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 해설 5. 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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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심반야바라밀다시(行深般若波羅蜜多時)!!

이 뜻은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라는 뜻입니다.

심(深), 즉 깊다라는 것은 반야바라밀다가 깊다는 뜻입니다.

왜 깊을까요?

공하며, 모양이 없고, 작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계도 없고,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깊다라고 한 것입니다.

 

행(行)은 곧 심오한 반야바라밀을 행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수행하여 닦는 행을 말합니다.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은 뭘까요?

바로 空입니다.

그래서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이라는 단어가 뒤에 나옵니다.

空을 관하는 것이 바로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입니다.

반야경에는 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 엄청나게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짧게 나와 있습니다만, 반야경은 엄청나게 세밀하게 많은 분량으로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방법을 제대로 모르면, 성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반야경에서는 보살들이 이 반야바라밀을 두 종류로 행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나는 유사 반야바라밀이고 또 하나는 정통 반야바라밀입니다.

유사 반야바라밀이란 비슷하지만 아니라는 겁니다.

즉, 제대로 반야바라밀을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반야바라밀에도 뭔 실체가 있는 줄 알고 집착한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반야바라밀에도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역시 공한 것입니다.

 

이 空하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아무것도 없다는 無로 착각합니다.

사실 대다수가 空을 無로 여기는 단멸론에 빠져듭니다.

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방법은, 보통 세속 중생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또 세속적인 그런 방법으로는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합니다.

연기법과 空을 깨닫거나 또는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만이 이 반야바라밀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있다 없다라는 이 두 가지 양변에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심오한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방법이 바로 空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공관(空觀)입니다.

 

어디에서 공을 관할까요?

일단 우선은 바로 내 몸과 마음입니다.

내 몸과 마음이 바로 오온입니다.

이것이 반야바라밀다와 空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空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반야바라밀다입니다.

 

12연기법-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반야심경 해설 27.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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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해설 27.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12연기를 전제로 "乃至"를 제거하면 원문은 다음과 같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老死 亦無老死盡

반야심경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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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행 역무행진

(無行 亦無行盡)

무식 역무식진

(無識 亦無識盡)

무명색 역무명색진

(無名色 亦無名色盡)

무륙입 역무륙입진

(無六入 亦無六入盡)

무촉 역무촉진

(無觸 亦無觸盡)

무수 역무수진

(無受 亦無受盡)

무애 역무애진

(無愛 亦無愛盡)

무취 역무취진

(無取 亦無取盡)

무유 역무유진

(無有 亦無有盡)

무생 역무생진

(無生 亦無生盡)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이 부분은 12연기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空 가운데...즉 空 그 자체에는 12연기도 또한 없다는 뜻입니다.

 

空을 허공에 비유합니다.

허공은 아무것도 없어서 허공입니다. 만약 허공에 뭐가 있다라면 그것은 허공이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空에도 또한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위 구절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공 그 자체에는

無無明 : 무명도 없고,

亦無無明盡 :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乃至 : ~에서 ~까지

 

無老死 : 늙음 ․ 죽음도 없으며,

亦無老死盡 : 또한 늙음 ․ 죽음이 다하는 것도 없다.

 

이래서 이 해탈문인 것입니다.

 

아함경/니까야/청정도론에서도 명확하게 나와 있듯이 해탈의 문이 바로 空입니다.

空 그 자체에는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다하는 것도 역시 없기 때문에,

은 모든 것을 벗어난 해탈의 문인 것이죠.

하지만 중생은 반대로 해탈을 해석합니다.

 

뭔 실체가 있어서 그게 영원한 기쁨인 해탈을 얻는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은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완전히 거꾸로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세속의 종교나 철학이나, 세속의 도 닦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불자들도 외도들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도를 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만큼 이 空 ․ 반야바라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 12연기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2연기법이란 윤회의 굴레 ․ 인과를 설명한 것입니다.

 

12연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내지"는 위의 청색 글씨 앞에 "無"字를 추가하여 앞서 제시한 것과 같다.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행(行) 이 있고,

(行) 으로 말미암아 식(識)이 있고,

(識)으로 말미암아 명색이 있고,

명색(名色)으로 말미암아 육입이 있고

육입(六入) 으로 말미암아 촉이 있고,

(觸)으로 말미암아 수가 있고,

(受)로 말미암아 애가 있고,

(愛)로 말미암아 취가 있고,

(取)로 말미암아 유가 있고,

(有)로 말미암아 생이 있으며,

(生)으로 말미암아 늙고 죽음[老死]이 있다.

 

말미암아...이것이 바로 상호의존...즉 연기법입니다.

그러므로 12연기는 모두 空한 것입니다.

무명도 공하고, 행도 공하며, 식도 공하고, 명색도 공하고, 육입도 공하고, 촉도 공하고, 수도 공하고,

애도 공하고, 취도 공하고, 유도 공하고, 생도 공하고, 노사도 역시 공합니다.

이제 각각의 개별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1. 무명(無明) : 전생의 번뇌

明이란 밝음, 즉 지혜를 뜻합니다. 무명이란 곧 지혜가 없음을 말합니다.

지혜란 무엇일까요? 삼라만상의 존재방식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것은 연기법에 의해 상호의존적으로 생겨난걸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독립적인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게 무명입니다.

실체가 있다고 여기고 거기에 집착하죠. 무명으로 탐심과 진심이 생겨서 탐진치입니다.

무명의 반대인 지혜라는 것은 제법의 존재방식을 명확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존재방식이란 바로 연기법이고, 그 뜻은 인과 연이 서로 화합해서 거기엔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空한 것입니다.

空을 아는게 지혜고, 空을 모르는 게 무명입니다. 그래서 空이 곧 해탈문인 것이죠.

물론 소승경전에는 사성제를 모르는 게 무명이다..라고 나와 있지만,

대승경전에서는 쉽게 딱 집어서 위와 같이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 번뇌의 차이

전생에 의심과 삿된 소견이 있었던 근원이므로, 전생의 번뇌를 무명이라고 부른다.

현생에서는 애(愛)와 취(取)에 대한 집착이 많으므로, 현생의 번뇌를 욕애(愛)와 취함(取)이라고 부른다.

 

2. 행(行) : 전생의 업력

행은 지어감을 말합니다.

즉 전생에 신 ․ 구 ․ 의 삼업을 지은 것을 말합니다.

업력이 識을 가지고 탯속으로 들어갑니다.

行의 원인은 무명입니다.

.........여기까지는 전생입니다......

 

 

3. 식(識) : 현생에 識이 엄마 뱃속에 잉태됨

여기서의 식은 엄마 뱃속에 잉태된 그 識(전생의 중음)을 말합니다.

정자 난자가 결합되어도 識이 없으면 배아가 자라날 수 없습니다.

중음에도 미세한 오온(색수상행식)이 있으나, 너무나도 미세하기 때문에 다만 識이라고 부릅니다.

識의 원인은 行입니다.

 

4. 명색(名色) : 현생에서 엄마뱃속의 태아

명이란 정신적인 것이고, 색이란 물질을 뜻 합니다.

名은 이름 명 字를 썼는데, 모든 정신적인 것이란 모두 다 이름 붙여진 것들이라서 그렇습니다.

명색의 원인은 識입니다.

* 명색과 육입의 차이

정신과 물질이 덜 완성된 것을 명색이라 하고, 정신과 물질이 다 완성된 것을 육입이라고 한다.

물질이 다 완성된 것을 五入이라고 하고, 정신이 다 완성된 것을 一入이라고 한다.

명색이란 바로 엄마의 탯속에 있을 때를 말한다.

 

 

5. 육입(六入) : 현생의 완성된 몸과 마음

육입이란 육근을 말합니다.

안이비설신의

육입의 원인은 명색입니다.

* 비록 세 가지(육근,육경,육식)가 화합해서 접촉이 생기지만, 육근(육입)에 의지하고 머물기 때문에 육입이라고만 지칭한다.

 

6. 촉(觸) : 현생 육입의 접촉

촉이란 접촉을 뜻합니다.

접촉이란 육근, 육경, 육식이 화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접촉의 원인은 육입입니다.

 

7. 수(受) : 현생의 느낌

수란 느낌입니다.

느낌엔 세가지가 있습니다.

즐거운 느낌/괴로운 느낌/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

느낌의 원인은 여섯 가지 접촉입니다.

육근, 육경, 육식 이 세 가지가 화합하기 때문에 느낌이 발생합니다.

 

8. 애(愛) : 현생의 번뇌

애욕을 말합니다.

애욕의 원인은 세 가지 느낌입니다.

* 애(愛)와 취(取)의 차이

번뇌가 작아서 아직 업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을 애(愛)라 하며, 번뇌가 더욱 자라나서 업을 일으키면 취(取)라고 한다.

애(愛)와 취(取)란 바로 지금 현생에서의 번뇌를 뜻한다.

 

9. 취(取) : 현생의 번뇌

그 애욕(쾌락거리)을 붙잡는 것입니다. 집착이죠.

취(取)에는 네가지가 있으며, 欲取 ․ 見取 ․ 戒取 ․ 我語取입니다.

이 네 가지를 취하고 집착하므로 업력을 일으킵니다.

취함의 원인은 애욕과 같은 번뇌입니다.

 

10. 유(有) : 현생의 업력

현생에 욕계 ․ 색계 ․ 무색계에 태어날 업력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有의 인연은 네 가지 取입니다.

.............여기까지는 현생입니다...........

 

11. 생(生) : 미래에 태어남

그 업력으로 미래에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태어남으로 인해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남을 탓하거나, 팔자를 탓합니다.

태어남의 원인은 세 가지 세계에 태어날 업력입니다.

 

12. 노사(老死) : 미래에 늙어 죽음

늙음과 죽음의 원인이 바로 태어남입니다.

태어나면 반드시 늙고 죽습니다. 죽음은 고통입니다.

.............여기까지는 내생입니다...........

 

 

12연기는 뱅뱅 도는 것입니다.

노사(老死)에서 다시 처음의 무명(無明)으로 갑니다.

이렇게 끊임없는 생노병사 윤회의 굴레를 설명한 것이 바로 12연기법입니다.

 

12연기법에서 뭘 박살내야만 해탈할 수 있을까요?

바로 무명(無明)입니다.

무명을 박살내야 행이 사라지고 나머지 것들도 사라지게 됩니다.

무명이란 위에서 설명했듯이 존재를 포함한 만물의 존재방식을 모르는 것이며,

그 존재방식을 설명한 것이 바로 연기법이고,

연기법이란 인과 연이 서로 상호의존해서 법이 생김으로써 그 법에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서 空한 것이니

그 空을 알지 못하는 게 바로 무지 ․ 어리석음입니다.

그러므로 무명을 박살내야 합니다.

그 무명을 박살내는 게 바로 空입니다.

그러므로 空함을 아는 것이 지혜..즉 반야이며 통찰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승이고 소승이고 할 것없이 空이 곧 해탈문인 것이죠.

아래 내용은 대지도론(용수보살 저서)에 나와 있는 12연기법에 관한 설법 내용입니다.

 

번뇌와 업과 일[事]의 법이 차례로 전전해서 생겨나는 것을 12인연이라 한다.

이 가운데 무명(無明)․애(愛)․취(取)의 세 가지를 <번뇌>라 하고,

행(行)과 유(有) 두 가지를 <업>이라 한다.

나머지 일곱 가지는 <본체의 일[體事]>이 된다.

 

★ 12연기 :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

이 12인연에서

처음의 두 가지는 <과거 세상>에 속하고, ㅡ 무명, 행

중간의 여덟 가지는 <현재 세상>에 속하며, ㅡ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뒤의 두 가지는 <미래의 세상>에 속한다. ㅡ생, 노사

 

이것이 간략히 번뇌ㆍ업ㆍ고의 세 가지 일을 말한 것이다.

이 세 가지 일은 전전해서 서로 간에 인연이 되니,

이 번뇌는 업의 인연이요, 업은 고의 인연이 된다.

고는 고의 인연이고

번뇌의 인연이요,

번뇌는 업의 인연이요,

업은 고의 인연이요,

고는 고의 인연이 된다.

이것을 전전해서 서로 간에 인연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지난 세상의 온갖 번뇌를 <무명>이라 하는데,

이 무명으로부터 업이 생겨나서 능히 세계의 결과를 일으키기 때문에 <행>이라 한다.

행으로부터 때 묻은 마음이 생겨나 최초의 몸의 원인이 되니,

마치 송아지가 어미를 알듯이 스스로 모양을 아는 까닭에 <식(識):제8식>이라 한다.

이 식에서는 색이 없는 4음(陰:수 ․ 상 ․ 행 ․ 식)과 그것이 머무를 색(色)이 함께 생기나니,

이를 <명색(名色):정신과 물질>이라 한다.

이 명색에서 눈[眼] 등의 6정(情)이 생겨나니, 이를 <6입(入):안이비설신의>이라 한다.

정(情:육근)과 진(塵:육경)과 식(識:육식)이 합하는 것을 <촉(觸)>이라 하고,

촉으로부터 <수(受):고수,낙수,불고불낙수>가 생겨나고,

수에 대해 마음이 집착하는 것을 <갈애>라 하고,

갈애가 인연 때문에 구하는 것을 <취>라 한다.

취로부터 뒷세상의 인연인 업이 생기니

이를 <유(有):欲有-욕계에 태어날 업, 色有-색계에 태어날 업, 無色有-무색계에 태어날 업>라 하고,

유로부터 다시 뒷세상의 다섯 가지 쌓임[五衆=오온]을 받으니 이를 <생>이라 한다.

생으로부터 다섯 가지 쌓임이 익어가고 무너지는 것을 <노사(老死)>라 한다.

노사는 근심 ․ 슬픔 ․ 통곡 등 갖가지 근심ㆍ걱정을 내어 뭇 고통이 어울려 모이게 된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335

 

오온(五蘊)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오음(五陰)이라고도 한다. 산스끄리뜨어로는 pañca-skandha이다. 『구사론』에 따르면 온(蘊, skandha)은 인과관계에 의해 생멸하는 유위법(有爲法)의 집적[和合聚]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온은 인간 존재가 다섯 종류의 유위법의 집적에 불과하며 그 실체가 없음을 뜻한다.

오온의 가르침은 붓다가 심리 현상[心所]을 불변의 자아[我]로 착각하는 부류의 중생을 위해 설한 것이라는 『구사론』의 한 해석처럼, 오온은 우리의 자아의식을 부단히 변화하는 네 종류의 심리현상으로 해체하는데 초점이 있다.

각 온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색(色, rūpa)은 가변적[能變]이며 불가침투적[質礙]인 물질현상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십이처(十二處) 중의 눈, 귀, 코, 혀, 몸 등의 다섯 인식능력인 오근(五根) 및 그것들 각각에 대응하는 색깔·형태, 소리, 냄새, 맛, 감촉 등의 다섯 인식대상인 오경(五境)과 비가시적 물질현상인 무표색(無表色)을 포함한다.

②수(受, vedanā)는 사유능력인 의근(意根)을 포함한 여섯 인식능력인 육근(六根)이 인식대상과 접촉한 뒤 일어나는 수동적 반응[領納隨觸]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좋아하는 대상, 싫어하는 대상, 좋지도 싫지도 않은 대상에 각각 대응하는 즐거움[樂], 고통[苦], 고통도 즐거움도 아닌 느낌[不苦不樂] 등 세 종류의 정서적 반응이다.

③상(想, saṃjñā)은 청황(靑黃), 장단(長短), 남녀(男女), 원친(怨親), 고락(苦樂) 등의 구별[相]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작용[能取像]을 의미한다.

④행(行, saṃskārā)은 마음이 어떤 행위를 하도록[造作] 만드는 의지작용[思, cetanā]을 말한다.

⑤식(識, vijñāna)은 각 인식대상의 고유한 특징[自相]을 통해 기타 대상과 식별[了別]하는 작용을 말한다.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여 불자들이 매일 염송하는 반야심경의 내용 가운데 지나치기 쉬운 내용 두 가지를 앞당겨 정리해 보고자 한다. 아래 목차중 해설26과 해설27이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乃至'는 영어의 "from A to B"의 뜻이다.

그런데 문면에 나타난 글자를 음독 처리해 버리니 생략된 부분을 가늠하기 어렵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설26은 18界를 부정함이고 해설27은 12연기를 부정한 말이다.

아래의 두 포스트에서 그 내용을 확인해 주기 바란다.

반야심경 해설 목차

http://kydong77.tistory.com/11338

반야심경 해설 26.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http://blog.daum.net/mahatop7/5486

반야심경 해설 27.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無無明 亦..

http://blog.daum.net/mahatop7/5487

 

반야심경 해설 26.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http://blog.daum.net/mahatop7/5486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위의 뜻은

공 그 자체에는 眼界도 없고 意識界까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공중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空中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인데,

저 앞에서 공중(空中)이란 단어가 나왔으므로 반복하지 않고

그냥 짧게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라고 표현한 것뿐입니다.

내지(乃至)라는 뜻은 뭐뭐 에서 뭐뭐까지를 뜻합니다.

眼界에서 意識界까지 없다는 의미입니다.

공 그 자체에는 眼界에서 意識界까지 없다는 의미죠.

그럼 이제부터는 18계의 뜻을 알아보겠습니다.

 

18계란 육근과 육경과 육식을 모두 합친 것을 말합니다.

안과 밖에, 즉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접촉하게 되면 식(識)이 생깁니다.

물론 덜커덕 갑자기 識이 생긴게 아니고, 이전부터 계속 흘러오던 識입니다.

그 識이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의 접촉에 따라 생겨나고 변화합니다.

眼 + 色 = 眼識 눈이 색과 접하면 안식이 생기고

耳 + 聲 = 耳識 귀가 소리를 접하면 이식이 생기고

鼻 + 香 = 鼻識 코가 냄새를 접하면 비식이 생기고

舌 + 味 = 舌識 혀가 맛을 접하면 설식이 생기고

身 + 觸 = 身識 몸이 접촉을 접하면 신식이 생기고

意 + 法 = 意識 뜻이 법을 접하면 의식이 생깁니다. 의식이란 바로 여기서 나오죠.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전오식이라고 부르고,

의식을 제6식이라고 부릅니다.

전오식은 너무도 빨라 곧바로 제6식인 의식으로 전환이 됩니다.

18계육근과 육경, 육식을 통털어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므로 18계란 다음과 같습니다.

 

안계(眼界) · 이계(耳界) · 비계(鼻界) · 설계(舌界) · 신계(身界) · 의계(意界)

색계(色界) · 성계(聲界) · 향계(香界) · 미계(味界) · 촉계(觸界) · 법계(法界)

안식계(眼識界) · 이식계(耳識界) · 비식계(鼻識界) · 설식계(舌識界) · 신식계(身識界) · 의식계(意識界)

 

*"내지"는 위의 청색 글씨 앞에 "無"字를 첨가한 것을 말한다.

그러면 안계(無眼界)부터 무의식계(無意識界)까지의 18계를 부정하는 원문이 된다.

 

 

반야심경에서는 위의 18가지를 전부 나열하기는 너무 많으니까,

짧게 처음과 끝만을 말한 것입니다.

처음 : 안계(眼界)

끝 : 의식계(意識界)

그러나 空 그 자체에는 18계도 역시 모조리 없으므로,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18계에서 계(界)의 뜻은 요소 또는 경계라는 의미입니다.

18계 모두 이 삼라만상 모든 것의 요소이기도 하며, 그게 또 윤회의 요소, 세간의 요소이며,

지혜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것은 모조리 다 바깥 경계이기 때문에 경계입니다.

18계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일체법(一切法), 또는 제법(諸法)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18계는 모조리 실체가 없어서 공한 것이죠.

그래서 18空중에 제법공(諸法空)이 있습니다. 18空이란 空을 세분화해서 설명한 것을 말합니다.

이 찰라생 찰라멸하는 마음에도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연화합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6식이건, 7식이건 8식이건 모두가 공한 것입니다.

불성이라고 여기는 암마라식도 역시나 공합니다.

불성도 역시 마음입니다. 그래서 암마라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암마라識은 불생불멸識이기 때문에 불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도 실체라고 여길 만한 것은 없습니다.

불경을 볼 때 참으로 헷갈린 게 바로 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의미에 따라 어떨 때는 불성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하고, 또 생멸하는 마음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이걸 구분할 줄 알고 봐야 헷갈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찌됐건 불성(불생불멸식)이건 생멸식이건 거기에는 실체라고 여질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空을 佛性, 法性, 眞如, 如如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반야바라밀에 포함됩니다.

소승 대승 막론하고 해탈의 門은 空입니다.

空에는 실체라고 여기고 집착할 만한 것이 단 하나도 없으므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空 그 자체에는 18계도 역시 없습니다.

그래서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無眼界 乃至 無意識界)입니다.

 

 

• 반야심경 해설 4.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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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은 관세음보살님을 뜻합니다.

우리가 읽고 있는 반야심경은 당나라 현장법사(삼장법사)께서 한역하신 것입니다.

아주 짧게 핵심만 있습니다.

계빈국 반야 ․ 이언 이 두 분이 공역하신 반야심경도 있는데, 여기에는 경전의 모습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즉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로 시작되어서....

“다 함께 받들었다”라는 내용으로 끝을 맺습니다.

계빈국 반야/이언 이 두분이 공역하신 반야심경을 읽어보면 좋습니다.

거기에 나와 있다시피,

이 반야심경은 관재자보살(관세음보살)께서 사리자(사리불)에게 설법하는 것입니다.

이때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 계십니다.

우리가 읽는 반야심경, 즉 현장법사께서 한역하신 그 반야심경의 내용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관세음보살께서 사리불 존자에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사리자(사리불)께서 질문을 하고 관세음보살께서 쭉 답변 내용을 설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사리자여..사리자여...라는 내용이 반야심경에 나오게 됩니다.

보살(菩薩)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보살(菩薩)이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입니다.

보살(菩薩)이란

나의 행복을 다른 중생에게 주고, 나의 고통을 돌보지 않고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자입니다.

모두가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고,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없애고, 자신만의 행복을 위하는데....

보살(菩薩)만은 그 반대로 오로지 남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대승(大乘)입니다.

보살(菩薩)이 제도하고자 하는 중생의 숫자는 단 몇몇이 아니고 일체 중생 모두를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며, 이런 보리심을 낸 자가 바로 보살(菩薩)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마음을 낸 보살은 너무나도 희유할 수밖에 없습니다.

석가부처님께서도 보살로 계시다가 성불하셔서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석가부처님께서도 역시 대승의 길을 걸으신 것 입니다.

온 우주에는 수천억 수천조이상의 무량한 중생들이 살며,

그 중생들 가운데 아라한을 성취하는 자들은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하며,

그 가뭄에 콩 나듯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러한 보리심을 내는 자는 또 더더욱 드물며,

그 극소수의 보살들 중에서도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는 자는 더욱 더 희유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야말로 희유하고도 희유하신 분입니다.

반야경에 보면 이 보살에 대한 설명이 아주 다양하고 깊게 나와 있습니다.

보리심을 내서 성불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보살은 희유하고도 희유한데,

대다수가 보살행을 포기하고 2승, 즉 아라한이 되거나 벽지불이 되고 맙니다.

사리자(사리불)께서도 본래는 보살행을 60겁 동안 하셨는데, 중도포기하고 아라한이 되셨습니다.

이와 반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필코 성불하는 보살을 <아비발치>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또는 아유월치 보살이라고도 한역되어져 있습니다.

<아비발치> 보살이 부처님으로부터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습니다.

보살(菩薩)은 이미 제법실상인 空을 깨달아 알고 있는 성인입니다.

그러나 보살(菩薩)이 성취하고자 하는 도는 아라한도/벽지불도가 아니고 바로 부처님이 되는 불도(佛道)입니다.

보살(菩薩)은 언제나 해탈해서 열반에 들어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즉 마음만 먹으면 아라한이 될 수도 있고, 벽지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마들은 이 보살들에게 부처의 길을 포기하고 아라한/벽지불이 되라고 꼬드깁니다.

그러나 보살들은 자비심으로 일체중생을 생각하고 그들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열반을 취하지 않습니다.

즉, 자신이 아직 부처님께서 갖춘 공덕의 대부분을 갖추지 못한 상태라면 열반을 취하지 않습니다.

만약 보살이 부처님이 될만한 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지 않았는데 열반을 취해버리면,

그땐 아라한/벽지불이 됩니다.

벽지불이란 독각을 의미하며, 부처님이 없는 시대에 혼자 깨달아서 해탈하고 열반에 드는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자신이 부처님이 될 만한 공덕과 지혜를 다 갖추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보살(菩薩)도 역시 깊이 空해탈문에 들어가지만, 깊은 지혜로써 열반을 취하지 않고

아직 때가 아님을 알아 끊임없이 중생을 돕는 보살행을 하게 됩니다.

모든 보살(菩薩)께서 하시려는 것은 모든 중생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을 다 버리고, 오로지 다른 중생들을 위한 분이 바로 보살(菩薩)입니다.

보살의 종류는 또 크게 생신보살과 법성생신보살이 있습니다.

생신보살이란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고 생사윤회를 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분이고,

법성생신보살이란 진리 그 자체의 몸을 얻어 욕계/색계/무색계를 초월해서 자유롭게 중생을 제도하는 분입니다.

보살(菩薩)은 부처님이 되고 나서야 중생을 제도하는 게 아닙니다.

보살(菩薩)은 보살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중생을 제도하십니다.

보살(菩薩)은 가르침으로 아라한/벽지불도 탄생시키며, 보리심을 내게 해서 보살도 탄생하게 합니다.

물론 모든 보살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능력과 지혜를 갖춘 보살에 한해서 입니다.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보살님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지장보살님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지장보살님의 서원은 지옥이 있고,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중생이 있는 한

절대 나는 성불하지 않고 끊임없이 보살행을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은 일부러 성불을 하지 않고 여전히 지금도 보살행을 하고 계신다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석가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찬탄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의 위덕이 한도 끝도 없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성불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다 갖추셨지만,

성불해서 멸도에 들지 않고 그 무량한 세월동안을 언제나 중생을 돕는 보살행을 하고 계시므로 찬탄하셨습니다.

일생보처보살이라는 분이 계신데, 이 뜻은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성불하는 보살을 뜻합니다.

현재 미륵보살께서 일생보처보살이십니다.

내생에 인간으로 오셔서 성불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재 도솔천에 계십니다.

미륵보살은 아주 까마득한 먼 미래에, 통상 57억년 후에 성불하여 부처님이 되십니다.

그 때는 인간 수명이 엄청나게 길고, 몸의 크기도 엄청나게 큽니다.

지금 인간은 2미터가 안되지만, 그때 중생들의 몸은 120미터쯤 되며, 부처님의 몸은 250미터 가량 됩니다.

석가부처님께서는 출가 후 6년간 엄청난 고행 후에 성불하셨지만,

미륵부처님께서는 출가한 바로 그날 성불한다고 합니다.

또한 석가부처님께서 인도 영취산에서 설법하셨듯이, 미륵부처님도 또한 인도 영취산에서 설하십니다.

석가부처님께서 설하신 법과 미륵부처님께서 설하시는 법은 똑같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진리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핵심은 반야바라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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