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신문기자 매킨지의 책에 실린 구한말 의병들. 매킨지는

열등한 민족(일본)이 우월한 민족(한국)을 잠시 지배할 수는

있으나 동화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동아일보 DB

http://news.donga.com/Culture/New/3/07/20110812/39505841/1

英 데일리메일 특파원 프레드릭 매킨지

“강인한 정신력 갖춘 한민족, 잠재력 무섭다”

“한국의 민족성에는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

영국인 신문기자 프레드릭 매킨지만큼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국의 잠재력을 확신했던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1900년대 초반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특파원으로 두 차례 한국에 와서

러일전쟁과 3·1운동을 취재한 뒤 ‘대한제국의 비극’(1908년)과 ‘한국의 독립운동’(1920년) 등의

책을 남겼다.

○ ‘주체적 존재, 한국인’

매킨지는 ‘대한제국의 비극’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짧은 기간 한국을 돌아본 사람들은 사회적인 모순만을 보게 돼 반감과 공포로 가득 차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면 그들이야말로 친절하고 악의를 모르며, 천진난만하고

진리를 탐구하며, 또 매우 사랑스럽고도 정을 느끼게 하는 성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내 생생한 경험담이다. (중략) 나보다도 한국인을 더 잘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생각이 조금도 틀림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국인은 기회만 주어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의 책에는 사동(使童·잔심부름 하는 아이)과 의병, 개화파 지식인과 보수적인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한국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망국의 유민으로 살기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고 외치는 의병들,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를 토론했던

독립협회의 젊은이들. 이들은 서구인과 동등하게 인류의 가치와 진보에 대해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줄 아는 주체적 존재였다.

매킨지는 잠재력이 무한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해 가자 참을 수가 없었다.

“일본은 애초부터 한국인을 경멸했다. 나무꾼이나 지게꾼으로 밖에는 쓸모가 없는 사람들로
만들려고 했다. 한국인의 민족적 이상을 말살시켜 일본인으로 만들되 지배계급과는 다른
열등한 일본인으로 만들려고 했다.”

1910∼1919년 일본의 제국주의 통치는 무자비했다. 이 시기 조선총독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한국인은 집어삼켜 씨를 말려야 할 민족”이라고 공공연히 말했다.
일본은 유럽과 미국에서 자신의 명분을 옹호해 줄 ‘박수부대’를 끌어 모았다. 일제 통치에
항거하는 한국 의병은 ‘폭도’로 몰아갔다. 한국을 찾는 서양 언론인들은 일본에 매수돼 본국
으로 돌아가면 일본을 칭송하고 한국을 경멸하는 기사를 쓰기 일쑤였다.

국제사회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대해 큰 호감을 가졌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을사조약의 강제성을 잘 알았지만 “일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고,
교묘히 한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거부”하며 ‘한국은 자치가 부적절한 민족’이라고 확신했다.
영국도 일본에 동조했다.
영국 정부는 각국 통신원들에게 친일적 태도를 견지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매킨지가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쓴 한국 의병 종군기도 신문에 실리지 않았다.

○ 강인한 기질과 정신

필자는 한 약소민족에게 가해지는 세계의 ‘폭력’에 대해 제3국의 시민이 이렇게 분노에 찬
목소리로 저항하는 글은 읽어 본 적이 없다. 매킨지의 글에서는 압제에 고통 받는 식민지인의
피와 목소리가 생생히 흘러나온다. 그는 강자끼리 뭉쳐 자신의 이익에 따라 약자를 무시하는
세계 권력의 메커니즘에 분노했다.

매킨지가 한국인에게 무서운 잠재력이 있다고 본 것은 군사력이나 근대적 과학기술 같은
물질의 측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기질과 강인한 정신이었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성격이 예상하지 못한 정도로 끈질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 밑바닥에는 그들만의 어떤 단호한 정신력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을 동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의 민족성을 되살리는 데
성공한 셈이다.”

매킨지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피압박 민족(한국)보다 더 열등한 민족(일본)이 4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을 동화시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한국인은 과소평가한다.”

박수영 작가·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역사학석사 feenpark@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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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려시대에는 남녀혼탕이었다고 쓴 글이 있어 서긍의<고려도경>을 찾아보았다. 답글로 적은 글이다.

생업에 종사하는 가운데 선업을 쌓아가면서도 이런 내용과 분량의 글을 쓴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고려도경에 수록된 목욕 풍속은 남녀혼탕이 아니라 우리가 어릴 적 여름날 초저녁, 시내에서 목욕하던

풍속인 것 같아 원문과 번역을 함께 소개합니다.

남녀가 "물굽이 따라" 한다는 말은 사내들이 윗쪽 굽이에서, 여자들은 아래쪽 굽이에서 한다는 말로

여겨집니다. 우리 마을 애기비에선 그랬습니다.


위 사진은 노르웨이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마를린 몬로를 그린 그림이라는데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뭉크의 <절규>를 담은 아래 동영상 끝에도 나옵니다.

DqK7kjVtqpc?version=3&amp;amp;hl=en_US

선화봉사고려도경 제23권

잡속(雜俗) 2

한탁(澣濯)

舊史。載高麗。其俗皆潔淨。至今猶然。

옛 사서에 고려를 실었는데 그 풍속이 다 깨끗하다 하더니, 지금도 그러하다.

每笑中國人多垢膩。

그들은 매양 중국인의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

故晨起。必先沐浴而後出戶。夏月日再浴。多在溪流中。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 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내 가운데서 많이 한다.

男女無別。悉委衣冠於岸。而沿流褻露。不以爲怪。

남자 여자 분별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浣濯衣服。湅涗絲麻。皆婦女從事。雖晝夜服勤。不敢告勞。

의복을 빨고 깁이나 베를 표백하는 것은 다 부녀자의 일이어서 밤낮으로 일해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鑿井汲水。多近川爲之。上作鹿盧。輸水於槽。槽形。頗如舟云。

우물을 파고 물을 긷는 것도 대개 내에 가까운 데서 하니, 위에 두레박[鹿盧]을 걸어 함지박으로

물을 긷는데, 그 함지박의 모양이 배의 모양과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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