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七十四

孟子荀卿列傳第十四

맹자순경열전 제14

14-1 孟子(맹자)

  索隱按:序傳孟嘗君第十四,而此傳為第十五,蓋後人差降之矣。

  太史公曰:

태사공이 말한다.

余讀孟子書,至梁惠王問「何以利吾國」,未嘗不廢書而歎也。

" 내가 일찍이 맹자(孟子)를 읽을 때마다

양혜왕(梁惠王)이 '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한 대목에 이르러

책을 덮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曰:嗟乎,利誠亂之始也!

夫子罕言利者,常防其原也。

故曰「放於利而行,多怨」。

' 아! 이로움이란 진실로 어지러운 것의 시작이구나!

무릇 공자(孔子)가 이로움에 대해 드물게 말한 것은 항상 그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런 까닭에 '이로운 것에 따라 행동하면 남의 원망을 많이 받는다.''라고 하였다.

自天子至於庶人,好利之獘何以異哉!

천자(天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로움을 좋아해서 생긴 병폐가 어찌 다르겠다고 하겠는가?"

  孟軻,騶人也。〔一〕受業子思之門人。〔二〕

맹가(孟軻)는 추(騶)나라 사람으로,

자사(子思)의 제자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道既通,游事齊宣王,宣王不能用。

도(道)에 이미 통하여

제선왕(齊宣王)에게 유세했으나 선왕이 그를 쓰지 않았다.

適梁,梁惠王不果所言,則見以為迂遠而闊於事情。

그래서 그는 양(梁)나라에 갔으나

결국 맹가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던 양혜왕(梁惠王)은

그의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어 당시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當是之時,秦用商君,富國彊兵;

楚、魏用吳起,戰勝弱敵;

그때 당시의 정세는 진나라는 이미 상군(商君)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고

위(魏)와 초(楚) 두 나라는 오기(吳起)를 등용하여

적군을 물리치고 적국을 약화시켰다.

齊威王、宣王用孫子、田忌之徒,

而諸侯東面朝齊。

또한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선왕은

손빈(孫臏)과 전기(田忌)와 같은 인재들을 등용하여

제후들로부터 조현을 받고 있었다.

天下方務於合從連衡,以攻伐為賢,

천하는 바야흐로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에 온 힘을 쏟고 있었으며,

전쟁에 능한 것을 현능하다고 여겼다.

而孟軻乃述唐、虞、三代之德,

是以所如者不合。

그러나 맹가는 요순(堯舜)과 삼대(三代)의 덕에 대해 말했음으로

그가 이르는 곳마다 제후들의 뜻에 부합되지 않아 박대를 받았다.

退而與萬章之徒〔三〕序詩書,述仲尼之意,作孟子七篇。

其後有騶子之屬。

그래서 유세하는 것을 그만 둔 맹가는

만장(萬章)의 무리들과 함께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순서에 따라 정리하여

공자의 뜻을 전하려고 했다. 맹가는 모두 7편의 저서를 지었다.

그 뒤로 추(騶)의 무리들이 있었다.

  〔一〕索隱軻音苦何反,又苦賀反。鄒,魯地名。又云「邾」,邾人徙鄒故也。正義軻字子輿,為齊卿。鄒,兗州縣。  

 〔二〕索隱王劭以「人」為衍字,則以軻親受業孔伋之門也。今言「門人」者,乃受業於子思之弟子也。

 〔三〕索隱孟子有萬章、公明高等,蓋並軻之門人也。萬,姓;章,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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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장의열전 제10-6  

居秦期年,〔1〕秦惠王終相張儀,而陳軫奔楚。楚未之重也,而使陳軫使于秦。

居秦期年(거진기년) : 진나라에 있은 지 1년에

秦惠王終相張儀(진혜왕종상장의) : 진혜왕은 마침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으므로

而陳軫奔楚(이진진분초) :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楚未之重也(초미지중야) : 초나라는 아직 진진을 중히 쓰지는 않았으나

而使陳軫使於秦(이사진진사어진) : 사자로 진나라에 보냈다.

 

過梁,欲見犀首。犀首謝弗見。過梁(과량) : 도중에 위나라를 지나

欲見犀首(욕견서수) : 서수를 만나려고 하였는데

犀首謝弗見(서수사불견) : 서수는 사절하고 만나지 않았다.

 

軫曰:“吾為事來,公不見軫,軫將行,不得待異日。”〔2〕

軫曰(진왈) : 진이 말하기를,

吾爲事來(오위사래) : “나는 그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일부러 왔는데

公不見軫(공불견진) : 그대는 만나져 하지를 않는군.

軫將行(진장행) : 이제 진이 여기를 떠나면

不得待異日(불득대이일) : 두 번 다시 만나지 모살지도 모르오.”라고 하였다.

 

犀首見之。陳軫曰:“公何好飲也?”

犀首見之(서수견지) : 서수가 나와서 만나니

陳軫曰(진진왈) : 진진이 말하기를, 公何好飮也(공하호음야) : “그대는 어째서 술마시기를 좋아하오?”라고 하니

 

犀首曰:“無事也。”犀首曰(서수왈) : 서수는 말하기를 無事也무사야) : “할 일이 없기 때문이오.”라고 하였다.

 

曰:“吾請令公厭事可乎?”〔3〕

曰(吾請令公厭事可乎(왈오청령공염사가호) : 진진이 말하기를 “그러면 입을 닫아야 할 만큼 그대를 바쁘개 해도 좋겠소?”라고 하니

 

曰:“柰何?”曰柰何(왈내하) : 서수는 말하기를“어떻게 하는 것이요.”

 

曰:“田需約諸侯從親,〔4〕楚王疑之,未信也。

曰田需約諸侯從親(왈전수약제후종친) : 진이 말하기를 “위나라 재상 전수는 제수에게 합종책을약속하였는데

楚王疑之(초왕의지) : 초왕은 그를 의심하여

未信也(미신야) : 아직 신용하지 않았다.

 

公謂于王曰:‘臣與燕、趙之王有故,數使人來,曰 “無事何不相見”,愿謁行于王。’〔5〕

公謂於王曰(공위어왕왈) : 그대는 왕에게 이렇게 말해주시오.

臣與燕趙之王有故(신여연조지왕유고) : ‘신은 연나라와 조나라의 왕과 구교가 있어

數使人來曰(수사인래왈) : 그들이 자주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無事何不相見(무사하불상견) : 일이 없으면 어찌하여 과인에게 오지 않는가?’라고 합니다.

願謁行於王(원알행어왕) : 신이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허락하십시오.

 

王雖許公,〔6〕公請毋多車,以車三十乘,可陳之于庭,〔7〕明言之燕、趙。

王雖許公(왕수허공) : 왕이 허락을 하여도

公請毋多車(공청무다차) : 그대는 수레를 너무 많이 따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以車三十乘(이차삼십승) : 수레 30채로 족합니다.

可陳之於庭(가진지어정) : 이것을 뜰에 늘어 세워

明言之燕趙(명언지연조) :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밝혀 말하는 것이 좋습니까?”라고 했다.

 

燕、趙客聞之,馳車告其王,使人迎犀首。燕趙客聞之(연조객문지) : 연나라와 조나라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馳車告其王(치차고기왕) : 레수를 본국으로 달려 임금에게 보고하고

使人迎犀首(사인영서수) : 사자를 보내어 서수를 영접하라고 말하였다.

 

楚王聞之大怒,曰:“田需與寡人約,而犀首之燕、趙,是欺我也。”

怒而不聽其事。楚王聞之大怒曰(초왕문지대노왈) : 초왕이 이 말에 크게 노하여 이르기를,

田需與寡人約(전수여과인약) : “전수는 과인과 약속이 있는데

而犀首之燕趙(이서수지연조) : 서수가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은

是欺我也(시기아야) : 나를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고

怒而不聽其事(노이불청기사) : 분개하여 합종을 듣지 않았다.

 

齊聞犀首之北,使人以事委焉。犀首遂行,三國相事皆斷于犀首。軫遂至秦。齊聞犀首之北(제문서수지북) : 제나라는 서수가 북쪽으로 간다는 것을 듣고 使人以事委焉(사인이사위언) : 사자를 보내어 제나라의 국사를 위임하려고 하였다.

犀首遂行(서수수행) : 서수가 마침내 북으로 가서

三國相事皆斷於犀首(삼국상사개단어서수) : 제·연·조 3개국의 재상의 정사는 모두 서수의 전단을 기다렸다.

軫遂至秦(진수지진) : 진이 진나라에 당도하였다.

 

 【注釋】〔1〕“期年”,一整年。“期”,音jī。〔2〕“異日”,另外的日子。

〔3〕“厭事”,形容擔任的事多。“厭”通“饜”,飽。〔4〕“田需”,時為魏相。

〔5〕“謁行”,請行。〔6〕“雖”,即使。〔7〕“陳”,列。

 

  韓魏相攻,期年不解。韓魏相攻(한위상공) : 한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싸움을 벌여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은 때였다.

 

秦惠王欲救之,問于左右。左右或曰救之便,〔1〕或曰勿救便,秦惠王欲救之(진혜왕욕구지) : 진혜왕은 이것을 구해 주기 위해 問於左右(문어좌우) : 좌우에 있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左右或曰救之便(좌우혹왈구지변) : 어떤 자는 이르기를“구하는 것이 이익이다.” 하였고

或曰勿救便(혹왈물구변) : 또 어떤 자는 이르기를 “구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다.”라고 말하였다.

 

惠王未能為之決。陳軫適至秦,惠王未能爲之決(혜왕미능위지결) : 혜왕이 아직 결정을 짓지 못할 때

陳軫適至秦(진진적지진) : 진진이 마침 진나에 왔다.

 

惠王曰:“子去寡人之楚,亦思寡人不?”

惠王曰(혜왕왈) : 혜왕이 진진에게 묻기를

子去寡人之楚(자거과인지초) : “그대는 과인을 버리고 초나라로 갔는데

亦思寡人不(역사과인불) : 지금까지도 과인을 생각한다고 하니 모르겠소.”라고 하니

 

陳軫對曰:“王聞夫越人莊舄乎?”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은 대답하기를,

王聞夫越人莊舃乎(왕문부월인장석호) : “임금님께서는 조나라 사람 장석의 일을 아십니까?”라고 하니

 

王曰:“不聞。”王曰(왕왈) : 혜왕이 이르기를,

不聞(불문) :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曰:“越人莊舄仕楚執珪,有頃而病。

曰越人莊舃仕楚執珪(왈월인장석사초집규) : 진진이 말하기를 “월인 장석은 초나라를 섬겨 집규로 있었는데

有頃而病(유경이병) : 얼마 안 있어 병이 났습니다,

 

楚王曰:‘舄故越之鄙細人也,今仕楚執珪,貴富矣,亦思越不?’〔2〕

楚王曰(초왕왈) : 초나라 왕이 이르기를,

舃故越之鄙細人也(석고월지비세인야) : ‘장석은 본디 미천한 월나라 사람으로서

今仕楚執珪(금사초집규) : 이제 초나라를 섬기어 집규에 올라

貴富矣(귀부의) : 귀하고 부유하게 되었는데

亦思越不(역사월불) : 이제까지도 오히려 월나라의 일을 생각함은 그릇되지 않은가?’하고 물으니

 

中謝對曰:〔3〕‘凡人之思故,在其病也。彼思越則越聲,不思越則楚聲。’

中謝對曰(중사대왈) : 중사가 대답하기를,

凡人之思故(범인지사고) : ‘무릇 인간이 고향을 생각하는 것은

在其病也(재기병야) : 병들었을 때입니다.

彼思越則越聲(피사월칙월성) : 그가 월나라를 생각한다면 월나라 말을 할 것이며

不思越則楚聲(불사월칙초성) : 월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초나라 말로 이야기 할 것입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使人往聽之,猶尚越聲也。今臣雖棄逐之楚,豈能無秦聲哉!”

使人往聽之(사인왕청지) : 그래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시험해본 결과

猶尙越聲也(유상월성야) : 역시 월나라 말을 하였답니다.

今臣雖弃逐之楚(금신수기축지초) : 이제 신은 비록 버림받고 쫓기어 초나라에 의탁하였지만

豈能無秦聲哉(개능무진성재) : 어찌 신이 진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惠王曰:“善。今韓魏相攻,期年不解,或謂寡人救之便,或曰勿救便,寡人不能決,愿子為子主計之余,為寡人計之。”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은 말이오.

今韓魏相攻(금한위상공) : 그런데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해결이 나지 않았습니까?

或謂寡人救之便(혹위과인구지변) : 어떤 자는 구하는 것이 진나라의 이익이라하고

或曰勿救便(혹왈물구변) : 어떤 자는 구하지 않는 편이 이익이 된다 하므로

寡人不能決(과인불능결) :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願子爲子主計之餘(원자위자주계지여) :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계책의 충분히 주장하고

爲寡人計之(위과인계지) : 과인을 위하여 그것에 꾀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陳軫對曰:“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于王者乎?

陳軫對曰(진진대왈) : 진진이 대답하길

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於王者乎(역상유이부변장자자호문어왕자호) : “일찌기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른 이야기를 임금께 말씀드린 자가 없었습니까?

 

莊子欲刺虎,館豎子止之,曰:莊子欲刺虎(장자욕자호) : 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생각했는데 館豎子止之曰(관수자지지왈) : 객주집의 종놈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兩虎方且食牛,食甘必爭,爭則必斗,斗則大者傷,小者死,從傷而刺之,一舉必有雙虎之名。

兩虎方且食牛(양호방차식우) : ‘두 마리의 호랑이가 방금 소를 잡아 멱으려 합니다

食甘必爭(식감필쟁) : 먹어서 입에 달면 반드시 다툴 것이며

爭則必鬪(쟁칙필투) : 다투면 필연코 싸울 것입니다.

鬪則大者傷(투칙대자상) : 싸우면 큰 편은 상처를 입고

小者死(소자사) : 작은 편은 죽을 것입니다.

從傷而刺之(종상이자지) : 상처를 입었을 적에 달려 들어 찌르면

一擧必有雙虎之名(일거필유쌍호지명) : 대번에 두 호랑이를 잡았다는 이름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卞莊子以為然,立須之。有頃,兩虎果斗,大者傷,小者死。

卞莊子以爲然(변장자이위연) : 변장자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立須之(입수지) : 서서 범을 기다렸습니다.

有頃(유경) : 얼마 안 되어

兩虎果鬪(양호과투) : 과연 두 호랑이가 싸움을 하고

大者傷(대자상) : 큰 편은 상처를 입었으며

小者死(소자사) : 작은 편은 죽었습니다.

 

莊子從傷者而刺之,一舉果有雙虎之功。

莊子從傷者而刺之(장자종상자이자지) : 장자는 상처입은 호랑이가 쇠약한 기회를 타 찔러 죽이고

一擧果有雙虎之功(일거과유쌍호지공) : 한 번에 두 호랑이를 잡은 공을 얻었다고 합니다.

 

今韓魏相攻,期年不解,是必大國傷,小國亡,

今韓魏相攻(금한위상공) : 이제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서

期年不解(기년불해) : 1년이 지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是必大國傷(시필대국상) : 반드시 큰 나라는 상처를 입었을 것이며

小國亡(소국망) : 작은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從傷而伐之,一舉必有兩實。此猶莊子刺虎之類也。臣主與王何異也。”

從傷而伐之(종상이벌지) : 상처를 입은 기회에 달려들어 치면

一擧必有兩實(일거필유양실) : 반드시 한꺼번에 두 실익을 얻는 공이 있을 것입니다.

此猶莊子刺虎之類也(차유장자자호지류야) : 이것은 마치 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는 일과 비슷한 것으로

臣主與王何異也(신주여왕하이야) : 신이 임금을 위해 바치는 계교와 초왕을 위해 바치는 계교가 어찌 다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惠王曰:“善。” 卒弗救。大國果傷,小國亡,〔4〕

惠王曰善(혜왕왈선) : 혜왕이 이르기를 “옳은 말입니다.”하고

卒弗救(졸불구) : 마침내 구해 주지 않았다.

大國果傷(대국과상) : 과연 대국은 상처를 입고

小國亡(소국망) : 소국은 망하였다.

 

秦興兵而伐,大剋之。此陳軫之計也。

秦興兵而伐(진흥병이벌) : 진나라는 출병하여 이를 쳐서

大剋之(대극지) : 크게 이겼는데

此陳軫之計也(차진진지계야) : 이것은 진진의 꾀에 따른 것이었다.

  【注釋】〔1〕“便”,有利。

〔2〕“越”,國名,都會稽(今浙江紹興),疆域主要有今浙江北部和江蘇、安徽、江西的一部分。“不”,通“否”。

〔3〕“中謝”,侍從官。〔4〕“大國果傷,小國亡”,這是夸大的話,不是事實。

  犀首者,魏之陰晉人也,〔1〕名衍,姓公孫氏。與張儀不善。

犀首(서수자) : 서수는

魏之陰晉人也(위지음진인야) : 위나라의 음진 사람인데 名衍(명연) : 이름은 연이고

姓公孫氏(성공손씨) : 성은 공손씨였다.

與張儀不善(여장의불선) :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注釋】〔1〕“陰晉”,邑名,在今陜西華陰縣東。

 

  張儀為秦之魏,魏王相張儀。〔1〕張儀爲秦之魏(장의위진지위) :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에 가자 魏王相張儀(위왕상장의) : 위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犀首弗利,故令人謂韓公叔曰:“張儀已合秦魏矣,

犀首弗利(서수불리) : 서수는 이것을 불리한 일이라 하여

故令人謂韓公叔曰(고령인위한공숙왈) : 한나라의 공숙에게 말하기를,

張儀已合秦魏矣(장의이합진위의) : “장의는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로 동맹을 맺게 하였습니다.

其言曰‘魏攻南陽,秦攻三川’。

其言曰(기언왈) : 그의 말에 이르기를

魏攻南陽(위공남양) : ‘위나라가 한나라의 남양을 치고

秦攻三川(진공삼천) : 진나라가 한나라의 삼천을 치면 한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고 말하였소.

魏王所以貴張子者,欲得韓地也。且韓之南陽已舉矣,

魏王所以貴張子者(위왕소이귀장자자) : 위왕이 장의를 중히 여기는 것은

欲得韓地也(욕득한지야) : 한나라의 땅을 얻고 싶어서요.

且韓之南陽已擧矣(차한지남양이거의) : 한나라의 남양은 이제 곧 침략을 받을 지경에 이르렀소.

子何不少委焉以為衍功,則秦魏之交可錯矣。〔2〕然則魏必圖秦而棄儀,收韓而相衍。

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자하불소위언이위연공) : 그대는 어찌하여 얼마쯤 한나라의 국사를 위임하여 연의 공으로 돌리지 않습니까?

則秦魏之交可錯矣(칙진위지교가착의) : 그렇게 하면 진나라와 위나라의 국교가 그칠 것이고

然則魏必圖秦而弃儀(연칙위필도진이기의) : 그치면 위나라는 반드시 진나라를 도모할 생각에 장의를 버리고

收韓而相衍(수한이상연) : 한나라를 자기 편으로 하고 연을 재상으로 삼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公叔以為便,因委之犀首以為功。果相魏。張儀去。

公叔以爲便(공숙이위변) : 공숙은 이 방책을 이로운 것이라 생각하여

因委之犀首以爲功(인위지서수이위공) : 한나라의 국사를 서수에게 맡겨 그에게 공로를 세워 주었다.

果相魏(과상위) : 과연 서수는 위나날 재상이 되고 張儀去(장의거) : 장의는 위나라를 떠났다.

 

 【注釋】〔1〕“魏王相張儀”,這在魏惠王后元十三年(公元前三二二年)。

〔2〕“錯”,棄置,丟在一邊。

 

  義渠君朝于魏。〔1〕犀首聞張儀復相秦,害之。

義渠君朝於魏(의거군조어위) : 의거의 군주가 위나라에 입조하였다.

犀首聞張儀復相秦(서수문장의복상진) : 서수는 장의가 또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害之(해지) : 해칠 것을 생각하여

 

犀首乃謂義渠君曰:“道遠不得復過,請謁事情。”〔2〕

犀首乃謂義渠曰(서수내위의거군왈) : 의구의 군주에게 말하기를,

道遠不得復過(도원불득복과) : “그대 나라는 길이 멀어 다시 우리 위나라를 방문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請謁事情曰(청알사정왈) : 그래서 청컨대 어느 정도 비밀 이야기를 말해 두고자 합니다.

 

“中國無事,〔3〕秦得燒掇焚杅君之國;〔4〕

中國無事(중국무사) : 중국의 제후가 진나라를 치지 않으면

秦得燒掇焚杅君之國(진득소철분우군지국) : 진나라는 그대 나라를 쳐서 집을 불사를고 재물을 빼앗을 것입니다.

 

有事,〔5〕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

其后五國伐秦。〔6〕有事(유사) : 제후가 진나를 치는 일이 생기면

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진장경사중폐사군지국) : 진나라는 가벼운 차림의 사자에게 후한 뇌물을 들려 그대 나라를 선길 것입니다.”고 하였다.

其後五國伐秦(기후오국벌진) : 그 뒤에 중국의 5개국이 진나라를 쳤다.

 

會陳軫謂秦王曰:“義渠君者,蠻夷之賢君也,不如賂之以撫其志。”〔7〕

會陳軫謂秦王曰(회진진위진왕왈) : 진진이 진왕에게 말하기를,

義渠君者(의거군자) : “의거의 군주는

蠻夷之賢君也(만이지현군야) : 오랑캐 나라의 현군입니다.

不如賂之以撫其志(불여뢰지이무기지) : 뇌물을 보내어 달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고 하였다.

 

秦王曰:“善。”乃以文繡千純,〔8〕婦女百人遺義渠君。

秦王曰善(진왕왈선) : 진왕은 이르기를“옳다.”하고

乃以文繡千純(내이문수천순) : 비단 천 필,

婦女百人遺義渠君(부녀백인유의거군) : 부녀 백 명을 의거의 군주에게 보냈다.

 

義渠君致群臣而謀曰:“此公孫衍所謂邪?”〔9〕乃起兵襲秦,大敗秦人李伯之下。〔10〕

義渠君致羣臣而謀曰(의거군치군신이모왈) : 의거 군주는 여러 신하를 불러서 이르기를,

此公孫衍所謂邪(차공손연소위사) : “이것이야말로 전에 공손연이 예언했던 바가 아니냐?”고 하고

乃起兵襲秦(내기병습진) :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大敗秦人李伯之下(대패진인이백지하) : 이백의 성 아래서 진나라 군사를 크게 깨뜨렸다.

 

【注釋】〔1〕“義渠”,西戎部落之一,主要分布地在今甘肅慶陽、寧縣一帶。

〔2〕“謁”,陳述。〔3〕“中國無事”,指山東六國不進攻秦國。

〔4〕“燒掇焚☐”,焚燒侵略。“掇”,侵掠,音duó。“☐”,割取,音yú。

〔5〕“有事”,指山東各諸侯國攻秦。

〔6〕“五國伐秦”,指秦惠王后元七年(公元前三一八年),楚、魏、韓、齊、趙五國共攻秦。

〔7〕“撫”,安定。〔8〕“純”,匹。音tún。

〔9〕“此公孫衍所謂邪”,指上文公孫衍對義渠君所說的話。〔10〕“李伯”,秦邑。

  張儀已卒之后,犀首入相秦。〔1〕

張儀已卒之後(장의이졸지후) : 장의가 죽은 뒤

犀首入相秦(서수입상진) : 서수는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2〕

嘗佩五國之相印(상패오국지상인) : 일찍이 그는 5개국 재상의 인수를 동시에 차고

爲約長(위약장) : 합종의 맹약장이 되었다.

 

【注釋】〔1〕“犀首入相秦”,這不合史實。張儀死后,犀首并未繼任秦相。

〔2〕“嘗佩五國之相印,為約長”,指公孫衍主持韓、趙、魏、燕、中山五國相王的事,

時間在周顯王四十六年(公元前三二三年)。

 

  太史公曰:三晉多權變之士,夫言從衡強秦者大抵皆三晉之人也。〔1〕

太史公曰(태사공왈) : 태사공은 말한다.

三晉多權變之士(삼진다권변지사) : “삼진에는 권모와 기이한 변화를 부린 인물이 많다.

夫言從衡彊秦者(부언종형강진자) : 합종과 연형을 부르짖어 진나라를 굳세게 한 자는

大抵皆三晉之人也(대저개삼진지인야) : 대개가 다 삼진 출신이다.

 

夫張儀之行事甚于蘇秦,〔2〕然世惡蘇秦者,以其先死,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3〕成其衡道。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부장의지행사심어소진) : 장의의 책모는 소진보다 심하였으나

然世惡蘇秦者(연세악소진자) : 그러나 세상이 장의보다 소진을 미워하는 것은

以其先死(이기선사) : 소진이 죽은 뒤

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이의진폭기단이부기설) :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선전하고 폭로하고 자기의 유세를 유리하게 하여

成其衡道(성기형도) : 연횡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要之,〔4〕此兩人真傾危之士哉!〔5〕

要之(요지) : 요컨대

此兩人眞傾危之士哉(차양인진경위지사재) : 이 두 사람은 진실로 위험한 인물이로다.

 

【注釋】〔1〕“三晉”,春秋末期,晉國的韓、趙、魏三家大夫瓜分晉地,分別建國,史家稱他們為三晉。“權變”,權謀機變。〔2〕“張儀之行事”,指詐偽的外交手段。〔3〕“振暴”,宣揚和暴露。〔4〕“要之”,總之。〔5〕“傾危”,使國家傾覆危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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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7

  秦武王元年,群臣日夜惡張儀未已,

秦武王元年(진무왕원년) : 진무왕 원년에

羣臣日夜惡張儀未已(군신일야악장의미이) : 여러 신하는 밤낮으로 장의를 비방하고 욕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而齊讓又至。〔1〕張儀懼誅,乃因謂秦武王曰:“儀有愚計,愿效之。”

而齊讓又至(이제양우지) : 때마침 진나라가 장의를 등용한 것을 질책하는 사자가 진나라에서 왔다.

張儀懼誅(장의구주) : 장의는 죽음을 당하는 것을 겁내어

乃因謂秦武王曰(내인위진무왕왈) : 무왕에게 말하기를

儀有愚計(의유우계) : “장의에게는 졸렬하지만 한 방책이 있습니다.

願效之(원효지) : 아무쪼록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王曰:“柰何?”〔2〕

王曰(왕왈) : 진왕이 이르기를

柰何(내하) : “어떠한 일인가.” 하니

對曰:“為秦社稷計者,東方有大變,然后王可以多割得地也。

對曰(대왈) : 장의가 대답하기를

爲秦社稷計者(위진사직계자) : “진나라를 위해 계책을 생각하건대

東方有大變(동방유대변) : 동쪽에 큰 변란이 있고서야

然後王可以多割得地也(연후왕가이다할득지야) : 임금은 제후의 많은 토지를 거두어들일 수 있습니다.

今聞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

今聞齊王甚憎儀(금문제왕심증의) : 이제 들으니 제왕은 장의를 매우 미워하는 모양입니다.

儀之所在(의지소재) : 그러면 정의가 있는 나라에는

必興師伐之(필흥사벌지) :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그 나라를 치려고 할 것입니다.

故儀愿乞其不肖之身之梁,〔3〕齊必興師而伐梁。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고의원걸기불초지신지량) : 그러므로 불초한 몸 틈을 주시어 장의로 하여금 위나라로 가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齊必興師而伐梁(제필흥사이벌량) : 가면 제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梁齊之兵連于城下而不能相去,

梁齊之兵連於城下(량제지병연어성하) : 그리하여 위나라와 제나라 군사가 성 아래에 잇달아 밀고 당기고 하면서

而不能相去(이불능상거) : 서로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王以其間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毋伐,以臨周,祭器必出。〔4〕

王以其閒伐韓(왕이기한벌한) : 임금은 그 틈을 타서 한나라를 치고

入三川(입삼천) : 삼천 땅에 들어가서

出兵函谷而毋伐(출병함곡이무벌) :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끌내어 별로 싸울 것도 없이

以臨周(이임주) : 주나라로 나아가시면

祭器必出(제기필출) : 천자의 제기는 반드시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挾天子,按圖籍,此王業也。”

挾天子(협천자) : 천자를 끼고

按圖籍(안도적) : 천자의 지도와 장부를 통할하는 것이야말로

此王業也(차왕업야) : 왕자의 사업입니다.

秦王以為然,乃具革車三十乘,〔5〕入儀之梁。〔6〕齊果興師伐之。

秦王以爲然(진왕이위연) : 진왕은 정녕코 그러리라고 생각하여

乃具革車三十乘(내구혁차삼십승) : 수레 30채를 갖추어

入儀之梁(입의지량) : 장의를 위나라에 보냈다.

齊果興師伐之(제과흥사벌지) : 과연 제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쳤다.

梁哀王恐。〔7〕張儀曰:“王勿患也,請令罷齊兵。”

梁哀王恐(량애왕공) : 위애왕이 두려워하자

張儀曰(장의왈) : 장의는 말하기를

王勿患也(왕물환야) : “임금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請令罷齊兵(청령파제병) : 제나라 군사를 붙들어다가 보여드리겠습니다.”고 하였다.

乃使其舍人馮喜之楚,借使之齊,謂齊王曰:“王甚憎張儀;雖然,亦厚矣王之托儀于秦也!”

乃使其舍人馮喜之楚(내사기사인풍희지초) : 그리하여 사인 풍희를 초나라에 보내어

借使之齊(차사지제) : 초나라 사자의 명의를 빌려서 제나라에 들여보내

謂齊王曰(위제왕왈) : 제왕에게 말하기를

王甚憎張儀(왕심증장의) : “임금님은 매우 장의를 미워하십니다.

雖然(수연) : 그러면서도

亦厚矣王之託儀於秦也(역후의왕지탁의어진야) : 장의로 하여금 진나라의 신뢰를 얻도록 함이 또 어찌 그리도 두텁습니까.”하니

齊王曰:“寡人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何以托儀?”

齊王曰(제왕왈) : 제왕이 말하기를

寡人憎儀(과인증의) : “과인은 장의를 미워하오.

儀之所在(의지소재) : 장의가 있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必興師伐之(필흥사벌지) : 반드시 군사를 동원하여 그 나라를 칠 각오요

何以託儀(하이탁의) : 어째 진나라가 장의를 신뢰토록 한다는 것입니까?” 하니

對曰:“是乃王之托儀也。夫儀之出也,固與秦王約曰:

對曰(대왈) : 풍희가 대답하기를,

是乃王之託儀也(시내왕지탁의야) : “그렇습니다 임금은 장의를 진나라가 믿도록 하는 것이 됩니다.

夫儀之出也(부의지출야) : 대체로 장의가 진나라에서 위나라로 감에 있어서

固與秦王約曰(고여진왕약왈) : 진왕과 약속하여 말하기를,

‘為王計者,東方有大變,然后王可以多割得地。

爲王計者(위왕계자) : ‘임금을 위해 계교를 생각하건대

東方有大變(동방유대변) : 동방에 큰 변란이 있고서야

然後王可以多割得地(연후왕가이다할득지) : 임금은 제후의 땅을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今齊王甚憎儀,儀之所在,必興師伐之。

今齊王甚憎儀(금제왕심증의) : 이제 제나라 왕은 매우 장의를 미워한다.

儀之所在(의지소재) : 장의가 체류하는 나라에는

必興師伐之(필흥사벌지) :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나라를 치리라.

故儀愿乞其不肖之身之梁,齊必興師伐之。齊梁之兵連于城下而不能相去,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고의원걸기불초지신지량) : 그러므로 장의를 유가를 청하여 위나라에 가도록 허락을 빌면서

齊必興師伐之( 제필흥사벌지) : 자기가 가면 반드시 제나라 군사가 위나라를 칠 것이고

齊梁之兵連於城下(제량지병연어성하) : 그리하여 제나라와 위나라의 군사가 성 아래에서 싸우면서

而不能相去(이불능상거) : 서로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王以其間伐韓,入三川,出兵函谷而無伐,以臨周,祭器必出。

王以其閒伐韓(왕이기한벌한) : 임금은 그 틈을 타서 한나라를 치고

入三川(입삼천) : 삼천 땅에 들어가서

出兵函谷而無伐(출병함곡이무벌) :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동원하여

以臨周(이임주) : 그대로 주나라에 나아가면

祭器必出(제기필출) : 천자의 제기는 반드시 손에 넣게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挾天子,案圖籍,此王業也。’

挾天子(협천자) : 천자를 끼고

案圖籍(안도적) : 안적을 살피는 것

此王業也(차왕업야) : 이것이 왕업이다.

秦王以為然,故具革車三十乘而入之梁也。今儀入梁,王果伐之,

秦王以爲然(진왕이위연) : 진왕은 정녕 그렇게 되리라.

故具革車三十乘(고구혁차삼십승) : 생각하여 수레 30채를 갖추어

而入之梁也(이입지량야) : 그를 위나라에까지 보냈습니다.

今儀入梁(금의입량) : 이제 장의는 위나라에 있고

王果伐之(왕과벌지) : 임금은 과연 위나라를 쳤습니다.

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8〕廣鄰敵以內自臨,而信儀于秦王也。

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시왕내파국이외벌여국) : 이것이 임금께서는 안으로 국력을 소모하고박으로 동맹한 나라를 쳐서

廣鄰敵以內自臨(광린적이내자임) : 이웃 나라를 적으로 만들고 우리 편에서 손을 써서

而信儀於秦王也(이신의어진왕야) : 장의를 진왕이 신용토록 한 것입니다.

此臣之所謂‘托儀’也。”齊王曰:“善。” 乃使解兵。〔9〕

此臣之所謂(차신지소위) : 신은 이것을

託儀也(탁의야) : 장의로 하여금 진나라가 신용하게 하였다는 연유로 말씀드립니다,”고 하니

齊王曰善(제왕왈선) : 제나라 왕은 이르기를 ‘옳은 말이오.’라고 하고

乃使解兵(내사해병) : 곧 군사를 물렀다.

【注釋】〔1〕“齊讓又至”,齊派使者責難秦用張儀。“讓”,責備。

〔2〕“柰何”,怎么樣。“柰”,同“奈”。〔3〕“不肖之身”,對自己的謙稱。“肖”,賢。

〔4〕“祭器”,鐘鼎之類的器物。〔5〕“革車”,兵車。

〔6〕“入儀之梁”,“儀”字是衍文,《戰國策·齊策二》作“納之梁”。“入”,同“納”。

〔7〕“梁哀王”,應為梁襄王,公元前三一八年至前二九六年在位。

〔8〕“罷”,同“疲”。“與國”,同盟國。〔9〕“解兵”,停止用兵。

  張儀相魏一歲,卒于魏也。陳軫者,游說之士。與張儀俱事秦惠王,皆貴重,爭寵。

張儀相魏一歲(장의상위일세) : 장의는 위나라 재상이 된 지 1년만에

卒於魏也(졸어위야) : 위나라에서 죽었다.

陳軫者(진진자) : 진진은

游說之士(유설지사) : 유세를 일로 하는 사람이었다.

與張儀俱事秦惠王(여장의구사진혜왕) : 장의와 함께 진혜왕을 섬기고

皆貴重(개귀중) : 함께 중직에 올라

爭寵(쟁총) : 임금의 사랑을 다투었다

張儀惡陳軫于秦王曰:〔1〕“軫重幣輕使秦楚之間,〔2〕將為國交也。

張儀惡陳軫於秦王曰(장의악진진어진왕왈) : 장의가 지진을 진왕에게 나쁘게 말하기를

軫重幣輕使秦楚之閒(진중폐경사진초지한) : “진이 예물을 정중히 마련하여 진나라와 초나라의 사이에 몸 가볍게 사신으로 다니는 것은

將爲國交也(장위국교야) : 국교에 공헌하려고 하는 일입니다.

今楚不加善于秦而善軫者,軫自為厚而為王薄也。

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금초불가선어진이선진자) : 그런데 초나라가 진나라에 친교를 더하지 않고

軫自爲厚而爲王薄也(진자위후이위왕박야) : 진을 친하는 것은 진이 자기 스스로의 일을 두텁게 하고 임금을 위한 일은 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且軫欲去秦而之楚,王胡不聽乎?”

且軫欲去秦而之楚(차진욕거진이지초) : 진은 진나라를 떠나서 초나라에 가는 것을 바라는데

王胡不聽乎(왕호불청호) : 임금은 어째서 허락하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王謂陳軫曰:“吾聞子欲去秦之楚,有之乎?”

王謂陳軫曰(왕위진진왈) : 왕은 진진에게 말하기를,

吾聞子欲去秦之楚(오문자욕거진지초) : “듣건대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서 초나라로 가는 것을 바란다니

有之乎(유지호) : 그것이 사실이오?”라고 하였다.

軫曰:“然。”

軫曰然(진왈연) : 진진이 이르기를 “사실입니다.”고 하니

王曰:“儀之言果信矣。”

王曰(왕왈) : 임금은 말하기를,

儀之言果信矣(의지언과신의) : “장의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군요.”하니

軫曰:“非獨儀知之也,行道之士盡知之矣。

軫曰(진왈) : 진이 말하기를,

非獨儀知之也(비독의지지야) : “장의만이 아니라

行道之士盡知之矣(행도지사진지지의) : 길 가는 사람들까지도 다 압니다.

昔子胥忠于其君而天下爭以為臣,〔3〕曾參孝于其親而天下愿以為子。〔4〕

昔子胥忠於其君(석자서충어기군) : 옛날에 오자서도 그 임금에게 충성하여서

而天下爭以爲臣(이천하쟁이위신) : 천하 제후들이 서로 다투어 자서와 같은 사람을 신하로 맞아들이고자 하였고

曾參孝於其親(증삼효어기친) : 증삼은 어버이에게 효도하여

而天下願以爲子(이천하원이위자) : 천하 어버이들은 모두 증삼과 같은 아들을 두기를 원하였습니다.

故賣仆妾不出閭巷而售者,〔5〕良仆妾也;

故賣僕妾不出閭巷而售者(고매복첩불출여항이수자) : 그와 같은 일로서 종을 파는데 마을 안에서 팔리면

良僕妾也(량복첩야) : 좋은 종입니다.

出婦嫁于鄉曲者,〔6〕良婦也。今軫不忠其君,楚亦何以軫為忠乎?

出婦嫁於鄕曲者(출부가어향곡자) : 여자가 그 안에서 재혼할 수 있으면

良婦也(량부야) : 어진 여자입니다.

今軫不忠其君(금진불충기군) : 이제 진이 임금에게 충성치 못한다면

楚亦何以軫爲忠乎(초역하이진위충호) : 초나라에선들 어찌 진을 충성을 아는 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忠且見棄,軫不之楚何歸乎?”

忠且見弃(충차견기) : 충성된 자가 이제는 버림을 바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軫不之楚何歸乎(진불지초하귀호) : 진은 초나라에 가지 않고서 어디에다 몸을 의탁하겠습니까?”

王以其言為然,遂善待之。

王以其言爲然(왕이기언위연) : 임금은 그 말을 듣고 과연 옳은 말이라 하여

遂善待之(수선대지) : 마침내 그로부터 후대하였다.

 【注釋】〔1〕“惡”,中傷,音wù。〔2〕“重”,厚。“幣”,玉、馬、皮、帛等禮物。“輕”,頻繁。

〔3〕“子胥”,姓伍,名員,楚人,后仕吳。吳王夫差時因勸王拒絕越國求和,被疏遠。后吳王賜劍,命他自殺。

〔4〕“曾參”,春秋時魯國人,孔子弟子,以孝著稱。〔5〕“閭巷”,里巷。

〔6〕“出婦”,被丈夫遺棄的婦女。“鄉曲”,鄉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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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七十

張儀列傳 第十

장의열전 제10-6

  張儀去,西說趙王曰:〔1〕“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于大王。

張儀去(장의거) : 장의는 제나라를 떠나

西說趙王曰(서설조왕왈) : 서쪽 조왕에게 유세하기를

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폐읍진왕사사신효우계어대왕) : ‘우리 진나라 왕이 신을 사자로 보내어 계책을 대왕께 말씀드리라고 합니다.

大王收率天下以賓秦,〔2〕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大王之威行于山東,

大王收率天下以賓秦(대왕수솔천하이빈진) : 대왕은 천하 제후를 영도하여 진나라를 배척하였으며

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진병불감출함곡관십오년) : 여기 대해 진나라는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내지 않은 지 15년에

大王之威行於山東(대왕지위행어산동) : 대왕의 위력은 산동에 두루 미칩니다.

敝邑恐懼懾伏,〔3〕繕甲厲兵,〔4〕飾車騎,〔5〕習馳射,

敝邑恐懼懾伏(폐읍공구섭복) : 우리 진나라는 이를 두려워하여

繕甲厲兵(선갑려병) : 갑옷을 기워 고치고 무기를 갈고

飾車騎(식차기) : 거마를 꾸미어

習馳射(습치사) :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연습하고

力田積粟,守四封之內,愁居懾處,不敢動搖,唯大王有意督過之也。〔6〕

力田積粟(력전적속) :경작에 힘서 양식을 저축하고

守四封之內(수사봉지내) : 국내만을 지키어

愁居懾處(수거섭처) : 나라의 일을 걱정하며

不敢動搖(불감동요) : 감히 동요하지 않은 것은

唯大王有意督過之也(유대왕유의독과지야) : 오직 대왕에게 진나라를 감시하는 조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注釋】〔1〕“趙王”,據《傳》文,張儀說趙在秦?惠王后元十四年(公元前三一一年),

當趙武靈王十五年。趙武靈王名雍,公元前三二五年至前二九九年在位。

〔2〕“賓”,通“擯”,排斥。〔3〕“懾伏”,因畏懼而屈服。

〔4〕“繕甲厲兵”,整治軍裝,磨快武器。“繕”,整治。“厲”,磨礪。

〔5〕“飾”,通“飭”,整飭。〔6〕“督過”,深深地責備。

  “今以大王之力,舉巴蜀,〔1〕并漢中,〔2〕包兩周,遷九鼎,〔3〕守白馬之津。〔4〕

今以大王之力(금이대왕지력) : 이제야 대왕의 덕택으로

擧巴蜀(거파촉) : 파·촉을 공략하여

幷漢中(병한중) : 한중을 병합하고

包兩周(포양주) : 양주를 포용하여

遷九鼎(천구정) : 구정을 돌려주고

守白馬之津(수백마지진) : 백마의 나무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秦雖僻遠,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

秦雖僻遠(진수벽원) : 진나라는 비록 변방 나라이지만

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연이심분함노지일구의) : 오랫동안 마음에 분함과 원한을 품은지 오래되었습니다.

今秦有敝甲凋兵,〔5〕軍于澠池,愿渡河踰漳,據番吾,會邯鄲之下,

今秦有敝甲凋兵(금진유폐갑조병) : 이제 진나라의 무장한 군사는 피곤하고 쇠약하다고는 하지만

軍於澠池(군어민지) : 민지에 진을 쳤습니다.

願渡河踰漳(원도하유장) : 바라는 것은 하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

據番吾(거번오) : 번오를 근거지로 하여

會邯鄲之下(회감단지하) : 조나라 서울 한단의 성 아래에 모이고

愿以甲子合戰,〔6〕以正殷紂之事,〔7〕敬使使臣先聞左右。

願以甲子合戰(원이갑자합전) : 또 갑자일에 조군과 대전하여

以正殷紂之事(이정은주지사) : 은나라 주왕의 고사를 본떠서 사리의 그릇됨을 바루고자 합니다 .

敬使使臣先聞左右(경사사신선문좌우) : 삼가 사신에게 명하여 이를 좌우 측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注釋】〔1〕“舉巴蜀”,據《六國年表》,秦滅蜀在惠文王后九年(公元前三一六年),

當趙武靈王十年。

〔2〕“并漢中”,據《秦本紀》及《楚世家》,秦惠王后十三年(公元前三一二年),

取楚漢中,當趙武靈王十四年。

〔3〕“包兩周,遷九鼎”,這不合事實,據《六國年表》,秦取兩周在莊襄王元年(公元前二四九年),

當趙孝成王十七年,這時張儀已死六十一年。

〔4〕“白馬之津”,古津渡名,在今河南滑縣東北。

〔5〕“敝甲凋兵”,這是對秦軍的謙辭。“敝甲”,破舊的甲衣。“凋兵”,殘缺的兵器。

〔6〕“甲子合戰”,甲子是周武王克商的日子。〔7〕“殷紂”,商朝最后一代君主。

  “凡大王之所信為從者恃蘇秦。蘇秦熒惑諸侯,〔1〕以是為非,以非為是,欲反齊國,而自令車裂于市。

凡大王之所信爲從者恃蘇秦(범대왕지소신위종자시소진) : 대체로 대왕게서 합종의 유리함을 믿은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蘇秦熒惑諸侯(소진형혹제후) : 소진은 제후를 현혹시켜

以是爲非(이시위비) : 옳은 것을 그르다고 말하고

以非爲是(이비위시) : 그른 것을 옳다고 하여

欲反齊國(욕반제국) : 제나라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다가

而自令車裂於市(이자령차열어시) : 일이 발각되자 자원하여 장터에서 거열형을 받았습니다.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今楚與秦為昆弟之國,而韓梁稱為東藩之臣,〔2〕齊獻魚鹽之地,〔3〕此斷趙之右臂也。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부천하지불가일역명의) : 그런 사람의 으로 하여 천하가 연합되지 않을 것은 처음부터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今楚與秦爲昆弟之國(금초여진위곤제지국) : 이제야 초나라는 진나라와 형제의 나라가 되고

而韓梁稱爲東藩之臣(이한량칭위동번지신) : 한나라 위나라는 동번의 신하라고 일컬어 진나라를 섬기고

齊獻魚鹽之地(제헌어염지지) : 제나라는 고기와 소금이 나는 지대를 진나라에 바쳤습니다.

此斷趙之右臂也(차단조지우비야) : 이것은 조나라의 오른 팔을 끊은 것과 같습니다.

夫斷右臂而與人斗,失其黨而孤居,求欲毋危,豈可得乎!

夫斷右臂而與人鬪(부단우비이여인투) : 무릇 오는팔을 끊기어 남과 싸우고

失其黨而孤居(실기당이고거) : 도당을 잃어 고립되면

求欲毋危(구욕무위) : 나라의 편안을 바란다고 해도

豈可得乎(개가득호) :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

  【注釋】〔1〕“熒惑”,眩惑。

〔2〕“韓梁稱為東藩之臣”,這不合史實。據《秦本紀》,“韓王入朝,魏舉國聽命”,

在秦昭襄王五十三年(公元前二五四)年,時張儀已死五十五年。

又據《秦始皇本紀》,韓稱臣于秦在秦始皇十三年(公元前二三四年),距張儀之死已七十五年。

〔3〕“齊獻魚鹽之地”,這是夸大的話,當時并無其事。

  “今秦發三將軍:其一軍塞午道,〔1〕告齊使興師渡清河,軍于邯鄲之東;一軍軍成皋,驅韓梁軍于河外;〔2〕

今秦發三將軍(금진발삼장군) : 이제 진나라가 3장군을 파견하면

其一軍塞午道(기일군색오도) : 1군은 오도를 막고

告齊使興師渡淸河(고제사흥사도청하) : 제나라에 통고하여 군사를 내게 하고 청하를 건너서

軍於邯鄲之東(군어감단지동) : 조나라 한단 동쪽에 진을 치고

一軍軍成皐(일군군성고) : 일군은 성고에 진을 치고

驅韓梁軍於河外(구한량군어하외) : 한나라와 위나라 군대를 하외로 몰아낼 것입니다.

一軍軍于澠池。約四國為一以攻趙,趙破,必四分其地。

一軍軍於澠池(일군군어민지) : 1군은 민지에 진을 치고

約四國爲一以攻趙(약사국위일이공조) : 진·제·한·위의 네 나라가 한 몸이 되어 조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趙服(조복) : 조나라가 패하면

必四分其地(필사분기지) : 토지는 반드시 네 나라가 분할합니다.

是故不敢匿意隱情,先以聞于左右。臣竊為大王計,莫如與秦王遇于澠池,面相見而口相結,

是故不敢匿意隱情(시고불감익의은정) : 이 일을 굳이 숨기지 않고

先以聞於左右(선이문어좌우) : 미리 좌우에 말씀 드리는 것은

臣竊爲大王計(신절위대왕계) : 신이 은근히 대왕을 위해 생각하건대

莫如與秦王遇於澠池(막여여진왕우어민지) : 진왕과 민지에서 회견하고

面相見而口相結(면상견이구상결) : 서로 얼굴을 맞재어 직접 구두로써 서로 친선을 맺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請案兵無攻。〔3〕愿大王之定計。”

請案兵無攻(청안병무공) : 청컨대 그리하여 진나라의 출병을 역제하고 진나라에서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願大王之定計(원대왕지정계) : 대왕께서 방책을 정하시기 바랍니다.“고 말했다.

  【注釋】〔1〕“午道”,縱橫交錯的重要通路,在趙東齊西。

〔2〕“河外”,地區名,指黃河以南,今河南鄭州市至滑縣一帶。

〔3〕“案兵”,止兵不動。“案”,通“按”。

  趙王曰:“先王之時,〔1〕奉陽君專權擅勢,〔2〕蔽欺先王,獨擅綰事,〔3〕

趙王曰(조왕왈) : 조왕이 말하기를

先王之時(선왕지시) : “선대 숙후 때에

奉陽君專權擅勢(봉양군전권천세) : 아우 봉양군이 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러

蔽欺先王(폐기선왕) : 숙후를 속이고

獨擅綰事(독천관사) : 정치를 독단하였지요.

寡人居屬師傅,〔4〕不與國謀計。〔5〕先王棄群臣,〔6〕寡人年幼,奉祀之日新,心固竊疑焉,

寡人居屬師傅(과인거속사부) : 과인은 구에 있어서 스승에게 배우며

不與國謀計(불여국모계) : 나라의 계책에 참여한 일이 없었소.

先王弃羣臣(선왕기군신) : 선왕이 작고하시자

寡人年幼(과인년유) : 과인은 연소한 나이로 즉위하여

奉祀之日新(봉사지일신) : 종묘에 제사를 받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아

心固竊疑焉(심고절의언) : 합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마음속으로 미심쩍었소.

以為一從不事秦,非國之長利也。乃且愿變心易慮,割地謝前過以事秦。

以爲一從不事秦(이위일종불사진) : 그 뒤에 합종 때문에 진나라를 섬기지 못하는 것은

非國之長利也(비국지장리야) : 국가 장구한 이익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되어

乃且願變心易慮(내차원변심역려) : 종래의 생각을 고치고

割地謝前過以事秦(할지사전과이사진) : 토지를 쪼개어 전날의 과오를 사과하고 진나라를 섬기기를 원하였소.

方將約車趨行,〔7〕適聞使者之明詔。”

方將約車趨行(방장약차추행) : 그리하여 마침 수레에 말을 매어 진나라의 조정을 참례하려는 때에

適聞使者之明詔(적문사자지명조) : 이렇게 사자를 보낸 밝은 처분을 받았습니다.”고 했다.

趙王許張儀,張儀乃去。

趙王許張儀(조왕허장의) : 조왕이 장의의 말을 받아들이자

張儀乃去(장의내거) : 장의는 다시 조나를 떠났다.

  【注釋】〔1〕“先王之時”,先王指趙武靈王父趙肅侯。

〔2〕“奉陽君專權擅勢”,這不合事實。奉陽君李兌專權在趙武靈王子趙惠文王時。

〔3〕“擅”,攬。“綰”,控扼。〔4〕“屬”,付托。〔5〕“與”,參與。

〔6〕“棄群臣”,對死亡的避忌說法。〔7〕“趨”,同“趣”,

趣向北之燕,說燕昭王曰:〔1〕“大王之所親莫如趙。

北之燕(북지연) : 북쪽 연나라로 가서

說燕昭王曰(설연소왕왈) : 연나라 소왕에게 유세하기를

大王之所親莫如趙(대왕지소친막여조) : “대왕게서 가장 친하게 교제하는 나라는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昔趙襄子嘗以其姊為代王妻,〔2〕欲并代,

昔趙襄子嘗以其姊爲代王妻(석조양자상이기자위대왕처) : 그러나 조나라는 옛날 조양자 때에 누이를 대왕의 아내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欲幷代(욕병대) : 그것은 대나라를 병합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

約與代王遇于句注之塞。〔3〕乃令工人作為金斗,長其尾,〔4〕令可以擊人。

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약여대왕우어구주지새) : 그리하여 대왕과 구주산의 성채에서 회견하기를 약속하는 한편

乃令工人作爲金斗(내령공인작위금두) : 공인에게 명하여 금두를 만들게 하고

長其尾(장기미) : 그 자루를 길게 하여

令可以擊人(령가이격인) : 사람을 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與代王飲,陰告廚人曰:‘即酒酣樂,進熱啜,〔5〕反斗以擊之。’〔6〕

與代王飮(여대왕음) : 대왕과 술을 마실 때

陰告廚人曰(음고주인왈) : 가만히 요리사에게 이러두기를

卽酒酣樂(즉주감락) : ‘주인이 한창 흥겨워질 때에

進熱啜(진열철) : 금두로 뜨거운 음식을 권하고

反斗以擊之(반두이격지) : 그것을 거꾸로 쥐어 대왕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于是酒酣樂,進熱啜,廚人進斟,〔7〕因反斗以擊代王,殺之,

於是酒酣樂(어시주감락) : 그리하여 주련 도중에 환락이

進熱啜(진열철) : 익어갈 때

廚人進斟(주인진짐) : 요리사는 명령한 대로

因反斗以擊代王(인반두이격대왕) : 금두를 거꾸로 장아 대왕을 쳐서

殺之(살지) : 죽였습니다.

王腦涂地。其姊聞之,因摩笄以自刺,〔8〕故至今有摩笄之山。〔9〕代王之亡,天下莫不聞。

王腦塗地(왕뇌도지) : 임금은 골이 쏟아져서 땅에 흩어졌습니다.

其姊聞之(기자문지) : 조양자의 누이는 그 말을 듣고

因摩笄以自刺(인마계이자자) : 비녀를 날카롭게 갈아서 스스로 찔러 자결했습니다.

故至今有摩笄之山(고지금유마계지산) : 그런 가닭에 지금도 마계라는 이름의 산이 있습니다.

代王之亡(대왕지망) : 대왕의 죽음은

天下莫不聞(천하막불문) : 천하에서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注釋】〔1〕“燕昭王”,名職,燕王噲的庶子,公元前三一一年至前二七九年在位。

〔2〕“趙襄子”,趙鞅之子,名無恤,春秋末年晉國大夫,與韓、魏兩家三分晉國。

“代王”,代,國名,在今河北蔚縣東北。其時代未稱王,當作“代君”。

〔3〕“句注”,山名,在今山西代縣西北,即雁門山。

〔4〕“金斗”,銅作的口大底小的方形器皿,有柄。〔5〕“熱啜”,熱羹。“啜”,音chuò。

〔6〕“反斗以擊之”,指把斗底反過來擊代君的頭部。〔7〕“進斟”,進到席間倒羹汁。

〔8〕“摩”,同“磨”。“笄”,古代婦女用來挽發的簪子。〔9〕“摩笄山”,在今河北涿鹿縣東北。

  “夫趙王之很戾無親,〔1〕大王之所明見,且以趙王為可親乎?

夫趙王之很戾無親(부조왕지흔려무친) : 이와 같이 조왕이 무도하고 인정이 없는 것은

大王之所明見(대왕지소명견) : 대왕도 잘 아실 것입니다.

且以趙王爲可親乎(차이조왕위가친호) : 그런데 누가 조왕과 친할 생각을 가지겠습니까?

趙興兵攻燕,〔2〕再圍燕都而劫大王,大王割十城以謝。

趙興兵攻燕(조흥병공연) : 일찍이 조나라는 군사를 출동하여 연나라를 공격하고

再圍燕都而劫大王(재위연도이겁대왕) : 다시 연나라 서울을 포위하여 대왕을 위협했으므로

大王割十城以謝(대왕할십성이사) : 대왕은 10개 성을 쪼개어 사죄하였습니다.

今趙王已入朝澠池,效河間以事秦。

今趙王已入朝澠池(금조왕이입조민지) : 그런데 조왕은 지금 민지에 참조하여

效河閒以事秦(효하한이사진) : 하간 땅을 제공하고 진나라를 섬깁니다.

今大王不事秦,秦下甲云中、九原,〔3〕驅趙而攻燕,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4〕

今大王不事秦(금대왕불사진) : 이제 만약 대왕이 진나라를 섬기지 않으면

秦下甲雲中九原(진하갑운중구원) : 진나라는 군사를 운중과 구원으로 보내어

驅趙而攻燕(구조이공연) : 조나라를 끌어내서 연나라를 칠 것입니다.

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칙역수장성비대왕지유야) : 그렇게 되면 역구와 장성도 대왕의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注釋】〔1〕“很”,通“狠”,兇狠。“戾”,暴戾。

〔2〕“趙興兵攻燕”三句,此事不見于記載。

〔3〕“云中”,郡名,趙武靈王所置,轄境相當于今內蒙土默特右旗以東,大青山以南,

卓資縣以西,長城以北。“九原”,趙邑,秦后于此置縣,治所在今內蒙包頭市西。

〔4〕“易水”,水名,在今河北省境內,源出河北易縣西,東流至定興縣西南,與拒馬河合。

“長城”,指燕的南長城,在今河北易縣西南。

  “且今時趙之于秦猶郡縣也,不敢妄舉師以攻伐。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차금시조지어진유군현야) : 오늘날 조나라의 진나라에 대한 처지는 마치 진나라의 고을과 같으니

不敢妄擧師以攻伐(불감망거사이공벌) : 조나라가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今王事秦,秦王必喜,趙不敢妄動,

今王事秦(금왕사진) : 이제 임금께서 진나라를 섬기면

秦王必喜(진왕필희) : 진왕은 반드시 기뻐하고

趙不敢妄動(조불감망동) : 조나라도 망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是西有強秦之援,而南無齊趙之患,是故愿大王孰計之。”

是西有彊秦之援(시서유강진지원) : 이것은 서쪽에 강진의 원조가 있어

而南無齊趙之患(이남무제조지환) : 남쪽의 제나라와 조나라의 화근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是故願大王孰計之(시고원대왕숙계지)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생각을 깊이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했다.

  燕王曰:“寡人蠻夷僻處,雖大男子裁如嬰兒,〔1〕言不足以采正計。

燕王曰(연왕왈) : 연왕이 이르기를

寡人蠻夷僻處(과인만이벽처) : “과인은 미개한 변방 오랑캐 땅에 있어서

雖大男子裁如嬰兒(수대남자재여영아) : 신체는는 장부와 같으나 지혜는 어린 아이와 같아서

言不足以采正計(언불족이채정계) : 과인의 생각 같은 것은 정당한 계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今上客幸教之,請西面而事秦,獻恒山之尾五城。”〔2〕

今上客幸敎之(금상객행교지) : 이제 다행히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얻었소.

請西面而事秦(청서면이사진) : 바라건대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겨

獻恆山之尾五城(헌긍산지미오성) : [연왕은] 항산 기슭 5개 성을 진나라에 바치겠습니다. ”고 하였다.

燕王聽儀。儀歸報,未至咸陽而秦惠王卒,武王立。〔3〕

燕王聽儀(연왕청의) : 장의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儀歸報(의귀보) : 장의는 보고하려 진나라로 돌아왔는데

未至咸陽而秦惠王卒(미지함양이진혜왕졸) : 함양에 도착하기 전에 진혜왕이 죽고

武王立(무왕입) : 대신 무왕이 섰다.

武王自為太子時不說張儀,〔4〕及即位,群臣多讒張儀曰:

武王自爲太子時不說張儀(무왕자위태자시불설장의) : 무왕은 태자 때부터 장의를 싫어하였으므로

及卽位(급즉위) : 즉위하자

羣臣多讒張儀曰(군신다참장의왈) : 여러 신하들이 장의를 무고 하였다.

“無信,左右賣國以取容。秦必復用之,恐為天下笑。”

無信(무신) :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내로서

左右賣國以取容(좌우매국이취용)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며 자기의 출세만을 생각합니다.

秦必復用之(진필복용지) : 만일 진나라가 굳이 그를 등용한다면

恐爲天下笑(공위천하소) : 아마도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고 했다.

諸侯聞張儀有郤武王,〔5〕皆畔衡,復合從。〔6〕

諸侯聞張儀有卻武王(제후문장의유각무왕) : 제후들은 장의가 무왕과 사이가 나쁘고 틈이 있다는 것을 듣자

皆畔衡(개반형) : 모두 연횡을 반대하여

復合從(복합종) : 다시 합종을 하기에 이르렀다.

【注釋】〔1〕“裁”,通“才”,僅僅。

〔2〕“恒山”,古山名,在今河北曲陽西北與山西接界處。恒山之尾,在燕的西南界。

〔3〕“武王”,秦武王,名蕩,惠文王子,公元前三一○年至前三○七年在位。

〔4〕“說”,通“悅”。〔5〕“郤”,通“隙”,裂痕。

〔6〕“畔”,通“叛”。“衡”,通“橫”,戰國后期,指東方各國與秦聯合。“合從”,指六國合縱抗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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