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우리가 고전 읽기에 주저하는 것은 작자의 해박한 고사 인용에 막히고 질리기 때문이다.고전번역원의 곰꼼한 주석을 만나 연암소설인 방경각외전의 초기9전, 열하일기에 수록된 2편, 안의현감 시절에 쓴 1편까지 다시 읽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블로그에서 다시 정리하는 기회를 가진 것도 내게는 큰 영광이다.연암 선생의 명복을 빌며, 뒤에서 논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글을 몇 편 더 인용하는 걸로 연암 선생께 진 빚의 일부라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암은 서문에서 바람직한 열녀상을 제시하였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죽은 남편을 따라죽는 것도 가상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며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겟는가? 필자가 조사하여 정리했던 바로는, 울산읍지에 소개된 끔직한 사건도 있었다. 뱃사공의 딸이 일찍 과부되었는데, 그녀의 아비가 동네 사내를 끌여들여 함께 살아주기를 기도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여인은 사내에게 물 좀 먹고 오겠다며 부엌으로 나갔다. 여인이 돌아오지 않아 사내가 부엌에 나가 보니 여인은 식칼로 젖가슴과 입술을 도려내고 죽어 있었다. 조선 초기에 시작된 열녀운동의 극단적 참상의 일단이다.

 

열녀 함양 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병서(幷序)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암집 제 1 권

 

 

[이 서문은 연암의 창작]

 

齊人有言曰 “烈女不更二夫.”
제(齊) 나라 사람의 말에, “열녀는 지아비를 둘로 바꾸지 않는다.” 하였으니,

[주D-001]제(齊) 나라 …… 하였으니 : 제 나라의 현자 왕촉(王蠋)이 제 나라를 침략한 연(燕) 나라가 자신을 장수로 기용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숙한 여자는 지아비를 둘로 바꾸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史記 卷82 田單列傳》

 

如『詩』之〈柏舟〉是也.

이를테면 《시경》 용풍(鄘風)

백주(柏舟)

의 시가 바로 이것이다.

[주D-002]백주(柏舟) : 《시경》 용풍(鄘風)의 편명으로, 위(衛) 나라 세자 공백(共伯)이 일찍 죽고 그의 아내인 공강(共姜)이 절개를 지키려 하였는데, 그녀의 부모가 이를 막고 재가를 시키려 하자 공강이 자신의 의지를 노래한 시라고 한다.

 

然而國典 “改嫁子孫 勿敍正職.”

그러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은 정직(正職)에는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주D-003]《경국대전(經國大典)》에 …… 하였으니 : 정직(正職)은 문무반(文武班)의 정식 벼슬을 가리킨다. 《경국대전》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조에 “실행(失行)한 부녀와 재가(再嫁)한 부녀의 소생은 동반직(東班職)과 서반직(西班職)에 서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규정은 정조(正祖) 9년(1785) 《경국대전》과 《속대전(續大典)》 등을 통합하여 편찬한 《대전통편(大典通編)》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此豈爲庶姓黎甿而設哉?

이것이 어찌 일반 백성과 무지한 평민들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랴.

乃國朝四百年來 百姓旣沐久道之化

마침내 우리 왕조 400년 동안 백성들이

오랫동안 앞장서 이끄신 임금님들의 교화

에 이미 젖어,

[주D-004]오랫동안 …… 교화 : 원문은 ‘久道之化’인데, ‘久道’는 ‘久導’와 같다. 《백척오동각집(百尺梧桐閣集)》, 《연암제각기(燕巖諸閣記)》 등에는 바로 위의 ‘우리 왕조〔國朝〕’ 앞에 공백을 둠과 동시에 이 구절에서도 ‘久道之 化’라 하여 중간에 공백을 두어 경의를 표했다.

 

則女無貴賤 族無微顯
여자는 귀하든 천하든 간에, 또 그 일족이 미천하거나 현달했거나 간에

莫不守寡 遂以成俗.

과부로 수절하지 않음이 없어 드디어 이로써 풍속을 이루었으니,

故之所稱烈女 今之所在寡婦也.

옛날에 칭송했던 열녀는 오늘날 도처에 있는 과부들인 것이다.至若田舍少婦 委衖靑孀 非有父母不諒之乏 非有子孫勿敍之恥
심지어 촌구석의 어린 아낙이나 여염의 젊은 과부와 같은 경우는 친정 부모가 과부의 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개가하라며 핍박하는 일도 있지 않고 자손이 정직에 서용되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도 아니건만,

而守寡不足以爲節

한갓 과부로 지내는 것만으로는 절개가 되기에 부족하다 생각하여,

則往往自滅晝燭 祈殉夜臺

왕왕

낮 촛불을 스스로 꺼 버리고

남편을 따라 죽기를 빌며

[주D-005]낮 촛불을 스스로 꺼 버리고 : 당시 풍속에 과부는 외간 남자와 접촉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거처하는 방에 대낮에도 촛불을 켜 두었다. 죽기로 결심했으므로 더 이상 그러한 구차스러운 조치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水火鴆繯 如蹈樂地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뛰어들어 죽거나 독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기를 마치 낙토를 밟듯이 하니,

烈則烈矣 豈非過歟?

열녀는 열녀지만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
昔有昆弟名宦
예전에 이름난 벼슬아치 형제가 있었다.

將枳人之淸路 議于母前.

장차 남의

청환(淸宦)

의 길을 막으려 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이를 의논하자,

[주D-006]청환(淸宦) : 봉록은 많치 않으나 명예롭게 여겨졌던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등의 하위 관직을 가리킨다. 학식과 문벌을 갖춘 인물에 한하여 허용되었다.

 

母問 “奚累而枳?”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이를 막으려 하느냐?” 하고 물었다.

對曰 “其先有寡婦 外議頗喧.”

아들들이 대답하기를,“그 윗대에 과부된 이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바깥의 논의가 자못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母愕然曰 “事在閨房 安從而知之?”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그 일은 규방의 일인데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하자,

對曰 “風聞也.”

아들들이 대답하기를,“풍문(風聞)이 그렇습니다.” 하였다.

母曰

어머니는 말하였다.

“風者 有聲而無形也.

“바람이란 소리는 있으되 형체가 없다.

目視之而無覩也. 手執之而無獲也.

눈으로 보자 해도 보이는 것이 없고, 손으로 잡아 봐도 잡히는 것이 없으며,

從空而起 能使萬物浮動

허공에서 일어나서 능히 만물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奈何以無形之事 論人於浮動之中乎?

어찌하여 무형(無形)의 일을 가지고 들뜬 가운데서 사람을 논하려 하느냐?

且若乃寡婦之子.

더구나 너희는 과부의 자식이다.

寡婦子尙能論寡婦耶?

과부의 자식이 오히려 과부를 논할 수 있단 말이냐?

居, 吾有以示若.”

앉거라.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게 있다.” 하고는

出懷中銅錢一枚曰

품고 있던 엽전 한 닢을 꺼내며 말하였다.“이것에 테두리가 있느냐?”“此有輪郭乎?”

曰 “無矣.”

“없습니다.”

“此有文字乎?”

“이것에 글자가 있느냐?”

曰 “無矣.”

“없습니다.”

母垂淚曰

어머니는 눈물을 드리우며 말하였다.

“此汝母忍死符也.

“이것은 너희 어미가 죽음을 참아 낸 부적이다.

十年手摸 磨之盡矣.

10년을 손으로 만졌더니 다 닳아 없어진 것이다.

大抵 人之血氣 根於陰陽

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뿌리를 두고,

情欲鍾於血氣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思想生於幽獨

그리운 생각은 고독한 데서 생겨나고,

傷悲因於思想.

슬픔은 그리운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다.

寡婦者 幽獨之處 而傷悲之至也.

과부란 고독한 처지에 놓여 슬픔이 지극한 사람이다.

血氣有時而旺 則寧或寡婦而無情哉?

혈기가 때로 왕성해지면 어찌 혹 과부라고 해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느냐?


殘燈弔影 獨夜難曉.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제 그림자 위로하며

홀로 지내는 밤은 지새기도 어렵더라.

[주D-007]제 그림자 위로하며 : 원문은 ‘弔影’인데, ‘형영상조(形影相弔)’라 하여 아무도 없고 자신의 몸과 그림자만이 서로를 위로한다는 뜻으로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 신세를 표현한 말이다.

 

若復簷雨淋鈴 窓月流素

만약에 또 처마 끝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거나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들며,

一葉風庭 隻雁叫天.

낙엽 하나가 뜰에 지고 외기러기 하늘을 울고 가며,

遠鷄無響 穉婢牢鼾. /穉=稚.. 鼾한:코골다.

멀리서 닭 울음도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세상 모르고 코를 골면

耿耿不寐 訴誰苦衷?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 이 고충을 누구에게 호소하랴.

 

吾出此錢而轉之 遍模室中.

그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꺼내 굴려서 온 방을 더듬고 다니는데

圓者善走 遇域則止.

둥근 것이라 잘 달아나다가도 턱진 데를 만나면 주저앉는다.

吾索而復轉.

그러면 내가 찾아서 또 굴리곤 한다.

夜常五六轉 天亦曙矣.

밤마다 늘상 대여섯 번을 굴리면 먼동이 트더구나.

十年之間 歲減其數 十年以後

10년 사이에 해마다 그 횟수가 점차 줄어서 10년이 지난 이후에는

則或五夜一轉 或十夜一轉.

때로는 닷새 밤에 한 번 굴리고, 때로는 열흘 밤에 한 번 굴렸는데,

血氣旣衰 而吾不復轉此錢矣.

혈기가 쇠해진 뒤로는 더 이상 이 엽전을 굴리지 않게 되었다.

然吾猶十襲 而藏之者 二十餘年.

그런데도 내가 이것을 열 겹이나 싸서 20여 년 동안이나 간직해 온 것은

所以不忘其功 而時有所自警也.

엽전의 공로를 잊지 않으며 때로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遂子母相持而泣.

말을 마치고서 모자는 서로 붙들고 울었다.

君子聞之曰

당시의 식자(識者)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是可謂烈女矣.”

“이야말로 열녀라고 이를 만하다.”고 했다.

噫, 其苦節淸修 若此矣.

아! 그 모진 절개와 맑은 행실이 이와 같은데도 無以表見於當世 名堙沒而不傳 何也?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이름이 묻혀 후세에도 전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寡婦之守義 乃通國之常經

과부가 의를 지켜 개가하지 않는 것이 마침내 온 나라의 상법(常法)이 되었으므로,

故微一死 無以見殊節於寡婦之門.

한번 죽지 않으면 과부의 집안에서 남다른 절개를 보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주D-008]제(齊) 나라(작품 서두) …… 때문이다 : 이 부분이 열녀 함양박씨전의 서문에 해당된다.

 

[

이하는 실기

(實記)]

余視事安義之越明年 癸丑月日.
내가 안의 현감(安義縣監)으로 정사를 보던 이듬해 계축년(1793, 정조 17) 의 어느 달 어느 날이다.

夜將曉 余睡微醒

밤이 새려 할 무렵 내가 잠이 살짝 깼을 때,

聞廳事前 有數人隱喉密語.

마루 앞에서 몇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다가

復有慘怛歎息之聲.

또 탄식하고 슬퍼하는 소리를 들었다.

蓋有警急 而恐擾余寢也.

무슨 급히 알릴 일이 있는 모양인데, 내 잠을 깨울까 두려워하는 듯하였다.

余遂高聲問“鷄鳴未?”

그래서 내가 목소리를 높여,“닭이 울었느냐?” 하고 묻자

左右對曰 “已三四號矣.”

좌우에서,“이미 서너 머리 울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外有何事?”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

對曰 “通引朴相孝之兄之子之嫁咸陽

余命之疾去.

“통인(通引)

박상효(朴相孝)의 조카딸로서 함양(咸陽)으로 출가하여

[주D-009]통인(通引) :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던 아전을 말한다.

 

而早寡者

일찍 홀로 된 이가

畢其三年之喪 飮藥將殊

그 남편의 삼년상을 마치고 약을 먹어 숨이 끊어지려 하니,

急報來救

와서 구환해 달라고 급히 연락이 왔사옵니다.

而相孝方守番 惶恐不敢私去.”

그런데 상효가 마침 숙직 당번이라 황공하여 감히 사사로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余命之疾去. 及晩爲問

나는 빨리 가 보라고 명하고, 늦을녘에 미쳐서

“咸陽寡婦得甦否?”

“함양의 과부가 소생했느냐?”고 물었더니,

左右言曰 “聞已死矣.”

좌우에서“이미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余喟然長歎曰

나는 길게 탄식하며

“烈哉 斯人!”

“열녀로다, 그 사람이여!”라고 하고 나서

乃招群吏而詢之曰

뭇 아전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咸陽有烈女 其本安義出也.

“함양에 열녀가 났는데, 본시 안의(安義) 출신이라니

女年方幾何?

그 여자의 나이가 방금 몇 살이나 되고,

嫁咸陽誰家?

함양의 뉘 집에 시집갔으며,

自幼志行如何? 若曹有知者乎?”

어려서부터 심지와 행실은 어떠했는지 너희들 중에 아는 자가 있느냐?”

群吏歔欷而進曰

그러자 뭇 아전들이 한숨지으며 아뢰었다.

“朴女家 世縣吏也.

“박녀(朴女)의 집안은 대대로 이 고을 아전입니다.

其父名相一 早歿 獨有此女

그 아비 이름은 상일(相一)이온대, 일찍 죽었고 이 외동딸만을 두었습니다.

而母亦早歿.

어미 역시 일찍 죽어서 어려서부터

則幼養於其大父母 盡子道.

그 조부모에게서 자랐사온대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습니다.

及年十九

열아홉 살이 되자

嫁爲咸陽林述曾妻 亦家世郡吏也.

출가하여 함양 임술증(林述曾)의 처가 되었는데, 그 시댁 역시 대대로 고을 아전입니다.

述曾素羸弱

술증이 본디 약하여

一與之醮 歸未半歲而歿.

한 번 초례(醮禮)를 치르고 돌아간 지 반년이 채 못 되어 죽었습니다.

朴女執夫喪 盡其禮

박녀는 지아비상을 치르면서 예(禮)를 극진히 하였고,

事舅姑 盡婦道.

시부모를 섬기는 데도 며느리된 도리를 다해

兩邑之親戚隣里 莫不稱其賢.

두 고을의 친척과 이웃들이 그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今而後果驗之矣.”

오늘 이러한 일이 있고 보니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有老吏感慨曰

어느 늙은 아전이 감개하여 말하였다.

“女未嫁時 隔數月.

“박녀가 아직 시집가기 몇 달 전에

有言 ‘述曾病入髓

‘술증의 병이 이미 골수에 들어

萬無人道之望 盍退期?’

부부 관계를 맺을 가망이 만무하다 하니 어찌 혼인 약속을 물리지 않느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其大父母 密諷其女 女黙不應.

그 조부모가 넌지시 박녀에게 일러 주었으나 박녀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迫期 女家使人覵述曾

혼인 날짜가 박두하여 여자의 집에서 사람을 시켜 술증의 상태를 엿보게 하였더니,

述曾雖美姿貌 病勞且咳

술증이 비록 용모는 아름다우나 노점(勞漸 폐결핵)에 걸려 콜록콜록거리며

菌立而影行也. 家大懼

버섯이 서 있는 듯하고 그림자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으므로, 집안에서는 모두 크게 두려워하여

擬招他媒.

다른 중매쟁이를 부르려고 하였습니다.

女斂容曰

그러자 박녀가 정색을 하고 말하기를‘曩所裁縫 ‘전날 재봉한 옷들은

爲誰稱體 又號誰衣也?

누구의 몸에 맞게 한 것이며, 누구의 옷이라 불렀던 것입니까?

女願守初製.’

저는 처음 지은 옷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하기에

家知其志 遂如期迎婿.

집안에서는 그 뜻을 알고 마침내 기일을 정한 대로 사위를 맞이했으니,

雖名合巹 其實 竟守空衣云.”

비록 명색은 혼례식을 치렀다 하나 사실은 끝내

빈 옷만 지켰다고 합니다.”

[주D-010]빈 옷만 지켰다고 합니다 : 부부 관계가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旣而咸陽郡守尹侯光碩

얼마 후 함양 군수인 윤광석(尹光碩) 사또가

夜得異夢 感而作烈婦傳

밤에 이상한 꿈을 꾸고 느낀 바가 있어 열부전(烈婦傳)을 지었고,

而山淸縣監李侯勉齋 亦爲之立傳

산청 현감(山淸縣監)

이면제(李勉齊)

사또도 박녀를 위해 전(傳)을 지었으며,

[주D-011]이면제(李勉齊) : 원문은 ‘李侯勉齊’라고 되어 있는데, 후(侯)는 고대 중국의 제후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사또에 붙이는 경칭이다. 원문에는 이면제의 ‘齊’ 자가 ‘齋’ 자로 되어 있으나, 여러 이본들에 따라 바로잡았다. 《문과방목(文科榜目)》에 의하면 이면제는 1743년생으로, 1783년 진사 급제하였다.

 

居昌愼敦恒 立言士也

거창(居昌)의 신돈항(愼敦恒)은 후세에 훌륭한 글을 남기고자 하는 선비였는데,

爲朴氏 撰次其節義.

박녀를 위하여 그 절의의 전말을 엮었다.
始終其心 豈不曰
생각하면 박녀의 마음이 어찌 이렇지 않았으랴!

“弱齡嫠婦之久留於世

나이 젊은 과부가 오래 세상에 남아 있으면

長爲親戚之所嗟憐

길이 친척들이 불쌍히 여기는 신세가 되고,

未免隣里之所妄忖

동리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는 대상이 됨을 면치 못하니

不如速無此身也.”

속히 이 몸이 없어지는 것만 못하다고.

 

噫, 成服而忍死者 爲有窀穸也. /*窀(둔):광중. 穸(석):광중.
아! 슬프구나. 성복(成服)을 하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장사 지내는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요,

旣葬而忍死者 爲有小祥也.

장사를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소상(小祥)이 있었기 때문이요,

小祥而忍死者 爲有大祥也.

소상을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대상(大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旣大祥 則祥期盡

대상이 끝이 났으니 상기(喪期)가 다한 것이요,

而同日同時之殉 竟遂其初志

한날 한시에 따라 죽어 마침내 처음 뜻을 완수했으니

豈非烈也?

어찌 열녀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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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대도전(易學大盜傳)

봉산학자전(鳳山學者傳)

-초기구전


유실(遺失)됨

외숙 지계공(芝溪公)의 말씀을 듣건대, “역학대도전은 당시에 선비로서의 명성을 빌려 권세와 이권을 몰래 사들여 기세등등한 자가 있어서 부군(府君)이 이 글을 지어 기롱한 것인데, 대개 노소(老蘇)의 변간론(辨姦論)과 같은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나중에 그 사람이 패가망신 당하자, 부군이 마침내 이 글을 불살라 버렸으니, 대개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으로 자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편 우상전에 결락이 있고 하편들이 유실된 것은 권질(卷帙)상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함께 없어진 것이다.” 하였다.
아들
종간(宗侃)이 삼가 쓰다.

[주D-001]지계공(芝溪公) :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이다. 호를 지계(芝溪)라 하였다.
[주D-002]노소(老蘇) :
소식(蘇軾)의 아버지인 소순(蘇洵)을 가리킨다. 소순은 변간론(辨姦論)을 지어 왕안석(王安石)을 혹독하게 비판하였다.
[주D-003]종간(宗侃) :
연암의 아들 박종채(朴宗采)의 초명(初名)이다. 그의 형 박종의(朴宗儀)는 백부 박희원(朴喜源)의 양자가 되었다.


이상 아홉 편의 전은 다 아버님이 약관 시절에 지은 것으로서, 집에 장본(藏本)이 없어 매번 남들에게서 얻어 왔다. 예전에 아버님께서 이들 작품을 없애 버리라고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내가 젊었을 적에 작가에 뜻을 두어 작문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 지은 것인데, 지금까지도 더러 이 작품들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하셨다. 불초한 우리 형제가 비록 아버님의 명을 받들고는 싶지만, 사람들이 전파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번에 이러한 일로 외숙 지계공께 상의를 드렸더니, 공이 말씀하시기를,

“선공(先公)이 지은 논설 중에는 전아(典雅)하고 장중(莊重)한 것이 많다. 반면에 이 작품들은 사실 저술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으니 있건 없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더구나 젊었을 때의 작품이니만큼 더욱 그렇다. 게다가 예로부터 문장가들에게는 이와 같이 유희 삼아 지어 보는 작품이 없지 않았으니, 반드시 폐기할 것까지는 없다. 다만 양반전 한 편은 속된 말이 많아서 조그마한 흠이 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실로 왕포(王褒)의 동약(僮約)을 모방하여서 지은 것이니만큼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였으므로, 불초한 우리 형제가 감히 함부로 취사(取舍)를 할 수 없어, 별집(別集)의 말미에 붙여 둔다.
아들 종간이 삼가 쓰다.


[주D-004]왕포(王褒)의 동약(僮約) : 노비 계약을 다룬 글로서 그 내용은, 왕포가 양혜(楊惠)라는 과부의 집에 들렀다가 오만하게 술심부름을 거부하는 양혜의 노비 편료(便了)를 샀는데, 그 노비문서에서 노비가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 조항까지도 세세하게 밝혀 놓음으로써 편료를 길들인다는 이야기이다. 왕포는 전한(前漢) 시대의 인물로 사부(辭賦)에 능했다. 《古文苑 卷17 僮約》

[삼척 해신당]





 

우상전(虞裳傳)

-초기구전

 

이언진(李彦瑱 : 1740 ~ 1766)의 자(字)이다. 호는 운아(雲我), 송목관(松穆館) 등이다.

 

日本關白新立.

일본 관백(關白)이 새로 들어서자,

[주D-001]일본 …… 들어서자 : 관백은 천황을 대신하여 섭정(攝政)한다는 뜻으로, 막부(幕府)의 최고 실력자인 쇼군〔將軍〕을 가리킨다. 제 10 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1761년(영조 37) 정식으로 관백에 즉위하였다.

於是 廣儲書 繕宮館 理舟檝

널리 재정을 비축하고 이궁(離宮)과 별관을 수리하고 선박을 정비하고서,

括屬國諸島 奇材劒客

속국

의 각 섬들에서 남다른 재주를 갖춘 검객과

[주D-002]속국 : 당시 일본은 기내(畿內) 5국(國), 동해도(東海道) 15국, 동산도(東山道) 8국, 북륙도(北陸道) 7국, 산음도(山陰道) 8국, 산양도(山陽道) 8국, 남해도(南海道) 6국, 서해도(西海道) 9국 등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蜻蛉國志 卷2 輿地》

詭技淫巧 書畵文學之士

기이한 기예를 갖춘 사람과 서화나 문학에 재능이 있는 인사를 샅샅이 긁어내어,

聚之都邑 練肄玩具. 數年然後

도읍으로 불러 모아놓고 수년 동안 훈련을 시킨 다음에,

乃敢請師於我 若待命策之爲者.

마치 시험 문제 내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우리나라에 사신을 요청해 왔다.

朝廷極選文臣三品以下 備三价以送之.

이에 조정에서는 3품 이하의 문관을 엄선하여

삼사(三使)를 갖추어 보냈다.

 

[주D-003]삼사(三使)를 갖추어 보냈다 : 영조 39년(1763) 정사(正使) 조엄(趙曮), 부사(副使) 이인배(李仁培), 종사관(從事官) 김상익(金相翊)을 통신사(通信使)의 삼사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其幕佐賓客 皆宏辭博識

사신을 보좌하는 이들도 모두 문장이 뛰어나고 식견이 많은 자들이었으며,

自天文地理․算數卜筮․醫相武力之士

천문, 지리, 산수(算數), 복서(卜筮), 의술, 관상, 무예에 뛰어난 자들로부터,

以至吹竹彈絲․諧浪戱笑․歌呼飮酒․博奕騎射

피리나 거문고 등의 연주, 해학이나 만담, 음주 가무, 장기, 바둑, 말타기, 활쏘기 등에 이르기까지

以一藝名國者 悉從行

한 가지 재주로써 나라 안에서 이름난 자들을 모두 딸려 보냈다.

而最重詞章書畵

그러나 그들은 시문(詩文)과 서화(書畵)를 가장 중하게 여겼으니,

得朝鮮一字 不齎糧而適千里.

조선 사람이 쓴 글을 한 자라도 얻는다면 양식을 지니지 않아도 천 리를 갈 수 있었다.

其所居館 皆翠銅甍

사신들이 거처하는 건물은 모두 비췻빛 구리 기와를 이었고

除嵌文石 而楹檻朱漆

섬돌은 무늬를 아로새긴 돌이었으며 기둥과 난간에는 붉은 옻칠을 하고,

帷帳飾以火齊․靺鞨․瑟瑟

휘장은

화제주(火齊珠),

 

말갈아(靺鞨芽),

 

슬슬(瑟瑟)

등으로 치장하고,

 

[주D-004]섬돌은 …… 돌이었으며 : 원문은 ‘除嵌文石’인데, 무늬 있는 돌로 된 궁궐의 섬돌을 ‘문석계(文石階)’ 또는 ‘문석지계(文石之階)’라고 한다.
[주D-005]화제주(火齊珠) :
보석의 일종으로 청색, 홍색, 황색 등 빛깔이 다양하다. 매괴주(玫瑰珠)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유리(琉璃)라고도 한다.

[주D-006]말갈아(靺鞨芽) : 보석의 일종으로 붉은빛을 띤다. 홍마노(紅瑪瑙)라고도 하며 주로 말갈 지역에서 생산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7]슬슬(瑟瑟) :
보석의 일종으로 푸른빛을 띤다. 녹주(綠珠)라고도 한다.

 

食皆金銀鍍 侈靡瑰麗

식기는 모두 금은(金銀)으로 도금하여 사치스럽고 화려하였다.

千里往往 說爲奇巧

천 리를 가는 동안 그들은 곳곳에 기묘한 볼거리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庖丁驛夫 據牀而坐

하찮은 포정(庖丁)이나 역부(驛夫)에게까지도 의자에 걸터앉아 垂足於枇子桶 使花衫蠻童洗之.
발을 비자(枇子)나무로 만든 통에 드리우게 하고 꽃무늬 적삼 입은 왜놈 아이종으로 하여금 씻어 주게 하였다.

其陽浮慕尊如此.

이처럼 그들이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며 존모(尊慕)의 뜻을 보였으나,

而象驛持虎豹․貂鼠․人蔘․諸禁物

우리 역관들이 호랑이 가죽, 표범 가죽, 담비 가죽, 인삼 등 금지된 물건들을 가져다

潛貨璣珠․寶刀

보석과 보도(寶刀)와 몰래 바꾸는 바람에

駔儈機利 殉財賄如鶩

그곳의 거간꾼들이 이익을 노려 재물에 목숨을 걸기를 마치 말이 치달리듯 하니,

倭外謬爲恭敬 不復衣冠慕之.

그 이후로는 왜인들이 겉으로만 공경하는 척할 뿐 더 이상 문명인으로 존모하지 않았다.
虞裳以漢語通官隨行 獨以文章 大鳴日本中.
그런데

우상(虞裳)

만은 한어(漢語)의 통역관으로 수행하여 홀로 문장으로 일본에 큰 명성을 날렸다.

其名釋․貴人 皆稱“雲我先生 國士無雙也.”

이에 일본의 이름난 중이나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기를, “운아(雲我) 선생은 둘도 없는 국사(國士)이다.” 라고 하였다.

大坂以東 僧如妓 寺刹如傳舍

오사카〔大阪〕 이동(以東)에는 중들이 기생처럼 많고 절들이 여관처럼 즐비한데,

責詩文如博

도박에 돈을 걸듯이 시문(詩文)을 지어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進繡牋花軸 堆床塡案

그들이 수전(繡牋)과 화축(花軸)을 상에 그득 쌓아놓고,

而類爲難題․强韻以窮之

대개는 어려운 글제와 억센 운(韻)을 내어 궁지에 몰려 했으나

虞裳每倉卒口占 如誦宿搆[構]

우상은 매번 즉석에서 읊어 대기를 마치 진작에 지어 놓은 것을 외우듯이 하였으며,

步押平妥․從容.

운을 맞추는 것도 평탄하고 여유가 있었다.

席散無罷色 無軟詞.

자리가 파할 때까지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으며 기운 없는 글귀가 없었다.
其海覽篇曰,
그가 지은

《해람편(海覽篇)》

의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D-009]《해람편(海覽篇)》 : 이언진의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송목관신여고》는 1860년에 저자의 시문(詩文) 잔편들을 수집하여 간행한 본으로서 같은 해에 중국과 조선 두 곳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중국본은 이상적(李尙迪)이 간행한 목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고, 조선본은 후손 이진명(李鎭命) 등이 간행한 활자본(한국문집총간 252집)이다. 그리고 《청장관전서》는 1809년경에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李光葵)가 재편한 것을 1900년대 초에 등사한 본(한국문집총간 258집)으로서 이들 《송목관신여고》 2종을 포함한 4종의 판본 사이에는 글자나 구절상의 차이가 다소 있다.

 

坤輿內萬國

대지 안에 널려 있는 일만 나라가

[주D-010]대지 …… 나라가 : 마테오리치〔利瑪竇〕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가리킨다.

 

碁置而星列 바둑알 놓이듯 별이 깔리듯于越之魋結 머리 틀어 상투 쫒은 우월(于越)의 나라 竺乾之祝髮 머리를 박박 깎은 인도의 나라 齊魯之縫腋 소매 너른 옷 입은 제로(齊魯)의 나라 胡貊之氈毼 모포를 뒤집어쓴 호맥(胡貊)의 나라

 

[주D-011]소매 …… 나라 : 제로(齊魯)는 제 나라와 노 나라로,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문화국가이다. 공자는 노 나라에서 성장하여 소매 너른 옷을 입었다고 한다. 《禮記 儒行》 봉액(縫腋)은 봉액(逢掖)이라고도 하며, 옷 소매가 넓은 유자(儒者)의 복장을 가리킨다.
[주D-012]모포를 …… 나라 :
호맥(胡貊)은 중국 북방에 사는 흉노(匈奴) 등의 민족을 가리킨다. 원문의 ‘氈’가 《송목관신여고》에는 ‘氀’로 되어 있다.

 

或文明魚雅 혹은 문명하여 위의를 갖추기도 하고
或兜離侏佅 혹은 미개하여 음악이 요란스럽기만 하네
群分而類聚 무리로 나뉘고 끼리끼리 모여서遍土皆是物 온 땅에 펼쳐진 게 모두 인간인데日本之爲邦 일본이란 나라를 볼작시면波壑所蕩潏 깊은 파도 넘실대는 섬나라其藪則搏木 숲 속엔

부목

이 울창하여

[주D-013]부목(搏木) : 부상(扶桑), 부상(榑桑), 부상(搏桑)이라고도 하며, 전설상 해 돋는 곳에서 자란다는 신목(神木)이다. 일본을 가리키기도 한다. 원문의 ‘搏’는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榑’로 되어 있다.

其次則賓日 그곳에선 해돋이를 볼 수 있고女紅則文繡 여인네 하는 일은 비단에 수놓기요土宜則橙橘 토산품은 등자와 감귤이며魚之怪章擧 고기 중에 괴이한 게 낙지라면木之奇蘇鐵 나무 중에 기이한 건 소철이라네其鎭山芳甸 그 진산(鎭山)은

방전산(芳甸山)

인데句陳配厥秩 구진성(句陳星)처럼 차례로 섬들이 늘어서 있어

 

[주D-014]나무 …… 소철이라네 : 원문의 ‘木’과 ‘奇’가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卉’와 ‘怪’로 되어 있다.
[주D-015]방전산(芳甸山) :
미상(未詳)이다. 뒤에 나오는 ‘꼭대기엔 태곳적 눈이 영롱하네’란 구절로 미루어, 후지산〔富士山〕이 아닌가 한다.

[주D-016]구진성(句陳星) :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별로, 모두 6개의 소성(小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南北春秋異 남북으론 가을과 봄이 다르고
東西晝夜別 동서로는 낮과 밤이 갈라지도다
中央類覆敦 중앙은 그릇 엎어 놓은 것과 같아서
嵌空龍漢雪 꼭대기엔 태곳적 눈이 영롱하네蔽牛之鉅材 그늘로 소 떼를 뒤덮는 큰 나무
抵鵲之美質 까치 잡는 데나 쓰이는 흔한 옥돌

 

[주D-017]그늘로 …… 나무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장석(匠石)이 제(齊) 나라에 가서 신목(神木)을 보았는데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로 가릴 정도나 된다.” 하였다.
[주D-018]까치 …… 옥돌 :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 “곤륜산(崑崙山) 근처에서는 박옥(璞玉)으로 까치를 잡는다.” 하였다. 즉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아주 흔하게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與丹砂金錫 단사나 금이나 주석들이
皆往往山出 모두 다 산에서 흔히 나온다네
大阪大都會 오사카는 큰 도회지라
瓌寶海藏竭 진기한 보물들은 용궁의 보물을 다 털어낸 듯奇香爇龍涎 기이한 향은

용연향(龍涎香)

을 사른 것이요寶石堆雅骨 보석은

아골석(雅鶻石)

을 쌓아 놓았네

 

[주D-019]진기한 …… 듯 :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이 구절 다음에 “빛나는 것은 수시은(朱提銀)이요 둥근 것은 말갈아(靺鞨芽)요 붉은 것 푸른 것은 화제주(火齊珠)와 슬슬(瑟瑟)이라네.〔光者是朱提 圓者是靺鞨 赤者與綠者 火齊映瑟瑟〕”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주D-020]용연향(龍涎香) : 고래의 분비물로 만든 명향(名香)의 이름이다.
[주D-021]아골석(雅鶻石) :
슬슬(瑟瑟)과 비슷한 청록색 보석이다. 《송목관신여고》에는 ‘雅’가 ‘鴉’로 되어 있다.

 

牙象口中脫 입에서 뽑은 코끼리 어금니角犀頭上截 머리에서 잘라낸 무소뿔
波斯胡目眩 페르시아의 상인들도 눈이 부셔하고
浙江市色奪 절강의 저자들도 빛이 바랬네

[주D-022]절강의 …… 바랬네 :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수레를 밀며 떼 지어 몰려가니 수많은 거간꾼들 늘어섰는데〔却車而攈至 駔儈千戶埒〕”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寰海地中海 온 섬이 지중해를 이루어中涵萬象活 오만 가지 산 것들이 구물거려라鱟背帆幔張 돛을 펼친 후어(鱟魚)의 등이며鰌尾旌旗綴 깃발을 달아맨 해추(海鰌)의 꼬리며堆壘蠣粘房 다닥다닥 무더기 진 굴껍데기며

 

[주D-023]돛을 …… 등이며 : 후어(鱟魚)는 참게를 말한다. 등 위에는 7, 8촌(寸) 되는 껍질이 있는데 바람이 없으면 이 껍질을 눕히고 바람이 불면 이 껍질을 돛처럼 펴서 바람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酉陽雜俎》
[주D-024]깃발을 …… 꼬리며 :
해추(海鰌)는 꼬리지느러미가 솟아 있는 긴흰수염고래를 말한다. 유순(劉恂)의 《영표록이(嶺表錄異)》에 의하면 그 지느러미가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 같다고 하였다.
[주D-025]다닥다닥 무더기 진 :
원문의 ‘壘’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磊’로, 《청장관전서》에는 ‘疊’으로 되어 있다.

 

屭贔龜次窟 무거운 것을 등에 진 거북 굴일레忽變珊瑚海 산호 바다로 문득 변하니煜耀陰火烈 번쩍번쩍

음화

가 타오르고

[주D-026]음화(陰火) : 산호가 물 속에서 내는 빛을 가리킨다.

 

忽變紺碧海 검푸른 바다로 문득 변하니霞雲衆色設 노을 비치어 갖가지 빛깔이로세忽變水銀海 수은 바다로 문득 변하니星宿萬顆撒 수만 개가 뿌려진 큰 별 작은 별忽變大染局 커다란 염색가게로 문득 변하니綾羅爛千匹 천 필의 능라 비단 찬란도 하고忽變大鎔鑄 커다란 용광로로 문득 변하니五金光迸發 오금의 빛이 터져 퍼지네龍子劈天飛 용이

하늘을 가르며

힘차게 나니

 

[주D-027]오금(五金) : 황색의 금, 백색의 은, 적색의 구리, 청색의 납, 흑색의 철을 가리킨다.
[주D-028]하늘을 가르며 :
원문의 ‘劈天’이 《송목관신여고》에는 ‘擘天’으로 되어 있다.

 

千霆萬電戞 천 벼락 만 번개가 치고髮鱓馬甲柱 발선과 마갑주

 

[주D-029]천 벼락 …… 치고 : 이 구절이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千電萬霆戞’, 조선본에는 ‘雷霆極閃戞’로 되어 있고,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동쪽 구름 사이론 용의 비늘과 발톱이 번뜩이고 서쪽 구름 사이론 지체가 드러났네.〔東雲閃鱗爪 西雲露肢節〕”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주D-030]발선(髮鱓)과 마갑주(馬甲柱) :
발선은 드렁허리의 일종이다. 마갑주는 살조개, 또는 꼬막이라고 하며, 그 육주(肉柱)가 맛있다.

 

秘怪恣怳惚 신비하고 기괴해 마구 얼을 빼네其民祼而冠 백성들은 알몸에다 관을 썼는데外螫中則蝎 독하게 쏘아 대니 속이 전갈 같구나
遇事則麋沸 일 만나면

죽 끓듯

요란 떨고

[주D-031]죽 끓듯 : 원문의 ‘麋’가 《송목관신여고》 조선본과 《청장관전서》에는 ‘糜’로 되어 있다.

謀人則鼠黠 사람을 모략할 땐 쥐처럼 교활하네苟利則蜮射 이익을 탐낼 땐 물여우가 독을 쏘듯小拂則豕突 조금만 거슬려도 돼지처럼 덤벼들고

[주D-032]조금만 거슬려도 : 원문의 ‘拂’이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怒’로 되어 있다.

 

婦女事戱謔 계집들은 남자에게 농지거리 잘하고童子設機括 아이들은 잔꾀를 잘 부리네背先而淫鬼 조상은 등지면서 귀신에 혹하고嗜殺而侫佛 살생을 즐기면서 부처에 아첨하네書未離鳥鳦 글자는 제비 꼬락서니 못 면하고詩未離鴃舌 말은

때까치 울음소리

나 다를 바 없네

 

[주D-033]글자는 …… 면하고 : 원문의 ‘鳥鳦’은 ‘鳦鳥’ 즉 제비를 뜻한다. 한자의 초서체(草書體)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히라카나〔平假名〕가 제비 모양과 같다고 풍자한 것이다. 《송목관신여고》에는 ‘鳥鳦’이 ‘鳥跡’으로 되어 있는데, ‘鳥跡’은 조전(鳥篆), 즉 새의 형태와 같은 장식을 가하여 전체(篆體) 비슷하게 된 예술적인 자체(字體)를 가리키는 것으로 춘추전국 시대에 유행하였다. 따라서 ‘鳥跡’으로 하면 일본의 글자 모양과는 무관하게 된다.
[주D-034]말은 :
원문의 ‘詩’가 《송목관신여고》에는 ‘語’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35]때까치 울음소리 :
다른 나라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鴃舌’이라고 한다.

 

牝牡類麀鹿 남녀간은 사슴처럼 문란하고友朋同魚鱉 또래끼린 물고기처럼 몰려다니며言語之鳥嚶 씨부려 대는 소린

새 지저귀듯

象譯亦未悉 통역들도 잘 알지 못한다네

 

[주D-036]남녀간은 사슴처럼 문란하고 :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저 금수(禽獸)만은 예가 없다. 그러므로 부자가 암컷을 공유한다.〔父子聚麀〕”고 하였다.
[주D-037]또래 :
원문의 ‘友朋’이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朋流’로 되어 있다.
[주D-038]새 지저귀듯 :
원문의 ‘鳥嚶’이 《송목관신여고》에는 ‘啁啾’로 되어 있다.

[주D-039]통역들도 …… 못한다네 : 이 구절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鞮象譯未悉’로 되어 있다.

 

草木之瓌奇 진귀한 풀과 나무들은羅含焚其帙 나함조차 자기 책을 불사를 지경百泉之源滙 수없이 뻗어 있는 물길들은酈生瓮底蠛 역생조차

항아리 속 진디등에

로 만드네

[주D-040]나함(羅含) : 동진(東晉) 때의 인물로서 상수(湘水) 지역의 산수를 다룬 《상중산수기(湘中山水記)》를 저술하였다.
[주D-041]역생(酈生) :
북위(北魏) 때의 인물인 역도원(酈道元 : 466 ~ 527)을 가리킨다. 그는 중국지리학의 명저인 《수경주(水經注)》를 저술하였다.
[주D-042]항아리 속 진디등에 :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한 말로 식견이 좁다는 뜻이다.

 

水族之弗若 요사스러운 수족들은思及閟圖說 사급조차 도설을 덮게 하고刀釰之款識 도검에 새겨진

꽃무늬와 글자

들은貞白續再筆 정백이 속편을 다시 지어야 하리

 

[주D-043]사급(思及) :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艾儒略 : Julio Aleni, 1582 ~ 1649〕의 자(字)이다. 그는 명 나라 때에 중국에 들어와 《직방외기(職方外紀)》를 저술하였다. 그 내용은 권두에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수록한 뒤 아시아 등 오대주에 대해 기록하고 사해총설(四海總說)을 덧붙여 각국의 풍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D-044]꽃무늬와 글자 :
원문의 ‘識’이 《송목관신여고》에는 ‘銘’으로 되어 있다.
[주D-045]정백(貞白) :
양(梁) 나라 때의 인물인 도홍경(陶弘景 : 452 ~ 536)의 시호이다. 그는 역대 제왕들과 각국 인물들의 도검(刀劍)에 대하여 기술한 《고금도검록(古今刀劍錄)》을 저술하였다.

 

地毬之同異 지구상의 차이며海島之甲乙 섬들의 등급에 관해서는西泰利瑪竇 서태 이마두線織而刃割 치밀하고 명쾌하게 밝혀 놓았네

 

[주D-046]서태(西泰) 이마두(利瑪竇) : 서태는 마테오리치(Matteo Ricci)의 자(字)이다. ‘西泰’가 《송목관신여고》에는 서양을 뜻하는 ‘泰西’로 되어 있다.

[주D-047]치밀하고 …… 놓았네 : 원문의 ‘刃’이 《송목관신여고》에는 ‘刀’로 되어 있다.

 

鄙夫陳此詩 무식한 제가 이 시를 지어 바치노니辭俚意甚實 말은 촌스러도 뜻은 퍽 진실하이善隣有大謨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큰 법 있으니羈縻和勿失 잘 구슬려서 화평을 잃지 마소

 

[주D-048]말은 촌스러도 : 원문의 ‘辭俚意’가 《송목관신여고》에는 ‘語俚義’로 되어 있다.
[주D-049]잘 …… 마소 :
기미(羈縻)란 말에 굴레를 씌우거나 소에 고삐를 매어 통제한다는 뜻으로, 억센 상대를 회유(懷柔)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주변의 이민족(異民族)들에 대해 ‘잘 구슬리면서 외교 관계를 끊지 않는〔羈縻勿絶〕’ 정책을 취하였다.

 

如虞裳者 豈非所謂華國之譽耶?
위의 시로 볼 때 우상 같은 자는 이른바 ‘문장으로 나라를 빛낸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한 자가 아니겠는가.


神宗萬曆壬辰 倭秀吉潛師襲我

신종(神宗) 만력(萬曆) 임진년에 왜적 평수길(平秀吉)이 군사를 몰래 출동시켜 우리나라를 엄습하여,

躪我三都 劓辱我髦倪

우리의

삼도(三都)

를 유린하고 우리의 노약자들을 코를 베어 욕보였으며

[주D-050]삼도(三都) : 경주〔東都〕, 한양, 평양〔西都〕을 가리킨다.

 

躑躅冬柏植於三韓

왜철쭉과 동백을 우리나라 각지에 심었다.

昭敬大王 避兵灣上 奏 聞 天子

우리 소경대왕(昭敬大王 선조(宣祖))이 의주로 피난을 가서 천자께 사연을 아뢰자,

天子大驚 提天下之兵 東援之.

천자가 크게 놀라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동으로 구원을 보냈다.

大將軍李如松 提督 陳璘․麻貴․劉綎․楊元 有古名將之風

당시에 대장군(大將軍) 이여송(李如松), 제독(提督) 진린(陳璘) · 마귀(麻貴) · 유정(劉綎) · 양원(楊元)은 모두 다 옛날 명장의 기풍이 있었으며,

御史楊鎬․萬世德․邢玠 才兼文武 略驚鬼神

어사(御史) 양호(楊鎬) · 만세덕(萬世德) · 형개(邢玠)는 재주가 문무(文武)를 겸하고 도략이 귀신을 놀래킬 만했으며,

其兵皆秦․鳳․陜․浙․雲․登․貴․萊 驍騎射士

그 군사 역시 모두

진봉(秦鳳)

· 섬서(陝西) · 절강(浙江) · 운남(雲南) · 등주(登州) · 귀주(貴州) · 내주(萊州)의 날랜 기병과 활 잘 쏘는 군사들이며,

大將軍家僮千人 幽․薊劒客

대장군의 가동(家僮) 1000여 명과

유주(幽州) 계지(薊地)

의 검객들이었다.

 

[주D-051]진봉(秦鳳) : 봉상부(鳳翔府)의 진계(秦階), 농봉(隴鳳) 일대를 가리킨다. 《大淸一統志》
[주D-052]유주(幽州) 계지(薊地) :
북경을 포함한 하북성(河北省) 일대를 가리킨다. 전국(戰國) 시대 연(燕) 나라의 땅이었다.

 

然卒與倭平 僅能驅之出境而已.

그런데도 끝내 왜적과 화평을 맺고 겨우 나라 밖으로 몰아내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數百年之間 使者冠盖 數至江戶.
수백 년 동안 사신의 행차가 자주 에도〔江戶〕를 내왕하였다.

然謹體貌 嚴使事

그러나 사신으로서 체통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치중하느라

其風謠人物 險塞强弱之勢

그 나라의 민요, 인물(人物), 요새, 강약(强弱)의 형세에 대해서는

卒不得其一毫 徒手來去.

마침내 털끝만큼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왔다갔다만 하였다.

虞裳力不能勝柔毫. 然吮精撮華

그런데 우상은 힘으로는 붓대 하나도 이기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 나라의 정화(精華)를 붓끝으로 남김없이 빨아들여

使水國萬里之都 木姑川渴

섬나라 만리의 도성(都城)으로 하여금 산천초목이 다 마르게 하였으니,

雖謂之“筆拔山河”可也.

비록 ‘붓대 하나로써 한 나라를 무너뜨렸다’고 말하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虞裳名湘藻

우상의 이름은

상조(湘藻)

이다.

[주D-053]상조(湘藻) : 상조는 이언진이 스스로 지은 또 하나의 이름이다. 《淸脾錄 卷3 李虞裳》

 

嘗自題其畵象曰

일찍이 손수 제 화상(畵像)에 제(題)하기를,

供奉白鄴侯泌

공봉백(供奉白)

업후필(鄴侯泌)

 

[주D-054]공봉백(供奉白) : 당(唐) 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공봉한림(供奉翰林)에 제수되었으므로 공봉백이라 한 것이다.
[주D-055]업후필(鄴侯泌) :
당 나라 문장가 이필(李泌 : 722 ~ 789)을 가리킨다. 신선술을 좋아하였다. 업후(鄴侯)에 봉하여졌으므로 업후필이라 한 것이다.

 

合鐵拐爲滄起 철괴와 합쳐 창기가 되니古詩人古仙人 옛 시인과 옛 선인古山人皆姓李 옛 산인이 모두 다

이씨(李氏)라네

 

 

[주D-056]철괴(鐵拐) : 중국 전설상의 팔선(八仙) 중의 하나인 이철괴(李鐵拐)를 가리킨다.
[주D-057]공봉백(供奉白)과 …… 이씨(李氏)라네 :
이 시는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 ‘동호거실(衕衚居室)’이라는 제목의 장편 육언시 중의 한 수로 수록되어 있고, 원문의 ‘古詩人古仙人 古山人皆姓李’가 《송목관신여고》에는 ‘古詩人古山人 古仙人皆姓李’로 되어 있다.

 

李其姓也 滄起又其號也.
했는데, 이(李)는 그 성이요, 창기(滄起)는 그의 또 다른 호이다.

夫士伸於知己 屈於不知己.
대체로 선비란 자신을 알아주는 이 앞에서는 재능을 펴고 자신을 몰라주는 이 앞에서는 재능을 펴지 못하는 법이다.

鵁鶄․鸂鵣 禽之微者也.

교청(鵁鶄 푸른 백로)과 계칙(鸂鶒 자원앙(紫鴛鴦))은 새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새이지만,

然猶自愛其羽毛 暎水而立 翔而後集.

그럼에도 제 깃털에 도취되어 물에 비추어 보고 서 있다가 다시 하늘을 맴돌다 내려앉거늘,

人之有文章 豈羽毛之美而已哉?

사람이 지닌 문장을 어찌 고작 새 깃털의 아름다움에 비하겠는가.

昔慶卿 夜論劒 聶怒而目之.

옛날에 경경(慶卿)이 밤에 검술을 논하자 합섭(蓋聶)이 성을 내며 눈총을 주어 나가게 하였으며,

及高漸離擊筑 刑軻和而歌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연주하자 형가(荊軻)가 화답하여 노래하더니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이윽고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붙들고 운 일이 있었다.

 

[주D-058]옛날에 …… 있었다 : 형가(荊軻)는 전국 시대 말기 위(衛) 나라 사람으로 위 나라에서는 경경(慶卿)으로 불렸다. 진(秦) 나라가 위 나라를 멸망시키자 연(燕) 나라로 망명한 다음 연 나라 태자 단(丹)과 모의하여 진왕(秦王) 정(政)을 죽이려다 실패한 인물이다. 형가가 어느날 유차(楡次) 고을을 지나다가 합섭(蓋聶)과 검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합섭이 성을 내며 눈총을 주자 형가가 그만 기분이 상해 나가 버렸다. 또 형가가 연 나라에 가서 고점리와 시장에서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한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자 형가가 이에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고 이어 주위도 아랑곳 않고 서로 붙들고 울었다. 형가에게 있어서 합섭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에 해당하고 고점리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해당한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夫樂亦極矣. 復從而泣之 何也?

무릇 그 즐거움이야 극에 달했겠지만, 더 나아가 울기까지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中心激 而哀之無從也.

마음이 복받쳐서 엉겁결에 슬퍼진 것이다.

雖問諸其人者 亦將不自知其何心矣.

비록 그 당사자에게 물어본다 해도 역시 그때 제 마음이 무슨 마음이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人之以文章相高下 豈區區劒客之一技哉?

사람이 문장으로써 서로 높이고 낮추고 하는 것이 어찌 구구한 검사(劒士)의 한 기예 정도에 비할 뿐이겠는가?

虞裳其不遇者耶?

우상은 아마도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일까? [그의 말에 어쩌면 그렇게도 슬픔이 많단 말인가? 그의 시에,]

 

鷄戴勝高似幘 닭의 머리 위 벼슬은 높기가 관과 같고

牛垂胡大如袋 소의 축 처진 멱미레는 크기가 전대 같네家常物百不奇 집에 있는 보통 물건이란 하나도 기이할 것 없지만大驚怪槖駝背 크게 놀랍고 괴이한 건 낙타의 등이로세

 

[주D-059]닭의 …… 등이로세 : 이 시 또한 《송목관신여고》에 ‘호동거실(衚衕居室)’의 한 수로 수록되어 있다.

 

未嘗不自異也.
우상은 늘 자신을 남다르게 여겼던 것이다.

及其疾病且死 悉焚其藁曰

병이 위독하여 죽게 되자 그동안 지어 놓은 작품들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誰復知者?”

“누가 다시 알아주겠는가.” 하였으니,

其志豈不悲耶?

그 뜻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공자가 말하기를,

“재주 나기가 어렵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管仲之器 小哉.”

또,

“관중(管仲)은 그릇이 작다.”

하였다.

 

[주D-060]재주 …… 아니겠는가 : 《논어》 태백(泰伯)에 보인다.
[주D-061]관중(管仲)은 그릇이 작다 :
《논어》 팔일(八佾)에 보인다.

 

子貢曰 “賜何器也?”

자공(子貢)이 묻기를,“저는 무슨 그릇입니까?” 하니,

子曰 “汝瑚璉也.”

공자가 말하기를,“너는

호련(瑚璉)이다.”

하였다.

[주D-062]자공(子貢)이 …… 호련(瑚璉)이다 :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호련은 종묘(宗廟)에서 서직(黍稷)을 담는 데 쓰는 그릇이다.

 

盖美而小之也.

이는 자공의 재주를 칭찬하면서도 작게 여긴 것이다.

故德譬則器也 才譬則物也.

그러므로 덕은 그릇에 비유되고 재주는 그 속에 담기는 물건에 비유된다.

詩云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瑟彼玉瓚 “결이 쪼록쪼록 저 옥 술잔이여, 黃流在中 황금빛 울창주가 그 속에 들었도다.”라 했고,

[주D-063]《시경(詩經)》에…… 했고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이다.

 

易曰

《주역》에 이르기를

“鼎折足 覆公餗”

솥이 발이 부러져 공(公)의 먹을 것이 엎어졌도다.” 했으니,

 

[주D-064]《주역》에 …… 했으니 : 《주역》 정괘(鼎卦) 구사(九四)의 효사이다. 구사는 대신(大臣)의 지위를 상징하고, 공(公)은 임금을 가리킨다. 소인(小人)이 대신의 중책을 감당하지 못해 국사를 그르친다는 뜻이다.

 

有德而無才 則德爲虛器

덕만 있고 재주가 없으면 그 덕이 빈 그릇이 되고,

有才而無德 則才無所貯

재주만 있고 덕이 없으면 그 재주가 담길 곳이 없으며,

其器淺者 易溢.

있다 해도 그 그릇이 얕으면 넘치기가 쉽다.

人參天地 是爲三才.

인간은 천지(天地)와 나란히 서니 바로 삼재(三才)가 된다.

故鬼神者才也 天地其大器歟?

그러므로

귀신은 재(才)에 속하며

천지는 큰 그릇이 아니겠는가?

[주D-065]귀신은 재(才)에 속하며 : 《예기》 예운(禮運)에 “그러므로 사람이란 천지(天地)의 덕(德)이며, 음양이 서로 교통하고, 귀신이 서로 만난 것이다.〔鬼神之會也〕”라고 하였다. 귀(鬼)는 형체(形體), 신(神)은 정령(精靈)을 뜻한다.

 

彼潔潔者 福無所遇

깔끔을 떠는 자에게는 복이 붙을 데가 없고,

善得情狀者 人不附.

남의 정상(情狀)을 잘 꿰뚫어 보는 자에게는 사람이 붙지를 않는 법이다.

文章者 天下之至寶也.

문장이란 천하의 지극한 보배이다.

發精蘊於玄樞

오묘한 근원에서 정화(精華)를 끄집어내고,

探幽隱於無形

형적이 없는 데서 숨겨진 이치를 찾아내어

漏洩陰陽 神鬼嗔怨矣.

천지 음양의 비밀을 누설하니, 귀신이 원망하고 성낼 것은 뻔한 일이다.

木有才 人思伐之

재목〔木〕 중에 좋은 감〔才〕이 있으면 사람이 베어 갈 생각을 하고,

貝有才 人思奪之.

재물〔貝〕 중에 좋은 감〔才〕이 있으면 사람이 뺏어 갈 생각을 한다.

故才之爲字 內撇而 不外颺也.

그러므로 재목 재(材) 자와 재물 재(財) 자 속에 있는 ‘재(才)’ 자의 글자 모양이 밖으로 삐치지 않고 안으로 삐치는 것이다.
虞裳一譯官 居國中
우상은 일개 역관에 불과한 자로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聲譽不出里閭 衣冠不識面目

소문이 제 마을 밖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벼슬아치들이 그의 얼굴조차 몰랐다.

一朝名震耀海外萬里之國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름이 바다 밖 만리의 나라에 드날리고,

身傾側鯤鯨龍鼉之家

몸소

곤어(鯤魚)

와 악어의 소굴까지 뒤졌으며,

手沐日月 氣薄虹蜃

솜씨는 햇빛과 달빛으로 씻은 듯 환히 빛났고,

기개는 무지개와 신기루에 닿을 듯이 뻗치었다.

故曰 “慢藏誨盜

그러므로

‘재물을 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은 훔쳐 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 한 것이며,

魚不可脫於淵 利器不可以示人.”

 

‘물고기란 못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이기(利器)를 남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

고 한 것이다.

可不戒哉.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D-066]곤어(鯤魚) : 북쪽 대해(大海)에 산다는 큰 물고기이다. 《莊子 逍遙遊》
[주D-067]솜씨는 …… 빛났고 :
원문은 ‘手沐日月’이다. 우(禹) 임금이 남악(南岳)에 올라 금간옥자(金簡玉字)의 비서(秘書)를 얻었는데 거기에 ‘목일욕월(沐日浴月)’ 운운한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목일욕월’은 햇빛과 달빛으로 목욕한 듯이 윤택하다는 뜻이다. 《庾仲雍 荊州記》
[주D-068]재물을 …… 다름없다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재물을 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은 훔쳐 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고,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것은 음심(淫心)을 갖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慢藏誨盜, 冶容誨淫〕” 하였다.
[주D-069]물고기란 …… 된다 :
《노자》 및 《장자(莊子)》 거협(胠篋)에, “물고기란 못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나라의 이기(利器)를 남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하였다.

過勝本海作詩曰,

승본해(勝本海)를 지나면서 다음의 시를 지었다.

[주D-070]승본해(勝本海) : 승본(勝本)은 현 장기현(長崎縣) 북쪽 일기도(壹岐島)에 소속된 지명으로 그 일대의 바다를 승본해라 한다.

 

蠻奴赤足貌

魀 맨발의 왜놈 사내 몰골조차 수상한데鴨色袍背繪星月 압색의 윗도리 등엔 별과 달이 그려져 있네花衫蠻女走出門 꽃무늬 적삼 입은 계집들 달음질해 문 나서니

[주D-071]압색(鴨色)의 윗도리 : 오리 머리 빛깔인 녹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압두록(鴨頭綠)이라고도 한다. ‘袍’는 ‘우에노기누’라고 하는 윗도리를 말한다.
[주D-072]꽃무늬 적삼 :
원문의 ‘花衫’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花裙’으로 되어 있다.

 

頭梳未竟髽其髮 머리 빗다 못 마친 양 그 머리 동여 맸네小兒號嗄乳母乳 어린아이 칭얼대며 어미 젖을 빨아 대니母手拍背鳴嗚咽 어미가 등을 때리자

울음소리

잦아드네須臾擂鼓官人來 이윽고 북 울리며

관인

이 들어오니

[주D-073]울음소리 : 원문의 ‘鳴’이 《송목관신여고》에는 ‘聲’으로 되어 있다.
[주D-074]관인(官人) :
우리나라 사신을 가리킨다.

 

萬目圍繞如活佛 오만 눈이 둘러싸고 활불인 양 여기누나蠻官膜拜獻厥琛 왜놈 관리 무릎 꿇고 절하며 값진 보물 올리는데珊瑚大貝擎盤出 산호랑

대패

를 소반 받쳐 내오누나眞如啞者設賓主 주인과 손님이 늘어섰으나 실로 벙어리인 양眉睫能言筆有舌 눈짓으로

말을 하고

붓끝으로 얘기하네蠻府亦耀林園趣 왜놈의 관부(官府)에도 정원 풍취 풍부하여栟櫚靑橘配庭實 종려나무 푸른 귤이 뜨락에 가득

찼네

 

[주D-075]대패(大貝) : 바닷조개 중 가장 크다는 거거(車渠)와 흡사한 조개의 일종이다. 껍질은 장식품으로 쓴다.
[주D-076]말을 하고 :
원문의 ‘言’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語’로 되어 있다.
[주D-077]왜놈의 …… 풍부하여 :
이 부분이 《송목관신여고》에는 ‘蠻府亦解園林趣’로 되어 있다.
[주D-078]맨발의 …… 찼네 :
이 시는 ‘일기도(壹岐島)’라는 제목으로 《송목관신여고》에 수록되어 있다.

 

病痔舟中 臥念梅南老師言 乃作詩曰,
배 안에서 치질 병이 생겨 매남노사(梅南老師)의 말을 누워 생각하며 다음의 시를 지었다.
宣尼之道麻尼敎 공자의 유교와

석가

의 불교는

[주D-079]석가 : 원문의 ‘麻’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牟’, 《청장관전서》에는 ‘摩’로 되어 있다.

 

經世出世日而月 각각 경세와 출세로서 해라면 달이로세西士嘗至五印度 서양 선비 일찍이

오인도 가 보았으나

 

[주D-080]일찍이 : 원문의 ‘嘗’이 《청장관전서》에는 ‘常’으로 되어 있다.
[주D-081]오인도(五印度) 가 보았으나 :
인도를 오천축(五天竺)이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가 동, 서, 남, 북, 중의 5부로 구획되어 있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이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16세기에 인도에 진출한 사실을 가리킨다.

 

過去現在無箇佛 과거나 현재에 부처 하나 없었다오.儒家有此俾販徒 유가에도

장사꾼

이 있기로는 마찬가지

弄筆舌神吾說 붓과 혀를 까불려서

괴이한 말

퍼뜨려披毛戴角墜地犴 산발을 하고 뿔이 난 채 지옥에 떨어진다 하니當受生日欺人律 생시에 남 속인 죄 마땅히 받으리라毒焰亦及震旦東 해독의 불길이

진단의 동쪽

에도 미쳐 와서精藍大衍都鄙列 화려하고 큰

절들이

도시와 시골에 널렸구려

 

[주D-082]장사꾼 : 원문의 ‘俾販徒’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稗販徒’, 《청장관전서》에는 ‘裨販徒’로 되어 있다.
[주D-083]괴이한 말 :
원문은 ‘吾說’인데,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怪’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84]산발을 …… 하니 :
원문의 ‘墜’와 ‘犴’이 《송목관신여고》와 《청장관전서》에는 ‘墮’와 ‘獄’으로 되어 있다.
[주D-085]생시에 …… 죄 :
원문의 ‘日欺’가 《송목관신여고》에는 ‘前誣’, 《청장관전서》에는 ‘日誣’로 되어 있다.
[주D-086]진단(震旦)의 동쪽 :
일본을 가리킨다. 진단은 고대 인도에서 중국을 일컫던 말이다.
[주D-087]절들이 :
원문의 ‘衍’이 《송목관신여고》와 《청장관전서》에는 ‘刹’로 되어 있다.

 

睢盱島衆怵禍福 섬 백성 흘겨보며 화복으로 겁을 주니炷香施米無時缺

향화(香火)라 공양미가 끊일 날이 없고말고

[주D-088]향화(香火)라 …… 없고말고 : 원문의 ‘無時’가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長無’로 되어 있다.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부처를 받들면서 부처가 싫어하는 것 되레 좋아하여 물고기 구워 먹고 회 쳐 먹고 마구마구 죽여 대니〔好佛反好佛所惡 燒剔魚鼈恣屠殺〕”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譬如人子戕人子 비하자면 제 자식이 남의 자식 죽여 놓고入養父母必不說 들어와 봉양하면 어느 부모 좋아하리六經中天揚文明 육경이 중천에서 밝은 빛을 비추는데此邦之人眼如漆 이 나라 사람들은 눈에 옻칠한 듯하네暘谷昧谷無二理 양곡이나 매곡이 이치가 둘이겠나順之則聖背檮杌 순종하면 성인 되고 배반하면 악인 되네吾師詔吾詔介衆 우리 스승 나더러 뭇사람께 고하라기以詩爲金口木舌 목탁 대신 이 시 지어 네거리에 울리노라

 

[주D-089]육경이 …… 비추는데 : 원문의 ‘揚文’이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揭文’, 조선본에는 ‘揭大’로 되어 있다.
[주D-090]양곡(暘谷)이나 매곡(昧谷) :
양곡은 해 뜨는 곳, 매곡은 해 지는 곳을 가리킨다.
[주D-091]우리 ……고하라기 :
원문의 전후에 있는 ‘詔’가 모두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訓’으로 되어 있다.
[주D-092]공자의 …… 울리노라 :
마지막 구 ‘以詩爲金口木舌’의 ‘爲’가 《송목관신여고》에는 ‘替’로 되어 있다. 이 시는 ‘일양의 배 안에서 혜환노사의 말씀을 생각하며〔壹陽舟中念惠寰老師言〕’라는 제목으로 《송목관신여고》에 수록되어 있는데, 혜환(惠寰)은 이언진의 스승 이용휴(李用休 : 1708 ~ 1782)의 호이다.

 

詩皆可傳也.
우상의 이러한 시들은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하다.

及旣還過所次 皆已梓印云.

나중에 머물렀던 곳을 다시 들렀더니 그새 이 시들이 모두 책으로 인출(印出)되었다고 한다.
余與虞裳生不相識
나는 우상과는 생전에 상면이 없었다.

然虞裳數使示其詩曰,

그러나 우상은 자주 사람을 시켜 나에게 시를 보여 주며 하는 말이,

“獨此子庶能知吾.”

“유독 이분만이 나를 알아줄 수 있을 것이다.” 했다기에,

余戱謂其人曰,

나는 농담 삼아 그 사람더러 이르기를,

“此吳儂細唾 瑣瑣不足珍也.”

“이거야말로

오농(吳儂)의 간드러진 말투

이니 너무 잗달아서 값나갈 게 없다.” 했더니,

虞裳怒曰“倡夫其人.”

우상이 성을 내며,

“창부(傖夫)

약을 올리는군!” 하고는

 

[주D-093]오농(吳儂)의 간드러진 말투 : 오농은 오(吳) 나라 사람, 즉 화려하고 세련됨을 추구한 강남(江南)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 시대 때 오 나라 땅이었던 이 지역 사람들의 말투가 간드러진 느낌을 주었으므로 ‘오농연어(吳儂軟語)’니 ‘오농교어(吳儂嬌語)’니 하였다. 원문의 ‘오농세타(吳儂細唾)’도 같은 뜻의 말이다.
[주D-094]창부(傖夫) :
창부는 시골뜨기라는 뜻으로, 강남 사람들이 중원(中原) 사람들을 비하하여 부른 말이다. 오 나라 출신인 육기(陸機)가 동생 육운(陸運)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문학적 경쟁 상대로서 중원 출신인 좌사(左思)를 ‘창부’라 비웃은 적이 있다. 《晉書 卷92 文苑傳 左思》 여기서 이언진은 자신과 연암의 관계를 육기와 좌사의 관계에 비긴 것이다.

 

久之歎曰“吾其久於世哉.”

한참 있다가 마침내 한탄하며 말하기를,“내가 어찌 세상에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고

因泣數行下 余亦聞而悲之.

두어 줄의 눈물을 쏟았다기에, 나 역시 듣고서 슬퍼했다.

旣而虞裳死 年二十七.

 

얼마 후 우상이 죽으니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其家人夢見 仙子醉騎蒼鯨

그의 집안사람이 꿈속에서, 신선이 술에 취하여 푸른 고래를 타고 가고

黑雲下垂 虞裳披髮而隨之.

그 아래로 검은 구름이 드리웠는데 우상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良久虞裳死.

얼마 후에 우상이 죽으니,

或曰“虞裳仙去.”

사람들 가운데는 “우상이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고들 말하기도 하였다.

嗟乎 余嘗內獨愛其才.

아! 나는 일찍이 속으로 그 재주를 남달리 아꼈다.

然獨挫之 以爲虞裳年少

그럼에도 유독 그의 기를 억누른 것은, 우상이 아직 나이 젊으니

俛就道 可著書數歲也.

머리를 숙이고 도(道)로 나아간다면, 글을 저술하여 세상에 남길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乃今思之 虞裳必以余爲不足喜也.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니 우상은 필시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有輓歌之者 歌曰,

우상의 죽음에 대해

만가(輓歌)를 지은 이

가 있어 노래하기를,

[주D-095]만가(輓歌)를 지은 이 :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 ‘만이우상(挽李虞裳)’이라는 제목의 오언고시 10수가 실려 있으며 그 작자가 이용휴(李用休)로 되어 있다. 연암은 그 중 5수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五色非常鳥 오색을 두루 갖춘 비범한 새가偶集屋之脊 우연히도 지붕 꼭대기에 날아 앉았네衆人爭來看 뭇사람들 다투어 달려가 보니驚起忽無跡 놀라 일어나 홀연 자취를 감추었네하였고,

[주D-096]놀라 일어나 : 원문의 ‘驚起’가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飛去’로 되어 있다.

 

其二曰,
그 두 번째 노래에,
無故得千金 까닭 없이 천금을 얻고 나면은其家必有災 그 집엔 재앙이 따르는 법矧此稀世寶 더구나 이처럼 세상에 드문 보배를焉能久假哉 오래도록 빌릴 수 있으리요하였고,

其三曰,

그 세 번째 노래에,
渺然一匹夫 조그마한 하나의 필부였건만死覺人數減 죽고 나니 사람 수가 준 걸 알겠네豈非關世道 세도와 관련된 일이 아니겠는가人多如雨點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많다마는하였다.

 

又歌曰, 또 노래하기를,
其人膽如瓠 그 사람은 쓸개가 박마냥 크고其人眼如月 그 사람은 눈빛이 달같이 밝고其人腕有鬼 그 사람은 팔목에 귀신 붙었고其人筆有舌 그 사람은 붓끝에 혀가 달렸네하였고,


又曰, 또,
他人以子傳 남들은 아들로써 대를 잇지만虞裳不以子 우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血氣有時盡 혈기야 때로는 끊어지지만聲名無窮已 명성은 끝질 날이 없으리하였다.

余旣不見虞裳每恨之

나는 이전에 우상을 보지 못하여 매양 한스럽게 여겼는데,

且旣焚其文章無留者 益無知者

그 문장까지 불살라서 남은 것이 없다 하니, 세상에 그를 알 사람이 더욱 없게 되었다.

乃發筴中舅藏 得其前所示纔數篇.

그래서 상자 속에 오래 수장한 것을 꺼내어 그가 예전에 보여 준 것을 찾았는데, 겨우 두어 편뿐이었다.

於是悉著之 以爲之傳虞裳.

이에 모조리 다 기록하여 우상전을 지었다.虞裳有弟 亦能(以下 落張으로 인하여 缺損됨)
우상에게 아우가 있는데, 그 역시도

- 이하 원문 빠짐 -

 

[은자주]방경각외전 자서에 의하면 끝의 두 작품을 찢어 불살랐는데 마지막 부분이 그 낙장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더구나 아우의 얘기여서 없어도 <우상전> 이해에는 무방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두타산 & 청옥산]



김신선전(金神仙傳)


金神仙名弘基

김 신선의 이름은

홍기(弘基)

이다.

 

[주D-001]홍기(弘基) : 김홍기는 당시의 실존 인물로,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권3에는 ‘金洪器’로 소개되어 있다.

 

年十六娶妻 一歡而生子 遂不復近.

나이 16세에 장가를 들어 아내와 한 번 동침하여 아들을 낳고서는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았다.

辟穀面壁坐 坐數歲 身忽輕.

화식(火食)을 물리치고 벽을 향하여 앉아서, 그렇게 하기를 여러 해 만에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遍遊國內名山

국내의 명산을 두루 구경하였는데,

常行數百里 方視日早晏.

항상 수백 리 길을 걷고서야 때가 얼마나 되었나 해를 살폈으며,

五歲一易屨 遇險則步益捷.

5년에 신을 한 번 바꿔 신고, 험한 곳을 만나게 되면 걸음이 오히려 더욱 빨라졌다.

嘗曰 “蹇而涉

그런데도 그는, “물을 만나 바지를 걷고 건너기도 하고,

方而越 故遲我行也.”

배를 타고 건너기도 하느라 이렇게 늦어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하였다.

不食 故人不廉其來客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冬不絮 夏不扇 遂以神仙名.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신선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余嘗有幽憂之疾.
나는 예전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

盖聞神仙方技 或有奇效 益欲得之.

그때 듣자니 신선의 방술(方術)이 더러 특이한 효험이 있다 하므로 더욱 그를 만나고 싶었다.

使尹生․申生陰求之訪 漢陽中 十日不得.

그래서

윤생(尹生)과 신생(申生)

을 시켜서 가만히 찾아보게 하여, 한양 안을 열흘 동안 뒤졌으나 만나지 못했다.

 

[주D-002]윤생(尹生)과 신생(申生) : ‘광문전 뒤에 쓰다〔書廣文傳後〕’에서 연암은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에게 여염에서 일어난 얘깃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물었다고 했는데, 윤생과 신생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尹生言, 嘗聞弘基家西學洞

윤생이 이렇게 말했다.“예전에 홍기가

서학동(西學洞)

에 산다고 들었는데,

 

[주D-003]서학동(西學洞) : 한양의 사학(四學)의 하나인 서학(西學)이 있던 동네로, 현재 태평로 1가 조선일보사 부근이다.

 

今非也. 乃其從昆弟家寓其妻子.

지금 보니 그게 아니라 바로 그 사촌 형제의 집으로 거기다 처자를 맡겨 두었습디다.

問其子言 “父一歲中 率四三來.

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저의 부친은 한 해에 대략 서너 번 찾아올 뿐이지요.

父友在體府洞

부친의 친구 분이 체부동(體府洞)에 살고 있는데

其人好酒 而善家 金奉事云.

그분은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 김 봉사(金奉事)라 하더군요.

樓閣洞金僉知 好碁

누각동(樓閣洞)

김 첨지(金僉知)는 바둑을 좋아하고,

 

[주D-004]누각동(樓閣洞) : 누각골이라고도 한다. 누상동(樓上洞 : 효자동), 누하동(樓下洞), 체부동(體府洞)에 걸쳐 있었던 마을이다. 서리(胥吏)들의 거주지로 인왕산 아래 누각이 있었으므로 누각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後家李萬戶 好琴

그 뒷집 이 만호(李萬戶)는 거문고를 좋아하고,

三淸洞李萬戶 好客

삼청동(三淸洞) 사는 이 만호는 손님을 좋아하고,

美垣洞徐哨官 毛橋張僉使․司僕川 邊池丞

미원동(美垣洞) 사는

서 초관(徐哨官)

모교(毛橋)

사는 장 첨사(張僉使)와

사복천(司僕川)

가에 사는

지 승(池丞)

 

[주D-005]미원동(美垣洞) : 미동(美洞)을 가리키는 듯하다. 미동은 현재 을지로 1가 소공동 북쪽에 해당한다.
[주D-006]서 초관(徐哨官) :
초관(哨官)은 군대의 편제인 초(哨)의 우두머리로 종 9 품의 벼슬이다.
[주D-007]모교(毛橋) :
청계천에 놓인 다리의 하나로, 모전교(毛廛橋)라고도 한다. 현재의 무교동과 서린동의 사거리 지점에 있었다.
[주D-008]사복천(司僕川) :
한양 중부 수진방(壽進坊 현재 수송동 일대)에 있던 사복시(司僕寺) 앞의 계천(溪川)이다.
[주D-009]지 승(池丞) :
승(丞)은 서(署) · 시(寺) · 감(監) 등 중앙의 각 관청에 있었던, 종 5 품에서 종 9 품에 걸친 벼슬이다.

 

俱好客而喜飮.

모두 손님을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里門內趙奉事 亦父友也

이문안〔里門內〕

조 봉사(趙奉事)라는 분도 역시 부친의 친구 분인데

 

[주D-010]이문안〔里門內〕 : 한양 중부에 있던 동네로, 이문동(里門洞)이라고도 하였다. 세조(世祖) 때 한양의 각 동 입구에 이문을 세우게 했는데, 현재의 남대문로 2가에서 조선호텔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문의 터가 있어 이문안이라고 했다.

 

家蒔名花. 桂洞劉判官

그 집엔 이름난 화초가 가득 심겨져 있고, 계동(桂洞) 유 판관(劉判官)은

有奇書古劒. 父常遊居其間

기서(奇書)와 고검(古劍)을 가지고 있어, 부친이 늘 그분들 집에서 놀며 지내고 있으니,

君欲見 訪此數家.”

그대가 만나 뵙고 싶으면 이 몇 집을 찾아보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遂行歷問之 皆不在.

그래서 이들 집을 다니며 일일이 물어보았으나 어느 집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暮至一家 主人琴

저물녘에 한 집에 들렀더니, 주인은 거문고를 타고 있고

有二客皆靜黙 頭白而不冠.

두 손은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허연 머리에 관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於是 自意得金弘基. 立久之


저는 이제는 김홍기를 만났구나 생각하고 한참 동안 서서 기다렸습니다.

曲終而進曰

거문고 가락이 끝나 가기에 나아가,

“敢問誰爲金丈人?”

‘어느 분이 김 장인(金丈人 장인은 노인에 대한 경칭이다.)이신지 감히 여쭙습니다.’ 했지요.

主人捨琴 而對曰

주인이 거문고를 밀쳐 놓고 대답하기를,

“座無姓金者 子奚問?”

‘좌중에 김씨 성 가진 사람은 없소. 그대는 왜 묻는가?’ 하기에,

曰 “小子齋戒 而後敢來求也. 願老人無諱.”

‘저는 목욕재계하고서 감히 찾아와 뵙는 것이오니 노인께서는 숨기지 마소서.’ 하였더니,

主人笑曰 “子訪金弘基耶? 不來耳.”

주인이 웃으며, ‘그대가 아마 김홍기를 찾는가 보오. 홍기는 오지 않았소.’ 하였습니다.

“敢問來何時?”

‘어느 때나 오시는지 감히 여쭙습니다.’ 하였더니,

曰 “是居無常主 有無定方

‘홍기란 사람은 묵어도 일정한 거처가 없고 놀아도 일정한 곳이 없으며,

來不預期 居不留約.

와도 온다고 예고하지 않고 가도 다시 오겠다는 약조를 하지 않으며,

一日中 或再三過 不來則亦閱歲.

하루에 두세 번 올 때도 있는 반면 안 올 때는 해가 지나도 오지 않소.

聞金多在倉洞․會賢之坊

듣자니 홍기가

창동(倉洞)

이나 회현방(會賢坊)에 주로 있고,

且童關 ․梨峴 ․ 銅峴 ․ 慈壽橋․ 社洞․ 壯洞 ․大陵․ 小陵之間 嘗往來遊居.

동관(董關) · 배오개 · 구리개 · 자수교(慈壽橋) · 사동(社洞) · 장동(壯洞) · 대릉(大陵) · 소릉(小陵)

등지에도 오락가락하며 놀고 자곤 한다는데,

 

[주D-011]창동(倉洞) : 남대문 안 선혜청(宣惠廳)의 창고 부근에 있었던 동네로, 현재 남대문 시장이 있는 남창동 일대이다.
[주D-012]동관(董關) …… 소릉(小陵) :
동관은 미상(未詳)이다. 배오개는 현재 종로 4가 인의동에 있었던 고개이고, 구리개는 현재 을지로 입구, 롯데백화점 맞은편에 있었던 고개이다. 자수교는 현재 옥인동과 효자동 · 궁정동이 만나는 곳에 있던 다리로, 조선 시대에 후궁들의 거처로 쓰인 자수궁(慈壽宮)이 있었던 곳이어서 자수궁교라고도 하였다. 사동은 사직단(社稷壇 : 현재 사직공원) 부근의 동네이다. 장동은 장의동(壯義洞)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효자동 · 궁정동 · 청운동 일대이다. 대릉과 소릉은 각각 대정동(大貞洞)과 소정동(小貞洞)을 가리킨다. 원래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구 정동 일대이다.

 

然皆不知其主名.

내가 그 주인의 이름은 거의 다 모르고

獨蒼洞 吾知之 子往問焉.”

유독 창동만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서 물어보오.’ 하였습니다.


遂行訪其家. 問焉對曰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가 물었더니,

“是不來者 嘗數月.

‘그가 오지 않은 것이 벌써 두어 달 되었소.

吾聞長暢橋 林同知喜飮酒

내 들으니

장창교(長暢橋)

에 사는 임 동지(林同知)가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주D-013]장창교(長暢橋) :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의 하나로 한양 중부 장통방(長通坊 : 현재 장교동, 관철동 일대)에 있었다. 장창교(長倉橋), 장통교(長通橋), 장교(長橋)라고도 불렸다.

 

日與金角 今在林否?”

날마다 홍기와 더불어 술 겨루기를 한다는데, 지금 임씨 집에 있는지도 모르겠소.’라고 답했습니다.


遂訪其家

그래서 바로 그 집을 찾아갔더니,

林同知八十餘 頗重聽曰

임 동지라는 이는 나이 80여 세여서 자못 귀가 먹었는데, 하는 말이,

“咄. 夜劇飮 朝日餘醉 入江陵.”

‘쯧쯧, 어젯밤에 나와 술을 잔뜩 마시고 오늘 아침에 취기가 남은 채로 강릉(江陵)에 간다고 떠났소.’ 하였습니다.

於是 悵然久之問曰 “金有異歟?”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 있다 묻기를, ‘김홍기란 이에게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하니,

曰 “一凡人 特未嘗飯.”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단지 밥 먹는 것을 못 보았소.’ 하였고,

“狀貌何如?”

‘생김생김이 어떠합니까?’ 하였더니,

曰 “身長七尺餘 癯而髥 /*癯(구):여위다.

‘키는 7척이 넘고 몸집은 여위고 수염이 좋으며,

瞳子碧 耳長而黃.”

눈동자는 파랗고 귀는 길고 누렇지요.’ 하였으며,

“能飮幾何?”

‘술은 얼마나 마시오?’ 하였더니,

曰 “飮一杯醉 然一斗 醉不加.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데 한 말을 마셔도 더 취하지는 않소.

嘗醉臥塗 吏得之

예전에 취하여 길에 누워버린 적이 있었는데, 포리(捕吏)가 잡아다가

拘七日不醒 乃釋去.”

이레 동안 구속했으나 그 술이 깨지 않으므로 마침내 놓아주었다오.’ 하였습니다.

“言談何如?”

‘말할 때는 어떱디까?’ 하였더니,

曰 “衆人言 輒坐睡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대로 앉아서 졸고 있다가,

談已 輒笑不止.”

그 말이 끝나면 계속해서 웃기만 한다오.’ 하였으며,

“持身何如?”

‘몸가짐은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曰 “靜若參禪 拙如守寡.”

‘조용한 품은 참선(參禪)하는 중 같고, 옹졸한 품은 수절하는 과부 같았지요.’ 하였습니다.”

余嘗疑尹生求不力.

나는 한때 윤생이 힘들여 찾지 않았나 의심을 했었다.

然申生亦訪數家 皆不得. 其言亦然.

그러나 신생 역시 수십 집을 찾아다녔어도 다 못 만났고, 그의 말도 윤생과 마찬가지였다.

或曰 “弘基年百餘 所與遊 皆老人.”

어떤 이는 말하기를, “홍기는 나이가 백여 살이고, 더불어 노는 사람들도 모두 노인이다.”하고,

或言 “不然. 弘基年十九娶 卽有男.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 홍기가 나이 열아홉에 장가들어 곧바로 아들을 낳았고

今其子纔弱冠 弘基年 計今可五十餘.”

지금 그 아들이 겨우 스물 전후이니, 홍기의 나이 지금 쉰 남짓쯤 될 것이다.” 하였으며,

 

[주D-014]홍기가 …… 것이다 :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작품의 서두에서는 김홍기가 16세에 장가들었다고 하였다. 설령 그가 열아홉에 장가들었다고 해도 그때 낳은 아들이 스무 살 전후가 되었다면 홍기의 현재 나이는 마흔 살쯤이라야 한다.

 

或言 “金神仙 採藥智異山

어떤 이는, “김 신선이 지리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墯崖不返 今已數十年.”

벼랑에 떨어져서 돌아오지 못한 지 지금 하마 수십 년이 되었다.” 하고, 或言 “巖穴窅冥 有物熒熒.” /窅(요):깊고 먼 모양어떤 이는, “지금도 컴컴한 바위굴에 번쩍번쩍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고,

或曰 “此老人眼光也.

어떤 이는, “그게 바로 노인의 눈빛이다.

山谷中時 聞長欠聲.

산골짜기에서 이따금 기지개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였다.

今弘基 惟善飮酒


그런데 지금 홍기는 단지 술을 잘 마실 뿐이요,

非有術. 獨假其名而行云.”

딴 방술(方術)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직 그 이름을 빌려서 행세한다는 것이다.

然余又使童子福往求之.

그러나 나는 또 동자 복(福)을 시켜서 가서 찾아보라 했으나

從不可得. 歲癸未也.

끝내 만나 보지 못하고 말았는데, 이때는 계미년(1763, 영조 39)이었다.


明年秋 余東遊海上.
그 이듬해 가을에 나는 동으로 바닷가를 여행하다가

夕日登斷髮嶺 望見金剛山

저녁나절 단발령(斷髮嶺)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주D-015]그 이듬해 …… 바라보았다 : 박종채의 《과정록》에는 연암이 금강산을 유람한 것은 2년 뒤인 을유년(1765, 영조 41) 가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其峯萬二千云 其色白.

그 봉우리가 만이천 개나 된다고 하는데 흰빛을 띠고 있었다.

入山 山多楓方丹.

산에 들어가 보니 단풍나무가 많아서 한창 탈 듯이 붉었으며,

赤杻․梗柟․豫章 皆霜黃

싸리나무, 가시나무, 녹나무, 예장(豫章)나무는 다 서리를 맞아 노랗고,

衫檜益碧 又多冬靑樹

삼나무, 노송나무는 더욱 푸르르며, 사철나무가 특히나 많았다.

山中諸奇木 皆葉黃紅 顧而樂之.

산중의 갖가지 기이한 나무들은 다 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어 둘러보고 즐거워했다.

問轝僧 “山中有異僧 得道術 可與遊乎?”

가마를 멘 중에게 묻기를,“이 산중에 도승이 있느냐? 있다면 그 도승과 더불어 놀 수 있느냐?” 하니,

曰 “無有. 聞船菴有辟穀者.

“그런 중은 없고,

선암(船菴)

에 벽곡(辟穀)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소.

 

[주D-016]선암(船菴) : 내금강(內金剛) 표훈사(表訓寺)에 딸린 암자이다.

 

或言 ‘嶺南士人.’ 然不可知.

누구는 말하기를 영남 선비라고 하는데, 꼭 알 수는 없습니다.

船菴道險 無至者.”

선암은 길이 험하여 당도하는 자가 없습니다.” 했다.

余夜坐長安寺 聞諸僧 衆俱對如初.

내가 밤에 장안사(長安寺)에 앉아서 여러 중들에게 물으니, 모두 처음의 대답과 같았으며,

言 “辟穀者 滿百日當去. 今幾九十餘日.”

벽곡하는 자가 100일을 채우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지금 거의 90일이 되었다고 하였다.

余喜甚 意者 “其仙人乎!”

나는 몹시 기뻐서 ‘아마 그 사람이 선인(仙人)인가 보다.’ 생각하고

卽夜立欲往.

당장에 밤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朝日 坐眞珠潭下 候同遊

그 이튿날 아침을 기다려서

진주담(眞珠潭)

아래에 앉아 같이 갈 사람을 기다렸다.

 

[주D-017]진주담(眞珠潭) : 금강산 입구 만폭동(萬瀑洞)의 팔담(八潭) 중 가장 장대한 명승지이다.

 

眄睞久之 皆失期不至.

거기서 한참 동안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모두 약조를 어기고 오지 않았다.

觀察使 巡行君邑

게다가 관찰사가 군읍(郡邑)을 순행하다가

遂入山 流連諸寺間.

마침내 산에 들어와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쉬고 있었으므로,

守令皆來會 供張廚傳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두 모여들어 잔치를 벌이고 음식과 거마(車馬)를 제공했으며,

每出遊 從僧百餘.

매양 구경 나갈 때는 따라다니는 중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


船菴道絶峻險 不可獨至.

선암은 길이 끊기고 험준하여 도저히 혼자 도달할 수는 없으므로

嘗自往來靈源白塔之間 而意悒悒.

영원(靈源)과 백탑(白塔)

사이를 스스로 오가며 애만 태운 적이 있었다.
[주D-018]영원(靈源)과 백탑(白塔) : 골짜기의 이름으로, 내금강 명경대(明鏡臺) 구역에 있는 명승지들이다.

旣而天久雨 留山中六日 乃得之船菴

그 후로 날이 오랫동안 비가 내려 산중에 엿새 동안을 묵고서야 선암에 당도할 수 있었다.

在須彌峯下. 從內圓通 行二十餘里

선암은 수미봉(須彌峯) 아래에 있었으므로 내원통(內圓通)으로부터 20여 리를 들어갔는데,

大石削立 千仞路絶

큰 바위가 깎아질러 천 길이나 되었으며

輒攀鐵索 懸空而行.

길이 끊어질 때마다 쇠줄을 부여잡고 공중에 매달려서 가야만 했다.

旣至庭 空無禽鳥啼

당도하고 보니 뜨락은 텅 비어 우는 새 한 마리도 없고,

榻上小銅佛 唯二屨在.

탑(榻) 위에는 조그마한 구리부처가 놓여 있고

신 두 짝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余悵然徘徊 立而望之

나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 이리저리 서성이며 우두커니 바라만 보다가,

 

[주D-019]신 …… 뿐이었다 : 신선이 득도하여 승천(昇天)한 증거로 흔히 신발만 남기고 행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든다.
[주D-020]나는 :
원문은 ‘余’인데, 이본에는 ‘除’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자면 ‘除’는 섬돌의 뜻으로 앞 구에 연결되어 “신 두 짝만 섬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로 해석된다.

 

遂題名巖壁下 歎息而去.

마침내 암벽 아래에다 이름을 써 놓고 탄식하며 떠나왔다.

常有雲氣 風瑟然.

그런데 거기에는 노상 구름 기운이 감돌고 바람이 쓸쓸하게 불었다.或曰 “仙者山人也.”
어떤 책에는 “신선〔仙〕이란 산사람〔山人〕을 의미한다.”
라고 하며

 

[주D-021]어떤 …… 의미한다 : 《석명(釋名)》이나 《자휘(字彙)》 등의 사전류에서 ‘仙’ 자를 풀이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又曰 “入山爲仙也.”

또 어떤 책에는 “ ‘산에 들어가 있는 사람〔入山〕’을 신선〔屳〕이라고 한다.” 하기도 한다.

又僊者 僊僊然 輕擧之意也.

또한 신선〔僊〕이란 너울너울〔僊僊〕 가볍게 날아오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辟穀者 未必僊也

그렇다면 벽곡하는 사람이 꼭 신선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其鬱鬱不得志者也.

아마도 뜻을 얻지 못해 울적하게 살다 간 사람일 것이다.

 

[금강산 & 구룡폭포 / 정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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