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이 열하일기에서 중국 옥전현 심유붕의 골동품점에서 베꼈음을 밝혔으나 창강 김택영은 이 발문에서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연암의 작품이라 못박았다. 그런데 천하의 기문인 이 글을 연암이 자기글이 아니라고 손사레를 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은자 생각에는 유학자를 공격하고 당할 자신과 가문의 화를 피하기 위한 장치물로 이해된다. 역시 열하일기에 실은 <허생전>에서도 연경으로 돌아와 비장들과 어울린 저녁에 윤영에게서 들은 이야기임을 전제하고 연암이 전달하는 형식을 취하여 " 윤영이 말하기를[映之言曰]" 로 작품이 시작되고, 처음 쓴 후지 <진덕재야화>에는 윤영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았던가? 얼마나 완벽한 장치물인가?
다음 꼭지에서 함께 읽어본다.
[金澤榮跋文]
篇首始引他獸以罵虎 忽復引人而讚虎
작품 머리에 다른 짐승들을 글여들여 범을 꾸짖다가 문득 다시 사람을 끌여들여 범을 예찬한다.
自此以下 愈出愈奇
이 아래로는 나갈수록 더욱 기이하여
雖其說狂悖 不可爲訓 而文則奇矣.
비록 사리에 맞지 않는 미치광이 소리지만 교훈이 되지는 못하지만 문장은 기이하다.
右文按燕巖先生熱河日記曰
오른쪽 글은 연암 선생의《열하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與鄭進士 行至玉田縣 於商客沈由朋舖壁上 得一篇奇文
“정진사와 행차가 옥전현에 이르렀을 때 상인 심유붕의 점포 벽 위에서 한편의 奇文을 얻었는데
不著作人姓名 問所從得
작가의 성명이 드러나지 않았다. 가서 얻은 곳을 물었더니
沈云 收買於薊州市
沈은 "계주장에서 샀다." 고 말했다.
乃偕鄭謄之 而鄭所謄字句 多漏落
鄭군과 함께 베꼈으나 정군이 베낀 字句는 누락된 것이 많았다.
故就以補潤以成其篇
그러므로 처소로 가서 보충하고 윤문하여 작품을 이루었다.”
又繼之以跋 以爲是華人罵人之狐媚淸廷者也.
또 이어서 跋文하여, 이는 중화인이 사람들이 청나라 조정에 여우처럼 아첨함을 꾸짖은 것이다.”라고 여겼다.
然以余觀之 蓋沈舖所在者 卽稗官小說數行之文
그러나 내가 보건대, 대개 沈의 점포에 있는 것은 곧 패관소설 몇 행의 글이었으나
而先生認爲前明遺民之所托 遂推演以爲大篇耶?
연암 선생이 고의로 앞의 명나라 유민이 가탁한 것으로 하여 드디어 퇴고하고 부연하여 대작을 만든 것인가 한다.
抑先生素嫉世俗僞儒之無實行好苛論者.
아니면 선생이 평소 세속의 엉터리 유학자들이 실행은 없고 지독한 논쟁을 좋아하는 이들을 미워하거나,
及見其文 有感於中
이 글을 보고 중간에서 느꺼움이 있어
遂乃因其題以作 而恐招謗怨 諉之華人耶?
드디어 제목을 지음으로 인하여 비방과 원망을 부를까 두려워하여 이를 중화인에게 위탁함인가?
或謂先生旣已明言 爲中國人所作
혹은 말하기를, 선생이 이미 밝혀 중국인 작품이라고 말했다면
則今不可歸之先生. 是殆不然
지금 그것을 선생에게로 돌릴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夫是文雖似胠篋盜跖等篇之誕妄
대개 이 작품이 비록 거협 도척 등 편의 허탄하고 망령됨은 같으나
而其體裁之奇古 辭氣之俊傑
그 체재의 기이하고 고고함과 어조의 준걸함은
直與先秦諸子竝驅 而爭先.
곧바로 先秦 諸子百家와 함께 달려도 앞을 다툰다.
若曰中國人作 必在於一代之一二文章大家
만약 중국인 작품이라고 한다면 한 시대의 한두 문장가에 있지
非三家村中無名之士之所可擬議
산골 마을의 이름없는 선비가 모방하고 논의할 바는 아니나
而今攷有淸諸文集 未嘗有此 此一也.
지금 청나라 여러 문집을 고구해도 이 작품이 없었으니 이것이 첫째 이유다.
且又使是文 眞出於中國人 先生修而雅之
또 설사 이 작품이 진짜로 중국인에게서 나왔다 치더라도 선생이 다듬고 전아하게 했다면
則卽是先生之文 而不復繫中國人 此二也.
곧 선생의 것이지 다시 중국인에 연계되지 아니하니, 이것이 둘째 이유다.
其中五行定位 未始相生
작품 가운데 "五行은 定位요 처음부터 相生함이 없다."는 것은
卽先生平日所常持之新論 而無於古者 此三也.
선생이 평소 늘 가졌던 새로운 논의요 옛날에는 없었으니 이것이 셋째 이유다.
又其衰[縗]服者 不食一句 卽本國之諺也.
또 "상복 입은 이는 잡아먹지 않는다."는 한 구절은 곧 우리나라 속담이다.
余疑中國亦或有此諺 試叩之淮南文士 皆以未聞答之
나는 중국에도 혹시 이러한 속담이 있는가 하여 시험삼아 회남 문사들에게 물었으나 모두 듣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한 백수였지만 44세에 잡은 단 한 번의 연행 경험은 조선후기 저술중 제1반열을 차지하는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 를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 연행록은 낙점에서 이별잔치, 출발 등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연행록은 대뜸 '도강록'에서 시작된다. 인상 깊은 것을 적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탄탄한 기본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가 읽은 명문들은 다 그랬기 때문이다. 출사에 대한 보장은 없었지만 국가경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20년에 걸친 북학공부를 단 한 권의 책에 녹여냈다. 국가경영에 대한 그의 경륜을 압축한 것이 <허생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작품의 구성도 그의 지론인 이용, 후생, 정덕, 현실비판으로 맞아떨어진다.작품 속의 무인도 개척은 흔히 <홍길동전>의 율도국애 비견된다.
今夜願聞先生讀書之聲(금야원문선생독서지성) :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간청하매,
北郭先生(북곽선생) : 북곽 선생은
整襟危坐而爲詩曰(정금위좌이위시왈) :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었다.
䲶鴦在屛(䲶앙재병)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경경류형) : 반딧불 흘러 잠 못 이룬다
維鬵維錡(유심유기) :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誰之型(운수지형)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한다.
興也(흥야):흥야라 (興-연상법)
[주D-014]가마솥과……만들었나 : 발 없는 가마솥과 세발솥은 그 모형이 다 다르다. 이로써 성 다른 다섯 아들에게 비하였다. 대체 다섯 아이들이 성도 다르고 얼굴도 같지 않으니, 이는 어떤 잡놈들과 관계해서 이런 것들을 낳았다는 의미. [주D-015]흥이라[興也] : 육의(六義)의 하나. 먼저 어떤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원앙새를 먼저 이끌어서 남녀의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다.육의는 [風雅頌/比賦興]
5)五子의 공격에 추락하는 북곽의 권위
-도망치다 들판의 똥통에 빠지다
五子相謂曰(오자상위왈) :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禮不入寡婦之門(례불입과부지문) : "예의 상으로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 없다
北郭先生賢者也(북곽선생현자야) : 북곽 선생은 현자이니까
吾聞鄭之城門壞而狐穴焉(오문정지성문괴이호혈언) :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虎叱曰(호질왈) :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毋近前(무근전) :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曩也吾聞之(낭야오문지) : 접때 내가 들으니
儒者諛也(유자유야) :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果然(과연) : 과연 그렇구나. 汝平居集天下之惡名(여평거집천하지악명) :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妄加諸我(망가제아) : 망령되이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今也急而面諛(금야급이면유) :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將誰信之耶(장수신지야) : 장차 누가 이를 믿겠느냐?
2)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다
夫天下之理一也(부천하지리일야) :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다. 虎誠惡也(호성악야) :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人性亦惡也(인성역악야) :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人性善則虎之性亦善也(인성선칙호지성역선야) :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汝千語萬言(여천어만언) :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不離五常(불리오상) : 오상륜(五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戒之勸之(계지권지) :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恒在四綱(항재사강) : 항상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주D-022]오상(五常) : 부의(父義)ㆍ모자(母慈)ㆍ형우(兄友)ㆍ제공(弟恭)ㆍ자효(子孝). [주D-023]사강(四綱) :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
然都邑之間(연도읍지간) : 그런데 도회지에 無鼻無趾(무비무지) :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文面而行者(문면이행자) :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皆不遜五品之人也(개불손오품지인야) :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然而徽墨斧鉅(연이휘묵부거) :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日不暇給(일불가급) :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莫能止其惡焉(막능지기악언) :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而虎之家自無是刑(이호지가자무시형) :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由是觀之(유시관지) : 이로 보면 虎之性不亦賢於人乎(호지성불역현어인호) :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3)범의 도리는 광명 정대(光明正大)하다
虎不食草木(호불식초목) :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不食虫魚(불식충어) :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不嗜麴蘖悖亂之物(불기국얼패란지물) :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不忍字伏細瑣之物(불인자복세쇄지물) :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入山獵麕鹿(입산렵균록) :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在野畋馬牛(재야전마우) :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未甞爲口腹之累飮食之訟(미상위구복지루음식지송) :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虎之道(호지도) : 범의 도리가 豈不光明正大矣乎(기불광명정대의호) :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4)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희가 나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
虎之食麕鹿(호지식균록) :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而汝不疾虎(이여불질호) :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虎之食馬牛(호지식마우) :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而人謂之讐焉(이인위지수언) :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豈非麕鹿之無恩於人(기비균록지무은어인) : 어찌 노루나 사슴은 사람들에게 은공이 없고 而馬牛之有功於汝乎(이마우지유공어여호) :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然而不有其乘服之勞戀效之誠(연이불유기승복지로련효지성) :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갖지 않고 日充庖廚(일충포주) :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角鬣不遺(각렵불유) :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而乃復侵我之麕鹿(이내부침아지균록) :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使我乏食於山(사아핍식어산) :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缺餉於野(결향어야) :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使天而平其政(사천이평기정) :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汝在所食乎所捨乎(여재소식호소사호) : 너희는 나의 먹이가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5)잔인하고 박행함이 인간보다 더한 것은 없다
夫非其有而取之(부비기유이취지) :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謂之盜(위지도) : 도(盜)라 하고, 殘生而害物者(잔생이해물자) :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謂之賊(위지적) : 적(賊)이라 하나니, 汝之所以日夜遑遑(여지소이일야황황) :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揚臂努目(양비노목) :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挐攫而不恥(나확이불치) :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甚者(심자) : 심한 놈은 呼錢爲兄(호전위형) :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주D-024]돈을……부르고 : 옛날 돈이 구멍이 났으므로 공방형(孔方兄)이라 하였고, 또는 돈을 가형(家兄)이라 한 이도 없지 않았다. 진(晉) 나라 노포(魯褒)의 〈전신론(錢神論)〉에 나오는 말들.
求將殺妻(구장살처) :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다면 [주D-025]장수되기……일 : 전국 때 명장 오기(吳起)의 고사.
則不可復論於倫常之道矣(칙불가부론어륜상지도의) :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乃復攘食於蝗(내부양식어황) :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奪衣於蚕(탈의어천) :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禦蜂而剽甘(어봉이표감) : 벌을 막고 꿀을 따며, 甚者(심자) : 심한 놈은 醢蟻之子(해의지자) :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以羞其祖考(이수기조고) : 조상에게 제수로 진설하니 [주D-026]개미……제사하니 : 《예기》 내칙편(內則篇)에 나오는 일.
其殘忍薄行(기잔인박행) : 잔인하고 박행함이 孰甚於汝乎(숙심어여호) :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6)인간은 천하의 도적이다
汝談理論性(여담리론성) :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動輒稱天(동첩칭천) :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自天所命而視之(자천소명이시지) :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則虎與人(칙호여인) : 범이나 사람이나 乃物之一也(내물지일야) :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自天地生物之仁而論之(자천지생물지인이론지) :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則虎與蝗蚕蜂蟻與人並畜(칙호여황천봉의여인병축) :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而不可相悖也(이불가상패야) :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自其善惡而辨之(자기선악이변지) :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칙공행표겁어蠭의지실자) :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獨不爲天地之巨盜乎(독불위천지지거도호) :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사연양절어황천지자자) :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獨不爲仁義之大賊乎(독불위인의지대적호) :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7)동류끼리 잡아먹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虎未甞食豹者(호미상식표자) :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誠爲不忍於其類也(성위불인어기류야) :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然而計虎之食麕鹿(연이계호지식균록) :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불약인지식균록지다야) :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計虎之食馬牛(계호지식마우) : 범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計虎之食人(계호지식인) :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相食之多也(불약인지상식지다야) : 사람이 서로를 잡아 먹는 것만큼 많지 않다. 去年關中大旱(거년관중대한) :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民之相食者數萬(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往歲山東大水(왕세산동대수) :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民之相食者數萬(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雖然(수연) : 비록 그러하나其相食之多(기상식지다) :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又何如春秋之世也(우하여춘추지세야) :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春秋之世(춘추지세) : 춘추 시대에 樹德之兵十七(수덕지병십칠) :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報仇之兵十三(보구지병십삼) :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流血千里(류혈천리) :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伏屍百萬(복시백만) : 거꾸러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8)범의 예성(睿聖)과 무용(武勇) & 인의(仁義)
而虎之家水旱不識(이호지가수한불식) :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故無怨乎天(고무원호천) :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讐德兩忘(수덕량망) :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故無忤於物(고무오어물) :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知命而處順(지명이처순) :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故不惑於巫醫之姦(고불혹어무의지간) :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踐形而盡性(천형이진성) :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故不疚乎世俗之利(고불구호세속지리) :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此虎之所以睿聖也(차호지소이예성야) :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窺其一班(규기일반) :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足以示文於天下也(족이시문어천하야) :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不藉尺寸之兵(불자척촌지병) :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而獨任爪牙之利(이독임조아지리) :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所以耀武於天下也(소이요무어천하야) :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彛卣蜼尊(이유유존) : 종이(宗彛)와 유준(蜼尊)은 所以廣孝於天下也(소이광효어천하야) :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一日一擧而烏鳶螻螘(일일일거이오연루의) :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共分其餕(공분기준) : 대궁을 함께 나누어 주니 仁不可勝用也(인불가승용야) :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讒人不食(참인불식) :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廢疾者不食(폐질자불식) :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衰服者不食(쇠복자불식) :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주D-027]고자질하는……않으니 : 이 세 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나라 재래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義不可勝用也(의불가승용야) :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9)인간의 잔학(殘虐)함
-그물, 창, 화포, 붓
不仁哉(불인재) :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汝之爲食也(여지위식야) :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機穽之不足(기정지불족) :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 저 새 그물과 작은 노루 그물[網] ,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과 삼태 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始結網罟者(시결망고자) :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裒然首禍於天下矣(부연수화어천하의) :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有鈹者 戣者 殳者 斨者 叴者 矟者 鍜者 鈼者者
(유피자 규자 수자 장자 구자 삭자 하자 작자자)
: 게다가 큰바늘과 쥘창, 날 없는 창과 도끼, 세모창과 한길 여덟 자 창, 뾰죽 창과 작은 칼, 긴 창까지 만들었지.
注] 鈹(피):종기. 째는 데 쓰이는 양날이 있는 파종침. 창. 戣(규):양지창. 殳(수):창, 모둥이. 斨(장):도끼. 厹(구):세모창. 矟(삭):삼지창. 鍜(하):목투구. 鈼(작):釜也, 鉹(창칼치)也. 礮(포):돌쇠뇌. 逞(령):굳세다, 쾌하다, 즐겁다.
有礮發焉(유포발언) :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聲隤華嶽(성퇴화악) :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火洩陰陽(화설음양) : 천지에 불꽃을 쏟아 暴於震霆(폭어진정) :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是猶不足以逞其虐焉(시유불족이령기학언) :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則乃吮柔毫(칙내연유호) :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合膠爲鋒(합교위봉) : 아교에 붙여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體如棗心(체여조심) : 그 몸은 대추씨 같고 長不盈寸(장불영촌) : 그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淬以烏賊之沫(쉬이오적지말) :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縱橫擊刺(종횡격자) :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曲者如矛(곡자여모) :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銛者如刀(섬자여도) :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銳者如釖(예자여도) : 예리한 것은 낫같고, 歧者如戟(기자여극) :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지창 같고, 直者如矢(직자여시) : 곧은 것은 화살 같고, 彀者如弓(구자여궁) :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此兵一動(차병일동) :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百鬼夜哭(백귀야곡) :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주D-028]보드라운……지경이라니 : 붓으로 문자를 써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는 비유. 옛날 창힐(倉頡)이 한자(漢子)를 처음 짓자, 귀신이 밤에 울었다 하였다.
其相食之酷(기상식지혹) :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孰甚於汝乎(숙심어여호) :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5]북곽선생의 권위회복
1)북곽은 범의 구중을 듣고도 경전을 들먹이며 범의 풍교를 배우겠노라 아첨한다
北郭先生離席俯伏(북곽선생리석부복) :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逡巡再拜(준순재배) :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頓首頓首曰(돈수돈수왈) :
傳有之(전유지) :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일렀으되 雖有惡人(수유악인) :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齋戒沐浴(재계목욕) : 목욕 재계(齋戒)하면 則可以事上帝(즉가이사상제) :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下土賤臣(하토천신) : 하토의 천한 신하는 敢在下風(감재하풍) : 감히 아래 처지에 서옵니다.” 屛息潛聽(병식잠청) :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久無所命(구무소명) : 오랫동안 아무 명령이 없기에 誠惶誠恐(성황성공) : 참으로 황공해서 拜手稽首(배수계수) : 절하고 조아리다가 仰而視之(앙이시지) :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東方明矣(동방명의) : 이미 먼동이 터 훤히 밝았는데 虎則已去(호칙이거) : 범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2)들에 나온 농부 만나 권위를 온전히회복하다
農夫有朝菑者(농부유조치자) :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問先生何早敬於野(문선생하조경어야) :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北郭先生曰(북곽선생왈) :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吾聞之(오문지) : “내가 들으니 시경시에謂天蓋高(위천개고) : ‘하늘이 높다 해도 不敢不局(불감불국) :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謂地蓋厚(위지개후) : 땅이 두텁다 해도 不敢不蹐(불감불척) :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