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4

因東說齊宣王[一]曰:

「齊南有泰山,東有琅邪,

西有清河,[二]北有勃海,

北所謂四塞之國也。

그리하여 다음은 동쪽으로 가서 제선왕에게 말했다.

“제나라는 남쪽에 태산, 동쪽에 낭야가 있고

서쪽에 청하, 북쪽에 발해가 있습니다.

이른바 이것이야말로 사면이 다 요새지인 나라입니다.

齊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粟如丘山。

三軍之良,五家之兵,[三]

進如鋒矢,[四]戰如雷霆,解如風雨。

제나라의 토지는 사방 2천여 리,

무장 병력 수십만, 양곡은 산더미 같고

삼군의 정예와 오가의 병은

빠르기가 화살 같고, 싸움을 하기는 우뢰와 같고,

흩어버리기는 풍우와 같이 빠릅니다.

卽有軍役,未嘗倍泰山,

絕清河,涉勃海也。[五]

臨菑之中七萬戶,

군역의 징발이 있어도

일찍이 태산을 등지고

청하를 건너고 발해를 넘어

임치의 안에 7만 호가 있습니다.

臣竊度之,不下戶三男子,三七二十一萬,

不待發於遠縣,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

신이 가만히 헤아려보아도

대체로 쳐도 한 집에 평균 세 사람의 남자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21만이 됩니다.

멀리 떨어진 현에서 징병을 기다리지 않아도

임치의 병졸만 이미 20만 명입니다.

臨菑甚富而實,其民無不吹竽鼓瑟,

彈琴擊筑,[六]鬪雞走狗,六博[七]蹋鞠[八]者。

임치는 매우 부유하고 비옥한 토지라

주민들은 피리를 불고 큰거문고를 퉁기고

거문고를 타며 축을 두드리고

닭싸움과 개의 경주,

또는 윷놀이 공차기 등을 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臨菑之塗,車轂擊,

人肩摩,連衽成帷,

임치의 도로는 번잡하고

수렛대가 서로 부짖치며

사람의 어깨와 어깨가 서로 닿고

옷깃이 이어지면 마치 장막을 친 것 같고

舉袂成幕,揮汗成雨,

家殷人足,志高氣揚。

치마가 날리면 마치 천막 같고

땀을 뿌리면 비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집집이 번창하고 사람마다 유족하고

기개와 뜻이 높습니다.

夫以大王之賢與齊之彊,天下莫能當。

今乃西面而事秦,臣竊為大王羞之。

대왕의 현명함과 제나라의 굳센 힘으로 당하면

천하에 대항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려 하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할 때 대왕을 위해서 부끄러워집니다.

注[一]索隱世本名辟彊,威王之子也。

注[二]正義貝州。

注[三]索隱按:高誘注戰國策云「五家五國也」。

注[四]索隱按;戰國策作「疾如錐矢」。高誘曰「錐矢,小矢,喻徑疾也」。呂

氏春秋曰「所貴錐矢者,為應聲而至」。正義齊軍之進,若鋒芒之刀,良弓之矢,

用之有進而無退。

注[五]正義言臨淄自足也。絕,涉,皆度也。勃海,滄州也。齊有軍役,不用

度河取二部。

注[六]正義筑似琴而大,頭圓,五弦,擊之不鼓。

注[七]索隱按:王逸注楚詞云「博,著也。行六,故曰六博」。

注[八]集解劉向別錄曰:「鞠者,傳言黃帝所作,或曰起戰國之時。蹋鞠,兵

勢也,所以練武士,知有材也,皆因嬉戲而講練之。」蹋,徒獵反。鞠,求六

反。索隱上徒臘反,下居六反。別錄注云:「蹴踘,促六反。蹴亦蹋也。」

崔豹云:「起黃帝時,習兵之埶。」

「且夫韓、魏之所以重畏秦者,

為與秦接境壤界也。

兵出而相當,不出十日而

戰勝存亡之機決矣。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겁내는 것은

진나라와 경계를 접하기 때문인데

출병하여 서로 대전하면 열흘 일 못되어

승패존망의 기틀이 결정될 것입니다.

韓、魏戰而勝秦,

則兵半折,四境不守;

戰而不勝,則國已危亡隨其後。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와 싸우면 설령 이긴다고 하여도

병력의 절반이 꺾기고

나라의 사면의 경계는 지킬 수 없습니다.

만약 싸워서 이기지 못한다면

나라는 위험하고 마침내 멸망이 뒤따릅니다.

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戰,

而輕為之臣也。

이런 까닭에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와 싸움을 경계하고

가벼이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 섬기려고 합니다.

今秦之攻齊則不然。

倍韓、魏之地,過衛陽晉之道,[一]

徑乎亢父之險,[二]

이제 진나라가 제나라를 친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를 배후에 돌려놓고

위나라의 양진 험한 길을 통과하고

항보의 험한 땅을 횡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車不得方軌,[三]騎不得比行,

百人守險,千人不敢過也。

게다가 수레는 두 채를 나란히 세워서 갈 수가 없으며

말도 두 필이 나란히 갈 수 없으므로

백 사람이 험한 땅을 이용하여 지키면

천 명의 군사로서도 돌파할 수 없습니다.

秦雖欲深入,則狼顧,[四]

恐韓、魏之議其後也。

是故恫疑[五]虛猲,[六]

驕矜而不敢進,[七]

則秦之不能害齊亦明矣。

진나라는 깊이 침입하고 싶어도 뒤를 돌아보게 되고

한나라 위나라가 배후에서 공격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므로 진나라는 다만 겁내고 의심하여 허세로만 위협하고

교만하게 힘자랑만 할 뿐 감히 진격하지 못합니다.

그러한 즉 진나라가 제나라를 해하지 못할 것은 명백합니다.

注[一]集解徐廣曰:「魏哀王十六年,秦拔魏蒲、陽晉、封陵。」索隱按:陽

晉,魏邑也。魏系家「哀王十六年,秦拔魏蒲阪、陽晉、封陵」是也。劉氏云

「陽晉,地名,蓋適齊之道,%國之西南也」。正義言秦伐齊,背韓、魏地而與

齊戰。徐說陽晉非也,乃是晉陽耳。%地曹、濮等州也。杜預云「曹,%下邑

也」。陽晉故城在曹州乘氏縣西北三十七里。

注[二]索隱亢音剛,又苦浪反。地理志縣名,屬梁國也。正義故縣在兗州任城

縣南五十一里。

注[三]正義言不得兩車並行。

注[四]正義狼性怯,走常還顧。

注[五]索隱上音通,一音洞。恐懼也。

注[六]集解呼葛反。索隱猲,本一作「喝」,並呼葛反。高誘曰:「虛猲,喘息

懼貌也。」劉氏云:「秦自疑懼,不敢

進兵,虛作恐怯之詞,以脅韓、魏也。」

注[七]正義言秦雖至亢父,猶恐懼狼顧,虛作喝罵,驕溢矜誇,不敢進伐齊明

矣。

「夫不深料秦之無柰齊何,

而欲西面而事之,是羣臣之計過也。

이와 같이 진나라가 제나라를

어떻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신하들의 생각이 그릇된 것입니다.

今無臣事秦之名而 有彊國之實,

臣是故願大王少留意計之。」

이제부터는 신하로서 진나라를 섬기는 오명 없이

나라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참된 이익이 있습니다.

신은 이런 까닭으로

대왕께서 이런 점에 유의하여 이해를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齊王曰:

「寡人不敏,僻遠守海,

窮道東境之國也,未嘗得聞餘教。

今足下以趙王詔詔之,敬以國從。」

제왕이 말했다.

“과인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멀리 오지인 바다를 지키고

동쪽의 변두리 땅에 있어서

여태까지 말씀을 들을 수 없었소.

이제 그대로부터 조왕의 충고를 들었으니

삼가 나라를 들어 그 의견에 따르리다.”

乃西南說楚威王[一]曰:

「楚,天下之彊國也;王,天下之賢王也。

西有黔中、[二]巫郡,[三]

東有夏州、[四]海陽,[五]

南有洞庭、[六]蒼梧,[七]

北有陘塞、郇陽,[八]

다시 서남쪽 초위왕에게 말했다.

초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임금은 천하의 현명한 왕입니다.

서쪽에 금중과 무군

동쪽에 하주와 해양이 있고

남쪽에 동정과 창오가 있고

북쪽에 양새와 순양이 있으며

地方五千餘里,帶甲百萬,

車千乘,騎萬匹,粟支十年。

此霸王之資也。

토지는 사방 5천여 리에 무장 병력 백만,

병거 천 승, 기마 만 필,

곡식은 10년을 지탱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패왕이 되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夫以楚之彊與王之賢,天下莫能當也。

今乃欲西面而事秦,則諸侯莫不西面而

朝於章臺之下矣。

초나라는 강한 세력과 더불어 임금이 현명하니

천하에서 초나라에 대항할 자가 없는데

이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긴다고 하면

제후들도 서쪽을 향해

함양의 장대궁에 조회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注[一]索隱威王名商,宣王之子。

注[二]集解徐廣曰:「今之武陵也。」正義今朗州,楚黔中郡,其故城在辰州西

二十里,皆盤瓠後也。

注[三]集解徐廣曰:「巫郡者,南郡之西界。」正義巫郡,夔州巫山縣是。

注[四]集解徐廣曰:「楚考烈王元年,秦取夏州。」駰案:左傳「楚莊王伐陳,

鄉取一人焉以歸,謂之夏州」。而注者不說夏州所在。車胤撰桓溫集云:「夏口

城上數里有洲,名夏州。」「東有夏州」謂此也。索隱裴駰據左氏及車胤說夏州,

其文甚明,而劉伯莊以為夏州侯之本國,亦未為得也。正義大江中州也。夏水

口在荊州江陵縣

東南二十五里。

注[五]索隱按:地理志無海陽。劉氏云「楚之東境」。

注[六]索隱今之青草湖是也,在岳州界也。

注[七]索隱地名。地理志有蒼梧郡。正義蒼梧山在道州南。

注[八]集解徐廣曰:「春秋曰『遂伐楚,次于陘』。楚威王十一年,魏敗楚陘山。

析縣有鈞水,或者郇陽今之順陽乎?一本『北有汾、陘之塞』也。」索隱陘山

在楚北境,威王十一年,魏敗楚陘山是也。郇音荀。北有郇陽,其地當在汝南、

潁川之界。檢地理志及太康地記,北境並無郇邑。郇邑在河東,晉地。計郇陽

當是新陽,聲相近字變耳。汝南有新陽縣,應劭云「在新水之陽」,猶豳邑變為

栒,亦當然也。徐氏云「郇陽當是慎陽」,蓋其疏也。正義陘山在鄭州新鄭縣西

南三十里。順陽故城在鄭州穰縣西百四十里。

「秦之所害莫如楚,楚彊則秦弱,

秦彊則楚弱,其勢不兩立。

진나라는 방해물로서 초나를 제일로 꼽습니다

초나라가 강하면 진나라는 약해지고

진나라가 강하면 초나라는 약해지니

그 세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故為大王計,莫如從親以孤秦。

그러므로 대왕을 위해 일을 생각해 보건대

여섯 나라가 서로 화친하여

진나라를 고립하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수는 없습니다

大王不從*[親]*,秦必起兩軍,

一軍出武關,一軍下黔中,

則鄢郢動矣。[一]

대왕께서 화친하지 않으시면

진나라는 반드시 수륙의 군사를 일으켜

한 군사는 무관으로 나가고

한 군사는 금중으로 내려가므로

언과 영은 동요할 것입니다.

注[一]集解徐廣曰:「今南郡宜城。」正義鄢鄉故城在襄州率道縣南九里。安郢

城在荊州江陵縣東北六里。秦兵出武關,則臨鄢矣;兵下黔中,則臨郢矣。

「臣聞治之其未亂也,為之其未有也。

患至而后憂之,則無及已。

故願大王蚤孰計之。

신은 듣건대,

‘흩트러지기 전에 다스리고

일어나기 전에 수습한다.’는 말이 있는데

화를 만나서 걱정한다는 것은

손이 늦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일찍이 이 일을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大王誠能聽臣,

臣請令山東之國奉四時之獻,

以承大王之明詔,委社稷,

奉宗廟,練士厲兵,在大王之所用之。

만약에 대왕께서 진실로 나의 말에 따르신다면

나는 산동의 제후로 하여금 사철로 공물을 바쳐

대왕의 밝은 가르침을 신봉하게 하고

국가를 위탁하고 종묘에 봉사하고 병정을 훈련 격려하기를

대왕의 뜻대로 되게 하렵니다.

大王誠能用臣之愚計,

則韓、魏、齊、燕、趙、衛之妙音美人

必充後宮,燕、代橐駝良馬必實外廄。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계책을 따르시면

한·위·제·연·조·의 제국의 미묘한 음악과 미인은

임금의 후궁에 가득차고

연·대의 낙타와 양마는

반드시 대궐 밖의 마굿간에 가득 넘칠 것입니다.

故從合則楚王,衡成則秦帝。

今釋霸王之業,而有事人之名,

臣竊為大王不取也。

합종이 성공하면 초나라가 천하의 패자가 되고

연횡이 성공하면 진나라가 천하의 황제가 됩니다.

이제 임금께서 패업와 왕업을 버리고

남의 신하되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계책을 취하는 것은

신이 생각하기에 대왕을 위해서 제가 취할 수 없는 일입니다.

「夫秦,虎狼之國也,

有吞天下之心。秦,天下之仇讎也。

대체로 진나라는 호랑이의 나라로서

천하를 병합할 야심을 품었습니다.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입니다.

衡人皆欲割諸侯之地以事秦,

此所謂 養仇而奉讎者也。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토지를 쪼개어

진나라에 바치려고 하나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길러 원수에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夫為人臣,割其主之地

以外交彊虎狼之秦,

以侵天下,卒有秦患,不顧其禍。

무릇 남의 신하된 자가

임금의 토지를 쪼개어

호랑이인 외국 진나라와 교제하고

나아가서 천하를 침략하게 하여

마침내 진나라의 화를 생기게 하여 생기는

재앙도 돌이켜 생각해 봄이 없습니다.

夫外挾彊秦之威 以內劫其主,

以求割地,大逆不忠,無過此者。

밖으로 진나라의 위력을 빌리고 안으로 임금을 위협하여

토지를 쪼개 주기를 원한다는 것은

대역불충도 이보다 지나친 것은 없을 것입니다.

故從親 則諸侯割地 以事楚,

衡合 則楚割地 以事秦,

此兩策者相去遠矣,二者大王何居焉?

그러므로 만일 합종이 성립되면

제후는 토지를 바쳐 초나를 섬기고

연횡이 성립되면

초나라는 토지를 바쳐 진나라를 섬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책의 거리는 아주 대단히 먼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대왕께서는 어느 것을 취하려고 하십니까?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在大王詔之。」

이제 우리 나라의 조왕은 사신에게 계교를 일러 주어

대왕과 분명한 약정을 맺으려고 하니

대왕의 생각을 듣고자 합니다.”

楚王曰:

「寡人之國西與秦接境,

秦有舉巴蜀并漢中之心。

秦,虎狼之國,不可親也。

초왕이 말했다.

“과인의 나라는 서쪽이 진나라와 경계를 접했소.

진나라는 파·촉을 취하고 한중을 병합하려는 야심이 있어

진나라는 호랑이와 여우의 나라이므로 친해질 수 없고,

而韓、魏迫於秦患,不可與深謀,

與深謀恐反人 以入於秦,

故謀未發而 國已危矣。

한나라와 위나라는 진나라의 환란에 직면했으므로

함께 깊이 의논을 할 수도 없소.

의논을 한다 할지라도 배신하고

진나라에 가서 붙을 염려가 있고

그러므로 계교를 내기 전에

국가는 이미 위험해집니다.

寡人自料 以楚當秦,不見勝也;

內與羣臣謀,不足恃也。

과인 스스로 생각하건대

초나라만으로 진나라에 대항해서

초나라가 이길 수는 없고,

안으로 여러 신하의 계교가 있다 하더라도

믿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寡人臥不安席,食不甘味,

心搖搖然如縣旌而 無所終薄。[一]

과인은 자리에 누워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알지 못하고

마음이 동요하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과 같아서

도저히 안장할 수 없었습니다.

今主君欲一天下,收諸侯,

存危國,寡人謹奉社稷以從。」

이제 그대가 세상 여론을 통일하여

제후를 모아 합해서

우리 나라를 구하고자 한다면

과인은 삼가 나라를 들어서 그대 의견을 따르리다.”

於是六國從合 而并力焉。

蘇秦為從約長,并相六國。

이에 6국이 합종책을 취하여 힘을 같이 했다.

소진은 합종 동맹의 장이 되고

동시에 6국의 재상이 되었다.

北報趙王,乃行過雒陽,車騎輜重,

諸侯各發使送之甚衆,疑於王者。[一]

그래서 북쪽 조왕에게 복명하려고

도중에 낙양을 통과하는데

그의 거마와 짐은

제후로부터 사자를 시켜 보내온 물건으로 가득 차서

임금의 행차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周顯王聞之恐懼,除道,使人郊勞。[二]

주나라 현왕은 이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길가에 모인 사람들을 해산시키고

사자를 교외로 보내어 출영하고 위로하였다.

注[一]集解白洛反。

蘇秦之昆弟妻嫂

側目不敢仰視,俯伏侍取食。

소진의 형제 처족들은

눈을 내리뜨고 우러러 볼 수조차 없었으며

엎드려 기어서 식사 심부름을 하였다.

蘇秦笑謂其嫂曰:

「何前倨而後恭也?」

소진이 웃으며 형수에게 말했다.

“어째서 전에는 위세를 부리더니 이제는 이렇게도 공손하시오?”

嫂委蒲服,[三]以面掩地而謝曰:

「見季子位高金多也。」[四]

형수는 떨리는 듯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했다.

“계자님의 지위가 높고 재물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蘇秦喟然歎曰:

「此一人之身,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況衆人乎!

소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은 한 사람인데

부귀하면 친척도 우러러 보고

빈천하면 업신 여긴다.

하물며 남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는가?

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五]

吾豈能佩六國相印乎!」

만약에 나에게 낙양성 근처에 밭 두어 뙈기만 있었던들

오늘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겠는가?”

於是散千金以賜宗族朋友。

그리하여 천금을 흩어 일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初,蘇秦之燕,貸人百錢為資,

乃得富貴,以百金償之。

徧報諸所嘗見德者。

일찍이 소진은 연나라에 갈 적에

남에게서 백전을 빌려 노자로 하였는데

부귀한 몸이 되자

백금으로써 보상하고,

또 일찍이 은혜를 입었던 모든 사람에게도 모두 보상을 하였다.

其從者有一人 獨未得報,

乃前自言。

그의 하인 중 한 사람이 아직 공로의 보상을 받지 못한 자가 있어

앞에 나와 스스로 그 사실을 말하였다.

蘇秦曰:

「我非忘子。子之與我至燕,

再三欲去我易水之上,

소진이 말했다.

“네 일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함께 연나라에 갔을 적에

너는 역수 근방에서 여러 번 나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였다

方是時,我困,故望子深,

是以後子 子今亦得矣

그때 나는 곤란하여

너를 깊이 원망했다

그런 까닭으로 너를 맨 나중으로 돌려놓았던 것인데

너에게도 이제는 공로의 보상을 주리라.”

注[一]索隱疑作「擬」讀。

注[二]集解儀禮曰:「賓至近郊,君使卿朝服用束帛勞。」

注[三]索隱委謂以面掩地而進,若行也。蒲服即匍匐,並音蒲仆。

注[四]集解譙周曰:「蘇秦字季子。」索隱按:其嫂呼小叔為季子耳,未必即其

字。允南即以為字,未之得也。

注[五]索隱負者,背也,枕也。近城之地,沃潤流澤,最為膏腴,故曰「負郭」

也。

蘇秦既約六國從親,歸趙,

趙肅侯封為武安君,乃投從約書於秦。[一]

秦兵不敢闚函谷關十五年。

소진은 이미 여섯 나라와 약정하여 합종을 맺고 조나라에 돌아왔다.

조수구는 소진에게 봉읍을 주어 무안군이라 이름하고

합종의 약정을 진나라에 통고하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 군사가 함곡관으로부터 중원을 넘보지 않기를

15년 동안이나 지속했다.

注[一]索隱乃設從約書。案:諸本作「投」。言設者,謂宣布其從約六國之事以

告於秦。若作「投」,亦為易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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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3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惠王。

惠王使犀首攻魏,禽將龍賈,

取魏之雕陰,[一]且欲東兵。

이 무렵 주나라 천자는

선조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쓴 고기를 진혜왕에게 내려 주었다.

혜왕은 서수에게 명하여 위를 치고 적장 용고를 사로잡고

위나라의 조음 땅을 뺏고

군사를 동쪽으로 진군시키려고 하였다.

蘇秦恐秦兵之至趙也,

乃激怒張儀,入之于秦。

소진은 진나라 군사가 조나라에 침입하여

[합종의 방책이 깨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장의를 격노시켜 진나라로 보냈다.

注[一]索隱魏地也。劉氏曰「在龍門河之西北」。按:地理志雕陰屬上郡。正義

在鄜州洛交縣北三十四里。

於是說韓宣王[一]曰:

「韓北有鞏﹑成皋[二]之固,西有宜陽﹑商阪之塞,[三]

東有宛﹑穰﹑[四]洧水,[五]南有陘山,[六]

그리하여 선혜왕에게 이르기를

“한나라는 북쪽에 공·성고의 요새지가 있고

서쪽에 선양과 상판의 험한 땅이 요새로 되어있고

동쪽에 원·양·유수의 강물이 있고

남쪽에 경산이 있습니다.

地方九百餘里,帶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

谿子﹑[七]少府時力﹑距來者,[八]

皆射六百步之外。

토지는 사방 9백여 리에, 부장 병력은 수십만.

천하의 강궁과 경노는 다 한나라에서 만들어지고

계자 땅의 소부의 시력과 거래는

모두 6백 보의 원거리를 쏠 수 있습니다.

韓卒超足而射,[九]百發不暇止,

遠者括蔽洞胸,近者鏑弇心。

한나라 군졸이 발을 들어 석궁을 쏘면 백발 백중이며

원거리에 맞힌 것도 화살 끝이 살에 파묻히도록 가슴을 꿰뚫고

가까운 것은 화살 끝이 심장을 덮습니다

韓卒之劍戟皆出於冥山﹑[一0]

棠谿﹑[一一]墨陽﹑[一二]合賻﹑[一三]

鄧師﹑[一四]宛馮﹑[一五]龍淵﹑太阿,[一六]

皆陸斷牛馬,水截鵠鴈,當敵則斬堅甲鐵幕,[一七]

革抉[一八]簠芮,[一九]無不畢具。

한나라 군졸의 칼과 창은 모두 명산에서 만들어지고

당계·묵양· 합박·등사·원풍·용연·태하는

모두 육지 위에서는 소나 말을 근절시키고

물 가운데서는 따오기와 기러기를 떨어뜨리고

적을 만나서는 견고한 갑옷 쇠의 막을 끊고

활걸이와 방패 끈에 이르기까지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以韓卒之勇,被堅甲,

蹠勁弩,帶利劍,

一人當百,不足言也。

한나라 병정의 용감함으로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굳센 석궁을 메고 날카로운 칼을 차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당하는 것은 문제없는 일입니다.

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

乃西面事秦,交臂而服,

羞社稷而為天下笑,無大於此者矣。

是故願大王孰計之。

한나라가 이와 같은 강한 세력과 대왕의 현명함을 갖추고서

서쪽으로 진나라를 섬겨

두 손을 맞잡아 절을 하며 복종하는 것은

국가의 수치이며 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注[一]索隱按:世本韓宣王,昭侯之子也。

注[二]索隱二邑本屬東周,後為韓邑。地理志二縣並屬河南。

注[三]集解徐廣曰:「商,一作『常』。」索隱劉氏云「蓋在商洛之閒,適秦楚

之險塞」是也。正義宜陽在洛州福昌縣東十四里。商阪即商山也,在商洛縣南

一里,亦曰楚山,武關在焉。

注[四]集解宛,於袁反。索隱地理志宛﹑穰二縣名,並屬南陽。

注[五]集解洧,于鬼反。索隱音于軌反,水名,出南方。正義在新鄭東南,流

入潁。

注[六]集解徐廣曰:「召陵有陘亭。密縣有陘山。」正義在新鄭西南三十里。

注[七]集解許慎云:「南方谿子蠻夷柘弩,皆善材。」索隱按:許慎注淮南子,

以為南方谿子蠻出柘弩及竹弩。

注[八]集解韓有谿子弩,又有少府所造二種之弩。案:時力者,謂作之得時,

力倍於常,故名時力也。距來者,謂弩埶勁利,足以距來敵也。索隱韓又有少

府所造時力﹑距來二種之弩。按:時力者,謂作之得時則力倍於常,故有時力

也。距來者,謂以弩埶勁利,足以距於來敵也。其名並見淮南子。

注[九]索隱按:超足謂超騰用埶,蓋起足蹋之而射也,故下云「蹠勁弩」是也。

正義超足,齊足也。夫欲放弩,皆

坐,舉足踏弩,兩手引揍機,然始發之。

注[一0]集解徐廣曰:「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駰案:司馬彪曰

「冥山在朔州北」。索隱莊子云「南行至郢,北面而不見冥山」。司馬彪云「冥

山在朔州北」。郭象云「冥山在乎太極」。李軌云「在韓國」。

注[一一]集解徐廣曰:「汝南吳房有棠谿亭。」索隱地理志棠谿亭在汝南吳房縣。

正義故城在豫州偃城縣西八十里。鹽鐵論云「有棠谿之劍」是。

注[一二]集解淮南子曰:「墨陽之莫邪也。」索隱淮南子云「服劍者貴於剡利,

而不期於墨陽莫邪」,則墨陽匠名也。

注[一三]集解音附。徐廣曰:「一作『伯』。」索隱按:戰國策作「合伯」,春秋

後語作「合相」。

注[一四]索隱鄧國有工鑄劍,而師名焉。

注[一五]集解徐廣曰:「滎陽有馮池。」索隱徐廣云「滎陽有馮池」,謂宛人於

馮池鑄劍,故號宛馮。

注[一六]集解吳越春秋曰:「楚王召風胡子而告之曰:『寡人聞吳有干將,越有

歐冶,寡人欲因子請此二人作劍,可乎?』風胡子曰:『可。』乃往見二人,作

劍,一曰龍淵,二曰太阿。」索隱按:吳越春秋楚王令風胡子請請吳干將、越

歐冶作劍二,其一曰龍泉,二曰太阿。又太康地記曰「汝南西平有龍泉水,可

以淬刀劍,特堅利,故有龍泉之劍,楚之寶劍也。以特堅利,故有堅白之論云:

『黃,所以為堅也;白,所以為利也。』齊辨之曰:『白,所以為不堅;黃,所

以為不利也。』故天下之寶劍韓為#,一曰棠谿,二曰墨陽,三曰合伯,四曰

鄧師,五曰宛馮,六曰龍泉,七曰太阿,八曰莫邪,九曰干將也」。然干將、莫

邪匠名也,其劍皆出西平縣,今有鐵官令一,別領戶,是古鑄劍之地也。

注[一七]集解徐廣曰:「陽城出鐵。」索隱按:戰國策云「當敵則斬甲盾鞮鍪鐵

幕」也。鄒誕幕一作「陌」。劉云:

「謂以鐵為臂脛之衣。言其劍利,能斬之也。」

注[一八]集解徐廣曰:「一作『決』。」索隱音決。謂以革為射決。決,射韝也。

注[一九]集解音伐。索隱與「瞂」同,音伐,謂楯也。芮音如字,謂繫楯

之綬也。正義方言云:「盾,自關東謂之瞂,關西謂之盾。」

「大王事秦,秦必求宜陽、成皋。

今茲效之,[一]明年又復求割地。

대왕께서 만일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의양과 성고의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이것을 바치면

명년에는 반드시 또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弃前功 而受後禍。

여기에 응하려 들면

나중에는 주려고 해도 줄 땅이 없을 것이며

주지 않으면 지금까지 바친 공을 무시당한 채

오히려 뒷날 침략의 화를 당할 것입니다.

且大王之地有盡 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不戰而地已削矣。

장차 대왕의 토지는 점점 줄어들기만 할 것이며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한정이 있는 토지를 가지고

끝이 없는 요구에 응하는 것이야 말로

이는 이른바 ‘원수를 사서 우환을 맺는다.’는 것으로

싸우지도 않고 국토는 줄어들어 갑니다.

臣聞鄙諺曰:

『寧為雞口,無為牛後。』[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신이 듣기에 속담에 이르기를,

‘설령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제 서쪽을 향하여 두 손을 맞잡고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서 섬기는 것은

어찌 소꼬리와 다르겠습니까?

夫以大王之賢,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臣竊為大王羞之。」

대왕의 총명으로써

굳센 한나라의 군사를 가졌으면서

소꼬리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하기에

대왕을 위해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注[一]索隱按:鄭玄注禮云「效猶呈也,見也」。

注[二]索隱按;戰國策云「寧為雞尸,不為牛從」。延篤注云「尸,雞中主也。

從謂牛子也。言寧為雞中之主,不為牛之從後也」。正義雞口雖小,猶進食;牛

後雖大,乃出糞也。

於是韓王勃然作色,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一]曰;

한왕은 분연히 안색을 변하여

팔을 걷어 눈을 부라리며

칼을 만져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해 말했다.

「寡人雖不肖,必不能事秦。

今主君[二]詔以趙王之教,敬奉社稷以從。」

“과인은 비록 불초한 자이나

반드시 진나라를 섬기지 않겠소.

이제 그대로부터 조왕의 가르침을 들었으니

삼가 나라를 들들고 이 의견에 따르리다.”

注[一]索隱太息謂久蓄氣而大吁也。

注[二]索隱指蘇秦也。禮,卿大夫稱主。今嘉蘇子合從諸侯,-而美之,故稱

曰主。

又說魏襄王[一]曰:

「大王之地,南有鴻溝、[二]陳、汝南、許、

郾、[三]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四]

東有淮、潁、[五]煮棗、[六]無胥,[七]

西有長城之界,北有河外、[八]卷、衍、酸棗,[九]

地方千里。

소진은 또 위양왕에게 말했다.

“대왕의 토지는 남쪽에 홍구·진·여남·허·

언·곤양· 소릉·무양·신도·신처가 있고

동쪽에 회수·자조·무서,

서쪽에 장성의 경계,

북쪽에 하외·권·연·산조가 있습니다.

국토는 사방 천 리입니다.

地名雖小,然而田舍廬廡之數,

曾無所芻牧。人民之衆,車馬之多,

日夜行不絕,輷輷殷殷,[一0]若有三軍之衆。

지명은 비록 소국이라고는 하나

마을과 마을은 밀집하였고

목축에 남은 땅이 일찍부터 없고

백성도 많고 거마도 많아

밤낮으로 왕래의 끊임이 없고

그 울리는 소리는 횡횡하고 은은해서

마치 3군의 대병이 행군하는 것과 같습니다.

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

然衡人怵王[一一]

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

卒有秦患,[一二] 不顧其禍。

내가 가만히 생각하건대,

대왕의 나라는 결코 초나라에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연횡론자는 왕을 두렵게 하고

호랑이와 같은 진나라와 교제하여 천하를 침략케 하여

마침내는 진나라의 화를 불러

그 재앙을 고려하려 하지 않습니다.

夫挾彊秦之勢 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대체 저들이 굳센 진나라의 세력을 믿고서

자기 나라의 임금을 위협하는 것만큼

죄로서는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魏,天下之彊國也;王,天下之賢王也。

今乃有意西面而事秦,稱東藩,

築帝宮,[一三]受冠帶,[一四]祠春秋,[一五]

臣竊為大王恥之。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임금은 천하의 현군입니다.

이제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기고 동번이라 일컬어

진왕의 순찰을 위해 궁전을 짓고

진나라의 의관과 속대를 받아서

진나라 종묘의 봄 가을 제사에 봉사함은

내가 대왕을 위해 수치로 여깁니다.

注[一]索隱世本惠王子名嗣。

注[二]集解徐廣曰:「在滎陽。」

注[三]集解徐廣曰:「在潁川。於幰切。」索隱音偃,又於建反。戰國策作「鄢」。

按:地理志潁川有許、郾二縣,又有傿陵縣,故所稱惑也。傿音焉。正義陳、

汝南,今汝州、豫州縣也。

注[四]集解地理志潁川有昆陽、舞陽縣,汝南有新郪縣,南陽有新都縣。索隱

地理志昆陽、舞陽屬潁川,召陵、新郪屬汝南。按:新郪郪丘,章帝以封殷

後於宋。新都屬南陽。按:戰國策直云新郪,無「新都」二字。正義召陵在豫

州,舞陽在許州。

注[五]正義淮陽、穎川二郡。

注[六]集解徐廣曰:「在宛句。」正義在宛朐。按:宛朐,曹州縣也。

注[七]索隱按;其地闕。

注[八]正義謂河南地。

注[九]集解徐廣曰:「滎陽卷縣有長城,經陽武到密。衍,地名。索隱徐廣云「滎

陽卷縣有長城」,蓋據地險為說也。正義卷在鄭州原武縣北七里。酸棗在滑州。

衍,徐云地名。

注[一0]正義輷,麾宏反。殷音隱。

注[一一]正義衡音橫。怵音卹。

注[一二]正義卒音忽反。

注[一三]索隱謂為秦築宮,備其巡狩而舍之,故謂之「帝宮」。

注[一四]索隱謂冠帶制度皆受秦法。

注[一五]索隱言春秋貢奉,以助秦祭祀。

「臣聞越王句踐戰敝卒三千人,禽夫差於干遂;[一]

武王卒三千人,革車三百乘,制紂於牧野:[二]

豈其士卒衆哉,誠能奮其威也。

신이 듣기에 월왕 구천은 여러 해 훈련한 군사 3천 명으로써

오왕 부차를 간수에서 사로잡고

주나나 무왕은 군사 3천 명, 병거 3백 승으로

은나라 주왕을 목야에서 정복하였다고 들었는데

이는 어찌 군사가 많아서 이긴 것입니까

참으로 그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今竊聞大王之卒,武士二十萬,[三]蒼頭二十萬,[四]

奮擊二十萬,廝徒十萬,[五]車六百乘,騎五千匹。

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

이제 가만히 들리는 바로는

대왕의 군사는 무사 20만,

창두를 쓴 경보병 29만,

분격 20만, 사도 10만,

병거 6백 승, 기마 5천 필로

이 수는 월왕 구천이나 무왕의 군사를 훨씬 능가합니다.

今乃聽於羣臣之說而欲臣事秦。

夫事秦必割地以效實,[六]故兵未用而國已虧矣。

그런데 이제 여러 신하의 말을 듣고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서 섬길 생각을 한다니

진나라를 섬기면 반드시 토지를 쪼개 바쳐서 성의를 표시토록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력을 쓰기도 전에 벌써 국토는 이지러집니다.

凡羣臣之言事秦者,皆姦人,非忠臣也。

무릇 신하로서 진나라를 섬기도록 하려는 자는

모두가 간사한 자들이요 결코 충신이 아닙니다.

夫為人臣,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偷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以求割地,願大王孰察之。

대체로 신하된 자가 임금의 토지를 쪼개어 외교를 청하고

한때의 공을 도적질하여 뒤를 돌보지 않고

공가(公家)의 파멸로 자가의 성공을 이룩하고

밖으로 진나라의 세력을 믿고 안으로 임금을 위협하여

토지를 쪼개 바치기를 요구하다니

원컨대 대왕은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注[一]索隱按:干遂,地名,不知所在。然按干是水旁之高地,故有「江干」「河

干」是也。又左思吳都賦云「長干延

屬」,是干為江旁之地。遂者,道也。於干有道,因為地名。正義在蘇州吳縣西

北四十餘里萬安山西南一里太湖。夫差敗於姑蘇,禽於干遂,相去四十餘里。

注[二]正義今%州城是也。周武王伐紂於牧野,築之。

注[三]集解漢書刑法志曰:「魏氏武卒衣三屬之甲,操十二石之弩,負矢五十,

置戈其上,冠冑帶劍,贏三日之糧,日中而趨百里,中試則復其戶,利其田宅。」

索隱衣音意。屬音燭。按:三屬謂甲衣也。覆膊,一也;甲裳,二也;脛衣,

三也。甲之有裳,見左傳也。贏音盈。謂齎糗糧。中音竹仲反。謂其筋力能負

重,所以得中試也。復音福。謂中試之人,國家當優復,賜之上田宅,故云「利

其田宅」也。

注[四]索隱謂以青巾裹頭,以異於#。荀卿「魏有蒼頭二十萬」是也。

注[五]索隱廝音斯。謂廝養之卒。斯,養馬之賤者,今起為之卒。正義廝音斯。

謂炊烹供養雜役。

注[六]索隱謂割地獻秦,以效己之誠實。

「周書曰:

『緜緜不絕,蔓蔓柰何?

豪氂不伐,將用斧柯。』

<주서>에 이르기를

‘조그마할 때 끊지 않으면

커져서는 어찌할 것인가?

털끝만한 적을 베지 않으면

장차는 도끼를 써야 한다.

前慮不定,後有大患,將柰之何?

이렇게 생각하여 잡지 않으면

뒤에는 큰 우환이 있으리라

장차 이를 어찌하랴?’고 하였습니다.

大王誠能聽臣,六國從親,

專心并力壹意,則必無彊秦之患。

만약에 대왕께서 진실로 나의 말을 받아들여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뜻을 하나로 하고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진나라의 화를 면할 것입니다.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一]

奉明約,在大王之詔詔之。」

그러므로 우리 나라 조왕이 사신으로 명하여 이 계책을 바치고

맹약을 맺어 받들고자 하여

대왕의 의사를 듣고자 합니다,”

注[一]索隱此「效」猶呈也,見也。

魏王曰:

「寡人不肖,未嘗得聞明教。

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敬以國從。」

위왕이 말했다.

“과인은 불초하여

여태까지 밝은 가르침을 들을 기회가 없었소.

이제 그대에게서 조왕의 말씀을 들었으니

삼가 나라를 들어 따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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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 열전 제9-1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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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2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而奉陽君已死,即因說趙肅侯[一]曰:

이에 소진에게 거마와 금백을 자금으로 주어 조나라에 보냈다.

그때 조나라엔 봉양군이 이미 죽었으므로

직접 조숙후에게 아뢰기를,

「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教 陳忠於前之日久矣。[二]

“천하의 경상과 신하들에서 포의(布衣)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금의 하시는 일을 높고 의롭다 하며

모두가 임금의 가르침을 받들어

앞에서 충언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雖然,奉陽君妒而君不任事,

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舍,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비록 그러하나

봉양군이 시기하여 임금께서는 임금으로서의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빈객이나 유세객 중에 감히 스스로 앞에 나아가 말을 다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제 봉양군은 이미 죽어

당신은 본래대로 원주민과 친할 수 있으니

신은 거리낌 없이 어리석은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注[一]索隱按:世本云肅侯名言。

注[二]正義奉,符用反。

「竊為君計者,莫若安民無事,

且無庸有事於民也。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을 위한 계책은

백성을 편안히 하고 무사하게 하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백성을 수고하게 하지 마십시오.

安民之本,在於擇交,擇交而得則民安,

擇交而不得 則民終身不安。

백성을 편안히 하는 근본은

국교를 잘 가려서 하는 데 있으며

국교를 가려서 제대로 잘하면 백성은 편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백성은 종신토록 안락하지 못할 것입니다.

請言外患:

齊秦為兩敵 而民不得安,

倚秦攻齊 而民不得安,

倚齊攻秦而民不得安。

청컨대 외환에 대해서 좀 말씀을 올리도록 해 주십시오.

제나라와 진나라가 다 같이 적이 되면

백성은 편안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진나라에 의지하여 제나라를 치는 것도

백성으로는 편안하지 못합니다.

또 제나라에 의지하여 진나라를 치는 경우도 같습니다.

故夫謀人之主,伐人之國,

常苦出辭斷絕人之交也。

願君慎勿出於口。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군두를 꾀어내어

남의 나라를 쳐야하는데

그런 경우에 조심할 것은 비밀이 새는 일입니다.

그로써 국교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임금께서는 입을 삼가 하십시오.

請別白黑所以異,陰陽而已矣。[一]

君誠能聽臣,燕必致旃裘狗馬之地,

齊必致魚鹽之海,楚必致橘柚之園,

그리고 나의 말에서 이해가 전혀 상반되는 청백을 구별하십시오.

일은 음양이 있을 뿐입니다.

임금님께서 진실로 저의 말을 들어 주실 수 있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모직옷이나 개와 말이 나는 산지를 얻고

제나라는 반드시 고·소금이 나는 해변을 얻고

초나라는 반드시 귤과 유자의 과원을 얻고

韓﹑魏﹑中山 皆可使致湯沐之奉,

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한나라와 위나라 중산은

다 탕목의 땅을 헌납물로 바치게 할 수 있으며

일가족은 다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될 것입니다.

夫割地包利,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

대체 남의 나라 토지를 뺏고 이익을 취하는 일은

오백이 적군을 깨뜨리고 적장을 포로로 하여 구하던 방법입니다.

封侯貴戚,湯武之所以放弒而爭也。

今君高拱 而兩有之,此臣之所以為君願也。

임금의 일가족을 제후로 하는 것은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그 땅의 임금을 추방하고 죽이어 다투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팔짱을 낀 채로 이 두 가지를 얻도록 하려는 것이

이 신하가 임금님께 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注[一]索隱按:戰國策云「請屏左右,白言所以異陰陽」,其說異此。然言別白

黑者,蘇秦言己今論趙國之利,必使分明,有如白黑分別,陰陽殊異也。

「今大王與秦,則秦必弱韓﹑魏;

與齊,則齊必弱楚﹑魏。[一]

이제 임금께서 진나라와 함께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하나라와 위나라를 누를 것이며

제나라와 함께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초나라를 누를 것입니다

魏弱則割河外,韓弱則效宜陽,

宜陽效則上郡絕,[二]

河外割則道不通,[三]楚弱則無援。

此三策者,不可不孰計也。

위나라가 약해지면 하외의 땅을 진나라에게 먹힐 것이며

한나라가 약해지면 의양을 진나라에 줄 것입니다.

의양이 주어지면 상군의 길은 끊어지며

하외가 먹히면 길은 방군에 통하지 않습니다.

초나라가 약해지면 원군이 없어집니다.

이 세 방책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注[一]正義楚東淮泗之上,與齊接境。

注[二]正義宜陽即韓城也,在洛州西,韓大郡也。上郡在同州西北。言韓弱,

與秦宜陽城,則上郡路絕矣。

注[三]正義河外,同﹑華等地也。言魏弱,與秦河外地,則道路不通上郡矣。

華山記云:「此山分秦晉之境,晉之西鄙則曰陰晉,秦之東邑則曰寧秦。」

「夫秦下軹道,[一]則南陽危;[二]

劫韓包周,[三]則趙氏自操兵;[四]

만약에 진나라가 지도로 내려오면 남양이 위험하고

한나라를 위협하여 주나라 세력 안에 포위되면

조나라는 스스로 무기를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據衛取卷,[五]則齊必入朝秦。

秦欲已得乎山東,則必舉兵而嚮趙矣。

진나라가 위나라를 근거지로 권을 취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머리 숙여 신하가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산동을 손에 넣고자 하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로 향할 것입니다.

秦甲渡河踰漳,據番吾,[六]

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

此臣之所為君患也。

진군이 하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서

파오의 읍에 진을 치면

반드시 조나라 서울 한단 성 아래서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걱정하는 것입니다.

注[一]正義軹音止。故亭在雍州萬年縣東北十六里苑中。

注[二]正義南陽,懷州河南也,七國時屬韓。言秦兵下軹道,從東渭橋歷北道

過蒲津攻韓,即南陽危矣。

注[三]正義周都洛陽,秦若劫取韓南陽,是包裹周都也。趙邯鄲危,故須起兵

自守。

注[四]索隱戰國策作「自銷鑠」。

注[五]集解丘權反。索隱地理志卷縣屬河南。按:戰國策云「取淇」。正義%地

濮陽也。卷城在鄭州武原縣西北七里。言秦守%得卷,則齊必來朝秦。

注[六]集解徐廣曰:「常山有蒲吾縣。」索隱按:徐氏所引,據地理志云然也。

正義番音婆,又音蒲,又音盤。疑古番吾公邑也。括地志云:「蒲吾故城在鎮州

常山縣東二十里。」漳水在潞州。言秦兵渡河,歷南陽,入羊腸,經澤﹑潞,

渡漳水,守蒲吾城,則與趙戰於都城下矣。

「當今之時,山東之建國莫彊於趙。

趙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車千乘,

騎萬匹,粟支數年。

오늘날 산동에 있는 나라로서

조나라보다 더 강대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의 땅은 사방 2천여 리, 무장 병력 수십만,

병거 천승, 군마 만 필, 군량은 수년을 지탱할 수 있으며

西有常山,[一]南有河漳,[二]

東有清河,[三]北有燕國。[四]

燕固弱國,不足畏也。

서쪽에 상산, 남에는 하·장,

동에는 청하, 북에는 연나라가 있으나

연나라는 본래 약소국으로서 두려워할 것이 못됩니다.

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

然而秦不敢舉兵伐趙者,何也?

진나라가 천하의 적으로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군사를 들어 조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畏韓﹑魏之議其後也。

然則韓﹑魏,趙之南蔽也。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배후를 치려고 꾀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의 남쪽 장벽입니다.

秦之攻韓﹑魏也,無有名山大川之限,

稍蠶食之,傅[五]國都而止。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는 데는

고산과 대천의 장애가 없어

점차로 먹어 들어가

국도에까지 이르러야 그칠 것입니다.

韓﹑魏不能支秦,必入臣於秦。

秦無韓﹑魏之規,則禍必中於趙矣。

此臣之所為君患也。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견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진나라에 들어가 신하노릇을 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견제하지 않으면

화는 반드시 조나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당신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注[一]正義在鎮州西。

注[二]正義「河」字一作「清」,即漳河也,在潞州。地理志濁漳出長子鹿谷山,

東至鄴,入清漳。

注[三]正義清河,今貝州也。

注[四]正義然三家分晉,趙得晉陽,襄子又伐戎取代。既云「西有常山者」,趙

都邯鄲近北燕也。

注[五]集解音附。

「臣聞堯無三夫之分,

舜無咫尺之地,以有天下;

禹無百人之聚,以王諸侯;

제가 듣건대 요는 세 사람 몫의 전지도 없었고

순은 지척의 땅조차 없이 천하를 보유하였으며

우도 백 명의 촌락도 없이 제후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湯武之士不過三千,車不過三百乘,卒不過三萬,

立為天子:誠得其道也。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장사가 3천명에 불과하고

수레는 3백대에 불과하였고

병졸이 3만 명이 되지도 않았는데

일어서서 천자가 되었으니

이들은 진실로 왕으로서의 도리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內度其士卒賢不肖,

不待兩軍相當 而勝敗存亡之機 固已形於胸中矣,

豈揜於衆人之言而以冥冥決事哉!

그런 까닭에 명군은 밖으로 적의 강약을 요량하고

안으로 군졸의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함을 헤아려

양군의 충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승패존망의 기틀이 벌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어찌하여 자신의 총명을 여러 사람의 말로 덮어 가리고

캄캄하고 어두운 가운데서 일을 결정합니까?

「臣竊以天下之地圖案之,諸侯之地五倍於秦,

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六國為一,

并力西鄉而攻秦,秦必破矣。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놓고 보건대

제후의 영토는 진나라의 5배는 되며

제후의 군졸을 헤아려 보니 진나라의 10배는 됩니다.

여섯 나라가 일체가 되어 힘을 아울러서 서쪽의 진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今西面而事之,見臣於秦。

夫破人之與破於人也,[一]

臣人之與臣於人也,[二]豈可同日而論哉!

이제 만약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의 신하가 됩니다.

대체로 남을 깨뜨리는 것과 남에게 깨지는 것

또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진하가 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注[一]正義破人謂破前敵也。破於人,為被前敵破。

注[二]索隱按:臣人謂己為彼臣也。臣於人者,謂我為主,使彼臣己也。正義

臣人謂己得人為臣。臣於人謂己事他人。

「夫衡人者,[一]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

저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에 바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秦成,則高臺榭,美宮室,聽竽瑟之音,

前有樓闕軒轅,[二]後有長姣[三]美人,

國被秦患 而不與其憂。

진나라가 목적을 달성하면 저들은 지붕 처마를 높이고

궁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젓대와 비파의 음악을 들으며

앞에는 다락과 수레를, 뒤에는 아름다운 계집을 두고

나라가 진나라의 화를 입을지라도

자기 스스로는 그 후환에 관계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是故夫衡人 日夜務以秦權

恐愒諸侯[四]以求割地,故願大王孰計之也。

그런 까닭에 저 연횡론자는 밤낮으로 진나라의 권력을 빌려

제후를 공갈하고 토지의 분할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은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注[一]索隱按:衡人即游說從橫之士也。東西為橫,南北為從。秦地形東西橫

長,故張儀相秦,為秦連橫。正義衡音橫。謂為秦人。

注[二]索隱戰國策云「前有軒轅」。又史記俗本亦有作「軒冕」者,非本文也。

注[三]索隱音交。說文云:「姣,美也。」

注[四]集解愒音呼曷反。索隱恐,起拱反。愒,許曷反。謂相恐脅也。鄒氏愒

音憩,其意疏。

「臣聞明主絕疑去讒,屏流言之迹,

塞朋黨之門,

故尊主廣地彊兵之計 臣得陳忠於前矣。

듣건데 ‘명군께서는 의혹을 끊고 거짓 고발하는 것을 버리고

유언비언의 길을 제거하고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군을 존중하고 토지를 넓히고 병력을 굳세게 하는 계교를

신은 이렇게 임금님 앞에 올리는 것입니다

故竊為大王計,

莫如一韓﹑魏﹑齊﹑楚﹑燕﹑趙以從親,以畔秦。

가만히 대왕을 위해 생각해 보건대

한·위·제·초·연·조를 한 몸뚱이로 합종의 방법으로 친선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그 이상의 방책은 없을 것입니다.

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一]

通質,[二]刳白馬而盟。要約曰:

즉 천하 제후의 장군과 재상을 원수 부근에 모아서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잡아 피를 빨고 굳게 약속하여

요약하기를,

『秦攻楚,齊﹑魏各出銳師以佐之,

韓絕其糧道,[三]趙涉河漳,[四]

燕守常山之北。

‘진나라가 초나를 공격하면

제나라와 위나라는 각각 정예군을 내어 초나라를 돕고

한나라는 진나라의 군량 조달로를 끊고

조나라는 하·원을 건너고

연나라는 상산의 북쪽을 지킬 것이다.

秦攻韓魏,[五]則楚絕其後,[六]

齊出銳師而佐之,趙涉河漳,燕守雲中。

진나라가 만약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진나라 군사의 배후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군을 내어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고

조나라는 하·장을 건너고

연나라는 운중을 지킬 것이다.

秦攻齊,則楚絕其後,

韓守城皋,[七]魏塞其道,[八]

趙涉河漳﹑博關,[九]燕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만약 제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를 지키고

위나라는 하내로 가는 길을 막고

조나라는 하수와 박관을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군을 내어서 제나라를 도울 것이다.

秦攻燕,則趙守常山,

楚軍武關,齊涉勃海,[一0]

韓﹑魏皆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만약 연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진치고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다 정예군을 내어서 연나라를 도울 것이다.

秦攻趙,則韓軍宜陽,

楚軍武關,魏軍河外,[一一]

齊涉清河,[一二]燕出銳師以佐之。

또 만약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한나라는 선양에 진을 치고

초나라는 무관에 하외에 진을 치고

위나라는 하외에 진을 치고

제나라는 청하를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군을 내어서 조나라를 도울 것이다.

諸侯有不如約者,

以五國之兵共伐之。』

제후 중에 이 약속을 이행치 않는 자가 있다면

다섯 나라의 군사는 공동으로 이를 친다.’라고 말입니다

六國從親以賓秦,[一三]

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 以害山東矣。

如此,則霸王之業成矣。」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으면

진나라는 필경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패왕의 위업을 성취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一]集解徐廣曰:「洹水出汲郡林慮縣。」

注[二]索隱音如字,又音躓。以言通其交質之情。

注[三]索隱謂擁兵於嶢關之外,又守宜陽也。

注[四]索隱謂趙亦涉河漳而西,欲與韓作援,以阻秦軍。

注[五]正義謂道蒲津之東攻之。

注[六]索隱謂出兵武關,以絕秦兵之後。

注[七]正義在洛州氾水縣。

注[八]索隱按:其道即河內之道。戰國策「其」作「午」。

注[九]集解徐廣曰:「齊威王六年,晉伐齊到博陵。東郡有博平縣。」

注[一0]正義齊從滄州渡河至瀛州。

注[一一]索隱河外謂陝及曲沃等處也。正義謂同﹑華州。

注[一二]正義齊從貝州過河而西。

注[一三]索隱謂六國之軍共為合從相親,獨以秦為賓而共伐之。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而奉陽君已死,即因說趙肅侯[一]曰:

이에 소진에게 거마와 금백을 자금으로 주어 조나라에 보냈다.

그때 조나라엔 봉양군이 이미 죽었으므로

직접 조숙후에게 아뢰기를,

「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教 陳忠於前之日久矣。[二]

“천하의 경상과 신하들에서 포의(布衣)의 선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임금의 하시는 일을 높고 의롭다 하며

모두가 임금의 가르침을 받들어

앞에서 충언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雖然,奉陽君妒而君不任事,

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舍,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비록 그러하나

봉양군이 시기하여 임금께서는 임금으로서의 일을 할 수 없으므로

빈객이나 유세객 중에 감히 스스로 앞에 나아가 말을 다하는 자가 없습니다.

이제 봉양군은 이미 죽어

당신은 본래대로 원주민과 친할 수 있으니

신은 거리낌 없이 어리석은 소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注[一]索隱按:世本云肅侯名言。

注[二]正義奉,符用反。

「竊為君計者,莫若安民無事,

且無庸有事於民也。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을 위한 계책은

백성을 편안히 하고 무사하게 하는 것 이상이 없습니다.

백성을 수고하게 하지 마십시오.

安民之本,在於擇交,擇交而得則民安,

擇交而不得 則民終身不安。

백성을 편안히 하는 근본은

국교를 잘 가려서 하는 데 있으며

국교를 가려서 제대로 잘하면 백성은 편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백성은 종신토록 안락하지 못할 것입니다.

請言外患:

齊秦為兩敵 而民不得安,

倚秦攻齊 而民不得安,

倚齊攻秦而民不得安。

청컨대 외환에 대해서 좀 말씀을 올리도록 해 주십시오.

제나라와 진나라가 다 같이 적이 되면

백성은 편안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다고 진나라에 의지하여 제나라를 치는 것도

백성으로는 편안하지 못합니다.

또 제나라에 의지하여 진나라를 치는 경우도 같습니다.

故夫謀人之主,伐人之國,

常苦出辭斷絕人之交也。

願君慎勿出於口。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군두를 꾀어내어

남의 나라를 쳐야하는데

그런 경우에 조심할 것은 비밀이 새는 일입니다.

그로써 국교가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임금께서는 입을 삼가 하십시오.

請別白黑所以異,陰陽而已矣。[一]

君誠能聽臣,燕必致旃裘狗馬之地,

齊必致魚鹽之海,楚必致橘柚之園,

그리고 나의 말에서 이해가 전혀 상반되는 청백을 구별하십시오.

일은 음양이 있을 뿐입니다.

임금님께서 진실로 저의 말을 들어 주실 수 있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모직옷이나 개와 말이 나는 산지를 얻고

제나라는 반드시 고·소금이 나는 해변을 얻고

초나라는 반드시 귤과 유자의 과원을 얻고

韓﹑魏﹑中山 皆可使致湯沐之奉,

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한나라와 위나라 중산은

다 탕목의 땅을 헌납물로 바치게 할 수 있으며

일가족은 다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될 것입니다.

夫割地包利,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

대체 남의 나라 토지를 뺏고 이익을 취하는 일은

오백이 적군을 깨뜨리고 적장을 포로로 하여 구하던 방법입니다.

封侯貴戚,湯武之所以放弒而爭也。

今君高拱 而兩有之,此臣之所以為君願也。

임금의 일가족을 제후로 하는 것은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그 땅의 임금을 추방하고 죽이어 다투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임금께서는 팔짱을 낀 채로 이 두 가지를 얻도록 하려는 것이

이 신하가 임금님께 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注[一]索隱按:戰國策云「請屏左右,白言所以異陰陽」,其說異此。然言別白

黑者,蘇秦言己今論趙國之利,必使分明,有如白黑分別,陰陽殊異也。

「今大王與秦,則秦必弱韓﹑魏;

與齊,則齊必弱楚﹑魏。[一]

이제 임금께서 진나라와 함께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하나라와 위나라를 누를 것이며

제나라와 함께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초나라를 누를 것입니다

魏弱則割河外,韓弱則效宜陽,

宜陽效則上郡絕,[二]

河外割則道不通,[三]楚弱則無援。

此三策者,不可不孰計也。

위나라가 약해지면 하외의 땅을 진나라에게 먹힐 것이며

한나라가 약해지면 의양을 진나라에 줄 것입니다.

의양이 주어지면 상군의 길은 끊어지며

하외가 먹히면 길은 방군에 통하지 않습니다.

초나라가 약해지면 원군이 없어집니다.

이 세 방책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注[一]正義楚東淮泗之上,與齊接境。

注[二]正義宜陽即韓城也,在洛州西,韓大郡也。上郡在同州西北。言韓弱,

與秦宜陽城,則上郡路絕矣。

注[三]正義河外,同﹑華等地也。言魏弱,與秦河外地,則道路不通上郡矣。

華山記云:「此山分秦晉之境,晉之西鄙則曰陰晉,秦之東邑則曰寧秦。」

「夫秦下軹道,[一]則南陽危;[二]

劫韓包周,[三]則趙氏自操兵;[四]

만약에 진나라가 지도로 내려오면 남양이 위험하고

한나라를 위협하여 주나라 세력 안에 포위되면

조나라는 스스로 무기를 잡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據衛取卷,[五]則齊必入朝秦。

秦欲已得乎山東,則必舉兵而嚮趙矣。

진나라가 위나라를 근거지로 권을 취하면

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머리 숙여 신하가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산동을 손에 넣고자 하면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로 향할 것입니다.

秦甲渡河踰漳,據番吾,[六]

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

此臣之所為君患也。

진군이 하수를 건너고 장수를 넘어서

파오의 읍에 진을 치면

반드시 조나라 서울 한단 성 아래서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걱정하는 것입니다.

注[一]正義軹音止。故亭在雍州萬年縣東北十六里苑中。

注[二]正義南陽,懷州河南也,七國時屬韓。言秦兵下軹道,從東渭橋歷北道

過蒲津攻韓,即南陽危矣。

注[三]正義周都洛陽,秦若劫取韓南陽,是包裹周都也。趙邯鄲危,故須起兵

自守。

注[四]索隱戰國策作「自銷鑠」。

注[五]集解丘權反。索隱地理志卷縣屬河南。按:戰國策云「取淇」。正義%地

濮陽也。卷城在鄭州武原縣西北七里。言秦守%得卷,則齊必來朝秦。

注[六]集解徐廣曰:「常山有蒲吾縣。」索隱按:徐氏所引,據地理志云然也。

正義番音婆,又音蒲,又音盤。疑古番吾公邑也。括地志云:「蒲吾故城在鎮州

常山縣東二十里。」漳水在潞州。言秦兵渡河,歷南陽,入羊腸,經澤﹑潞,

渡漳水,守蒲吾城,則與趙戰於都城下矣。

「當今之時,山東之建國莫彊於趙。

趙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車千乘,

騎萬匹,粟支數年。

오늘날 산동에 있는 나라로서

조나라보다 더 강대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의 땅은 사방 2천여 리, 무장 병력 수십만,

병거 천승, 군마 만 필, 군량은 수년을 지탱할 수 있으며

西有常山,[一]南有河漳,[二]

東有清河,[三]北有燕國。[四]

燕固弱國,不足畏也。

서쪽에 상산, 남에는 하·장,

동에는 청하, 북에는 연나라가 있으나

연나라는 본래 약소국으로서 두려워할 것이 못됩니다.

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

然而秦不敢舉兵伐趙者,何也?

진나라가 천하의 적으로 조나라만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군사를 들어 조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畏韓﹑魏之議其後也。

然則韓﹑魏,趙之南蔽也。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배후를 치려고 꾀함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의 남쪽 장벽입니다.

秦之攻韓﹑魏也,無有名山大川之限,

稍蠶食之,傅[五]國都而止。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치는 데는

고산과 대천의 장애가 없어

점차로 먹어 들어가

국도에까지 이르러야 그칠 것입니다.

韓﹑魏不能支秦,必入臣於秦。

秦無韓﹑魏之規,則禍必中於趙矣。

此臣之所為君患也。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견제하지 않으면

반드시 진나라에 들어가 신하노릇을 할 것입니다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견제하지 않으면

화는 반드시 조나라에 집중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당신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注[一]正義在鎮州西。

注[二]正義「河」字一作「清」,即漳河也,在潞州。地理志濁漳出長子鹿谷山,

東至鄴,入清漳。

注[三]正義清河,今貝州也。

注[四]正義然三家分晉,趙得晉陽,襄子又伐戎取代。既云「西有常山者」,趙

都邯鄲近北燕也。

注[五]集解音附。

「臣聞堯無三夫之分,

舜無咫尺之地,以有天下;

禹無百人之聚,以王諸侯;

제가 듣건대 요는 세 사람 몫의 전지도 없었고

순은 지척의 땅조차 없이 천하를 보유하였으며

우도 백 명의 촌락도 없이 제후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湯武之士不過三千,車不過三百乘,卒不過三萬,

立為天子:誠得其道也。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장사가 3천명에 불과하고

수레는 3백대에 불과하였고

병졸이 3만 명이 되지도 않았는데

일어서서 천자가 되었으니

이들은 진실로 왕으로서의 도리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內度其士卒賢不肖,

不待兩軍相當 而勝敗存亡之機 固已形於胸中矣,

豈揜於衆人之言而以冥冥決事哉!

그런 까닭에 명군은 밖으로 적의 강약을 요량하고

안으로 군졸의 현명하고 현명하지 못함을 헤아려

양군의 충돌을 기다릴 것도 없이

승패존망의 기틀이 벌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어찌하여 자신의 총명을 여러 사람의 말로 덮어 가리고

캄캄하고 어두운 가운데서 일을 결정합니까?

「臣竊以天下之地圖案之,諸侯之地五倍於秦,

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六國為一,

并力西鄉而攻秦,秦必破矣。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놓고 보건대

제후의 영토는 진나라의 5배는 되며

제후의 군졸을 헤아려 보니 진나라의 10배는 됩니다.

여섯 나라가 일체가 되어 힘을 아울러서 서쪽의 진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今西面而事之,見臣於秦。

夫破人之與破於人也,[一]

臣人之與臣於人也,[二]豈可同日而論哉!

이제 만약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의 신하가 됩니다.

대체로 남을 깨뜨리는 것과 남에게 깨지는 것

또 남을 신하로 삼는 것과 남의 진하가 되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注[一]正義破人謂破前敵也。破於人,為被前敵破。

注[二]索隱按:臣人謂己為彼臣也。臣於人者,謂我為主,使彼臣己也。正義

臣人謂己得人為臣。臣於人謂己事他人。

「夫衡人者,[一]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

저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에 바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秦成,則高臺榭,美宮室,聽竽瑟之音,

前有樓闕軒轅,[二]後有長姣[三]美人,

國被秦患 而不與其憂。

진나라가 목적을 달성하면 저들은 지붕 처마를 높이고

궁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젓대와 비파의 음악을 들으며

앞에는 다락과 수레를, 뒤에는 아름다운 계집을 두고

나라가 진나라의 화를 입을지라도

자기 스스로는 그 후환에 관계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是故夫衡人 日夜務以秦權

恐愒諸侯[四]以求割地,故願大王孰計之也。

그런 까닭에 저 연횡론자는 밤낮으로 진나라의 권력을 빌려

제후를 공갈하고 토지의 분할을 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왕은 이 일을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注[一]索隱按:衡人即游說從橫之士也。東西為橫,南北為從。秦地形東西橫

長,故張儀相秦,為秦連橫。正義衡音橫。謂為秦人。

注[二]索隱戰國策云「前有軒轅」。又史記俗本亦有作「軒冕」者,非本文也。

注[三]索隱音交。說文云:「姣,美也。」

注[四]集解愒音呼曷反。索隱恐,起拱反。愒,許曷反。謂相恐脅也。鄒氏愒

音憩,其意疏。

「臣聞明主絕疑去讒,屏流言之迹,

塞朋黨之門,

故尊主廣地彊兵之計 臣得陳忠於前矣。

듣건데 ‘명군께서는 의혹을 끊고 거짓 고발하는 것을 버리고

유언비언의 길을 제거하고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군을 존중하고 토지를 넓히고 병력을 굳세게 하는 계교를

신은 이렇게 임금님 앞에 올리는 것입니다

故竊為大王計,

莫如一韓﹑魏﹑齊﹑楚﹑燕﹑趙以從親,以畔秦。

가만히 대왕을 위해 생각해 보건대

한·위·제·초·연·조를 한 몸뚱이로 합종의 방법으로 친선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그 이상의 방책은 없을 것입니다.

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一]

通質,[二]刳白馬而盟。要約曰:

즉 천하 제후의 장군과 재상을 원수 부근에 모아서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잡아 피를 빨고 굳게 약속하여

요약하기를,

『秦攻楚,齊﹑魏各出銳師以佐之,

韓絕其糧道,[三]趙涉河漳,[四]

燕守常山之北。

‘진나라가 초나를 공격하면

제나라와 위나라는 각각 정예군을 내어 초나라를 돕고

한나라는 진나라의 군량 조달로를 끊고

조나라는 하·원을 건너고

연나라는 상산의 북쪽을 지킬 것이다.

秦攻韓魏,[五]則楚絕其後,[六]

齊出銳師而佐之,趙涉河漳,燕守雲中。

진나라가 만약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진나라 군사의 배후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군을 내어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고

조나라는 하·장을 건너고

연나라는 운중을 지킬 것이다.

秦攻齊,則楚絕其後,

韓守城皋,[七]魏塞其道,[八]

趙涉河漳﹑博關,[九]燕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만약 제나라를 공격하면

초나라는 진나라의 배후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를 지키고

위나라는 하내로 가는 길을 막고

조나라는 하수와 박관을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군을 내어서 제나라를 도울 것이다.

秦攻燕,則趙守常山,

楚軍武關,齊涉勃海,[一0]

韓﹑魏皆出銳師以佐之。

진나라가 만약 연나라를 공격하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진치고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다 정예군을 내어서 연나라를 도울 것이다.

秦攻趙,則韓軍宜陽,

楚軍武關,魏軍河外,[一一]

齊涉清河,[一二]燕出銳師以佐之。

또 만약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한나라는 선양에 진을 치고

초나라는 무관에 하외에 진을 치고

위나라는 하외에 진을 치고

제나라는 청하를 건너고

연나라는 정예군을 내어서 조나라를 도울 것이다.

諸侯有不如約者,

以五國之兵共伐之。』

제후 중에 이 약속을 이행치 않는 자가 있다면

다섯 나라의 군사는 공동으로 이를 친다.’라고 말입니다

六國從親以賓秦,[一三]

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 以害山東矣。

如此,則霸王之業成矣。」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으면

진나라는 필경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패왕의 위업을 성취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注[一]集解徐廣曰:「洹水出汲郡林慮縣。」

注[二]索隱音如字,又音躓。以言通其交質之情。

注[三]索隱謂擁兵於嶢關之外,又守宜陽也。

注[四]索隱謂趙亦涉河漳而西,欲與韓作援,以阻秦軍。

注[五]正義謂道蒲津之東攻之。

注[六]索隱謂出兵武關,以絕秦兵之後。

注[七]正義在洛州氾水縣。

注[八]索隱按:其道即河內之道。戰國策「其」作「午」。

注[九]集解徐廣曰:「齊威王六年,晉伐齊到博陵。東郡有博平縣。」

注[一0]正義齊從滄州渡河至瀛州。

注[一一]索隱河外謂陝及曲沃等處也。正義謂同﹑華州。

注[一二]正義齊從貝州過河而西。

注[一三]索隱謂六國之軍共為合從相親,獨以秦為賓而共伐之。

趙王曰:

「寡人年少,立國日淺,

未嘗得聞社稷之長計也。

조왕은 말하기를.

“과인은 나이가 젋고

임금의 자리에 선 지도 얼마 안 되므로

지금까지 국가 안정에 관한 장기 계획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今上客有意存天下,安諸侯

寡人敬以國從。」

이제 그대 상객에게는 천하를 유지하고

제후를 안도하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과인은 삼가 나라를 들어 그대의 말을 따르겠습니다.”하였다

乃飾車百乘,黃金千溢,[一]

白璧百雙,錦繡千純,[二]

以約諸侯。

그리하여 수레 백 채, 황금 천일, 백벽 백 쌍,

비단 천 필을 묶어 제후에 보내는 선물로 하고

제후와 합종을 맹약하였다.

注[一]索隱戰國策作「萬溢」。一溢為一金,則二十兩曰一溢,為米二升。鄭玄

以一溢為二十四分之一,其說異也。

注[二]集解純,匹端名。周禮曰:「純帛不過五兩。」索隱音淳。裴氏云「純,

端疋名」。高誘注戰國策音屯。屯,束也。又禮鄉射云「某賢於某若干純」。純,

數也,音旋。


史記卷六十九 蘇秦列傳第九

사기 권69

소진 열전 제9-1

  蘇秦者,東周雒陽人也。〔一〕

東事師於齊,而習之於鬼谷先生。〔二〕

소진은 동주의 낙양 사람이다

동쪽 제나라에 가서 스승을 구하여 귀곡선생에게 배웠다

〔一〕索隱蘇秦字季子,蓋蘇忿生之後,己姓也。譙周云:「秦兄弟五人,秦最少。兄代,代弟厲及辟、鵠,並為游說之士。」此下云「秦弟代,代弟厲」也。正義戰國策云:「蘇秦,雒陽乘軒里人也。」藝文志云蘇子三十一篇,在縱橫流。敬王以子朝之亂從王城東遷雒陽故城,乃號東周,以王城為西周。  

 〔二〕集解徐廣曰:「潁川陽城有鬼谷,蓋是其人所居,因為號。」駰案:風俗通義曰「鬼谷先生,六國時從橫家」。索隱按:鬼谷,地名也。扶風池陽、潁川陽城並有鬼谷墟,蓋是其人所居,因為號。又樂壹注鬼谷子書云「蘇秦欲神祕其道,故假名鬼谷」。  

 出游數歲,大困而歸。〔一〕

방랑하기 몇 년만에 매우 곤궁해서 향리로 돌아왔다.

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曰:

「周人之俗,治產業,力工商,

逐什二以為務。

今子釋本而事口舌,困,不亦宜乎!」

형제, 형수, 누이, 처첩 등이 모두 가만히 조소하여 말하기를,

“주나라 관습에는 전지를 경작하거나 공업 상업에 힘써

2할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의무인데

그는 그 본업을 버리고 다만 혀 끝의 의논에 힘썼다.

곤궁한 것도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蘇秦聞之而慚,自傷,

乃閉室不出,出其書遍觀〔二〕之。

소진은 이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부끄럽게 여기고

스스로 마음상해서

방문을 닫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기의 장서를 꺼내어 두루 훑어보고 말했다.

曰:「夫士業已屈首受書,〔三〕

而不能以取尊榮,雖多亦奚以為!」

“사내로서 남에게 머리를 숙여 학문을 하면서

아무런 영달도 못한다고 해서야

아무리 독서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於是得周書陰符,伏而讀之。

期年,以出揣摩,〔四〕

그 중에서 <주서>의 ‘음부’를 찾아

책상에 엎드려 열심히 읽었다.

1년쯤 되어서 <췌마술>을 터득하고 말했다.

曰:「此可以說當世之君矣。」

求說周顯王。

“이것이면 당대의 군주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먼저 주나라 현왕을 설득하고자 했다.

顯王左右素習知蘇秦,

皆少之。〔五〕弗信。

현왕의 측근에 있는 자가 본래 소진을 잘 알았으므로

모두들 그를 무시하고 믿지 않았다.

  〔一〕索隱按:戰國策此語在說秦王之後。

  〔二〕索隱音遍官二音。按:謂盡觀覽其書也。

  〔三〕索隱按:謂士之立操。業者,素也,本也。言本已屈首低頭,受書於師也。

  〔四〕集解戰國策曰:「乃發書,陳篋數十,得太公陰符之謀,伏而誦之,簡練以為揣摩。讀書欲睡,引錐自刺其股,血流至踵。曰:「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玉錦繡,取卿相之尊者乎?」期年,揣摩成。」鬼谷子有揣摩篇也。索隱戰國策云「得太公陰符之謀」,則陰符是太公之兵符也。揣音初委反,摩音姥何反。鄒誕本作「揣靡」,靡讀亦為摩。王劭云「揣情、摩意是鬼谷之二章名,非為一篇也」。高誘曰「揣,定也。摩,合也。定諸侯使讎其術,以成六國之從也」。江邃曰「揣人主之情,摩而近之」,其意當矣。

  〔五〕索隱謂王之左右素慣習知秦浮說,多不中當世,而以為蘇秦智識淺,故云「少之」。劉氏云:「少謂輕之也。」

乃西至秦。

秦孝公卒。說惠王曰:

그리하여 서쪽 진나라에 이르렀다.

진효공은 이미 죽은 뒤여서

새로 임금이 된 혜왕을 설득해 말했다.

「秦四塞之國,被山帶渭,

東有關河,〔一〕西有漢中,

南有巴蜀,北有代馬,〔二〕此天府也。〔三〕

“진나라는 사방이 요새지로 된 나라로서

산에 둘러싸이고 위수가 띠처럼 이어졌고,

동에 함곡관과 황하가 있고, 서에 한중이 있고,

남에 파·촉이 있고, 북에 대마가 있어,

천연의 보고입니다.

以秦士民之眾,兵法之教,

可以吞天下,稱帝而治。」

진나라 사민(士民)의 많음과

병법을 가르침으로써

천하를 병탄하고

황제 칭호를 일컬을 수 있을 것입니다.”

秦王曰:

「毛羽未成,不可以高蜚;

文理未明,不可以并兼。」

진왕이 대답했다.

“새도 털이 나서 자라기까지는 높이 날지 못하오.

우리 나라도 문교와 정치가 밝아지기까지는

다른 나라를 병합하는 따위는 생각조차 못할 일이오.”

方誅商鞅,疾辯士,弗用。

진나라에서는 이 무렵 상앙을 죽이고

세객들을 미워하던 시기였으므로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一〕正義東有黃河,有函谷、蒲津、龍門、合河等關;南山及武關、嶢關;西有大隴山及隴山關、大震、烏蘭等關;北有黃河南塞:是四塞之國,被山帶渭(又)〔以〕為界。地里。江(渭)〔謂〕岷江,〔西從〕渭州隴山之西南流入蜀,東至荊陽入海也。河謂黃河,從同州小積石山東北流,至勝州即南流,至華州又東北流,經魏、滄等州入海。各是萬里已下。

〔二〕索隱按:謂代郡馬邑也。地理志代郡又有馬城縣。一云代馬,謂代郡兼有胡馬之利。

 [三〕索隱按:周禮春官有天府。鄭玄曰:「府,物所藏。言天,尊此所藏若天府然。」

乃東之趙。

趙肅侯令其弟成為相,號奉陽君。

奉陽君弗說之。

그리하여 동쪽 조나라로 갔다.

조숙후는 아우 성을 재상으로 삼아

이를 봉양군이라 하였는데

봉양군은 소진을 환영하지 않았다.

去游燕,歲餘而後得見。

거기서 또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에 유세하고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알현이 허락되었다.

說燕文侯[一]曰:

「燕東有朝鮮﹑[二]遼東,北有林胡樓煩,[三]﹑

西有雲中﹑九原,[四]南有嘑沱﹑易水,[五]

연문후에게 말했다.

“연나라는 동쪽에 조선과 요동,

북에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에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에 호타와 역수가 흐릅니다.

地方二千餘里,帶甲數十萬,

車六百乘,騎六千匹,粟支數年。[六]

토지는 사방 2천여 리이고

무장 병력 수십만,

전차 6백 승, 군마 6천 필,

군량은 몇 년을 지내기가 족합니다.

南有碣石﹑[七]鴈門之饒,[八]

北有棗栗之利,

民雖不佃作而足於棗栗矣。

此所謂天府者也。

남에 갈석과 안문의 풍성함을 끼고

북에는 대추와 밤 수확이 있어서

백성의 전지 농사가 아니더라도 대추와 밤으로 자급이 되니

천연의 보고라고 하겠습니다.

注[一]索隱說音稅,下並同。燕文侯,史失名。

注[二]索隱潮仙二音,水名。

注[三]索隱地理志樓煩屬鴈門郡。正義二胡國名,朔﹑嵐已北。

注[四]索隱按:地理志雲中﹑九原二郡名。秦曰九原,漢武帝改曰五原郡。正

義二郡並在勝州也。雲中郡城在榆林縣東北四十里。九原郡城在榆林縣西界。

注[五]集解周禮曰:「正北曰并州,其川沱。」鄭玄曰:「沱出鹵城。」索

隱按:滹,水名,并州之川也,音呼沱。又地理志鹵城,縣名,屬代郡。滹

河自縣東至參合,又東至文安入海也。正義沱出代州繁畤縣,東

南流經五臺山北,東南流過定州,流入海。易水出易州易縣,東流過幽州歸義

縣,東與呼沱河合也。

注[六]索隱按:戰國策「車七百乘,粟支十年」。

注[七]索隱*(戰國策)*碣石山在常山九門縣。地理志大碣石山在右北平驪城縣

西南。

注[八]正義鴈門山在代,燕西門。

「夫安樂無事,

不見覆軍殺將,無過燕者。

안락 무사하여

전화(戰禍)를 입지 않기로는

연나라보다 더 나은 나라가 없습니다.

大王知其所以然乎?

夫燕之所以不犯寇被甲兵者,

以趙之為蔽其南也。

왜 무사한가는 대왕도 잘 아시겠지요?

연나라가 외적에 침범되지 않고 전화를 입지 않은 것은

조나라가 연나라의 장벽이 되어 남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秦趙五戰,秦再勝而趙三勝。

진과 조는 다섯 번 싸워서

진이 2번 이기고 조가 3번 이겼습니다.

秦趙相斃,而王以全燕制其後,

此燕之所以不犯寇也。

이 때문에 진나라와 조나라 두 나라는 함께 쓰러졌으므로

임금께서는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독자적으로 그 후방을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연나라가 외적을 침범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且夫秦之攻燕也,踰雲中﹑九原,

過代﹑上谷,彌地數千里,

雖得燕城,秦計固不能守也。

대체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는 데는

설중과 구원을 넘어

대와 상곡을 통과하지 않으면 아니 되며

그 길은 몇 천리나 됩니다.

설령 연나라의 성읍을 얻더라도

진나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습니다.

秦之不能害燕亦明矣。

그러고 보면 진나라가

연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는 까닭도 역시 명백합니다.

今趙之攻燕也,發號出令,不至十日

而數十萬之軍軍於東垣矣。[一]

渡嘑沱,涉易水,

不至四五日而距國都矣。

그런데 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고 하면

호령을 낸 지 열흘이 못되어

몇 십만의 군사가 동원에 진을 치고

호타하를 건너 역수를 넘어

4,5일이 못되어 연나라 국도에 도달합니다.

故曰秦之攻燕也,戰於千里之外;

趙之攻燕也,戰於百里之內。

그러므로 이르기를

‘진나라는 연나라를 치는데

천리 밖에서 싸우고

조나라는 연나라를 치는데

백 리 안에서 싸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夫不憂百里之患 而重千里之外,

計無過於此者。

是故願大王與趙從親,

天下為一,則燕國必無患矣。」

도대체 백 리 밖의 적을 걱정하지 않고

천 리 밖의 적을 중요시하다니

이처럼 그릇된 계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합종으로써 친하여

천하 제후와 일체가 된다면

연나라에는 반드시 우환이 없을 것입니다.”

注[一]索隱地理志高帝改曰真定也。正義趙之東邑,在恆州真定縣南八里,故

常山城是也。

文侯曰:

「子言則可,然吾國小,

西迫彊趙,[一]南近齊,[二]齊﹑趙彊國也。

子必欲合從以安燕,寡人請以國從。」

문후가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옳소.

그러나 나의 나라는 작아서

서쪽은 강한 조나라에 압박을 당하고

남쪽은 제나라 땅에 가깝습니다.

제나라와 조나라는 다 강국이므로

그대가 반드시 합종하여 연나라를 편안히 하고자 한다면

과인은 나라를 들어 그대의 말에 따르리다.”하였다.

注[一]正義貝﹑冀﹑深﹑趙四州,七國時屬趙,即燕西界。

注[二]正義河北博﹑滄﹑德三州,齊地北境,與燕相接,隔黃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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