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규수 작품

https://www.youtube.com/watch?v=Ki71O52kPEg

https://www.youtube.com/watch?v=u0kbyYsaY6M

 

https://www.youtube.com/watch?v=Vuk6zfdEBHU

 

https://www.youtube.com/watch?v=OS1HD1xMdqA

 

[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한 백수였지만 44세에 잡은 단 한 번의 연행 경험은 조선후기 저술중 제1반열을 차지하는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 를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 연행록은 낙점에서 이별잔치, 출발 등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연행록은 대뜸 '도강록'에서 시작된다. 인상 깊은 것을 적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탄탄한 기본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가 읽은 명문들은 다 그랬기 때문이다. 출사에 대한 보장은 없었지만 국가경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20년에 걸친 북학공부를 단 한 권의 책에 녹여냈다. 국가경영에 대한 그의 경륜을 압축한 것이 <허생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작품의 구성도 그의 지론인 이용, 후생, 정덕, 현실비판으로 맞아떨어진다.

작품 속의 무인도 개척은 흔히 <홍길동전>의 율도국애 비견된다.

http://blog.naver.com/osj1952/100025294045

 

허생전(許生傳)-박지원(朴趾源)

 

[1]이용(利用)

1)선비 허생의 가난한 삶

許生居墨積洞

(허생거묵적동) :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直抵南山下

(직저남산하) :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井上有古杏樹(정상유고행수) :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柴扉向樹而開

(시비향수이개) :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草屋數間

(초옥수간) : 두어 칸 초가는

不蔽風雨

(불폐풍우) :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然許生好讀書

(연허생호독서) :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妻爲人縫刺以糊口

(처위인봉자이호구)

: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一日妻甚饑

(일일처심기) :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泣曰

(읍왈) :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子平生不赴擧

(자평생불부거) :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讀書何爲

(독서하위) :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許生笑曰

(허생소왈) :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吾讀書未熟

(오독서미숙) :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妻曰

(처왈) : 처가 말하기를

不有工乎

(불유공호) :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生曰

(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工未素學奈何

(공미소학내하) :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妻曰

(처왈) : 처가 이르기를

不有商乎

(불유상호) :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生曰

(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商無本錢奈何

(상무본전내하) :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其妻恚且罵曰

(기처에차매왈) : 처는 왈칵 성을 내며 꾸짓지를

晝夜讀書

(주야독서) :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只學奈何

(지학내하) :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不工不商

(불공불상) :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何不盜賊

(하불도적) : 도둑질은 어찌 못 하시나요?"

 

2)열받은 허생, 이용(利用)에 나서다

(1)허생, 변부자에게 만냥을 빌리다

 

許生掩卷起曰

(허생엄권기왈) :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며 이르기를

惜乎

(석호) : "아깝다.

吾讀書本期十年

(오독서본기십년) :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今七年矣

(금칠년의) : 인제 칠 년이로다."하고

出門而去

(출문이거) :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無相識者

(무상식자) :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直之雲從街

(직지운종가) :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問市中人曰

(문시중인왈) :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묻기를

漢陽中誰最富

(한양중수최부) :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有道卞氏者

(유도변씨자) :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遂訪其家

(수방기가) : 마침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許生長揖曰

(허생장읍왈) :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吾家貧

(오가빈) : "내가 집이 가난해서

欲有所小試

(욕유소소시) :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願從君借萬金(원종군차만금) :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卞氏曰諾

(변씨왈낙) : 변씨는 말하기를 "그러시오." 하고

立與萬金

(립여만금) :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客竟不謝而去

(객경불사이거) :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子弟賓客

(자제빈객) :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視許生丐者也

(시허생개자야) :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絲絛穗拔

(사조수발) :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革屨跟顚

(혁구근전) :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笠挫袍煤

(립좌포매) :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鼻流淸涕

(비류청체) :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客旣去

(객기거) : 허생이 나가자,

皆大驚曰

(개대경왈) : 모두들 크게 놀라서 묻기를

大人知客乎

(대인지객호) : "대인은 저이를 아시나요?"

曰不知也

(왈불지야) : 이르기를 "모르지"

今一朝

(금일조) :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人

(랑공척만금어생평소불지하인) :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而不問其姓名何也

(이불문기성명하야):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卞氏曰

(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此非爾所知

(차비이소지) :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凡有求於人者

(범유구어인자) :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必廣張志意

(필광장지의) : 반드시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先耀信義

(선요신의) :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然顔色媿屈

(연안색괴굴) :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言辭重複

(언사중복) :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彼客衣屨雖弊

(피객의구수폐) :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辭簡而視傲

(사간이시오) :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容無怍色

(용무작색) :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不待物而自足者也

(불대물이자족자야) :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彼其所試術不小

(피기소시술불소) :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吾亦有所試於客

(오역유소시어객) :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不與則已

(불여칙이) : 안 주면 그만둘지 언정

旣與之萬金

(기여지만금) :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問姓名何爲

(문성명하위) :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2)허생, 안성에서 제수 과일을 독과점하다

 

於是許生旣得萬金(어시허생기득만금) : 허생은 만 냥을 얻자,

不復還家(불부환가) :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以爲安城畿湖之交(이위안성기호지교) : 언뜻 생각하기를,

‘저 안성(安城)은 기(畿)ㆍ호(湖)의 접경이요,

三南之綰口(삼남지관구) : 삼남(三南)의 어귀이다.’하고는,

遂止居焉(수지거언) :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棗栗柹梨柑榴橘柚之屬(조률시리감류귤유지속)

: 그리하여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을

皆以倍直居之(개이배직거지) :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許生榷菓(허생각과) :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而國中無以讌祀(이국중무이연사) :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居頃之(거경지) : 얼마 안 가서,

諸賈之獲倍直於許生者(제가지획배직어허생자)

: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사람들이

反輸十倍(반수십배) :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許生喟然嘆曰(허생위연탄왈) :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며 이르기를.

以萬金傾之(이만금경지) :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知國淺深矣(지국천심의) :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3)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을 독과점하다

 

以刀鏄布帛綿入濟州(이도단포백면입제주) :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悉收馬鬉鬣曰(실수마종렵왈) :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이르기를

居數年(거수년) : "몇 해 지나면

國人不裹頭矣(국인불과두의) :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居頃之(거경지) : 얼마 안 가서

網巾價至十倍(망건가지십배) :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2]후생(厚生)

1)허생, 사공에게 길을 묻다

 

許生問老篙師曰(허생문로고사왈) :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묻기를

海外豈有空島可以居者乎(해외기유공도가이거자호)

: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篙師曰(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有之(유지) : "있습지요.

常漂風直西行三日夜(상표풍직서행삼일야)

: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泊一空島(박일공도) :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計在沙門長崎之間(계재사문장기지간)

: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花木自開(화목자개) :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菓蓏自熟(과라자숙) :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麋鹿成群(미록성군) :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游魚不驚(유어불경) :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許生大喜曰(허생대희왈) :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르기를

爾能導我(이능도아) :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富貴共之(부귀공지) :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라고 말하니,

篙師從之(고사종지) :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遂御風東南(수어풍동남) :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入其島(입기도) : 그 섬에 들어갔다.

許生登高而望(허생등고이망) :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悵然曰(창연왈) : 실망하여 말하기를

地不滿千里(지불만천리) :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惡能有爲(악능유위) : 무엇을 해 보겠는가?

土肥泉甘(토비천감) :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只可作富家翁(지가작부가옹) :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篙師曰(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島空無人(도공무인) :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尙誰與居(상수여거) :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德者人所歸也(덕자인소귀야) :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尙恐不德(상공불덕) : 덕이 없을까 두렵지,

何患無人(하환무인) :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2)변산 도적떼를 빈 섬으로 데려가다

 

是時邊山群盜數千(시시변산군도수천)

: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州郡發卒逐捕(주군발졸축포) :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不能得(불능득) :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然群盜亦不敢出剽掠(연군도역불감출표략) :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方饑困(방기곤) : 바야흐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許生入賊中說其魁帥曰(허생입적중설기괴수왈)

: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어 이르기를

千人掠千金(천인략천금) :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所分幾何(소분기하) :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曰人一兩耳(왈인일량이) : 이르기를 "일 인당 한 냥이지요."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有妻乎(이유처호) : "모두 아내가 있소?"

群盜曰無(군도왈무) : 군도들이 이르기를 "없소."

曰爾有田乎(왈이유전호) : 이르기를 "논밭이 있소?"

群盜笑曰(군도소왈) :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有田有妻(유전유처) :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何苦爲盜(하고위도) :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審若是也(심약시야) : "정말 그렇다면,

何不娶妻樹屋(하불취처수옥) :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買牛耕田(매우경전) :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生無盜賊之名(생무도적지명) :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而居有妻室之樂(이거유처실지악) :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行無逐捕之患(행무축포지환) :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而長享衣食之饒乎(이장향의식지요호) :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群盜曰(군도왈) : 군도가 이르기를

豈不願如此(기불원여차) : "아니, 왜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소?

但無錢耳(단무전이) :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許生笑曰(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爾爲盜何患無錢(이위도하환무전) :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吾能爲汝辦之(오능위여판지) :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明日(명일) : 내일

視海上風旗紅者(시해상풍기홍자) : 바다에 나와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보이면

皆錢船也(개전선야) :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恣汝取去(자여취거) :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許生約群盜(허생약군도) :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旣去(기거) : 내려가자,

群盜皆笑其狂(군도개소기광) :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及明日(급명일) : 이튼날이 되어,

至海上(지해상) :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許生載錢三十萬(허생재전삼십만) :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皆大驚羅拜曰(개대경라배왈) :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唯將軍令(유장군령) :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惟力負去(유력부거) : "힘을 생각하여 지고 가거라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於是群盜(어시군도) : 너희들, 이에 군도들이

爭負錢(쟁부전) : 다투어 돈을 질머졌으나

人不過百金(인불과백금) : 사람마다 백 금을 넘지 못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等力不足以擧百金(이등력불족이거백금)

: 이제 너희들이 힘이 부족하여 백 금도 들 수 없으니

何能爲盜(하능위도) :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今爾等雖欲爲平民(금이등수욕위평민)

: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名在賊簿(명재적부) :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無可往矣(무가왕의) : 갈 곳이 없다.

 

吾在此俟汝各持百金而去(오재차사여각지백금이거)

: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人一婦一牛來(인일부일우래)

: 사람마다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群盜曰諾(군도왈낙) : 군도들은 ‘좋다’고 하고

皆散去(개산거) : 모두 흩어져 갔다.

許生自具二千人一歲之食以待之(허생자구이천인일세지식이대지)

: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及群盜至(급군도지) :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無後者(무후자) : 뒤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遂俱載入其空島(수구재입기공도) :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許生榷盜而國中無警矣(허생각도이국중무경의) :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3)농산물을 장기도에 가서 무역하다-해외무역

 

於是伐樹爲屋(어시벌수위옥) :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編竹爲籬(편죽위리) :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地氣旣全(지기기전) :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百種碩茂(백종석무) : 백곡이 잘 자라서,

不菑不畬(불치불여) :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一莖九穗(일경구수) :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留三年之儲(류삼년지저) :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餘悉舟載往糶長崎島(여실주재왕조장기도) :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長崎者(장기자) : 장기라는 곳은

日本屬州(일본속주) :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니

戶三十一萬(호삼십일만) : 삼십만여 호가 된다

方大饑(방대기) :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遂賑之(수진지) : 구휼하고

獲銀百萬(획은백만) :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4)이상적인 섬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許生歎曰(허생탄왈) : 허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今吾已小試矣(금오이소시의) :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하고,

於是悉召男女二千人(어시실소남녀이천인) :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令之曰(령지왈) :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吾始與汝等入此島(오시여여등입차도) :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先富之(선부지) :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然後別造文字(연후별조문자) : 따로 문자를 만들고

刱製衣冠(창제의관) :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다.

地小德薄(지소덕박) :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吾今去矣(오금거의) :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兒生執匙敎以右手(아생집시교이우수)

: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게 가르치라

一日之長(일일지장) :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讓之先食(양지선식) :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悉焚他船曰(실분타선왈) :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이르기를

莫往則莫來(막왕칙막래) :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하고

投銀五十萬於海中曰(투은오십만어해중왈)

: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이르기를

海枯有得者(해고유득자) :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百萬無所容於國中(백만무소용어국중)

: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况小島乎(황소도호) :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했다.

有知書者載與俱出曰(유지서자재여구출왈)

: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며 이르기를

爲絶禍於此島(위절화어차도) :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3]정덕(正德)

 

1)변씨에게서 빌린 돈을 십만냥으로 청산하다

 

於是遍行國中(어시편행국중) : 이리하여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賑施與貧無告者(진시여빈무고자) :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銀尙餘十萬曰(은상여십만왈) : 그러고도 여전히 은이 십만 냥이 남아 이르기를

此可以報卞氏(차가이보변씨) :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往見卞氏曰(왕견변씨왈) :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이르기를

君記我乎(군기아호) : "나를 알아보시겠소?"

卞氏驚曰(변씨경왈) : 변씨는 놀라 말하기를

子之容色(자지용색) : "그대의 안색이

不少瘳(불소추) :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得無敗萬金乎(득무패만금호) :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許生笑曰(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以財粹面(이재수면) :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君輩事耳(군배사이) : 당신들 일일 뿐이오.

萬金何肥於道哉(만금하비어도재) :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어시이은십만부변씨왈)

: 이리하여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고 이르기를

吾不耐一朝之饑(오불내일조지기) :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未竟讀書(미경독서) :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慙君萬金(참군만금) :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卞氏大驚(변씨대경) : 변씨는 크게 놀라

起拜辭謝(기배사사) :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願受什一之利(원수십일지리) :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許生大怒曰(허생대노왈) :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이르기를

君何以賈竪視我(군하이가수시아) :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拂衣而去(불의이거) :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2)변씨, 허생에게 돈을 되돌려 주었으나 받지 않다

 

卞氏潛踵之(변씨잠종지) :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가며

望見客向南山下入小屋(망견객향남산하입소옥)

: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有老嫗(유로구) : 한 늙은 할미가 있어

井上澣(정상한) :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卞氏問曰(변씨문왈) : 변씨가 물어 이르기를

彼小屋誰家(피소옥수가) :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嫗曰(구왈) : 늙은 할미가 이르기를

許生員宅(허생원댁) : "허 생원 댁입지요.

貧而好讀書(빈이호독서) :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一朝出門不返者已五年(일조출문불반자이오년)

: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獨有妻在(독유처재) : 부인이 혼자 사는데,

祭其去日(제기거일) :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卞氏始知客乃姓許(변씨시지객내성허) :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歎息而歸(탄식이귀) : 탄식하며 돌아갔다.

 

明日悉持其銀往遺之(명일실지기은왕유지)

: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許生辭曰(허생사왈) :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고 이르기를

我欲富也(아욕부야) :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棄百萬而取十萬乎(기백만이취십만호) :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吾從今得君而活矣(오종금득군이활의) :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君數視我計口送糧(군수시아계구송량) :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度身授布(도신수포) :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一生如此足矣(일생여차족의) :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孰肯以財勞神(숙긍이재로신) : 그 누가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卞氏說許生百端(변씨설허생백단) :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竟不可奈何(경불가내하) :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卞氏自是度許生匱乏(변씨자시도허생궤핍) : 변씨는 그 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輒身自往遺之(첩신자왕유지) : 바로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許生欣然受之(허생흔연수지) :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或有加則不悅曰(혹유가칙불열왈) :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이르기를

君奈何遺我災也(군내하유아재야) :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하였고,

以酒往則益大喜(이주왕칙익대희) :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相與酌至醉(상여작지취) :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旣數歲(기수세) :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情好日篤(정호일독) :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3)변씨, 허생에게 돈번 내력을 듣다

 

嘗從容言五歲中(상종용언오세중) :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何以致百萬(하이치백만)

: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대답하기를,

此易知耳(차역지이) :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朝鮮舟不通外國(조선주불통외국) :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車不行域中(차불행역중) :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故百物生于其中(고백물생우기중) :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消于其中(소우기중) :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夫千金小財也(부천금소재야) :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未足以盡物(미족이진물) :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然析而十之百金(연석이십지백금) :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十亦足以致十物(십역족이치십물) :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物輕則易轉(물경칙역전) :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故一貨雖絀(고일화수출) :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九貨伸之(구화신지) :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此常利之道(차상리지도) :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小人之賈也(소인지가야) :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夫萬金足以盡物(부만금족이진물)

: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故在車專車(고재거전거) : 수레면 수레 전부,

在船專船(재선전선) : 배면 배를 전부,

在邑專邑(재읍전읍) :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如綱之有罟(여강지유고) : 마치 총총한 그물로

括物而數之(괄물이수지) :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陸之產萬(륙지산만) :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水之族萬(수지족만) :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醫之材萬(의지재만) :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一貨潛藏(일화잠장) :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百賈涸(백가학) : 모든 장사치들에게는 고갈될 것이매,

此賊民之道也(차적민지도야) :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後世有司者(후세유사자) : 후세에 당국자들이

如有用我道(여유용아도) :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必病其國(필병기국) :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初子何以知吾出萬金而來吾求也(초자하이지오출만금이래오구야)

: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不必君與我也(불필군여아야) :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能有萬金者(능유만금자) :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莫不與也(막불여야) :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오자료오재족이치백만)

: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然命則在天(연명칙재천) :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吾何能知之(오하능지지) :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故能用我者(고능용아자) :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有福者也(유복자야) : 복 있는 사람이라,

必富益富(필부익부) :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天所命也(천소명야) :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安得不與(안득불여) : 어찌 주지 않았겠소?

旣得萬金(기득만금) :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憑其福而行(빙기복이행) :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故動輒有成(고동첩유성) :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若吾私自與(약오사자여) :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則成敗亦未可知也(칙성패역미가지야) :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4]현실비판

 

1) 허생, 재야의 인재들을 아까워하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方今士大夫欲雪南漢之恥(방금사대부욕설남한지치) :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此志士扼腕奮智之秋也(차지사액완분지지추야)

: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以子之才(이자지재) : 선생의 그 재주로

何自苦沉冥以沒世耶(하자고침명이몰세야)

: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古來沉冥者何限(고래침명자하한)

: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趙聖期拙修齋可使敵國(조성기졸수재가사적국) :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而老死布褐(이로사포갈) :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柳馨遠磻溪居士(류형원반계거사) :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足繼軍食(족계군식) :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而逍遙海曲(이소요해곡) :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今之謀國政者(금지모국정자) : 지금의 집정자들은

可知已(가지이) :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吾善賈者也(오선가자야) :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其銀足以市九王之頭(기은족이시구왕지두)

: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然投之海中而來者(연투지해중이래자) :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無所可用故耳(무소가용고이) :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卞氏喟然太息而去(변씨위연태식이거) :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2)변씨, 이완대장에게 허생 만나기를 주선하다

 

卞氏本與李政丞浣善(변씨본여리정승완선)

: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李公時爲御營大將(리공시위어영대장) :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嘗與言委巷閭閻之中(상여언위항려염지중) :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역유기재가여공대사자호) :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卞氏爲言許生(변씨위언허생) :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李公大驚曰(리공대경왈) :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奇哉(기재) : "기이하다.

眞有是否(진유시부) : 그게 정말인가?

其名云何(기명운하) :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하고 묻는 것이었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小人與居三年(소인여거삼년) :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竟不識其名(경불식기명) :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李公曰(이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此異人(차이인) : "그인 이인(異人)이야.

與君俱往(여군구왕) : 자네와 같이 가 보세."

夜公屛騶徒(야공병추도) :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獨與卞氏俱步至許生(독여변씨구보지허생) :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卞氏止公立門外(변씨지공립문외) :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獨先入(독선입) : 혼자 먼저 들어가서,

見許生具道李公所以來者(견허생구도리공소이래자)

: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許生若不聞者曰(허생약불문자왈) :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이르기를

輒解君所佩壺(첩해군소패호) :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했다.

相與歡飮(상여환음) :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3)허생은 이완 만나 시사삼책(時事三策)을 말하다

 

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변씨민공구로립수언지) :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許生不應(허생불응) :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旣夜深(기야심) : 야심해지자

許生曰可召客(허생왈가소객) : 허생이 이르기를 “손님을 불러도 좋습니다” 하니

李公入(리공입) :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왔다.

許生安坐不起(허생안좌불기) :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李公無所措躬(리공무소조궁) :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내서술국가소이구현지의) :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許生揮手曰(허생휘수왈) : 허생은 손을 휘저으며 이르기를

夜短語長(야단어장) :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聽之太遲(청지태지) : 듣기에 지루하다.

汝今何官(여금하관) :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曰大將(왈대장) : 이르기를 "대장이오."

 

(1)재야 인사로 새 피를 수혈하라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然則汝乃國之信臣(연칙여내국지신신) :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我當薦臥龍先生(아당천와룡선생) :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여능청우조삼고초려호) :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고 이르기를

難矣(난의) : "어렵습니다.

 

(2)명나라 유민에게 종실의 딸을 시집보내라

 

願得其次(원득기차) :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我未學第二義(아미학제이의)

: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하고 허생은 외면했으나

固問之(고문지) : 이 대장이 굳이 물으니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明將士以朝鮮有舊恩(명장사이조선유구은)

: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其子孫多脫身東來(기자손다탈신동래) :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流離惸鰥(류리경환) :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汝能請于朝(여능청우조) : 너는 조정에 청하여

出宗室女遍嫁之(출종실녀편가지)

: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奪勳戚權貴家(탈훈척권귀가) :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以處之乎(이처지호) :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르기를

難矣(난의) : "어렵습니다."고 했다.

 

(3)국중 자제를 선발하여 변발에 호복 입혀 청나라 호걸들과 친교를 맺고 서민들에겐 해외무역을 권장하라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此亦難彼亦難(차역난피역난) :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何事可能(하사가능) :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有最易者(유최이자) :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汝能之乎(여능지호) :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李公曰(리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願聞之(원문지) :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夫欲聲大義於天下(부욕성대의어천하) :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이불선교결천하지호걸자)

: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未之有也(미지유야) : 그러한 일이 된 일이 없고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욕벌인지국이불선용첩)

: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未有能成者也(미유능성자야) : 성공한 일이 없는 것이다.

今滿洲遽而主天下(금만주거이주천하) :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自以不親於中國(자이불친어중국) :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而朝鮮率先他國而服(이조선솔선타국이복) :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彼所信也(피소신야) :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如唐元故事(성능청견자제입학유환여당원고사) :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商賈出入不禁(상가출입불금) :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彼必喜其見親而許之(피필희기견친이허지) :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妙選國中之子弟(묘선국중지자제) :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薙髮胡服(치발호복) :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其君子往赴賓擧(기군자왕부빈거) :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其小人遠商江南(기소인원상강남)

: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覘其虛實(첨기허실) :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結其豪傑(결기호걸) :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天下可圖而國恥可雪(천하가도이국치가설) :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若求朱氏而不得率天下諸侯(약구주씨이불득솔천하제후) :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薦人於天(천인어천) :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進可爲大國師(진가위대국사) :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退不失伯舅之國矣(퇴불실백구지국의)

: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李公憮然曰(리공무연왈) : 이공이 무안하여 이르기를

士大夫皆謹守禮法誰肯薙髮胡服乎(사대부개근수례법수긍치발호복호) :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4)이완 대장이 시사삼책 불가를 말하자 허생이 칼로 찌르려하다

 

許生大叱曰(허생대질왈) : 허생은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所謂士大夫(소위사대부) :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是何等也(시하등야) : 무엇이란 말이냐?

產於彛貊之地(산어이맥지지) :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自稱曰士大夫(자칭왈사대부) :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豈非騃乎(기비애호) :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衣袴純素(의고순소) :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是有喪之服(시유상지복) : 그것이야말로 당을 당한 사람의 옷이요

會撮如錐(회촬여추) :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是南蠻之椎結也(시남만지추결야) :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何謂禮法(하위례법) :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樊於期(번오기) : 번오기(樊於期)는

欲報私怨而不惜其頭(욕보사원이불석기두)

: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武靈王(무령왕) : 무령왕(武靈王)은

欲强其國而不恥胡服(욕강기국이불치호복)

: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乃今欲爲大明復讎(내금욕위대명부수) :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而猶惜其一髮(이유석기일발) :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내금장치마격도자쟁궁비석) :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而不變其廣袖(이불변기광수) :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自以爲禮法乎(자이위례법호) :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吾始三言(오시삼언) :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汝無一可得而能者(여무일가득이능자) :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自謂信臣(자위신신) : 그래도 스스로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信臣固如是乎(신신고여시호) :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是可斬也(시가참야) :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하고

左右顧索釖欲刺之(좌우고색도욕자지) :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公大驚而起(공대경이기) : 이 대장은 놀라서 일어나

躍出後牖疾走歸(약출후유질주귀) :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明日復往(명일부왕) :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已空室而去矣(이공실이거의) :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89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위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규수 작품

 

 

 

https://www.youtube.com/watch?v=pRf0ZHwBt2w

 

 

www.youtube.com/watch?v=PK-XfnUl4Ys

 

 

[은자주] 북한 국문학사에는 <호질>은 안 보이고, 대신 <범의 꾸중>이라 번역해 사용합니다. 최상의 권위를 지닌 북곽이 최하위의 지위로 추락했다가 말짱하게 권위를 회복하는 사건 전개로 풍자소설의 완벽한 구조를 구현하였다.

이하의 설정도 엄밀한 의미에서 허구다. 자신이 작자라면 도끼 들고 나설 놈이 한둘이 아닐 테니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베낀 글로 위장했음을 알아야 한다. 현실비판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런 기이한 명문이 하찮은 설화 토막까지 주워모으는 중국에는 없다는 것이 그 증좌다.

7월28일 갑진일 일기에는 심유붕의 점포 바람벽에 붙은 것을 정진사로 하여금 베끼게 했으나 돌아와 검토해 보니 문맥이 맞지 않아 바로잡았다는 데서도 자신의 작품임이 드러난다. 가짜 유자들을 질타하는 것이 글쓴 취지지만 심유붕에게는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사람들에게 한 번씩 읽혀 그들로 하여음 배를 틀어쥐고 넘어지도록 웃게 하되, 먹던 밥티가 벌 날듯 튀고 갓끈이 썩은 새끼처럼 끊어지게 될 것이오."

 

박지원, 호질(虎叱) / 범의 꾸중

 

[1]범 이야기

1)범의 위엄은 허상이다

 

虎睿聖文武

(호예성문무) : 범은 모든 일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착하고 성스러우며, 문채롭고 무인다우며,

慈孝智仁

(자효지인) : 인자롭고 효성이 지극하며, 슬기롭고 어질며,

雄勇壯猛

(웅용장맹) : 기운차고 날래며, 용맹스럽고 사나워

天下無敵

(천하무적) : 천하에 대적할 이가 없다.

然狒胃食虎

(연비위식호) : 그러나 비위는 호랑이를 먹고,

竹牛食虎

(죽우식호) : 죽우도 호랑이를 먹고,

駮食虎

(박식호) : 박도 호랑이를 먹고,

五色獅子食虎於巨木之岫

(오색사자식호어거목지수) : 오색사자도 큰 나무의 꼭대기에서 호랑이를 먹고,

玆白食虎

(자백식호) : 자백도 호랑이를 먹고,

표犬飛食虎豹

(표견비식호표) : 표견도 날아서 호랑이를 잡아 먹고

黃要取虎豹心而食之

(황요취호표심이식지) : 황요 등은 호랑이의 심장을 취하여 먹는다.

猾無骨爲虎豹所呑

(활무골위호표소탄) : 활이란 동물은 뼈가 없는 관계로 호랑이가 꿀떡 삼켜 버리면

內食虎豹之肝

(내식호표지간) : 뱃속에 들어가서 그 간을 먹으며,

酋耳遇虎

(추이우호) : 추이(酋耳)란 짐승은 호랑이를 만나면

則裂而啖之

(칙렬이담지) :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는 습성이 있다.

虎遇猛㺎

(호우맹용) : 그리고 호랑이가 맹용을 만나면

則閉目而不敢視

(칙폐목이불감시) : 무서워서 눈을 감고 보지도 못한다.

人不畏猛㺎而畏虎

(인불외맹㺎이외호) : 그러나 사람은 이와는 반대로 맹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호랑이를 무서워한다.

虎之威其嚴乎

(호지위기엄호) : 어쨌든 호랑이의 위세란 대단한 것인저.

 

[주D-001]비위(狒胃) : 짐승 이름. 비비(狒狒)의 일종.
[주D-002]박(駮) : 말과 같은 짐승인데, 《산해경(山海經)》에, “몸은 희고 꼬리는 검으며 외뿔에 범처럼 생겼으며, 어금니와 발톱을 가졌고,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D-003]오색 사자(五色獅子) : 호회(虎薈)에, “누런 털에 오색이 찬란하고, 꼴은 사자와 같다.” 하였다.
[주D-004]자백(玆白) : 《급총궐서(汲冢闕書)》에, “꼴이 말 같으며, 톱니가 날카로워서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D-005]표견(䶂犬) : 거수국(渠搜國)에 있는 개. 일명은 노견(露犬)인데, 날아서 호표를 먹는다 하였다.
[주D-006]황요(黃要) : 개의 일종. 표범과 비슷하고, 허리 이상은 누르고 이하는 검으며, 작은 놈은 청요(靑要)라 하는데, 요(要)는 요(腰)와 같다.
[주D-007]활(猾) : 범의 입에 들어가도 범이 물지 못한다. 그러면 범의 뱃속에서부터 먹어 나온다.
[주D-008]추이(酋耳) : 범의 일종. 크고 꼬리가 길다 한다.

 

2)범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창귀는 굴각, 이올, 육혼이 되어 범을 돕는다

 

虎食狗則醉

(호식구칙취) : 범이 개를 잡아먹으면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하고

食人則神

(식인칙신) : 범이 사람을 한번 잡아먹으면 신들린 듯하다

虎一食人

(호일식인) : 호랑이가 한번 사람을 먹으면

其倀爲屈閣

(기창위굴각) : 그 창귀가 굴각이 되어

在虎之腋

(재호지액) :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살면서

導虎入廚

(도호입주) : 범을 남의 집 부엌에 인도하여서

舐其鼎耳

(지기정이) : 솥전을 핥으면

主人思饑

(주인사기) : 그 집 주인이 갑자기 시장끼를 느껴

命妻夜炊

(명처야취) : 한밤중이라도 아내더러 밥을 지으라고 하게 된다

虎再食人

(호재식인) : 두번째로 그 사람을 잡아 먹는다.

其倀爲彛兀

(기창위이올) : 그러면 창귀는 이올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輔

(재호지보) : 호랑이의 볼에 붙어 다니며

升高視虞

(승고시우) : 높은 곳에 올라 우를 살핀다.

若谷穽弩

(약곡정노) : 만약 산골짜기에 이르러서 함정이 있으면

先行釋機

(선행석기) : 먼저 가서 위험이 없도록 차귀를 풀어 놓는다.

虎三食人

(호삼식인) : 호랑이가 세번째로 사람을 잡아 먹으면

其倀爲鬻渾

(기창위죽혼) : 그 창귀는 육혼이란 귀신이 되어서

在虎之頤(재호지이) : 호랑이 턱에 붙어서

多贊其所識朋友之名

(다찬기소식붕우지명) : 그가 평소에 잘 알던 친구의 이름을 불러댄다.

 

3)창귀들이 추천한 저녁 메뉴

 

(1)상투 튼 선비

 

虎詔倀曰

(호조창왈) : 어느 날 범이 창귀를 불러 놓고 하는 말이,

日之將夕

(일지장석) : "오늘도 곧 날이 저무는데

于何取食

(우하취식) : 어디 가서 먹을 것을 구한단 말이냐." 하니

屈閣曰(굴각왈) : 굴각이 대답하기를,

我昔占之

(아석점지) : "제가 전에 점쳐 보았더니

匪角匪羽

(비각비우) : 뿔을 가진 짐승도 아니고 날짐승도 아닌

黔首之物

(검수지물) : 검은 머리를 가진 것이

雪中有跡

(설중유적) : 눈 위에 발자국이

彳亍踈武

(척촉소무) : 비틀비틀 성긴 걸음,

瞻尾在腦

(첨미재뇌) : 뒤통수에 꼬리가 붙어

莫掩其尻

(막엄기고) : 꽁무니를 감추지 못하는 그런 놈입니다." 하니

 

[주D-009]뿔……놈입니다 : 사람을 가리킨다.

 

(2)의원

彛兀曰

(이올왈) : 다음에 이올이 말하기를,

東門有食

(동문유식) : "동문에 먹을 것이 하나 있는데,

其名曰醫

(기명왈의) : 그 놈의 이름은 의원(醫員)이라고 합니다.

口含百草

(구함백초) : 의원(醫員)은 약초를 다루고 먹으니

肌肉馨香

(기육형향) : 그 고기도 별미(別味)인 줄로 아옵니다.

 

(3)무당

西門有食

(서문유식) : 그리고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其名曰巫

(기명왈무) : 그것은 무당입니다.

求媚百神

(구미백신) : 그 계집은 천지 신명께 온갖 미태(媚態)를 부리고

日沐齊潔

(일목제결) : 매일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하여

請爲擇肉於此二者

(청위택육어차이자) : 깨끗하고 맛있는 계집이오니 이 둘 중에서 골라서 잡수시길 바라옵니다." 라고 추천했다.

 

(4)범이 화를 내다

虎奮髯作色曰

(호분염작색왈) : 범이 화를 내며 하는 말이,

醫者疑也

(의자의야) : "의(醫)란 의(疑)인데

以其所疑而試諸人

(이기소의이시제인) : 저 자신도 의심스러운 것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시험하여,

歲所殺常數萬

(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죽이는 것이 항상 몇 만이 넘는다.

巫者誣也

(무자무야) : '무(巫)란 무(誣)인데

誣神以惑民(무신이혹민) : 결국 무당이란 귀신을 속이고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니

歲所殺常數萬

(세소살상수만) : 해마다 목숨 잃는 것이 수만이나 된다

衆怒入骨

(중노입골) : 그래서 여러 사람의 노여움은 그들의 뼈 속에까지 스며들어

化爲金蚕

(화위금잠) : 금잠이란 벌레가 되어서

毒不可食

(독불가식) : 독기가 있어 먹을 수 없다."

 

[주D-010]금잠(金蠶) : 《박물지(博物志)》에, “남방 사람이 금잠을 기르는데, 촉금(蜀錦)을 먹이고, 그 똥을 음식 속에 넣으면 독이 있다.” 하였다.

 

(5)석덕지유를 추천했으나 범은 역시 못마땅해하다

鬻渾曰

(죽혼왈) : 이에 육혼이 또 말한다.

有肉在林

(유육재림) : "어떤 고기가 저 숲속에 있는데

仁肝義膽

(인간의담) : 인자한 염통과 의기로운 쓸개며

抱忠懷潔

(포충회결) : 충성스런 마음을 지니고 순결한 지조를 품었으며,

戴樂履禮

(대악리례) : 악은 머리 위에 이고 예는 신처럼 신고 다닌답니다.

口誦百家之言

(구송백가지언) : 뿐만 아니라 그는 입으로 제자(諸子)백가(百家)의 말들을 외며,

心通萬物之理

(심통만물지리) : 마음속으로는 만물의 이치를 통했으니

名曰碩德之儒

(명왈석덕지유) : 그의 이름은 석덕지유라 하옵니다.

背盎軆胖

(배앙체반) : 등살이 오붓하고 몸집이 기름져서

五味俱存

(오미구존) : 오미(五味)를 갖추고 있답니다." 하였다.

虎軒眉垂涎

(호헌미수연) : 범이 그제야 눈썹을 치켜세우고 침을 내리 흘리며

仰天而笑曰

(앙천이소왈) : 하늘을 쳐다보고 씽긋 웃으면서 말한다.

朕聞如何

(짐문여하) : "짐(朕)이 이를 좀더 상세히 듣고자 하니 자세히 말하라." 했다.

倀交薦虎曰

(창교천호왈) : 그러자 창귀들이 서로 범에게 추천하기를,

一陰一陽之謂道

(일음일양지위도) : "일 음· 일 양을 도(道)라 하옵는데,

儒貫之

(유관지) : 저 유가 이를 꿰뚫으며

五行相生

(오행상생) : 오행(五行)이 서로 낳고

六氣相宣

(륙기상선) : 육기(六氣)가 서로 이끌어 주는데,

[주D-011]육기(六氣) : 음(陰)ㆍ양(陽)ㆍ풍(風)ㆍ우(雨)ㆍ회(晦)ㆍ명(明).

 

儒導之

(유도지) : 저 유가 이를 조화시킨다고 합니다.

食之美者無大於此

(식지미자무대어차) : 그러니 먹어서 맛이 있는 것이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리라."

虎愀然變色易容而不悅曰

(호초연변색역용이불열왈) : 범이 이 말을 듣고 문득 추연히 낯빛을 붉히며 기쁘지 않은 어조로 말한다.

陰陽者

(음양자) : "아니야, 저 음·양이란 것은

一氣之消息也而兩之

(일기지소식야이량지) : 한 기운의 생성과 소멸에 불과하다거늘 그들이 두 가지를 겸했으니

其肉雜也

(기육잡야) :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五行定位

(오행정위) : 오행이 각기 제 자리에 있어서

未始相生

(미시상생) : 애당초 서로 낳는 것은 아니거늘

乃今强爲子母

(내금강위자모) : 이제 그들이 억지로 자·모로 갈라서

分配醎酸

(분배함산) : 짜고 신맛을 분배시켰으니

其味未純也

(기미미순야) : 그 맛이 순하지 못할 것이며,

六氣自行

(륙기자행) : 육기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어서

不待宣導

(불대선도) : 남이 이끌어줌을 기다릴 것이 없거늘

乃今妄稱財相

(내금망칭재상) : 이제 그들이 망녕되어 재성·보상이라 일컬어서

[주D-012]재성(財成)ㆍ보상(輔相) : 《역경(易經)》에, “천지의 도를 마련해 이룩하며, 천지의 의(宜)를 도와 준다.” 하였다.

 

私顯己功

(사현기공) : 사사로이 자기 공을 세우려 하니,

其爲食也

(기위식야) : 그것을 먹는다면

無其硬强滯逆而不順化乎

(무기경강체역이불순화호) : 어찌 딱딱하여 가슴에 체하거나 목구멍에 구역질이 나서 순하게 소화가 되지 못할 것이 아니냐."고 하였다.

 

[2]북곽선생과 동리자의 러브스토리

 

1)북곽선생

鄭之邑

(정지읍) : 정나라 어느 고을에

有不屑宦之士曰

(유불설환지사왈) :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北郭先生

북곽선생) : '북곽 선생(北郭先生)'이었다.

行年四十

(행년사십) : 그는 나이 마흔에

手自校書者萬卷

(수자교서자만권) : 손수 교정(校訂)해 낸 책이 만 권이었고,

敷衍九經之義

(부연구경지의) :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주D-013]구경(九經) : 《역경(易經)》ㆍ《서경(書經)》ㆍ《시경(詩經)》ㆍ《춘추좌전(春秋左傳)》ㆍ《예기(禮記)》ㆍ《주례(周禮)》ㆍ《효경(孝經)》ㆍ《논어(論語)》ㆍ《맹자(孟子)》.

 

更著書一萬五千卷

(경저서일만오천권) :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 권이었다.

天子嘉其義

(천자가기의) :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名

(제후모기명) :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2)동리자

邑之東

(읍지동) : 그 고장 동쪽에는

有美而早寡者

(유미이조과자) : 미모의 과부가 있었는데,

曰東里子

(왈동리자) : 동리자(東里子)라는고 불렀다

天子嘉其節

(천자가기절) :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諸侯慕其賢

(제후모기현) :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環其邑數里而封之曰

(환기읍수리이봉지왈) :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東里寡婦之閭'동리과부지려'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東里子善守寡

(동리자선수과) :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然有子五人

(연유자오인) :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各有其姓

(각유기성) : 각기 성이 달랐다.

 

3)五子의 정탐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어느 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이르기를,

水北鷄鳴

(수북계명) :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水南明星

(수남명성) :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室中有聲

(실중유성) :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는

何其甚似北郭先生也

(하기심사북곽선생야) : 어찌도 그리 북곽 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하고

兄弟五人

(형제오인) : 다섯 놈이

迭窺戶隙

(질규호극) :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4)동리자의 구애와 북곽의 반응

東里子請於北郭先生曰

(동리자청어북곽선생왈) : 동리자가 북곽 선생에게 이르기를

久慕先生之德

(구모선생지덕) :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는데,

今夜願聞先生讀書之聲

(금야원문선생독서지성) :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하고 간청하매,

北郭先生(북곽선생) : 북곽 선생은

整襟危坐而爲詩曰

(정금위좌이위시왈) : 옷깃을 바로 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었다.

䲶鴦在屛

(䲶앙재병) :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耿耿流螢

(경경류형) : 반딧불 흘러 잠 못 이룬다

維鬵維錡

(유심유기) :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云誰之型

(운수지형) :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한다.

興也

(흥야):흥야라 (興-연상법)

 

[주D-014]가마솥과……만들었나 : 발 없는 가마솥과 세발솥은 그 모형이 다 다르다. 이로써 성 다른 다섯 아들에게 비하였다. 대체 다섯 아이들이 성도 다르고 얼굴도 같지 않으니, 이는 어떤 잡놈들과 관계해서 이런 것들을 낳았다는 의미.
[주D-015]흥이라[興也] : 육의(六義)의 하나. 먼저 어떤 다른 물건을 읊어서 그 목적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 일으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원앙새를 먼저 이끌어서 남녀의 사건을 전개하는 것이다.육의는 [風雅頌/比賦興]

 

5)五子의 공격에 추락하는 북곽의 권위

ㅡ도망치다 들판의 똥통에 빠지다

 

五子相謂曰

(오자상위왈) : 다섯 놈이 서로 소곤대기를,

禮不入寡婦之門

(례불입과부지문) : "예의 상으로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 없다

北郭先生賢者也

(북곽선생현자야) : 북곽 선생은 현자이니까

吾聞鄭之城門壞而狐穴焉

(오문정지성문괴이호혈언) :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져서 여우 구멍이 생겼대.

吾聞狐老千年

(오문호로천년) : 여우란 놈은 천 년을 묵으면

能幻而像人

(능환이상인) :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단다.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是其像北郭先生乎

(시기상북곽선생호) : 저건 바로 북곽 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하고

相與謀曰

(상여모왈) : 함께 의논했다.

吾聞得狐之冠者

(오문득호지관자) : "들으니 여우의 갓을 얻으면

家致千金之富

(가치천금지부) :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得狐之履者

(득호지리자) : 여우의 신발을 얻으면

能匿影於白日

(능닉영어백일) :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得狐之尾者

(득호지미자) :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주D-016]여우의 꼬리 : 꼬리라 하였지마는, 사실은 샅을 일컬었다.

 

善媚而人悅之

(선미이인열지) :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더라.

何不殺是狐而分之

(하불살시호이분지) : 어찌 저 놈의 여우를 때려잡아서 나눠 갖지 않으랴."

於是五子共圍而擊之

(어시오자공위이격지) :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 갔다.

 

北郭先生大驚遁逃

(북곽선생대경둔도) : 북곽 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恐人之識己也

(공인지식기야) :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以股加頸

(이고가경) : 두 다리 사이에 목을 들이박고

鬼舞鬼笑

(귀무귀소) :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出門而跑

(출문이포) :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乃陷野窖

(내함야교) :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穢滿其中

(예만기중) :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6)들판의 똥통에서 기어나오던 북곽이 범과 맞딱뜨리다

-북곽 범을 만나 아첨하다

 

攀援出首而望

(반원출수이망) : 간신히 기어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有虎當徑

(유호당경) :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었다.

虎顰蹙嘔哇

(호빈축구왜) : 범은 북곽 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掩鼻左首而噫曰(엄비좌수이희왈) : 코를 싸쥐고 머리를 왼쪽으로 돌리고 이르기를,

儒句臭矣

(유구취의) : "유자여! 더럽다."

北郭先生頓首匍匐而前

(북곽선생돈수포복이전) :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 가서

三拜以跪

삼배이궤) :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仰首而言曰

(앙수이언왈) : 머리를 쳐들고 우러러 아뢴다.

虎之德其至矣乎

(호지덕기지의호) :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大人效其變

(대인효기변) :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帝王學其步

(제왕학기보) : 제왕(帝王)은 그 걸음을 배우며,

人子法其孝

(인자법기효) :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將帥取其威

(장수취기위) :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名並神龍

(명병신룡) :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龍)의 짝이 되는지라,

一風一雲

(일풍일운) :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니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주D-017]대인(大人)은……본받고 : 《역경(易經)》에 나오는 구절.
[주D-018]제왕(帝王)은……배우며 : 《송사(宋史)》 태조기(太祖紀)에 나오는 말.
[주D-019]남의……본받고 : 《서경(書經)》 채침(蔡沈)의 주(註)에 나오는 말.
[주D-020]장수는……취하며 : 무관직에는 범호(虎) 자를 많이들 쓴다. 예를 들면 촉한(蜀漢) 때의 오호대장(五虎大將)과 같은 것.
[주D-021]신룡(神龍)과……일으키시니 : 《역경》에 나오는 말.

 

[3]범의 꾸중


1)유(儒)는 유(諛)라

 

虎叱曰

(호질왈) : 범은 북곽 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毋近前

(무근전) :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曩也吾聞之

(낭야오문지) : 접때 내가 들으니

儒者諛也

(유자유야) :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果然

(과연) : 과연 그렇구나.

汝平居集天下之惡名

(여평거집천하지악명) :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을

妄加諸我

(망가제아) : 망령되이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今也急而面諛

(금야급이면유) :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將誰信之耶

(장수신지야) : 장차 누가 이를 믿겠느냐?

 

2)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다

 

夫天下之理一也

(부천하지리일야) : 천하의 이치는 하나이다.

虎誠惡也

(호성악야) :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人性亦惡也

(인성역악야) :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人性善則虎之性亦善也

(인성선칙호지성역선야) :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汝千語萬言

(여천어만언) : 너희들의 떠드는 천 소리 만 소리는

不離五常

(불리오상) : 오상륜(五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戒之勸之

(계지권지) :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恒在四綱

(항재사강) : 항상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주D-022]오상(五常) : 부의(父義)ㆍ모자(母慈)ㆍ형우(兄友)ㆍ제공(弟恭)ㆍ자효(子孝).
[주D-023]사강(四綱) :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

 

然都邑之間

(연도읍지간) : 그런데 도회지에

無鼻無趾

(무비무지) :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文面而行者

(문면이행자) : 얼굴에다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皆不遜五品之人也

(개불손오품지인야) :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然而徽墨斧鉅

(연이휘묵부거) :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日不暇給

(일불가급) :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莫能止其惡焉

(막능지기악언) :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而虎之家自無是刑

(이호지가자무시형) :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由是觀之

(유시관지) : 이로 보면

虎之性不亦賢於人乎

(호지성불역현어인호) :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3)범의 도리는 광명 정대(光明正大)하다

虎不食草木

(호불식초목) :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不食虫魚

(불식충어) :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고,

不嗜麴蘖悖亂之物

(불기국얼패란지물) :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不忍字伏細瑣之物

(불인자복세쇄지물) : 순종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먹지 않는다.

入山獵麕鹿

(입산렵균록) : 산에 들어가면 노루나 사슴 따위를 사냥하고,

在野畋馬牛

(재야전마우) : 들로 나가면 말이나 소를 잡아먹되

未甞爲口腹之累飮食之訟

(미상위구복지루음식지송) : 먹기 위해 비굴해진다거나 음식 따위로 다투는 일이 없다.

虎之道

(호지도) : 범의 도리가

豈不光明正大矣乎

(기불광명정대의호) : 어찌 광명 정대(光明正大)하지 않은가.

 

4)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너희가 나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

虎之食麕鹿

(호지식균록) :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먹을 때는

而汝不疾虎

(이여불질호) :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虎之食馬牛

호지식마우) :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而人謂之讐焉

(이인위지수언) : 사람들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豈非麕鹿之無恩於人

(기비균록지무은어인) : 어찌 노루나 사슴은 사람들에게 은공이 없고

而馬牛之有功於汝乎

(이마우지유공어여호) : 소나 말은 유공(有功)하기 때문이 아니냐?

然而不有其乘服之勞戀效之誠

(연이불유기승복지로련효지성) : 그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 주고 일해 주는 공로와 따르고 충성하는 정성을 갖지 않고

日充庖廚

(일충포주) : 날마다 푸줏간을 채워

角鬣不遺

(각렵불유) : 뿔과 갈기도 남기지 않고,

而乃復侵我之麕鹿

(이내부침아지균록) : 다시 우리의 노루와 사슴을 침노하여

使我乏食於山

(사아핍식어산) : 우리들로 하여금 산에도 들에도

缺餉於野

(결향어야) : 먹을 것이 없게 만든단 말이냐?

使天而平其政

(사천이평기정) : 하늘이 정사를 공평하게 한다면

汝在所食乎所捨乎

(여재소식호소사호) : 너희는 나의 먹이가 되어야 하겠느냐, 그렇지 말아야 할 것이겠느냐?

 

5)잔인하고 박행함이 인간보다 더한 것은 없다

夫非其有而取之

(부비기유이취지) : 대체 제 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謂之盜

(위지도) : 도(盜)라 하고,

殘生而害物者

(잔생이해물자) :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謂之賊

(위지적) : 적(賊)이라 하나니,

汝之所以日夜遑遑

(여지소이일야황황) :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揚臂努目

(양비노목) :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挐攫而不恥

(나확이불치) : 노략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呼錢爲兄

(호전위형) :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주D-024]돈을……부르고 : 옛날 돈이 구멍이 났으므로 공방형(孔方兄)이라 하였고, 또는 돈을 가형(家兄)이라 한 이도 없지 않았다. 진(晉) 나라 노포(魯褒)의 〈전신론(錢神論)〉에 나오는 말들.

 

求將殺妻

(구장살처) :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다면

[주D-025]장수되기……일 : 전국 때 명장 오기(吳起)의 고사.

 

則不可復論於倫常之道矣

(즉불가부론어륜상지도의) : 다시 윤리 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乃復攘食於蝗

(내부양식어황) :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奪衣於蚕

(탈의어천) :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禦蜂而剽甘

(어봉이표감) : 벌을 막고 꿀을 따며,

甚者

(심자) : 심한 놈은

醢蟻之子

(해의지자) : 개미 새끼를 젖담아서

以羞其祖考

(이수기조고) : 조상에게 제수로 진설하니
[주D-026]개미……제사하니 : 《예기》 내칙편(內則篇)에 나오는 일.

 

其殘忍薄行

(기잔인박행) : 잔인하고 박행함이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무엇이 너희보다 더 하겠느냐?

 

6)인간은 천하의 도적이다

汝談理論性

(여담리론성) :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動輒稱天

(동첩칭천) :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自天所命而視之

(자천소명이시지) :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則虎與人

(즉호여인) : 범이나 사람이나

乃物之一也

(내물지일야) : 다같이 만물 중의 하나이다.

自天地生物之仁而論之

(자천지생물지인이론지) :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則虎與蝗蚕蜂蟻與人並畜

(즉호여황천봉의여인병축) :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而不可相悖也

(이불가상패야) :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自其善惡而辨之

(자기선악이변지) :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則公行剽刦於蠭蟻之室者

(즉공행표겁어蠭의지실자) :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獨不爲天地之巨盜乎

(독불위천지지거도호) :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肆然攘竊於蝗蚕之資者

(사연양절어황천지자자) :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獨不爲仁義之大賊乎

(독불위인의지대적호) :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7)동류끼리 잡아먹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虎未甞食豹者

(호미상식표자) : 범이 일찍이 표범을 잡아먹지 않는 것은

誠爲不忍於其類也

(성위불인어기류야) :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然而計虎之食麕鹿

(연이계호지식균록) :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麕鹿之多也

(불약인지식균록지다야) :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計虎之食馬牛

(계호지식마우) : 범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

(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 사람이 말과 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다.

計虎之食人

(계호지식인) :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不若人之相食之多也

(불약인지상식지다야) : 사람이 서로를 잡아 먹는 것만큼 많지 않다.

去年關中大旱

(거년관중대한) :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往歲山東大水

(왕세산동대수) :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民之相食者數萬

(민지상식자수만) :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雖然

(수연) : 비록 그러하나

其相食之多

(기상식지다) :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又何如春秋之世也

(우하여춘추지세야) : 춘추(春秋) 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春秋之世

(춘추지세) : 춘추 시대에

樹德之兵十七

(수덕지병십칠) :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報仇之兵十三

(보구지병십삼) :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流血千里

(류혈천리) : 흘린 피가 천 리에 물들었고,

伏屍百萬

(복시백만) : 거꾸러져 죽은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8)범의 예성(睿聖)과 무용(武勇) & 인의(仁義)

而虎之家水旱不識

(이호지가수한불식) :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故無怨乎天

(고무원호천) :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讐德兩忘

(수덕량망) :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故無忤於物

(고무오어물) :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知命而處順

(지명이처순) :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故不惑於巫醫之姦

(고불혹어무의지간) : 무(巫)와 의(醫)의 간사에 속지 않고,

踐形而盡性

(천형이진성) :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故不疚乎世俗之利

(고불구호세속지리) :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此虎之所以睿聖也

(차호지소이예성야) :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窺其一班

(규기일반) :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足以示文於天下也

(족이시문어천하야) :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不藉尺寸之兵

(불자척촌지병) :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리지 않고

而獨任爪牙之利

(이독임조아지리) :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所以耀武於天下也

(소이요무어천하야) :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彛卣蜼尊

(이유유존) : 종이(宗彛)와 유준(蜼尊)은

所以廣孝於天下也

(소이광효어천하야) :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一日一擧而烏鳶螻螘

(일일일거이오연루의) :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청마구리․개미 따위에게까지

共分其餕

(공분기준) : 대궁을 함께 나누어 주니

仁不可勝用也(인불가승용야) :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讒人不食

(참인불식) :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廢疾者不食

폐질자불식) :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衰服者不食

(쇠복자불식) :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주D-027]고자질하는……않으니 : 이 세 가지를 먹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나라 재래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義不可勝用也

(의불가승용야) :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9)인간의 잔학(殘虐)

ㅡ그물, 창, 화포, 붓

不仁哉

(불인재) :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汝之爲食也

(여지위식야) : 너희들의 먹이를 얻는 것이여!

機穽之不足

(기정지불족) :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而爲罿也罞也罛也罾也罦也罭也

(이위 동야 모야 고야 증야 부야 역야)

: 저 새 그물과 작은 노루 그물[網] , 물고기 그물과 큰 물고기 그물, 수레 그물과 삼태 그물 따위들을 만들었으니,

注]罞(모):고라니그믈. 罛(고):물고기그물. 罾(증):어망과 통발. 罦(부):덮치기. 罭(역):어망.

始結網罟者

(시결망고자) : 처음 그것을 만들어 낸 놈이야말로

裒然首禍於天下矣

(부연수화어천하의) :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有鈹者 戣者 殳者 斨者 叴者 矟者 鍜者 鈼者者

(유피자 규자 수자 장자 구자 삭자 하자 작자자)

: 게다가 큰바늘과 쥘창, 날 없는 창과 도끼, 세모창과 한길 여덟 자 창, 뾰죽 창과 작은 칼, 긴 창까지 만들었지.

注] 鈹(피):종기. 째는 데 쓰이는 양날이 있는 파종침. 창. 戣(규):양지창. 殳(수):창, 모둥이. 斨(장):도끼. 厹(구):세모창. 矟(삭):삼지창. 鍜(하):목투구. 鈼(작):釜也, 鉹(창칼치)也. 礮(포):돌쇠뇌. 逞(령):굳세다, 쾌하다, 즐겁다.

 

有礮發焉

(유포발언) :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聲隤華嶽

(성퇴화악) :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火洩陰陽

(화설음양) : 천지에 불꽃을 쏟아

暴於震霆

(폭어진정) :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是猶不足以逞其虐焉

(시유불족이령기학언) :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則乃吮柔毫

(즉내연유호) :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合膠爲鋒

(합교위봉) : 아교에 붙여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 냈으니,

體如棗心

(체여조심) : 그 몸은 대추씨 같고

長不盈寸

(장불영촌) : 그 길이는 한 치도 못 되는 것이다.

淬以烏賊之沫

(쉬이오적지말) :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縱橫擊刺

(종횡격자) : 종횡으로 치고 찔러 대는데,

曲者如矛

(곡자여모) :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銛者如刀

(섬자여도) :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銳者如釖

(예자여도) : 예리한 것은 낫같고,

歧者如戟

(기자여극) : 두 갈래 길이 진 것은 가지창 같고,

直者如矢

(직자여시) : 곧은 것은 화살 같고,

彀者如弓

(구자여궁) :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此兵一動

(차병일동) :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百鬼夜哭

(백귀야곡) :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주D-028]보드라운……지경이라니 : 붓으로 문자를 써서 온갖 못된 짓을 다한다는 비유. 옛날 창힐(倉頡)이 한자(漢子)를 처음 짓자, 귀신이 밤에 울었다 하였다.

 

其相食之酷

(기상식지혹) :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孰甚於汝乎

(숙심어여호) :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5]북곽선생의 권위회복

 

1)북곽은 범의 구중을 듣고도 경전을 들먹이며 범의 풍교를 배우겠노라 아첨한다

北郭先生離席俯伏

(북곽선생리석부복) : 북곽 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俯伏)해서

逡巡再拜

(준순재배) : 물러나 거듭 절하며

頓首頓首曰

(돈수돈수왈) : 머리를 새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傳有之

(전유지) : “맹자(孟子) 이루편(離婁篇)에 일렀으되

雖有惡人

(수유악인) :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齋戒沐浴

(재계목욕) : 목욕 재계(齋戒)하면

則可以事上帝

(즉가이사상제) :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下土賤臣

(하토천신) : 하토의 천한 신하는

敢在下風

(감재하풍) : 감히 아래 처지에 서옵니다.”

 

屛息潛聽

(병식잠청) : 북곽 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久無所命

(구무소명) : 오랫동안 아무 명령이 없기에

誠惶誠恐

(성황성공) : 참으로 황공해서

拜手稽首

(배수계수) : 절하고 조아리다가

仰而視之

(앙이시지) :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東方明矣

(동방명의) : 이미 먼동이 터 훤히 밝았는데

虎則已去

(호칙이거) : 범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2)들에 나온 농부 만나 권위를 온전히 회복하다

 

農夫有朝菑者

(농부유조치자) : 그 때 새벽 일찍 밭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問先生何早敬於野

(문선생하조경어야) :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北郭先生曰

(북곽선생왈) : 북곽 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吾聞之

(오문지) : “내가 들으니 시경시에

謂天蓋高

(위천개고) : ‘하늘이 높다 해도

不敢不局

(불감불국) :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謂地蓋厚

(위지개후) : 땅이 두텁다 해도

不敢不蹐

(불감불척) :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90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주]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천하명문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한문으로 읽기엔 껄꺼럽고, 번역으로 읽어도 호흡의 행간 처리가 어려워 난해하긴 마찬가지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자신의 홈피에 <연암읽기>를 올려 세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원문과 번역문을 대역으로 읽으면 그 진수가 잘 드러날 것 같아 한문공부 삼아 한 번 시도해 본다.

이 글은 7월8일 일기에 정민 교수가 제목을 붙이고 감상을 적은 글이다.

http://jungmin.hanyang.ac.kr/

요동벌의 한 울음

好哭場論

初八日甲申晴.

초팔일 갑신 맑음.

與正使同轎, 渡三流河, 朝飯於冷井.

정사正使와 가마를 같이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行十餘里, 轉出一派山脚, 泰卜忽鞠躬, 趨過馬首, 伏地高聲曰: “白塔現身謁矣.”

십여리를 가서 한 줄기 산 자락을 돌아 나오자, 태복泰卜이가 갑자기 몸을 굽히고 종종걸음으로 말 머리를 지나더니 땅에 엎디어 큰 소리로 말한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오.”

泰卜者鄭進士馬頭也.

태복이는 정진사鄭進士의 말구종꾼이다.

山脚猶遮, 不見白塔.

산 자락이 아직도 가리고 있어 백탑은 보이지 않았다.

趣鞭行不數十步, 纔脫山脚, 眼光勒勒, 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

채찍질로 서둘러 수십 보도 못가서 겨우 산 자락을 벗어나자, 눈빛이 아슴아슴해지면서 갑자기 한 무리의 검은 공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 只得頂天踏地而行矣.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인간이란 것이 본시 아무데도 기대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다닐 수 있음을 알았다.

立馬四顧, 不覺擧手加額曰: “好哭場! 可以哭矣.”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얹고서 말하였다.

“좋은 울음터로다. 울만 하구나.”

鄭進士曰: “遇此天地間大眼界, 忽復思哭, 何也?”

정진사가 말했다.

“이런 하늘과 땅 사이의 큰 안계眼界를 만나서 갑자기 다시금 울기를 생각함은 어찌된 것이요?”

余曰: “唯唯否否.

내가 말했다.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오.

千古英雄善泣, 美人多淚. 然不過數行無聲眼水, 轉落襟前.

천고에 영웅은 울기를 잘하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하나,

몇 줄 소리 없는 눈물이 옷 소매로 굴러 떨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네.

未聞聲滿天地, 若出金石.

소리가 천지에 가득 차 마치 금석金石에서 나오는 것 같은 울음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네.

人但知七情之中, 惟哀發哭, 不知七情都可以哭.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퍼야 울음이 나오는 줄 알 뿐

칠정이 모두 울게 할 수 있는 줄은 모르거든.

喜極則可以哭矣, 怒極則可以哭矣,

기쁨이 지극하면 울 수가 있고, 분노가 사무쳐도 울 수가 있네.

樂極則可以哭矣, 愛極則可以哭矣,

즐거움이 넘쳐도 울 수가 있고, 사랑함이 지극해도 울 수가 있지.

惡極則可以哭矣, 欲極則可以哭矣.

미워함이 극에 달해도 울 수가 있고, 욕심이 가득해도 울 수가 있다네.

宣暢壹鬱, 莫疾於聲, 哭在天地, 可比雷霆.

가슴 속에 답답한 것을 풀어버림은 소리보다 더 빠른 것이 없거니와,

울음은 천지에 있어서 우레와 천둥에 견줄만 하다 하겠소.

至情所發, 發能中理, 與笑何異?

지극한 정이 펴는 바인지라

펴면 능히 이치에 맞게 되니, 웃음과 더불어 무엇이 다르리오?

人生情會, 未嘗經此極至之處, 而巧排七情, 配哀以哭.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일찍이 이러한 지극한 경지는 겪어보지 못하고서,

교묘히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안배하였다네.

由是死喪之際, 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

그래서 죽어 초상을 치를 때나

비로소 억지로 목청을 쥐어짜 ‘아이고’ 등의 말을 부르짖곤 하지.

而眞個七情所感, 至聲眞音, 按住忍抑, 蘊鬱於天地之間, 而莫之敢宣也.

그러나 진정으로 칠정이 느끼는 바 지극하고 참된 소리는 참고 눌러 하늘과 땅 사이에 쌓이고 막혀서 감히 펼치지 못하게 되네.

彼賈生者, 未得其場, 忍住不耐, 忽向宣室一聲長號, 安得無致人驚怪哉?

저 가생賈生이란 자는 그 울 곳을 얻지 못해 참고 참다 견디지 못해

갑자기 선실宣室을 향하여 큰 소리로 길게 외치니, 어찌 사람들이 놀라 괴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었겠소.”

鄭曰: “今此哭場, 如彼其廣, 吾亦當從君一慟, 未知所哭. 求之七情所感, 何居?”

정진사가 말했다.

“이제 이 울음터가 넓기가 저와 같으니, 나 또한 마땅히 그대를 좇아 한 번 크게 울려 하나, 우는 까닭을 칠정이 느끼는 바에서 구한다면 어디에 속할지 모르겠구려.”

余曰: “問之赤子. 赤子初生, 所感何情?

내가 말했다.

“갓난아기에게 물어 보시게. 갓난아기가 갓 태어나 느끼는 바가 무슨 정인가를 말이오.

初見日月, 次見父母, 親戚滿前, 莫不歡悅.

처음에는 해와 달을 보고, 그 다음엔 부모를 보며,

친척들이 앞에 가득하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오.

如此喜樂, 至老無雙, 理無哀怒, 情應樂笑, 乃反無限啼叫, 忿恨弸中.

이같이 기쁘고 즐거운 일은 늙도록 다시는 없을 터이니 슬퍼하거나 성낼 까닭은 없고 그 정은 마땅히 즐거워 웃어야 할 터인데도 도리어 무한히 울부짖는 것은 분노와 한스러움이 가슴 속에 가득차 있음이다.

將謂人生神聖愚凡, 一例崩殂,

이를 두고 장차 사람이란 거룩하거나 어리석거나 간에 한결같이 죽게 마련이고,

中間尤咎, 患憂百端, 兒悔其生, 先自哭弔.

그 중간에 커서는 남을 허물하며 온갖 근심 속에 살아가는지라

갓난아기가 그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스스로를 조상하여 곡하는 것이라고들 말한단 말이지.

此大非赤子本情.

그러나 이는 갓난아기의 본 마음이 절대로 아닐 것일세.

兒胞居胎處, 蒙冥沌塞, 纏糾逼窄,

一朝迸出寥廓, 展手伸脚, 心意空闊, 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

아이가 태 속에 있을 때는 캄캄하고 막힌데다 에워싸여 답답하다가,

하루 아침에 넓은 곳으로 빠져 나와 손과 발을 주욱 펼 수 있고

마음이 시원스레 환하게 되니 어찌 참된 소리로 정을 다해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있겠소?

故當法嬰兒, 聲無假做.

그런 까닭에 마땅히 어린아이를 본받아야만 소리를 거짓으로 지음이 없을 것일세.

登毗盧絶頂, 望見東海, 可作一場, 行長淵金沙, 可作一場.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는 것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사산金沙山이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今臨遼野, 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 四面都無一點山.

乾端坤倪, 如黏膠線縫, 古雨今雲, 只是蒼蒼, 可作一場.”

이제 요동벌에 임하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까지 일천 이백 리 길에 사방에는 모두 한 점의 산도 없어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아 해묵은 비와 지금 구름이 다만 창창할 뿐이니 한 바탕 울만한 곳이 될 만하오.”

亭午極熱.

한낮은 너무나 더웠다.

趣馬, 歷高麗叢阿彌庄, 分路.

말을 재촉하여 고려총高麗叢과 아미장阿彌庄을 지나 길을 나누었다.

與趙主簿達東及卞君來源鄭進士李傔鶴齡, 入舊遼陽,

其繁華富麗, 十倍鳳城. 別有遼東記.

주부主簿 조달동趙達東 및 변래원卞來源, 정진사鄭進士, 하인 이학령李鶴齡과 더불어 구요동舊遼陽에 들어가니, 그 번화하고 장려함은 봉황성鳳凰城에 열 배나 된다.

별도로 〈요동기遼東記〉가 있다.

이번에 읽으려는 〈호곡장好哭場論〉은 《열하일기》의 한 부분으로, 압록강을 건너 드넓은 요동벌과 상면하는 감격을 적은 글이다. 본래 제목이 없으나 선학先學의 명명命名을 따랐다.

1939년 경성제국대학 대륙문화연구회가 북경과 열하 일대를 답사하고 펴낸 보고서, 《북경北京․열하熱河の사적관견史的管見》에서 결론 대신 이 글을 적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문장이다.

새벽 먼동이 트기 전 출발한 행차는 아침부터 삼류하三流河를 건너 냉정冷井에 이르러서야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십 여 리를 가서 산 기슭을 돌아나오려는데, 중국 길에 익숙한 하인 녀석이 갑자기 종종걸음을 하고 말 앞으로 가더니 머리를 조아리며, “백탑 현신이요!”

하는 것이다. 이제 곧 백탑이 눈 앞에 그 장대한 자태를 드러내 보이리란 뜻이다.

그러나 정작 백탑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진다. 말을 채찍질하는 수고를 많이 할 것도 없이 수십보를 지나자 그만 눈 앞이 아찔해진다. 망망한 시계視界, 눈 끝간데를 모르게 펼쳐진 아득한 벌판, 그리고 지평선. 백리의 넓은 벌도 보기 힘든 조선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광경이다. 그냥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백탑은 그 벌판 저편에 홀로 우뚝 서 있다. 내 눈에는 마치 검은 공이 허공 중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만 보인다.

홍대용洪大容이 자신의 《연기燕記》에서 “하늘과 벌판은 서로 이어져 아마득히 드넓다. 오직 요양遼陽의 백탑만이 우뚝 자욱한 구름 가운데 서 있으니 北行에 으뜸가는 장관”이라고 적은 곳이다.

이덕무도 《입연기入燕記》에서 “큰 벌판은 평평하여 눈 끝 간 데까지 가이 없고, 일행의 인마人馬는 마치 개미 떼가 땅을 기어가는 것만 같았다”고 적고 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아무데도 의지할 곳 없이 그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을 밟고서야 걸어갈 수 있는 너무도 미약한 존재로구나. 통쾌하게 뚫린 시야,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 넓은 요동벌과 상면한 감격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 참으로 훌륭한 울음터로다.” 연암의 제일성은 이렇듯 뚱딴지 같다. 그리고는 예의 도도한 궤변이 이어진다. 울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어린아이가 갓 태어나 내지르는 고고한 울음이 있고, 천고 영웅이 비분강개에 젖어 울부짖는 울음이 있다. 고개를 숙인 미인의 옷섶으로 뚝뚝 눈물만 떨어지는 말없는 울음도 있다. 그러나 마치 쇠나 돌을 두드려 나오는듯한, 천지에 꽉 차서 듣는 이를 압도하는 그런 울음은 아직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울음은 슬픔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기쁨과 분노, 즐거움, 그리고 사랑과 미움과 욕심 때문에도 인간은 운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는 답답한 응어리를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데는 울음만큼 빠른 것이 없다. 그것은 마치 우레와 번개처럼 즉각적이다. 지극한 정리情理에서 나오는 울음은 주체할 수 없어 터져나오는 웃음처럼 거짓이 없다.

그 울음은 그닥 슬프지도 않으면서 짐짓 목청으로만 쥐어짜는 초상집의 곡哭 소리와는 다르다. 가슴으로 느끼는 진정眞情을 견디다 못해 내지르게 되면 그것은 마치 금석金石에서 울려 나오는 듯한 지성진음至聲眞音이 되어 듣는 이를 압도하리라.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젊은 그의 능력을 시기한 신하들의 모함으로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쫓겨나 실의의 나날을 보냈다. 뒤늦게 다시 임금의 부름을 받은 그는 그간 그 낙담의 시간 속에서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말들을 마치 포효하며 울부짖듯 거침 없이 토해내었다. 그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금석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지성진음至聲眞音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으리라.

아, 여보게 정진사! 비좁은 조선 땅에서 숨막히듯 답답하게만 살다가 이 드넓은 요동벌로 통쾌하게 나서려니, 나는 그만 한바탕 목을 놓아 울고만 싶네 그려. 마치 그 옛날 가의賈誼의 그 통곡처럼 나도 내 폐부 깊은 곳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금석이 광광 울리는듯한 그런 울음을 울고 싶네 그려.

정진사는 되묻는다. 자네의 말이 그와 같으니, 나도 자네와 함께 한바탕 시원스런 울음을 터뜨려 보게 싶네. 그러나 나는 아직 모르겠네. 자네의 울음은 그간의 협소한 나를 돌아보는 연민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농조득탈籠鳥得脫의 통쾌함에서 나온 것인가? 기쁨에서인가? 그도 아니면 분노에서이던가?

자네, 저 갓난아이에게 물어 보게. 저가 갓 태어나 고고한 울음을 터뜨릴 때, 그의 심정이 어떠한가를 말일세.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곤 하지. 아이가 갓 태어나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그가 앞으로 지고 가야할 인생의 고통을 생각할 때에 하도 기가 막혀서 우는 것이라고 말일세.

그러나 자네 한번 생각해 보게. 태중에서 손과 발을 마음껏 펴 볼 수도 없고, 광명한 세상을 바라다 볼 수도 없이 답답하게 열 달을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환한 빛줄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손과 발에 더 이상 아무 걸리는 것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갓난아기가 느꼈을 통쾌함을 말일세. 그 통쾌함이 한꺼번에 소리가 되어 터져나온 것이 바로 그 울음일 것이네.

갑갑한 조선 땅에서 나는 지난 몇 십 년을 답답하게 살아왔네. 色目으로 갈리고 당파로 나뉘어 싸움질만 해대는 나라,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도 그저 제 한몸의 보신保身과 영달에만 급급할 뿐인 벼슬아치들, 학문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도리 아닌 출세를 위한 방편으로만 여기는 지식인들, 손발을 마음껏 펴볼 수도 없게 욱죄는 제도와 이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조차 없는 암담한 시계視界, 이런 것들에 둘러싸여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네.

그런데 이제 그 복닥대며 아웅다웅하던 협소한 조선 땅을 벗어나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탁 트인 이 요동벌 앞에 서니, 나는 저 갓난아이의 통쾌한 울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란 말일세.

이제 이곳부터 산해관까지 일천 이백리의 길은 사방에 한 점 산도 없어, 보이느니 지평선 뿐이요, 아득한 옛날의 그 비는 지금도 내리고, 그 구름이 지금도 창창히 떠가고 있지 않는가?

하늘가와 땅 끝은 마치 아교풀로 붙이고 실로 꿰매 놓은 것만 같을 것이란 말일세.

이 광막한 벌판을 지나며 나는 내 존재의 미약함과, 내 안목의 협소함과, 살아온 날들의 부끄러움을 울어볼 참일세. 새로운 문명 세계를 만나는 설레임과 어제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두근거림을 울어볼 참일세. 그 뼈저린 자각을 울어볼 참일세.

《연암집》에는 이 요동벌에서의 도저한 감회를 노래한 시 한수가 실려 있다.

遼野何時盡 一旬不見山

曉星飛馬首 朝日出田間

요동벌 그 언제나 끝이 나려나

열흘이나 산이라곤 뵈이질 않네.

새벽 별 말 머리로 날리더니만

아침 해 밭 사이서 떠올라오네.

제목은 〈요야효행遼野曉行〉이다.

열흘을 가도록 요동벌은 단지 지평선만을 보여줄 뿐이다. 가도 가도 도무지 끝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산 하나 보이지 않는 벌판, 크게 지르는 소리는 메아리만 남기고 지평선 끝으로 사라진다.

말 머리 위론 새벽 별이 떨어지고, 밭두둑 너머로 아침 해가 누리를 비추며 떠오른다. 物象의 모습이 그 햇빛에 하나 둘씩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 대지 위의 내 모습은 너무도 미소微小하구나.

한편 연암은 글의 마지막에서 이 밖에 조선 땅에서 한 바탕 울음을 울만한 곳을 두 군데 소개한다.

하나는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볼 때이고, 다른 하나는 황해도 장연長淵  바닷가 금사산金沙山이 그것이다.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를 바라볼 때의 흥취는 역시 요동벌과 마주 선 것 이상의 감격을 부르기에 충분하겠으되, 장연 금사산의 경우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따로 읽어야 할 한 편의 글이 있다.

梅宕必發狂疾, 君知之乎?

매탕梅宕 이덕무李德懋가 필시 미친 병이 난 듯 한데 그대는 이를 아는가?

其在長淵, 常登金沙山.

그가 황해도 장연長淵에 있을 적에 일찍이 금사산金沙山에 올랐더라네.

大海拍天, 自覺渺小. 莽然生愁, 乃發歎曰:

한 바다가 하늘을 치매, 스스로 너무나 미소微小한 것을 깨닫고는 아마득히 근심에 젖어 탄식하며 말했더라지.

“假令彈丸小島, 饑饉頻年, 風濤黏天, 不通賑貸, 當奈何?

“가령 탄환만한 작은 섬에 기근이 해마다 들고, 바람과 파도가 하늘과 맞닿아 진대賑貸하는 곡식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海寇竊發, 便風擧帆, 逃遁無地, 當奈何?

해구海寇가 몰래 쳐들어 와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도

달아나 숨을 땅이 없을테니 어찌 한다지?

龍鯨鼉蜃, 緣陸而卵, 噉人如蔗, 當奈何?

용과 고래, 악어와 이무기가 뭍을 에워 알을 낳고서 사탕수수처럼 사람을 짓씹어 먹는다면 어찌 하지?

海濤盪溢, 渰覆邨閭, 當奈何?

넘실대는 파도가 마을 집을 덮쳐 버리면 어떻게 하나?

海水遠移, 一朝斷流, 孤根高峙, 嶷然見底, 當奈何?

바닷물이 멀리로 옮겨가 하루 아침에 물길이 끊어져 외로운 뿌리가 우뚝 솟아 아마득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

波齧島根, 潏汨旣久, 土石難支, 隨流而圯, 當奈何?

파도가 섬의 밑둥을 갉아 먹어 오래도록 물에 잠겨 흙과 돌이 견디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其疑慮如此, 不狂而何?

그 의심하고 걱정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미치지 않고 어쩌겠는가?

夜聽其言, 不覺絶倒, 信手錄去.

밤에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포복절도 하고서 붓을 들어 적어 두었더라오.

연암이 처남 이재성李在誠에게 보낸 편지글 〈여중존與仲存〉이다. 이덕무가 장연 바닷가의 모래산인 금사산에 올랐는데, 그 역시 연암이 요동벌을 앞에 두고 그랬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광막한 시계視界에 그만 압도되고 말았다. 그래서 너무도 하잘 것 없는 존재의 나약함을 깨달음은 물론, 아울러 앞 바다에 떠 있는 섬조차도 탄알만하게만 여겨져 공연히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을 걱정하느라 노심초사 했더라는 이야기이다. 연암이 〈호곡장론〉의 말미에서 금사산을 거론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중간에 인용된 이덕무의 글은 〈서해여언西海旅言〉이란 기행문에서 따온 것이다.

전문은 너무 길어 실을 수가 없고, 일부분만 읽어 보기로 한다.

卓立沙頂, 西望大海, 海背穹然, 不見其涘. 龍鼉噴濤, 襯天無縫.

사봉沙峰의 꼭대기에 우뚝 서서 서쪽으로 큰 바다를 바라보니, 바다 뒷편은 아마득하여 그 끝이 보이지 않는데, 용과 악어가 파도를 뿜어 하늘과 맞닿은 곳을 알지 못하겠다.

一庭之中, 限之以籬. 籬頭相望, 互謂之隣.

한 뜨락 가운데다 울타리로 경계를 지어, 울타리 가에서 서로 바라보는 것을 이웃이라 부른다.

今余與二生, 立于此岸, 登萊之人, 立于彼岸, 可相望而語然, 一海盈盈, 莫睹莫聆, 隣人之面, 不相知也.

이제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이편 언덕에 서 있고, 중국 등주登州와 내주萊州의 사람은 저편 언덕에 서 있으니, 서로 바라보아 말을 할 수도 있으되, 하나의 바다가 넘실거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니, 이웃 사람의 얼굴을 서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耳之所不聞, 目之所不見, 足之所不到, 惟心之所馳, 無遠不屆.

귀로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며 발로 이르지 못하는 곳이라 해도, 오직 마음이 내달리는 바는 아무리 멀어도 다다르지 못할 곳이 없다.

此旣知有彼岸, 彼又知有此岸, 海猶一籬耳, 謂之睹且聆焉, 可也.

이편에서는 이미 저편이 있는 줄을 알고, 저편 또한 이편이 있는 줄을 알진대, 바다는 오히려 하나의 울타리일 뿐이니, 보고 또 듣는다고 말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然假令搏扶搖而上九萬里, 此岸彼岸, 一擧目而盡焉, 則一家人耳, 亦何嘗論隔籬之隣哉?

그렇지만 가령 무언가를 붙잡고서 흔들흔들 구만리 상공에 올라가 이편 언덕과 저편 언덕을 한눈에 다 본다면 한 집안 사람일 뿐일 터이니, 또한 어찌 일찍이 울타리로 막혀있는 이웃이라 말하겠는가?

登高望遠, 益覺渺小. 莽然生愁, 不暇自悲, 而悲彼島人,

높이 올라 멀리를 바라보니, 더더욱 내가 잗단 존재임을 깨달아 아마득히 근심이 일어, 스스로를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저 섬에 사는 사람들을 슬퍼하였다.

假令彈丸小地, 饑饉頻年, 風濤黏天, 不通賑貸, 當奈何?

가령 탄환만한 작은 섬에 기근이 해마다 들고, 바람과 파도가 하늘과 맞닿아 진대賑貸하는 곡식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지?

海寇竊發, 便風擧帆, 逃遁無地, 盡被屠戮, 當奈何?

해구海寇가 몰래 쳐들어 와 바람을 타고 돛을 올려도 달아나 숨을 땅이 없어 전부 도륙을 당하게 되면 어찌 한다지?

龍鯨鼉蜃, 緣陸而卵, 惡齒毒尾, 噉人如蔗, 當奈何?

용과 고래, 악어와 이무기가 뭍을 에워 알을 낳고서 사나운 이빨과 독한 꼬리로 사탕수수처럼 사람을 짓씹어 먹는다면 어찌 하지?

海神赫怒, 波濤盪溢, 渰覆村閭, 一滌無遺, 當奈何?

해신海神이 크게 성을 내어 파도가 솟구쳐서 마을 집을 덮쳐 버려 남김없이 쓸어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海水遠移, 一朝斷流, 孤根高峙, 嶷然見底, 當奈何?

바닷물이 멀리로 옮겨가 하루 아침에 물길이 끊어져 외로운 뿌리가 우뚝 솟아 아마득히 바닥을 드러낸다면 어찌 하나?

波嚙島根, 潏汨旣久, 土石難支, 隨流而圯, 當奈何?

파도가 섬의 밑둥을 갉아 먹어 오래도록 물에 잠겨 흙과 돌이 견디지 못하고 물결을 따라 무너져 버리면 어떻게 할까?

客曰: “島人無恙, 而子先危矣.”

객이 말하였다.

“섬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대가 먼저 위태롭게 여기네 그려.”

風之觸矣, 山將移矣, 余迺下立平地, 逍遙而歸.

바람에 부딪치자 산이 장차 옮겨가려 하는지라, 나는 이에 내려와 평지에 서서 소요하다가 돌아왔다.

余東望佛胎長山, 諸環海之山, 而歎曰: “此海中之土也.”

내가 동쪽으로 불태산佛胎山과 장산長山 등 여러 바다에 둘러싸인 산을 바라보다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다 속의 흙일세 그려.”

客曰: “奚爲也?”

객이 말하였다.

“무슨 말인가?”

“子試穿渠, 其土如阜, 天開巨浸, 拓滓成山.”

“자네 시험삼아 도랑을 파보게. 그 흙이 언덕처럼 쌓이겠지. 하늘이 큰 물길을 열면서 찌꺼기를 모은 것이 산이 된 것일세.”

仍與二生, 入追捕之幕, 進一大白, 澆海遊之胸.

그리고는 두 사람과 함께 뒤쫓아온 막사로 들어가 큰 술잔 하나를 내와 바다에서 노닐던 가슴을 축이었다.

금사산은 황해도 장연 땅 장산곶의 백사장을 말하니, 바람이 실어온 금모래가 산을 이룬 곳이다.

바람에 따라 산의 모습은 백변百變의 장관을 연출한다. 툭 터진 시야로 서해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육지의 산들은 바다 속의 흙일 뿐이다. 모래산 위에 올라 가없는 바다를 바라보다 이덕무가 뜬금없이 던지는 말이다. 태청허공太淸虛空에 날아 올라서 본다면, 저 바다란 것도 한 국자의 물에 불과하고, 산이란 것은 개미집이나 한줌 흙더미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이켠 언덕에서 저켠 언덕을 바라보면 바닷물이 막히어 서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알래야 알 수도 없지만, 높은 하늘에서 바라본다면 중국이니 조선이니 하는 울타리는 아무 의미가 없고 기실은 한 집안 사람일 뿐이다. 말 그대로 사해동포四海同胞인 것이다. 그러니 중국이니 조선으로 가르고, 노론老論과 남인南人으로 싸우며, 또 양반과 서얼로 울타리를 세우는 분별은 얼마나 허망한 것이냐.

그런 울타리 없는 세상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오직 마음 속으로만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곳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한층 거나해진 흥취를 못이겨, 숙소로 돌아와서도 그들은 큰 사발에다 술을 듬뿍 따라서 답답했던 가슴을 축였던 것이다.

이덕무는 일찍이 그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眞情之發, 如古鐵活躍池, 春筍怒出土;

진정眞情을 펴냄은 마치 고철古鐵이 못에서 활발히 뛰고, 봄날 죽순이 성난 듯 땅을 내밀고 나오는 것과 같다.

假情之飾, 如墨塗平滑石, 油泛淸徹水.

거짓 정을 꾸미는 것은 먹을 반반하고 매끄러운 돌에 바르고, 기름이 맑은 물에 뜬 것과 같다.

七情之中, 哀尤直發難欺者也.

칠정 가운데서도 슬픔은 더더욱 곧장 발로되어 속이기가 어려운 것이다.

哀之甚至於哭, 則其至誠不可遏.

슬픔이 심하여 곡하기에 이르면 그 지극한 정성을 막을 수가 없다.

是故眞哭骨中透, 假哭毛上浮. 萬事之眞假, 可類推也.

이런 까닭에 진정에서 나오는 울음은 뼛속으로 스며들고, 거짓 울음은 터럭 위로 떠다니게 되니, 온갖 일의 참과 거짓을 이로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살아가는 일은 답답하고 속터지는 일이다. 봄날 죽순이 땅을 밀고 솟아나듯, 내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겉잡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과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진정에서 나와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런 울음은 어디에 있는가? 갓난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터뜨리는 첫 소리 같은 음을 어떻게 울 수 있을까? 나의 시, 나의 노래는 그러한 울음이었던가? 슬프지도 않으면서 짐짓 슬픈체 우는 거짓 소리는 아니었던가? 기름이 물에 뜬 것처럼, 반반한 돌 위에 쓴 먹 글씨처럼 스미지는 못하고 겉돌기만 하는 그런 울음은 아니었던가?

아!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요동의 벌판에 있는가, 금강산 비로봉의 꼭대기에 있는가?

아니면 장연의 바닷가에 있는가? 나도 그런 곳에 서서 큰 소리로 한번 울어 보고 싶구나.

한편 추사 김정희는 〈요야遼野〉란 작품에서 연암의 〈호곡장론〉을 읽은 흥취를 이렇게 노래하였다.

千秋大哭場 戱喩仍妙詮

譬之初生兒 出世而啼先

천추의 커다란 울음터라니

재미난 그 비유 신묘도 해라.

갓 태어난 핏덩이 어린아이가

세상 나와 우는 것에 비유하였네.





박지원 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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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소설

①初期九傳; 放경閣外傳 自序(연암집 권8)

마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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