, 《창진집(瘡疹集)》, 《태산요록》 등을 언해하여 조선 의학 발전

100.daum.net

 

허균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회 모순을 비판한 조선 시대의 대표적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홍길동전》 외에도 《한년참기(旱年讖記)》, 《한정록(閑情錄)》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100.daum.net

대동법을 실시한 실리적 개혁가, 김육

명분인가 실리인가, 최명길우리말의 가락을 살려 우리 글자로 쓰다, 윤선도유림 위에 군림한 정치 사상계의 거장, 송시열성리학계의 이단아, 윤휴붓으로 살려낸 만물의 조화, 정선경세치용의 학문을 열다, 이익당쟁 속에서 탕평을 실천한 재상, 채제공못다 한 개혁의 꿈, 정조

 

송시열

주자학의 대가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고 노론의 영수를 지냈다. 이황의 이원론적인 이기호발설을 배격하고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했다. 동양의 주자라는

100.daum.net

 

윤선도

1636년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강화도로 갔으나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에서 은거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 문제와 자의대비의 복

100.daum.net

 

정조

조선의 제22대 왕(재위 1776~1800년). 대과는 규장각을 통해 국왕이 직접 관장하는 등 과거 제도를 개선하여 많은 과폐를 없앴다. 전제 개혁에도 뜻을 두어 조선 초기의 직전

100.daum.net

 

천주교는 우리나라에 언제 도입되었나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직접 들어온 때는 지금부터 200여 년 전이다. 그러나 책으로 소개된 것은 그보다 오래전, 임진왜란을 전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100.daum.net

정조의 남자, 홍국영실학의 아버지, 박지원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약용한국화의 전통미를 일구어 낸, 김홍도

 

박지원

《열하일기》, 《연암집》, 《허생전》 등을 쓴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소설가이다. 이용후생의 실학을 강조했으며,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 소설을 발표했다. 박지

100.daum.net

 

정약용

한국의 역사,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서학을 통해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과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했다. 주요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100.daum.net

조선을 뒤흔든 농민봉기의 지도자, 홍경래한국적 서체를 완성하다, 김정희자주적 근대화를 주장한 개화 사상가, 박규수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조선의 마지막 봉건주의자, 이하응

 

홍경래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홍경래의 난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군사 지도력과 봉기 이념에 한계가 있었지만, 기층 사회에서 성장한 인물로서 대규모의 항쟁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100.daum.net

 

박규수

개화 사상가. 박지원의 손자로 개화파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75년 최익현 등의 척화 주장을 물리치고, 일본과의 수교를 주장하여 강화도조약을 맺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00.daum.net

 

최제우

유불선(儒佛仙)의 장점을 융합하여 ‘시천주(侍天主)’ 사상과 ‘인내천(人乃天)’의 교리를 중심으로 한 동학을 창시했다. 1864년 동학을 사학으로 단정한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처형

100.daum.net

격동의 역사 속 비운의 황제, 고종

 

을사조약과 을사오적

1905년 일본은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이에 찬성한 대한제국 대신은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100.daum.net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명성황후암살당한 개혁의 불꽃, 김옥균한국 민중 저항사의 상징, 전봉준민중 계몽으로 자주독립을 꾀하다, 서재필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안창호총 한 자루로 제국주의를 처단하다, 안중근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은 안중근이 1910년 옥중(獄中)에서 쓴 글이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국과 중국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극동평화론’에 맞서, 한·중·일이 동등

100.daum.net

〈님의 침묵〉, 한용운나라는 망해도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신채호항일 무장 투쟁의 영웅, 김좌진삼천 만 동포에게 고함, 김구좌익과 우익,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여운형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여인, 나혜석

 

한용운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불교를 통한 청년계몽운동을 했다. 《조선불교유신론》 등을 통해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100.daum.net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박정희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전태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0년대를 말할 때 ‘유신’은 그 중심에 있다. 1972년 12월의 유신헌법을 시작으로 1979년 10월 박정희의 죽음까지, 유신 체제는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지배한 중심적

100.daum.net

 

www.youtube.com/watch?v=A42f__kfBBA&t=7s

 

www.youtube.com/watch?v=2Y43oZRTFU4

 

www.youtube.com/watch?v=syaNWEF6cRU&t=64s

 

www.youtube.com/watch?v=DtdY_fEr0xA

 

 

 

 

<부모은중경>/ 양주동, 어머니 마음 (3) 2019.09.14

 

<부모은중경>/ 양주동, 어머니 마음

경기 양평 룡문사에 참배갔다가 지장전의 <부모은중경> 그림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어버이날 노래로 부르던 동요는 부모은중경을 바탕으로 양주동 선생님께서 작사하신 <어머님 은혜>가 본디 제목이다. 현재..

kydong77.tistory.com

 

 

 

Der Lindenbaum 보리수

Franz Schubert 프란츠 슈베르트

Der Lindenbaum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uss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sst. 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n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or. ich.s rauschen:

Du fandest Ruhe dort!


보리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찬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이제 오래 되었네,

그곳을 떠난 지.

아직도 듣는 속삭임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The Linden Tree


At the well by the gate

There stands a linden tree;

I dreamed in its shadow

Many a sweet dream.


I carved in its bark

Many a word of love;

In joy and in sorrow

I was always drawn to it.


Again today I had to travel

Past it in the depths of night.

There even in the darkness

I closed my eyes.


And its branches rustled,

As if they called to me:

Come here to me, friend,

Here you.ll find peace!


The cold winds blew

Right into my face;

The hat flew off my head,

I didn.t turn around.


Now I am many hours

Distant from that place,

And I still hear it whispering:

You’d find peace here

 

www.youtube.com/watch?v=iFQs-4-8cAs

 

 

www.youtube.com/watch?v=qXFcPV1CEzc

 

 

휴정 - 임종게 臨終偈 (0) 2013.12.15

 

휴정 - 임종게 臨終偈

임종게 (臨終偈)가 <청허당집> 에도 들어 있는 걸 보면 대사의 작품이 맞다. 임종게는 그 승려를 논의할 때 그가 살아온 인생을 집약한 것이므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동사열전> '30.청허존자'에..

kydong77.tistory.com

'生從何豦來 死向何豦去' 이하의 출전과 원문 (2) 2013.12.13

 

'生從何豦來 死向何豦去' 이하의 출전과 원문

아래 포스터에는 《僧家禮儀文》이 나오는데 ‘茶毗作法文’ ‘削髮云’ 이하에 가 보면 <서산대사 해탈시> 포스터에서 흔히 원용되는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http://rarebook.cbeta.org/sutra/D64n9031_001.php..

kydong77.tistory.com

 

휴정 -상완산노부윤서 上完山盧府尹書 (0) 2013.12.16

 

휴정 -상완산노부윤서 上完山盧府尹書

청허당집 권1은 한시 작품집이고 권2 書의 첫 작품으로 <上完山盧府尹書>이 실려 있다. 서산대사 휴정의 자서전적 편지글인 이 서한은 《동사열전》30. 청허존자에서는 물론 월사 이정귀와 계곡

kydong77.tistory.com

 

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52800080001

 

고려시대 불교 - 문화콘텐츠닷컴

고려시대 불교 고려시대의 불교는 신라불교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송(宋)나라의 영향 아래 독자적인 발달을 이루었다. 태조 왕건(王建)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새로 승과(僧科)를 제정하여 승려를 우대하였다. 연등회(燃燈會)ㆍ팔관회(八關會) 등을 연중행사로 개최하는 등 태조의 숭불정책은 고려 전반에 걸쳐 계승되면서 사상적 지주가 되었다. 당시에 건립된 사찰로는 개성의 왕륜사(王輪寺) ㆍ 법왕사(法王寺)를 비롯한 16사(寺)와 봉은사(奉恩寺)ㆍ진관사(津寬寺)ㆍ

www.culturecontent.com

 

 

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3771

 

17 보조국사 지눌 스님 - 법보신문

원효대사가 한국불교의 새벽이라면 지눌(知訥, 1152~1210) 스님은 먹구름을 뚫고 대지를 환히 밝히는 한줄기 빛이었다. 불일보조(佛日普照)이라는 그의 시호처럼 암울한 시대에 좌표마저 상실한 민중들에게 ‘부...

www.beopbo.com

 

 

지눌 [知訥]

 

지눌

고려시대 『권수정혜결사문』, 『수심결』, 『원돈성불론』 등을 저술한 승려. [개설] 성은 정씨(鄭氏). 자호는 목우자(牧牛子). 지눌은 법명. 황해도 서흥(瑞興) 출신. 아버지는 국학(國學)의 학�

terms.naver.com

지눌 [知訥]

 

지눌

‘지눌(知訥, 1158~1210) 이후 한국 불교는 새로울 것이 없다. 지눌에 의해 전개된 선종 운동은 언제나 한국의 불교 전통이 고수해온 단 하나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오늘날 지눌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성대하다. 지눌의 어떤 불교적 활동이 이런 평가를 내리게 하는가. 한국불교사의 중대한 이정표를 세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선종의 전통과 교종과의 분쟁 ] 중국에서 시작한 불교의 선종(禪宗)이 뜻밖에 우리나라에 와서 분란을 일으킨 것은

terms.naver.com

 

아래 포스트 <역대고승관> 에는 많은 스님들의 업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불교설화),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www.terms.naver.com/list.nhn?cid=49242&categoryId=49242

위 코텐츠 <역대고승관> 참조

 

역대고승관

www.youtube.com/watch?v=0Gdr36C6SVE

 

의상대사

 

의상대사

[의상대사(義湘大師) : 활안스님 편저] 본 내용은 불교설화 프로젝트팀에서 출판한 "의상대사 이야기" 책자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신비의 선비화 “찰가닥 찰가닥” 배를 짜는 소녀의 입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무릉도원 복숭아는 그물안에 걸려있고 사랑앞에 목단화는 꽃중에도 군자일세 붉고붉은 봉선화는 장독간서 춤을추고 보기좋은 작약화는 여인마다 희롱하고 부석사의 선비화는 의상대사 지팡이고 사시장춘 무궁화는 우리나라 꽃이라네 세 개의 소엽에 적황색 꽃을 피는

terms.naver.com

원효대사

 

원효대사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 신라시대의 고승. 성은 설(薛)씨. 원효는 법명, 아명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 압량(押梁 : 지금의 慶山郡) 불지촌(佛地村) 출신. 잉피공(仍皮公)의 손자이며 ��

terms.naver.com

자장율사

 

자장율사

[자장율사(慈藏律師) (590∼658)] 신라시대의 고승. 성은 김씨, 속명은 선종랑(善宗郞). 무림(茂林)의 아들이다. 무림은 진골출신으로 신라 17관등 중 제3위에 해당하는 소판(蘇判)의 관직에 있었다. 늦게까지 아들이 없었던 그는 불교에 귀의하여 아들을 낳으면 시주하여 법해(法海)의 진량(津梁)이 되게 할 것을 축원하면서, 천부관음(千部觀音)을 조성하였다. 어느날 어머니가 별이 떨어져 품안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가 탄생한 4월초파일에 자장

terms.naver.com

혜공스님

 

혜공스님

[혜공(惠空)스님 (생몰년 미상)] 신라 천진공(天眞公)이라는 귀족의 집 심부름 할멈의 아들로 아명 우조(憂助) 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이(靈異)한 일이 많았고, 자라서도 신이(神異)하여 주인 천진공(天眞公)이 성인(聖人)이라고 우대하였다. 그가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는 법명을 혜공(惠空)이라 하였다. 스님이 된 혜공(惠空)은 언제나 조그만 절에 살면서 매일 미치광이 처럼 술에 대취하여 삼태기를 등에 지고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었으므로 그를 부궤화상이라

terms.naver.com

진묵스님

 

진묵스님

[진묵(震默)스님 (1562∼1633)] 조선 중기의 승려. 호 : 진묵 법명: 일옥(一玉) 출생지는 전라도 만경현 불거촌이다. 하늘을 이불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으로 베개삼고 달빛으로 촛불켜고 구름으로 병풍치고 바다로 술을 빚어 크게 취해 거연히 춤을 추니 장삼자락에 곤륜산이 걸리도다. 조사단 주련을 바라보며 진묵대사 어머니 묘지를 우러른다. “나 죽기 전에 자식 하나만 낳아 달라.” 한 어머님의 말씀에 “만년 향화자리에 어머니 묘지를 써 다달이 추모의

terms.naver.com

보조국사

 

보조국사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 고려중기의 고승(高僧)이자 선종(禪宗)의 중흥조. 성은 정(鄭)씨. 자호는 목우자(牧牛子). 황해도 서흥(瑞興)출신. 아버지는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을

terms.naver.com

진각국사

 

진각국사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1178∼1234)] 고려 중기의 고승. 성은 최씨.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나주 화순현 출신. 완(琬)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배(裵)씨이다. 어머니가 하늘의 문이 열리는 꿈을 꾼 다음 그를 낳았다. 어려서 아버지가 죽자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고 유학(儒學)에 힘쓰라 하였다. 그러나 항상 불경을 생각하고 주문을 외워 힘을 얻었다. 무당집과 사당을 허물기를 좋아하고, 가끔 사람들의

terms.naver.com

대각국사

 

대각국사

[대각국사 의천(大覺國師 義天) (1055∼1101)] 고려의 천태종(天台宗)을 창종한 고승. 성은 왕(王)씨. 이름은 후(煦), 호는 우세(祐世), 시호는 대각국사(大覺國師). 송악출신. 아버지는 고려 제11대 왕인 문종이며, 어머니는 인예왕후(仁睿王后) 이씨이다. 문종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11세에 문종이 왕자들을 불러 "누가 출가하여 복전(福田)이 되겠는냐."고 물었을 때 출가를 자원하였다. 1065년 5월 14일에 경덕국사(景德國師)를 은사로 삼

terms.naver.com

도선국사

 

도선국사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 신라말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사. 성은 김씨. 영암출신. 왕가의 후예라는 설도 있다. 15세에 출가하여 월유산 화엄사(華嚴寺)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뒤 유명한 사찰을 다니면서 수행하다가, 846년(문성왕 8)에 곡성 동리산(桐裏山)의 혜철(惠徹)을 찾아가서 무설설(無說說) 무법법(無法法)의 법문을 듣고 오묘한 이치를 깨달았다. 850년에는 천도사(穿道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운봉산(雲峯山)에 굴을 파고

terms.naver.com

서산대사  

 

서산대사

[서산대사 휴정(西山大師 休靜) (1520∼1604)] 조선 중기의 고승이자 승군장(僧軍將). 완산 최씨. 이름은 여신(汝信), 아명은 운학(雲鶴), 자는 현응(玄應), 호는 청허(淸虛). 별호는 백화도인 (白華道人) 또는 서산대사·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 법명이 휴정이다. 평안도 안주출신. 아버지는 세창(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이다. 어머니 김씨는 노파가 찾아와 아들을 잉태하였다며

terms.naver.com

사명대사

 

사명대사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 (1544∼1610)] 조선 중기의 고승. 풍천 임씨.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 경상남도 밀양출신. 수��

terms.naver.com

부설거사

 

부설거사

[부설거사(浮雪居士) (신라 선덕여왕 시절)] 부설거사(浮雪居士) (신라 선덕여왕 시절) 본명 : 진광세 (陳光世) 법명 : 부설 (浮雪) 출생지 :신라(新羅) 수도(首都) 경주 성내(慶州 鐵內) ※부설거사는 고승은 아니지만 흥미로운 시나리오 소재를 가지고 있다. (주)거사(居士)는 불교의 남자 신도를 부르는 말이다. 신라 진덕여왕이 왕위에 오르던 해 경주 남내 향아라는 고을에 진씨(陳氏)의 아들이 있었으니 이름이 광세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영리하여 하나를

terms.naver.com

 

www.youtube.com/watch?v=C31Mafm9CMw

 

 

제석천과 아수라

 

제석천과 아수라

• 주제 : 신앙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장아함세기경기세경 석존께서 탄생하신 시대보다 훨씬 이전의 일이다. 그런 시대에 제천(諸天)과 아수라가 한판 크게 싸운 일이 있다. 어느 때, 제석

terms.naver.com

 

제석천의 보병

• 주제 : 신앙 • 국가 : 인도 • 참고문헌 : 생경 석존께서 사밧티국의 기원정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법하고 계셨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나라의 임금님이 백성을 위하여 음악회를 개�

terms.naver.com

 

문학 > 불교체험관 > 불교십계도 

 

불교십계도

| 10 | 완성의세계 | | 부처佛 | 깨달음에 이르러 부처가 되는 것이다. 성도(成道) 또는 작불(作佛)이라고도 한다. 석가는 6년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모든 번뇌로부터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석가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우주의 진리로서 있어왔고 석가는 그것을 얻었기에 부처가 된 것이라 하였다. 그뒤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 인간은 누구나 부처가 될 성품,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인정하였고

terms.naver.com

 

팔부신중

팔부신중(八部神衆)이란? 천룡 8부중을 줄여서 8부중이라한다. 불법을 지키는 8종의 신으로 천 · 용 · 야차 · 아수라 · 건달바 · 긴나라 · 가루라 · 마후라가를 말한다. [자료사진 : 팔부신중도] | 1 | 천(天) |  천계에 거주하는 제신(諸神). 천은 삼계(三界:欲界 ·色界 ·無色界) 27천으로 구분되나, 지상의 천으로는 세계의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 정상의 도리천이 최고의 천이며, 제석천(帝釋天)이 그 주인이다. 보통 오른손에 금강저를

terms.naver.com

 

 

www.youtube.com/watch?v=A42f__kfBBA

 

 

나옹화상 歌頌/ 완주가,고루가, 백납가 (0) 2019.06.28

 

나옹화상 歌頌/ 완주가,고루가, 백납가

https://www.youtube.com/watch?v=lXZAOStsPY0 https://www.youtube.com/watch?v=hNAqBFOpqCg https://kydong77.tistory.com/18121 나옹(懶翁)三歌 - 완주가, 백납가, 고루가/ 한문과 번역문 유지나 - 화류춘몽(..

kydong77.tistory.com

서산대사, 인생이란? (0) 2019.06.28

 

서산대사, 인생이란?

<동사강목> ' 30.청허존자'편에 의거하면 서산대사께서 자화상에 쓴 마지막 게송은 아래 두 구의 자찬(自讚)시였다.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전거시아 팔십년후아시거 팔십 년 전에는 자화상이 나..

kydong77.tistory.com

나옹화상, 청산은 나를 보고 (0) 2019.05.21

 

나옹화상, 청산은 나를 보고

https://www.youtube.com/watch?v=lXZAOStsPY0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혜요아이무어]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혜요아이무구]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

kydong77.tistory.com

 

나옹(懶翁)三歌 - 완주가, 백납가, 고루가/ 한문과 번역문 (0) 2019.01.13

 

나옹(懶翁)三歌 - 완주가, 백납가, 고루가/ 한문과 번역문

유지나 - 화류춘몽(花柳春夢, 이화자, 1940) https://www.youtube.com/watch?v=u0kbyYsaY6M 황선남 - 정선아라리 https://www.youtube.com/watch?v=xOwdWF6lGfQ 황선남 - 울지마라 가야금아/ 작사 작곡 박남춘..

kydong77.tistory.com

 

www.youtube.com/watch?v=KQnQYA2pq88

 

Der Lindenbaum 보리수

Franz Schubert 프란츠 슈베르트

Der Lindenbaum


Am Brunnen vor dem Tore

Da steht ein Lindenbaum;

Ich traumt. in seinem Schatten

So manchen sussen Traum.


Ich schnitt in seine Rinde

So manches liebe Wort;

Es zog in Freud. und Leide

Zu ihm mich immer fort.


Ich musst. auch heute wandern

Vorbei in tiefer Nacht,

Da hab. ich noch im Dunkeln

Die Augen zugemacht.


Und seine Zweige rauschten,

Als riefen sie mir zu:

Komm her zu mir, Geselle,

Hier find.st du deine Ruh.!


Die kalten Winde bliesen

Mir grad. ins Angesicht;

Der Hut flog mir vom Kopfe,

Ich wendete mich nicht.


Nun bin ich manche Stunde

Entfernt von jenem Ort,

Und immer hor. ich.s rauschen:

Du fandest Ruhe dort!


보리수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 꿈을 꾸었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 밤도 지났네

그 보리수 곁으로

깜깜한 어둠 속에

눈 감아 보았네


가지는 산들 흔들려

내게 말해주는 것 같네

'이리 내 곁으로 오라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찬바람 세차게 불어와

얼굴을 매섭게 스치고

모자가 바람에 날려도

나는 꿈쩍도 않았네.


이제 오래 되었네,

그곳을 떠난 지.

아직도 듣는 속삭임

여기서 안식을 찾으라.


The Linden Tree


At the well by the gate

There stands a linden tree;

I dreamed in its shadow

Many a sweet dream.


I carved in its bark

Many a word of love;

In joy and in sorrow

I was always drawn to it.


Again today I had to travel

Past it in the depths of night.

There even in the darkness

I closed my eyes.


And its branches rustled,

As if they called to me:

Come here to me, friend,

Here you.ll find peace!


The cold winds blew

Right into my face;

The hat flew off my head,

I didn.t turn around.


Now I am many hours

Distant from that place,

And I still hear it whispering:

You’d find peace here

 

 

 

 

 

 

https://www.youtube.com/watch?v=T7Lo2S6ZPHs

 

 

https://www.youtube.com/watch?v=25oXoRon05o

 

 

https://www.youtube.com/watch?v=K5P3QUoRX5E

 

 

https://namu.wiki/w/%EB%A7%9D%EC%9A%B0%EC%97%AD%EC%82%AC%EB%AC%B8%ED%99%94%EA%B3%B5%EC%9B%90

 

망우역사문화공원 - 나무위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

namu.wiki

 

3. 망우리공원에 묻힌 인물들[편집]

위의 인명을 클릭하면 그분들의 위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dimQ9YCJw

 

 

https://kydong77.tistory.com/19129

 

한룡운, 나룻배와 행인, 조선독립의 書/ 十玄談 - 김시습,요해 & 한룡운,주해

https://www.youtube.com/watch?v=KrKt9VlekUU https://www.youtube.com/watch?v=T7Lo2S6ZPHs https://www.youtube.com/watch?v=vUjF_ST0V5g https://www.youtube.com/watch?v=O-SWgETzBTg https://ko.wikisource..

kydong77.tistory.com

 

6. 작품[편집]

위의 시의 제목을 클릭하면 작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해 선생의 사문시는 타고르의 영향으로 의미전달을 우선시하였기 때문입니다. 소월의 중학 스승이었던 김억이 공들인 7.5조 또는 3음보격 리듬을 무시했던 것이지요. 실상 3음보격은 고려가요에서 이미 정착된 율조입니다. 조선시대 시조와 가사에 와서 4음보격이 정착했던 것이구요. 이를테면 의미전달에 주력한, 우리나라 산문시는 만해 선생이 개발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만해의 시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불교적 세계관으로 현실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에 있어서 반어와 역설은 일상입니다. 성북동 심우장을 북향으로 지은 것처럼. 하지만 그 자리에 남향집을 지었다면 언덕배기나 바라보며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요?

아래에서 미수록 작품도 읽어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KEfcbEFExM

 

 

https://www.youtube.com/watch?v=RK5evlWLbSw

 

 

繡의 秘密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포도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 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의 마음이 아프고 쓰런 때에는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은 것입니다.

 

 

https://kydong77.tistory.com/7995

 

나룻배와 행인 ─한용운

[은자주]장아함경을 보니 한용운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나룻배와 행인>의 의미가 명료해져 여기에 함께 싣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이 뱃사공이라했는데 만해 선생은 자신이 나룻배라 했습니다. 시인은 부처..

kydong77.tistory.com

위사진 묘비 옆이 만해 선생 묘

 

 

https://kydong77.tistory.com/18842

 

박인환, 세월이 가면 · 목마와 숙녀

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C%9D%B8%ED%99%98_(%EC%8B%9C%EC%9D%B8) 박인환 (시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ko.wikipedia.org https://www.youtube.co..

kydong77.tistory.com

 

木馬 淑女

- 박인환

 

盞(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生涯(생애)

木馬(목마)를 타고 떠난 淑女(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木馬(목마) 主人(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甁(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傷心(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면 暫時(잠시) 내가 알던 少女(소녀)

庭園(정원) 草木(초목)옆에서 자라고

文學(문학)이 죽고 人生(인생)이 죽고

사랑의 眞理(진리)마저 愛憎(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木馬(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歲月(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孤立(고립) 避(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作別(작별)하여야 한다

(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女流作家(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燈台(등대)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未來(미래) 爲(위)하여

우리는 凄凉(처량) 木馬(목마)소리를 記憶(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稀微(희미) 意識(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個(개)의 바위 틈을 지나 靑春(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盞(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人生(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雜誌(잡지) 表紙(표지)처럼 通俗(통속)하거늘

恨嘆(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木馬(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https://www.youtube.com/watch?v=uLlg5_7hbxs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4%91%EC%84%AD

 

이중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출생 1916년 4월 10일 사망 1956년 9월 6일 직업 화가 학력 오산고등학교 흰 소 부부 (1953년 , 현대미술관 소장품) 두마리의 새가 서로를 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

ko.wikipedia.org

 

 

 

https://ko.wikipedia.org/wiki/%EB%B0%A9%EC%A0%95%ED%99%98

 

방정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방정환(方定煥, 1899년 11월 9일 ~ 1931년 7월 23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아동문화운동가, 어린이 교육인, 사회운동가이며 어린이날의 창시자이다. 본관은

ko.wikipedia.org

 

https://kydong77.tistory.com/12673

 

북한산 가는 길 1

천도교중앙총부 정문 옆엔 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 표지석과 함께 방정환 선생의 말씀도 돌에 새겼다. 광화문에 우뚝한 이순신 장군 동상은 하도 높아서 얼굴 표정을 읽을 수 없었는데 지하철 외벽 사진에는 표정이..

kydong77.tistory.com

방정환님의 묘소는 둘레길 가까이에 위치했지만 보수중인가 금줄이 쳐져 있어 참배는 하지 못했다.

아래 사진의 도산선생 묘소엔 비석까지 남아 있었지만 유해는  그 아래 글에서 보듯이 압구정동 도산공원기념관을 마련하고 부인의 유해와 함께 공원부지내에 안장되었다.

 

https://kydong77.tistory.com/18875

 

도산 안창호, 去國行/ 도산공원

1. 거국가(去國歌) 2. 우리나라 3. 한반도야 4. 단심가(丹心歌) 5. 학도가 6. 항해가 7. 혈성대 8. 격감가 아래 포스트에는 위 노래의 가사가 수록됨. http://www.ahnchangho.or.kr/site/main/a03_02.php#list_0..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18876

 

도산 안창호, 계몽가 8곡/ 도산기념사업회

https://www.youtube.com/watch?v=zgozyf-nK1Q 1. 거국가(去國歌) 2. 우리나라 3. 한반도야 4. 단심가(丹心歌) 5. 학도가 6. 항해가 7. 혈성대 8. 격감가 아래 포스트에는 위 노래의 가사가 수록됨. http://www.a..

kydong77.tistory.com

 

 

 

 

https://www.youtube.com/watch?v=ASuovBje9Lk

 

 

https://www.youtube.com/watch?v=bXcZJjG6Zsk

 

https://www.youtube.com/watch?v=XSed6-p0cwY

 

 

 

차중락님의 묘소도 이 공원에 있습니다.

 

www.youtube.com/watch?v=_GYf4LwzeEY

 

 

www.youtube.com/watch?v=r-W5zVrDK-k

 

 

www.youtube.com/watch?v=qFDIceSugik

참고로, 광복군의 자제이신 배호님의 묘소는 경기 양주 신세계공원묘원입니다. 

장충단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현충원입니다. 슬픈 노래, 다시 한번 더 들어 볼까요.

www.youtube.com/watch?v=TIII3s5wKxw

 

 

ko.wikipedia.org/wiki/%EC%9E%A5%EC%B6%A9%EB%8B%A8%EB%B9%84

 

장충단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장충단비(奬忠壇碑)는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대한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장충단에 서 있던 비석이다. 1969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호

ko.wikipedia.org

 

약칭 '巴里長書'란 <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로 번역하면

<한국의 유학자들이 파리 평화회의에 보낸 서한>을 지칭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09381

 

심산 김창숙과 유림의 '파리장서' 사건

[현대사 100년의 혈사와 통사 4회] 곽종석ㆍ김창숙ㆍ김복한ㆍ김덕진ㆍ안병찬 등 134명의 유림 대표가 서명한 '파리장서'

www.ohmynews.com

 

http://cafe.daum.net/posan/6sFC/246?q=%ED%8C%8C%EB%A6%AC%EC%9E%A5%EC%84%9C%20%EB%B2%88%EC%97%AD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전문(번역)

면우가 완성한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전문(번역) 한국(韓國) 유림대표 곽종석(郭鍾錫) 등은 파리평화회의(巴里平和會議)에 관계하신 여러 훌륭하신 분들에게 삼가 글을 받들어 올립니다.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어 만물이 그 사이에서 함께 길러지고 있습니다. 크게 밝게 비쳐주고 큰 화육(化育)이 행해지니 그 도

cafe.daum.net

 

https://ko-kr.facebook.com/notes/%EA%B9%80%EC%88%98%ED%98%95/%ED%8C%8C%EB%A6%AC%EC%9E%A5%EC%84%9C/506709382734331/

 

파리장서 | Facebook

파리장서 행사한다고 원문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1973년에 기념비를 만들 때의 원문을 찾았습니다. 그 원문을 기초로 만들었습니다. 번역도 오늘에 맞게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만들다보니 좀 지나침이 있을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한 것이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 틀린 부분은 말해주세요. 다시 고쳐 완성도를 높이도록 하겠습니다. 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 韓國儒林代表 郭鍾錫 金福漢等 一百

ko-kr.facebook.com

 

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

한국유림송파리평화회의서

 

한국의 유림대표 곽종석 김복한 등 137인은 삼가 파리평화회의 각 대표자분들께 글을 드립니다. 하늘과 땅 사이 모든 것이 함께 생기고 성장하며 살고 있으니 이렇게 우리는 햇볕을 같이 쬐고 변하고 성장하는 혜택을 함께 누리는 이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빼앗는데서 강하고 약함이 나누어지고 빼앗아 합치는 권한을 함부로 하여, 크고 작음의 차이가 생기면서부터, 남의 생명을 해쳐 그 위세를 부리고 남의 나라를 훔쳐 가로채는 경우가 아! 천하에 어찌 이리도 허다합니까? 이것이 바로 하늘이 각국 대표 분들로 하여금 천지의 바른 기운을 받들어 햇볕처럼 밝히게 하고 가르쳐 변화를 행하게 하여 천하를 하나로 묶어 크게 서로 하나 되는 세계로 돌아가게 하며,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본성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이 만국(萬國)이 같고 사해(四海)가 한길인데도 소문만 듣고 실덕(實德)을 입지 못했거나 원통한데도 여럿이 의논함에 알리지 못한 나라가 있다면, 어찌 여러 대표의 배려가 홀로 여기에만 제외될 수 있겠습니까? 헤아려 생각하건대 제외시킬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그 피를 뿌리고 울분을 쏟아내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일이 또한 비통하고 절박하여 참을 수 없는 심정에서 울어나는 것이니, 여러 대표 분들은 살피십시오.

아! 우리 한국은 세계의 하나입니다. 영토가 삼천리이고 국민이 2천만이며 4천여 년을 유지보존 하면서 반도의 문명을 잃지 않았으니, 또한 만방에서 제외될 수 없습니다. 불행히도 근래에 힘 있는 이웃나라가 밖에서 압박하여 맹약을 억지로 맺고 뒤이어 국토를 빼앗으며 왕위를 폐하여 우리 한국을 세계에서 없애버렸습니다. 

이에 이 글에서 하고자하는 것을 거론 하자면, 일본은 병자년(1876)에 우리나라 대신과 강화에서 맹약하고 을미년(1895)에 청국대신과 시모노세키(馬關)에서 조약하면서 우리 한국에게 선전포고 할 적에도 명확하게 우리 한국의 독립을 굳건히 한다는 사실을 성명으로 공포하였으니 이는 만국이 다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온갖 거짓을 만들어 안으로 협박하고 밖으로 속이더니, 독립이 변하여 보호가 되고 보호가 변하여 합병이 되었습니다. 

이에 한국인이 자원한다고 핑계하여 만국의 여럿이 의논함을 피하려 하니, 이는 그들의 수단아래 한국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로 그들의 심중에는 만국도 없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여러 분들은 참으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하는 짓이 여럿의 뜻에 위배됨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갖추지 못한 채 떨쳐 일어남이 소용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낮밤으로 나라와 백성에 대하여 여럿이 칭송하기를“하느님이 우리를 도와 좋은 기운이 올 것이다.”하면서 부끄러움을 참고 어려움을 이겨낸지 이제 십년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표 분들께서 평화회의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힘차게 박차고 일어서서 이르기를, “세계가 평화롭게 된다면, 우리도 세계의 하나거늘 어찌 우리만이 평화롭지 않게 하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또 폴란드제국(波蘭諸國)들이 이미 독립했다는 말을 듣고 다시 만세를 외치면서 말하기를, “평화와 공론이 이미 정해졌다. 저들은 어떤 나라이며, 우리는 어떤 나라인가? 세계를 하나로 보는 인덕(仁德)이 또한 이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뜻은 때가 오면 돌아오니, 여러 대표 분들은 이에 따라 그 맡은 바 일을 마치고 우리는 이로 말미암아 나라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우리는 당장 죽어 구렁이에 뒹군다 하여도 백골 또한 썩지 않을 것이니 눈을 부릅뜬 채 좋은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체되는 사이에 하늘 또한 무심하여 하루 밤에 갑자기 우리 임금 승하하시니, 온 나라가 흉흉하고 슬픔에 가득하여 원통함을 호소할 곳 조차도 없었습니다. 

이에 국장일(國葬日)에 즈음하여 각 학교 각 회사 개인 남녀가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우리 임금의 영혼을 위로 하였습니다. 비록 포박과 매질을 당하여도 맨손으로 죽음을 돌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니 이에 억울함이 오래 동안 쌓이면 반드시 분출함을 볼 수 있으니, 이는 또한 여러 대표 분께서 그 기회를 열어주고, 용기를 고취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시간만 끌면서 분명한 처분을 내리지 않으니 또 의아하고 괴이하게 여기면서 통(通)할 수 없음을 탄식 하였습니다. 이는 중간에서 일을 방해하는 자들이 거짓을 반복하여 여러 대표 분들의 보고 듣는 바를 현혹시키니, 청컨대 다시 이를 해명 하겠습니다. 

하늘의 모든 것이 태어나면 반드시 사물마다 그 능력을 갖게 하였습니다. 작게는 물고기, 조개와 곤충도 모두 자유로운 생활능력을 지니며, 사람이 사람 되고, 나라가 나라 되는 까닭도, 또한 각자가 다스리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은 비록 작지만, 2천만 국민과 4천년 역사를 지니고 있으니, 족히 나라 일을 담당할 사람이 부족하지 않거늘, 맨 처음에 어찌 이웃나라의 대신 다스리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천리마다 풍토가 다르고, 백리마다 민속이 다른 것입니다. 

저들이 이르기를, “한국은 독립할 수 없으니 우리가 다스려야 된다.”고 하나 풍속이란 갑자기 변할 수 없으며, 이른바 대신 다스리는 것은 단지 혼란만을 일으킬 뿐 이므로 이는 행할 수 없음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또 만국평화회의에서 말하기를, “한국인이 일본에 부속되기를 원 한지 오래다.”라고 할 것입니다. 

무릇 한국 백성들이 스스로 한국 백성들이 된 까닭은, 그 영토와 풍토가 이미 정해졌을 뿐만 아니라, 또한 타고난 성품에서 얻은 바가 그러한 것입니다. 차라리 일시에 속하여 복종을 기꺼이 할지언정, 그 마음만은 장차 천만년이 지나도 한국 백성임을 잃지 않을 것이니, 본심이 존재함을 어찌 속일 수 있겠습니까? 

본심을 끝내 속일 수 없거늘, 만국이 함께 끼친 권위를 이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함께 하는 뜻을 누리고자 한다면 이는 일본에게도 또한 정당한 계책이 아닙니다. 곽종석(郭鍾錫) 등은 변두리의 쓸모없는 사람이라 외국의 사정을 상세히 못 듣고, 오직 옛 나라의 신하된 사람으로서 옛 임금의 내려오는 풍속에 의지하여 유교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가 새롭게 거듭나는 날을 맞이하여, 나라의 있음과 없음이 한번 움직이는 것에 달렸으니, 그 나라 없이 살기보다는, 차라리 나라를 가지고 죽는 것이 낫습니다. 그리고 구석진데서 말라죽는 것 보다는, 모든 사람이 보고 듣는 자리에서 한 번 그 억울함을 드러내고 그 나아가고 물러섬을 기다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돌아 보건데 바다와 땅의 길이 너무나 멀고 까다로우니, 행여나 길이 막혀 이르지 못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여러 대표 분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채, 목숨이 도중에 쓰러지고 만다면, 이 세상에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길이 드러낼 가망이 없습니다. 

비록 여러 대표 분들의 총명으로도 또한 어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헤아려 주기를 바라겠습니까? 이에 감히 짧은 편지를 마련하여 10년간 고통 받은 사실을 갖추어 하늘 끝의 만리 밖에서 편지를 드리니, 참으로 비통하고 절박한 심정에 말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직 여러 대표 분들께서는 가련하게 여겨 이를 살펴주시고, 함께 판단함에 논의를 더욱 넓히시어 햇볕의 광채로 하여금 두루 미치게 하고,만물이 만들고 길러짐으로 하여금 흐름을 순탄하게 한다면, 종석(鍾錫) 등은 나라를 잃었다가, 나라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또한 도덕이 한 시대에 펼쳐져 여러 대표 분들의 할 일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종석(鍾錫) 등은 차라리 머리를 나란히 하여 죽을지언정, 맹세코 일본의 노예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2천만 생명이 홀로 천지의 만물을 만들고 길러내지 못하고, 바야흐로 화창하고 조화로운 기운을 한탄해서야 되겠습니까? 여러 대표 분들은 대책과 방법을 세워 주시오. 개국(開國)528년 3월에 아룁니다.

청원인(請願人) 곽종석 등 137명(곽종석 등 137명의 서명자 명단 생략) *청원인 명단은 원문 참조.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9562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자 유림측에서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작성하였다. 이 사건은 전에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던 호서지방의 유종(儒宗)인 전 승지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대부분 의병에 참여하였던 김덕진(金德鎭)·안병찬(安炳瓚)·김봉제(金鳳濟)·임한주(林翰周)·전양진(田穰鎭)·최중식(崔中軾, 혹은 崔中式)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들이 작성한 서한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지는 일본의

encykorea.aks.ac.kr

호서지방 유림들의 활동이 전개되고 있을 때, 영남유림에서도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이 필두로 같은 목적의 일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 뒤 영남유림은 이런 사실을 알고 영남본(嶺南本)을 전용학(田溶學)에게 주며 홍성으로 가서 호서본(湖西本)과 비교, 검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교정본이 작성되기 전에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정된 김창숙이 시급히 상해(上海)로 출발하게 되었다. 이에 서울유림들은 영남본이나 호서본의 내용이 서로 뜻이 같으나, 영남본이 호서본보다 포괄적이면서도 뜻이 명확하다는 여론에 따라 김창숙에게 영남본을 주어 출발시켰다. 그리고 장서 말미에 134명 유림대표가 서명하였으며, 대표파견 경비는 황일성(黃佾性)이 조달하였다.

그러나 장서는 김창숙이 파리로 가져가지 못하고, 당시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선정되어 파리에 가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되었으며, 또한 국내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파리장서운동 100주년 기념행사장을 찾아서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99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99

 

www.hanion.co.kr

유림들이 3ㆍ1운동 발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따로 장서운동을 일으킨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큰 이유로는 2가지를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독립선언서에 왕조의 복고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에 서명하는 것은 한국 유림의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학문을 배우며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은 자들과 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2su-Qz3Hry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