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초상화는 연암의 손자 박규수 작품

 

양반전兩班傳

초기구전

호질 · 허생 · 초기9전/ 연암소설 요약  (0)

https://kydong77.tistory.com/18319?category=487437

 

호질 · 허생 · 초기9전/ 연암소설 요약

허생후지1 (0) 2008.09.07 옥갑야화 (0) 2008.09.07 호질 김택영 발문 (0) 2008.09.07 호질후지 (0) 2008.09.07 허생전 -박지원 (0) 2008.08.05 허생전 -박지원 [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

kydong77.tistory.com

 

[은자주]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첨가하였다. 주석의 필요성을 느꼈으니 번거로움을 피해왔는데, 민추의 해박한 주석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어구가 맞지 않더라도 바로위의 주석임을 감안하고 보면 된다.앞에서 생략할 요량이었으나 워낙 명문인지라 초기구전묶음에서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하였다. 앞의 선비론인<원사>와 함께 읽어주기 바란다.

 

 

◇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양반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 맞바뀜.

2)수사법: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멀어진 양반론), 열거법(두 문권)

3)허상과 실상의 대비: 제일문권에서는 양반 행동양식의 허위의식을, 제이문권에서는 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를 고발함.

 

1]권위의 상징인 양반의 처지가 땅바닥에 떨어지다

兩班者 士族之尊稱也.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었다.

然家貧 歲食郡糶 積歲至千石.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빌어먹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보니, 환곡(還穀)은 천 석이나 되었다.

觀察使巡行郡邑 閱糶糴 大怒曰,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환곡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何物兩班 乃乏軍興?”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命囚其兩班

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郡守意哀 其兩班貧 無以爲償.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없으니

不忍囚之 亦無可奈何.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그 양반은 밤낮으로 울음을 삼켰지만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其妻罵曰,

그의 아내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生平 子好讀書 無益縣官糴. 咄 兩班. 兩班不直一錢.”

"한평생 당신은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은한 푼짜리도 못 되는 구려.”

 

[주D-001]한 푼짜리도 ……구려 :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2]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사서 양반이 되다.

其里之富人 私相議曰,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兩班雖貧 常尊榮 我雖富 常卑賤 不敢騎馬.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여 감히 말을 탈수도 없다.

見兩班 則跼蹜屛營 匍匐拜庭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한다.

曳鼻膝行 我常如此 其僇辱也.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한다.

今兩班貧 不能償糴 方大窘.

지금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其勢誠不能保其兩班 我且買而有之.”

참으로 그의 가세가 양반 신븐을 보전할 수 없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가지려 한다."

遂踵門 而請償其糴.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兩班大喜許諾.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於是 富人立輸其糴於官.

그래서 부자가 곧 그 환곡을 관가로 수송했다.

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糴狀.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郡守大驚 下扶曰,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足下 何自貶辱若是?”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鬻其兩班 以償糴 里之富人 乃兩班也.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小人安敢冒其舊號 而自尊乎?”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郡守歎曰,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富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음은 의(義)요, 남의 어려움을 돌봐 줌은 인(仁)이요,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함은 지(智)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雖然私自交易 而不立券 訟之端也.

비록 그러하더라도 사사로이 신분을 바꾸고 문권(文券)을 작성하지 않으면 소송의 단서가 된다.

我與汝約 郡人而證之 立券而信之 郡守當自署之.”

내가 그대와 약조하노니,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문권을 작성하여 증거하리라. 군수인 내가 마땅히 서명해야 하네."

 

於是 郡守歸俯 悉召郡中之士族 及農工商賈 悉至于庭.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 兩班立於公兄之下.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세웠다.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주D-004]공형(公兄) :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3]문권 작성


1)제1문권 -양반의 행동규범[허위의식]

乃爲立券曰,

바로 증서를 작성하였다.

“乾隆十年九月日 右明文段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국(厂下屮2)賣兩班 爲償官穀 其直千斛.

*厂下屮2(국):持也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維厥兩班 名謂多端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謂君子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武階列西 文秩敍東 是謂兩班.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양반'이라고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五更常起 點硫燃脂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目視鼻端 會踵支尻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東萊博議 誦如氷瓢.

"동래박의"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忍饑耐寒, 口不說貧叩齒彈腦 細嗽嚥津

*嗽(수):기침.

굶주림과 추위를 인내하며 입에는 가난이라는 말을 담지 않는다.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袖刷毳冠 拂塵生派.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盥無擦拳 潄口無過. *潄(수):양치질하다.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長聲喚婢 緩步曳履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古文眞寶 唐詩品彙 鈔寫如荏 一行百字.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手毋執錢 不問米價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暑毋跣襪 飯毋徒髻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食毋先羹 歠毋流聲*歠(철):마시다.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下箸毋舂 毋餌生葱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飮醪毋嘬鬚 吸煙毋輔窳.*嘬(최):물다. *窳(유):비뚤다.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忿毋搏妻 怒毋踢器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毋拳毆兒女 毋罵死奴僕. *毆(구):때리다.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죽일놈의 종놈이라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叱牛馬 毋辱鬻主.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病毋招巫 祭不齋僧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에 중을 불러다 재(齋)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爐不煮手 語不齒唾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毋屠牛 毋賭錢.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한다.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양반의 규범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城主 旌善郡守 押. 座首別監 證署.”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於是 通引搨印 *搨(탑):박다, 베끼다.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錯落聲中嚴鼓 斗縱參橫.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戶長讀旣畢.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兩班只此而已耶?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 太乾沒. 願改爲可利.”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가?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산을 몰수합입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제2문권-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

 

於是 乃更作券曰,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維天生民 其民維四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焉.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文科紅牌 不過二尺 百物備具 維錢之橐. *橐(탁):전대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進士三十 乃筮初任 猶爲名蔭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은자주] 연암도 쉰 살에 음관으로 처음 출사하였다.

善事雄南 耳白傘風 腹皤鈴諾

지체 높은 음관을 잘 섬기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됩니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주D-016]일산 …… 처지며 :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室珥治妓 庭穀鳴鶴.

방안의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窮士居鄕 猶能武斷.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무력을 마음대로 단행할 수 있다.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暈(훈):무리. *咨(자):묻다.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4]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포기하다

 

富人中其券 而吐舌曰,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나를 도둑놈이 되게 하시렵니까?"

掉頭而去

농부는 머리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https://leeza.tistory.com/2183

 

박지원 - 방경각외전 자서(放璚閣外傳 自序)

방경각외전에 여러 한문소설을 지은 이유방경각외전 자서(放璚閣外傳 自序) 박지원(朴趾源) 友居倫季 匪厥疎卑 如土於行 寄王四時親義別叙 非信奚爲常若不常 友廼正之 所以居後 廼殿統斯 三

leeza.tistory.com

 

馬駔傳』 

 

友居倫季 匪厥疎卑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오륜의 마지막인 것은 소원하고 비천해서가 아니라,

 

土於行 寄王四時

마치 오행(五行)에서 사(土)가 사시(四時)에 왕성한 것과 같다

【오행설(五行說)에서는 봄에는 목(木)의 기운이 왕성하고, 여름에는 화(火)의 기운이 왕성하고, 가을에는 금(金)의 기운이 왕성하고, 겨울에는 수(水)의 기운이 왕성한 것으로 본다. 토(土)만 그에 해당하는 계절이 없는 셈인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각 계절 90일에서 18일씩을 덜어서 흙에 배당함으로써 오행에 맞추어 각 계절이 모두 72일씩으로 고루 안배될 수 있게 한 것을 가리킨다.】.

 

親義別叙 非信奚爲

친의별서(親義別叙)의 네 가지는 신(信)이 없다면 무얼 하겠는가?

 

常若不常 友廼正之

상(常)과 불상(不常)에 친구가 그걸 바로잡는다.

 

所以居後 廼殿統斯

그래서 맨 뒤에 자리 잡고서 친의별서(親義別叙)를 통제한다.

 

三狂相友 遯世流離

세 맹인들이 서로 벗이 되어 세상에 은둔하고 돌아다니며,

 

論厥讒諂 若見鬚眉

참소와 아첨을 논의하는데 수염과 눈썹이 보이는 듯하기에【『순자(荀子)』 「해폐(解蔽)」에, 인심(人心)을 대야의 물에 비유하면서, 대야의 물을 안정시켜 혼탁한 것들을 가라앉히면 “수염과 눈썹을 볼 수 있다[足以見鬚眉]”고 했다.】,

 

於是述『馬駔』 

그래서 이에 『마장전』을 짓는다.

 

 

穢德先生傳

士累口腹 百行餒缺

선비가 먹고 사는 것에 얽매이면 온갖 행실이 어그러진다.

鼎食鼎烹 不誡饕餮

솥째 밭을 먹고 솥째 국 끓여 잘 사는데도【정식(鼎食)은 솥들을 즐비하게 늘어놓고 식사하는 것을 뜻하고, 정팽(鼎烹)은 솥에 삶아 죽이는 형벌을 당하는 것을 뜻한다.】 탐욕을 경계하질 못하네【도철(饕餮): 탐욕이 많은 악수(惡獸).】.

自食糞 迹穢口潔

엄항수는 스스로 똥으로 먹고 살아【박종채(朴宗采) 『과정록(過庭錄)』에는 “엄 행수는 제힘으로 먹고살았으니[嚴自食力]”로 소개되어 있다.】 하는 일이 더럽다 해도 입은 깨끗했기에

於是述『穢德先生

이에 『예덕선생전』을 짓는다.

 

閔翁傳

閔翁蝗人 學道猶龍

민옹은 선비들을 황충이라 했고 도학을 배워 노자와 같았다【공자가 노자를 만나 보고 ‘용과 같다[猶龍]’고 감탄했다고 한다. 『史記 63 「노자열전(老子列傳)」】.

託諷滑稽 翫世不恭

풍자와 골계로 세상을 희롱하되 공손치 않아

書壁自憤 可警惰慵

벽에 써서 스스로 분개한 것이 게으르고 나태한 걸 경계할 만 하니,

於是述『閔翁

이에 『민옹전』을 짓는다.

 

兩班傳

士廼天爵 士心爲志

선비란 바로 하늘이 내린 벼슬이고 선비의 마음이 뜻이 된다【‘지(志)’라는 글자의 구조를 ‘사(士)’ ‘심(心)’의 결합으로 풀이한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의 풀이는 이와 다르다】.

其志如何 弗謀勢利

뜻이란 어떠해야 하나? 권세와 이익을 도모하지 않고

達不離士 窮不失士

영달해도 선비의 지조를 떠나지 않고 궁해져도 선비의 지조를 잃지 않는다.

不飭名節 徒貨門地

그러나 이름과 절개를 삼가지 않아 다만 가문과 지위를 재물로 여겨

酤鬻世德 商賈何異

조상의 덕만을 팔아 버리니, 장사치와 무엇이 다르랴.

於是述『兩班

이에 『양반전』을 짓는다.

 

金神仙傳

弘基大隱 迺隱於遊

홍기는 큰 은자(隱者)【은자에도 대은(大隱), 중은(中隱), 소은(小隱)의 등급이 있다. 산중에 숨어 사는 은자가 소은이라면, 진정으로 위대한 은자인 대은은 하층 민중이나 다름없이 시중에서 산다.】로 곧 노닐다가 은둔했다.

淸濁無失 不忮不求

맑고 흐리건 지조를 잃지 않았으며 해치지 않고 탐하지 않았으니,

於是述『金神仙

이에 『김신선전』을 짓는다.

 

廣文傳

廣文窮丐 聲聞過情

광문은 곤궁한 거지로, 명성과 소문이 실정을 지나쳐

非好名者 猶不免刑

이름나길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형벌을 면하지 못했다.

矧復盜竊 要假以爭

하물며 다시 훔쳐 가짜를 요구하며 다툰 경우임에랴.

於是述『廣文

이에 『광문자전』을 짓는다.

 

虞裳

孌彼虞裳 力古文章

아름다운 저 우상은 옛 문장에 힘써

禮失求野 亨短流長

예가 사라지자 시골에서 구한다 했으니【『한서(漢書) 30 예문지(藝文志) 10에 공자(孔子)가 한 말로 소개되어 있다. 『연암집 3 자소집서(自笑集序)에서도 이 말을 인용하면서, 양반 사대부들의 글에서 사라진 고문사(古文辭)를 역관(譯官)들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개탄하였다.】, 향년은 짧았어도 드날림은 오래네.

於是述『虞裳

이에 『우상전』을 짓는다.

 

『易學大盜傳』

世降衰季 崇飾虗僞

세상이 쇠퇴한 말기로 떨어져 가식을 숭상하고 거짓을 문식하며

詩發含珠 亂紫.

시를 말하면서도 도굴꾼이 되니【『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시경』의 시를 읊조리면서 무덤을 도굴하여 죽은 사람의 입에 물려진 구슬을 훔치는 타락한 유자(儒者)의 이야기가 나온다.】 향원이고 사문난적이며 사이비다.

逕捷終南 從古以醜

은자인 체하며 빠르게 입신출세하려는 것을【당 나라 노장용(盧藏用)이 수도 장안(長安)의 종남산에 은거함으로써 고사(高士)라는 명성을 얻어 도리어 재빠르게 출세한 것을 풍자한 말이다.】 예로부터 추하게 여겼기에

於是述『易學大盜』

이에 『역학대도전』을 짓는다.

 

『鳳山學者傳』

入孝出悌 未學謂學

들어가선 효도하고 나와선 공경하니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하리라.

斯言雖過 可警僞德

이 말이 비록 지나치지만 거짓된 덕을 경계할 만하다.

明宣不讀 三年善學

공명선은 책을 읽질 않았어도 3년 동안 잘 배웠고【공명선은 증자(曾子)의 제자로, 그의 문하에서 삼 년이나 있으면서도 글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이에 그 까닭을 묻자, 공명선은 스승인 증자의 모범적인 행동을 보고 따라 배우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답했으므로, 증자가 감복(感服)했다고 한다. 『설원(說苑)』 「반질(反質)」】,

農夫耕野 賓妻相揖

농부는 들판을 갈고 아내를 손님같이 대하며 서로 읍했다.

目不知書 可謂眞學

눈으론 글자를 알지 못하나 진짜 배웠다고 할 만하니,

於是述『鳳山學者』

이에 『봉산학자전』을 짓는다

【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50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의하면, 황해도 봉산에 사는 어느 무식한 농민이 한글밖에 모르지만 『소학언해(小學諺解)』를 읽고 그의 모든 언행을 이에 준해 실천했다고 한다. 외출하거나 귀가할 때 반드시 서로 절하기로 아내와 약속하고, 부부가 같이 날마다 『소학언해』를 읽었으므로, 그 고을의 이웃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았으나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봉산학자전은 이 사실을 소재로 한 전기인 듯하다.】.

 『燕巖集 卷之八

 

 

 

 


광문자전(廣文者傳)

-초기구전

 

[은자주]광문은 실존인물이다. 여기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 태생답게 서울의 지리와 문화도 자상하게 소개하여 서울의 풍속도를 문자로 보는 느낌이다. 거지 광문은 장안의 이름난 광대로 성장하여 그의 검무는 이름난 기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고, 광문의 가짜 동생에 가짜 아들까지 만들어졌으니 상공업의 발달한 세태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廣文者 丐者也.

광문(廣文)이라는 자는 거지였다.

嘗行乞鍾樓市 道中群丐兒

일찍이 종루(鐘樓)의 저잣거리에서 빌어먹고 다녔는데,

推文作牌頭 使守窠.

거지 아이들이 광문을 추대하여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소굴을 지키게 한 적이 있었다.

一日天寒雨雪

하루는 날이 몹시 차고 눈이 내리는데,

群兒相與出丐 一兒病不從.

거지 아이들이 다 함께 빌러 나가고 그중 한 아이만이 병이 들어 따라가지 못했다.

旣而兒寒專纍 欷聲甚悲. /*纍(루):매다.

조금 뒤 그 아이가

추위에 떨며

숨을 몰아쉬는데 그 소리가 몹시 처량하였다.

 

[주D-001]추위에 떨며 : 원문은 ‘寒專’인데, ‘寒戰’ 또는 ‘寒顫’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文甚憐之 身行丐得食

광문이 너무도 불쌍하여 몸소 나가 밥을 빌어 왔는데,

將食病兒 兒業已死.

병든 아이를 먹이려고 보니 아이는 벌써 죽어 있었다. 群兒返 乃疑文殺之
거지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애를 죽였다고 의심하여

相與搏逐文.

다 함께 광문을 두들겨 쫓아내니,

文夜匍匐 入里中舍

광문이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다가

驚舍中犬 舍主得文縛之.

그 집 개를 놀라게 하였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다 꽁꽁 묶으니,

文呼曰

광문이 외치며 하는 말이,

“吾避仇 非敢爲盜.

“나는 날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온 것이지 감히 도적질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如翁不信 朝日辨於市.”

영감님이 믿지 못하신다면 내일 아침에 저자에 나가 알아 보십시오.” 하는데,

辭甚樸 舍主心知廣文非盜賊. 曉縱之.

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집주인이 내심 광문이 도적이 아닌 것을 알고서 새벽녘에 풀어 주었다.

 

[주D-002]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 원문은 ‘辭甚樸’인데, 이본에는 ‘辭甚款樸’이라고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말이 몹시 진실되고 순박하므로’이다.

 

文辭謝 請弊席而去.

광문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떨어진 거적을 달라 하여 가지고 떠났다.

舍主終已怪之 踵其後 望見

집주인이 끝내 몹시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밟아 멀찍이서 바라보니,

群丐兒 曳一尸

거지 아이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수표교(水標橋)

에 와서

 

[주D-003]수표교(水標橋) :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의 하나로, 홍수에 대비하여 수심을 재는 눈금이 교각(橋脚)에 표시되어 있었다.

 

至水標橋 投尸橋下.

그 시체를 다리 밑으로 던져 버리는데,

文匿橋中 裹以弊席 潛負去

광문이 다리 속에 숨어 있다가 떨어진 거적으로 그 시체를 싸서

埋之西郊之墦間. 且哭且語. /* 墦(번)무덤

가만히 짊어지고 가, 서쪽 교외 공동묘지에다 묻고서 울다가 중얼거리다가 하는 것이었다.於是 舍主執詰文.
이에 집주인이 광문을 붙들고 사유를 물으니,

文於是 盡告其前所爲 及昨所以狀.

광문이 그제야 그전에 한 일과 어제 그렇게 된 상황을 낱낱이 고하였다.

舍主心義文 與文歸家 予文衣 厚遇文.

집주인이 내심 광문을 의롭게 여겨, 데리고 집에 돌아와 의복을 주며 후히 대우하였다.

竟薦文藥肆富人 作傭保久之.

그리고 마침내 광문을 약국을 운영하는 어느 부자에게 천거하여 고용인으로 삼게 하였다.富人出門數數顧 還復入室 視其扃
오랜 후 어느 날 그 부자가 문을 나서다 말고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다, 도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자물쇠가 걸렸나 안 걸렸나를 살펴본 다음

出門而去 意殊怏怏.

문을 나서는데, 마음이 몹시 미심쩍은 눈치였다.

旣還 大驚熟視文

얼마 후 돌아와 깜짝 놀라며, 광문을 물끄러미 살펴보면서

欲有所言 色變而止.

무슨 말을 하고자 하다가, 안색이 달라지면서 그만두었다.

文實不知 日黙黙 亦不敢辭去.

광문은 실로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날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지냈으며, 그렇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旣數日富人妻兄子 持錢還富人曰
그 후 며칠이 지나,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 부자에게 돌려주며,

“向者 吾要貸於叔

“얼마 전 제가 아저씨께 돈을 빌리러 왔다가,

會叔不在 自入室取去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아서 제멋대로 방에 들어가 가져갔는데,

恐叔不知也.”

아마도 아저씨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於是 富人大慚廣文 謝文曰

이에 부자는 광문에게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에게,

“吾小人也 以傷長者之意.

“나는 소인이다. 장자(長者)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니

吾將無以見若矣.”

나는 앞으로 너를 볼 낯이 없다.” 하고 사죄하였다.

於是 遍譽所知諸君 及他富人大商賈 “廣文義人.”

그리고는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들과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에게 광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두루 칭찬을 하고,

而又過贊廣文諸宗室賓客 及公卿門下左右.

또 여러 종실(宗室)의 빈객들과 공경(公卿) 문하(門下)의 측근들에게도 지나치리만큼 칭찬을 해 대니,

公卿門下左右 及宗室賓客

공경 문하의 측근들과 종실의 빈객들이

皆作話套 以供寢.

모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밤이 되면 자기 주인에게 들려주었다.

數月間 士大夫盡聞廣文如古人.

그래서 두어 달이 지나는 사이에 사대부까지도 모두 광문이 옛날의 훌륭한 사람들과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當是時 漢陽中 皆稱 “廣文前所厚遇舍主之賢能知人”

그 당시에 서울 안에서는 모두, 전날 광문을 후하게 대우한 집주인이 현명하여 사람을 알아본 것을 칭송함과 아울러,

而益多 “藥肆富人長者也.”

약국의 부자를 장자(長者)라고 더욱 칭찬하였다.時殖錢者 大較典當 首飾․璣翠 衣件․器什 宮室田․僮奴之薄書
이때 돈놀이하는 자들이 대체로 머리꽂이, 옥비취, 의복, 가재도구 및 가옥 · 전장(田庄) · 노복 등의 문서를 저당잡고서

參五本幣 以得當.

본값의 십분의 삼이나 십분의 오를 쳐서 돈을 내주기 마련이었다.

然文爲人保債 不問當 一諾千金.

그러나 광문이 빚보증을 서 주는 경우에는 담보를 따지지 아니하고 천금(千金)이라도 당장에 내주곤 하였다.文爲人極醜 言語不能動人
광문은 사람됨이 외모는 극히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口大幷容兩拳

입은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하고,

善曼碩戱 爲鐵拐舞.

만석희(曼碩戲)

를 잘하고

철괴무(鐵拐舞)

를 잘 추었다.

 

[주D-004]만석희(曼碩戲) : 개성 지방에서 음력 4월 8일에 연희되던 무언 인형극이다. 이 놀이는 개성의 명기 황진이(黃眞伊)의 미색과 교태에 미혹되어 파계하였다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조롱하기 위하여 연희되었다는 속전이 있으며, 일설에는 지족선사가 불공 비용을 만 석이나 받은 것을 욕하기 위하여 연희되었다고도 한다.
[주D-005]철괴무(鐵拐舞) :
중국 전설상의 팔선(八仙) 중의 하나인 이철괴(李鐵拐)의 모습을 흉내 내어 추는 춤이다. 이철괴는 그 모습이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는 때가 자욱하고 배는 훌떡 걷어 올리고 다리는 절뚝거리며 쇠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三韓兒相訾傲 稱

우리나라 아이들이 서로 욕을 할 때면,

“爾兄達文.” 達文又其名也.

“니 형은 달문(達文)이다.”라고 놀려 댔는데, 달문은 광문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文行遇鬪者 文亦解衣如鬪.
광문이 길을 가다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역시 옷을 홀랑 벗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啞啞俯劃地 若辨曲直狀

뭐라고 시부렁대면서 땅에 금을 그어 마치 누가 바르고 누가 틀리다는 것을 판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늉을 하니,

一市皆笑 鬪者亦笑 皆解云.

온 저자 사람들이 다 웃어 대고 싸우던 자도 웃음이 터져, 어느새 싸움을 풀고 가 버렸다.文年四十餘 尙編髮.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머리를 땋고 다녔다.

人勸之妻 則曰,

남들이 장가가라고 권하면, 하는 말이,

“夫美色 衆所嗜也.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然非男所獨也 唯女亦然也.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D-006]비록 …… 마찬가지다 : 원문은 ‘唯女亦然’인데, 이 경우 ‘唯’ 자는 ‘비록’이란 뜻으로 ‘雖’ 자와 같다.


故吾陋 而不能自爲容也.”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였다.

人勸之家 則辭曰

남들이 집을 가지라고 권하면,

“吾無父母兄弟妻子 何以家爲?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가져 무엇 하리.

且吾朝而歌呼入市中

더구나 나는 아침이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暮而宿富貴家門下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자는 게 보통인데,

漢陽戶 八萬爾.

서울 안에 집 호수가 자그만치 팔만 호다.

吾逐日 而易其處 不能盡吾之年壽矣.”

내가 날마다 자리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 하였다.
漢陽名妓 窈窕都雅
서울 안에 명기(名妓)들이 아무리 곱고 아름다워도,

然非廣文聲之 不能直一錢.

광문이 성원해 주지 않으면 그 값이 한 푼어치도 못 나갔다.
初羽林兒 各殿別監
예전에 궁중의

우림아(羽林兒),

각 전(殿)의

별감(別監),

 

[주D-007]우림아(羽林兒) : 궁궐의 호위를 맡은 친위(親衛) 부대 중의 하나인 우림위(羽林衛) 소속의 군인들을 말한다. 우림위는 영조 때 용호영(龍虎營)에 소속되었다.
[주D-008]별감(別監) :
궁중의 하례(下隸)로서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 등에서 잡무를 수행하는 한편 국왕이 행차할 때 시위와 봉도(奉導)를 맡았다.

 

駙馬都尉 傔從垂袂

부마도위(駙馬都尉)의 청지기들이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過雲心 心名姬也.

운심(雲心)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운심은 유명한 기생이었다.

堂上置酒鼓瑟 屬雲心舞.

대청에서 술자리를 벌이고 거문고를 타면서 운심더러 춤을 추라고 재촉해도,

心故遲 不肯舞也.

운심은 일부러 느리대며 선뜻 추지를 않았다.


文夜往 彷徨堂下

광문이 밤에 그 집으로 가서 대청 아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遂入座 自坐上座.

마침내 자리에 들어가 스스로 상좌(上坐)에 앉았다.

文雖弊衣袴 擧止無前 意自得也.

광문이 비록 해진 옷을 입었으나 행동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의기가 양양하였다.

眦膿而眵 陽醉噎 / *眦(제):눈초리. 膿(농):고름. 眵(치):눈꼽. 噎(역):목메다.

눈가는 짓무르고 눈꼽이 끼었으며 취한 척 게욱질을 해 대고,

羊髮北髻

헝클어진 머리로

북상투〔北髻〕

를 튼 채였다.

一座愕然. 瞬文欲毆之

온 좌상이 실색하여

광문에게 눈짓을 하며 쫓아내려고 하였다.

 

[주D-009]북상투〔北髻〕 : 여자의 쪽머리(낭자머리)를 모방하여 뒤통수에 상투처럼 묶은 머리 모양을 가리킨다. 《硏經齋集 外集 卷5 蘭室譚叢 北髻》
[주D-010]광문에게 …… 하였다 :
원문은 ‘瞬文欲敺之’인데, 여기서 ‘敺’는 ‘驅’의 고자(古字)로 ‘쫓아내다’로 새겨야 한다.

 

文益前坐 拊膝度曲 鼻吟高低.

광문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치며 곡조에 맞춰 높으락나지락 콧노래를 부르자,

心卽起更衣 爲文劒舞.

운심이 곧바로 일어나 옷을 바꿔 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한바탕 추었다.

一座盡歡 更結友而去.

그리하여 온 좌상이 모두 즐겁게 놀았을 뿐 아니라, 또한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書廣文傳後
광문전 뒤에 쓰다

余年十八時 嘗甚病

내 나이 열여덟 살 적에 몹시 병을 앓아서,

常夜召門下舊傔

늘 밤이면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을 불러 놓고

微問閭閻奇事 其言大抵廣文事.

여염(閭閻)에서 일어난 얘깃거리 될 만한 일들을 묻곤 하였는데, 대개는 광문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余亦幼時 見其貌極醜.

나 또한 어렸을 적에 그 얼굴을 보았는데 너무도 못났었다.

余方力爲文章 作爲此傳.

나는 한창 문장을 배우기에 힘쓰던 판이라, 이 전(傳)을 만들어

傳示諸公長者

여러 어른들께 돌려 보였는데,

一朝以古文辭 大見推詡.

하루아침에 고문(古文)을 잘 한다는 칭찬을 크게 받게 되었다.

蓋文時已南遊湖嶺諸郡 所至有聲

광문은 이때 호남과 영남의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명성을 남겼고,

不復至京師數十年.

더 이상 서울에 올라오지 않은 지가 이미 수십 년이나 지났다.

海上丐兒 嘗乞食於開寧水多寺.

바닷가에서 온 거지 아이 하나가

개령(開寧)의 수다사(水多寺)

에서 빌어먹고 있었다.

 

[주D-011]개령(開寧)의 수다사(水多寺) : 개령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고을이고, 수다사는 그 이웃 고을인 선산군(善山郡)에 있다. 신라 때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夜聞寺僧閒話廣文事

밤이 되어 그 절의 중들이 광문의 일을 한가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皆愛慕感嘆 想見其爲人.

모두 그의 사람됨을 상상하며 흠모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於是 丐兒囁嚅

이때 그 거지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자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遂自稱廣文兒.

그 거지 아이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마침내 광문의 아들이라 자칭하니,

寺僧皆大驚.

그 절의 중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時賞予飯瓢

이때까지 그에게 밥을 줄 때는 박짝에다 주었는데,

及聞廣文兒 洗盂盛飯

광문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씻은 사발에 밥을 담고

具匙箸蔬醬 每飯而進之.

수저에다 푸성귀랑 염장을 갖추어서 매번 소반에 차려 주었다.

時嶺中妖人 有潛謀不軌者

이 무렵에 영남에는 몰래 역모를 꾀하는 요사한 사람이 있었는데,

見丐兒如此其盛待也.

거지 아이가 이와 같이 융숭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冀得以惑衆 潛說丐兒曰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겠다 생각하여 가만히 거지 아이를 달래기를,

“爾能呼我叔 富貴可圖也.”

“네가 나를 숙부라 부르면 부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乃稱廣文弟 自名廣孫 以附文.

마침내 저는 광문의 아우라 칭하고 제 이름을 광손(廣孫)이라 하여 광문의 돌림자를 땄다.

或有疑廣文自不知姓 生平獨無昆弟妻妾

어떤 사람이 의심하기를,“광문은 본래 제 성도 모르고 평생을 형제도 처첩도 없이 독신으로 지냈는데,

今安得忽有長弟長兒也?

지금 어떻게 저런 나이 많은 아우와 장성한 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서,

遂上變 皆得逐捕

마침내 고변(告變)을 하였다. 관청에서 이들을 모두 다 잡아들여

及對質驗問 各不識面.

광문과 대질심문을 벌였는데, 제각기 얼굴을 몰랐다.

於是 遂誅其妖人 而流丐兒.

이에 그 요사한 자를 베어 죽이고 거지 아이는 귀양 보냈다.

廣文旣得出

광문이 석방되자,

 

 

[주D-012]광문이 석방되자 : 영조 40년(1764년)에 일찍이 나주(羅州) 괘서(掛書) 사건으로 처형된 나주 목사(羅州牧使) 이하징(李夏徵)의 서얼 이태정(李太丁)이란 자가 달손(達孫) 즉 광문의 동생을 자처하면서, 광문의 아들이라는 자근만(者斤萬)을 시켜 유언비어를 퍼뜨리다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덩달아 체포되었던 광문은 역모 혐의는 벗었으나 함경도 경성(鏡城)으로 유배되었다. 《推案及鞫案 卷22》 《英祖實錄 40年 4月 17日》

 

老幼皆往觀

늙은이며 젊은이 모두가 가서 구경하는 바람에

漢陽市數日爲空.

한양의 저잣거리가 며칠 동안 텅 비게 되었다.

文指表鐵柱曰

광문이

표철주(表鐵柱)

를 가리키며,


[주D-013]표철주(表鐵柱) : 실존 인물로서 당시 서울의 무뢰배 조직인 검계(劍契)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자칭 왈짜〔曰者〕라고도 하는데, 노름판과 사창가 등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살인과 약탈, 강간 등을 자행하였다.


“汝豈非善打人表望同耶?”

“너는 사람 잘 치던 표망둥이〔表望同〕가 아니냐.

“今老無能矣.”

지금은 늙어서 너도 별 수 없구나.” 했는데,

蓋望同其號也.

망둥이는 그의 별명이었다.

因相與勞苦.文問

서로 고생을 위로하고 나서 광문이 물었다.

“靈城君豐原君無恙乎?”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과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은 무고들 하신가?”

曰 “皆已下世矣.”

“모두 다 세상을 떠나셨다네.”

“金君擎方何官?”

“김경방(金擎方)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지?”

曰 “爲龍虎將.”

“용호장(龍虎將)이 되었다네.”

 

[주D-014]용호장(龍虎將) : 용호영(龍虎營)의 정 3 품 벼슬이다.

 

文曰

그러자 광문이 말했다.

“此兒美男子. 體雖肥

“이 녀석은 미남자로서 몸이 그렇게 뚱뚱했어도

能挾妓超墻. 用錢如糞土.

기생을 껴안고 담을 잘도 뛰어넘었으며 돈 쓰기를 더러운 흙 버리듯 했는데,

今貴人 不可見.

지금은 귀인(貴人)이 되었으니 만나 볼 수가 없겠군.

粉丹何去?”

분단(粉丹)이는 어디로 갔지?”

曰 “已死矣.”

“벌써 죽었다네.”

文嘆曰

그러자 광문이 탄식하며 말했다.

“昔豐原君冶讌麒麟閣

“옛날에 풍원군이 밤에 기린각(麒麟閣)에서 잔치를 벌인 후

獨留粉丹宿

유독 분단이만 잡아 두고서 함께 잔 적이 있었지.

曉起將赴闕

새벽에 일어나 대궐에 들어갈 차비를 하는데,

丹執燭誤爇貂帽惶恐.” /.*爇(설)불사르다.

분단이가 촛불을 잡다가 그만 잘못하여 초모(貂帽)를 태워 버리는 바람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네.

君笑曰

풍원군이 웃으면서

“爾羞乎? 卽與壓羞錢五千.”

‘네가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하고는 곧바로

압수전(壓羞錢)

오천 냥을 주었었지.

吾時擁首帕副裙候

나는 그때 분단이의

수파(首帕)와 부군(副裙)

을 들고

 

[주D-015]압수전(壓羞錢) : 부끄러움을 진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주는 돈이다.

[주D-016]수파(首帕)와 부군(副裙) : 수파는 여자들의 머리를 감싸는 머릿수건이고, 부군은 덧치마를 가리킨다.

 

闌干下黑而鬼立

난간 밑에서 기다리며 시커멓게 도깨비처럼 서 있었네. 君拓戶唾倚丹而耳曰풍원군이 창문을 열고 가래침을 뱉다가 분단이의 귀에 대고 말하기를, “彼黑者何物?”‘저 시커먼 것이 무엇이냐?’ 하니, 對曰 “天下誰不知廣文也.”분단이가 대답하기를 ‘천하 사람이 다 아는 광문입니다.’ 했지. 君笑曰, “是汝後陪耶?”풍원군이 웃으며 ‘바로 네

후배(後陪)

냐?’ 하고는,

呼與一大鍾.

나를 불러들여 큰 술잔에 술을 한 잔 부어 주고,

君自飮紅露七鍾 乘軺而去.

자신도

홍로주(紅露酒)

일곱 잔을 따라 마시고 초헌(軺軒)을 타고 나갔지.

 

[주D-017]후배(後陪) : 뒤를 따르는 하인을 말한다.
[주D-018]홍로주(紅露酒) :
소주에다 멥쌀로 만든 누룩과 계피 등을 넣고 우려 만든 약주로, 감홍로(甘紅露), 감홍주(甘紅酒)라고도 부른다.

 

皆昔年事也.

이 모두 다 예전 일이 되어 버렸네그려.

“漢陽纖兒 誰最名?”

요즈음 한양의 어린 기생으로는 누가 가장 유명한가?”

曰 “小阿.”

“작은아기〔小阿其〕라네.”

“其助房誰?”

“조방(助房)

은 누군가?”

 

[주D-019]조방(助房) : 기생의 기둥서방으로, 조방(助幇)이라고도 한다.

 

“崔撲滿.”

“최박만(崔撲滿)이지.”

曰 “朝日尙古堂遣人勞我 聞移家圓橋下.

“아침나절

상고당(尙古堂)

에서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안부를 물어왔네.

堂前有碧梧桐樹

듣자니 집을

둥그재〔圓嶠〕

아래로 옮기고 대청 앞에는 벽오동 나무를 심어 놓고

常自煮茗. 其下使鐵突鼓琴.”

그 아래에서 손수 차를 달이며

철돌(鐵突)

을 시켜 거문고를 탄다고 하데.”

 

[주D-020]상고당(尙古堂) : 김광수(金光遂)의 호이다. 숙종 22년(1696) 이조 판서 김동필(金東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서른 살에 진사 급제 후 잠시 인제 군수(麟蹄郡守)를 지냈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골동품 수집과 감정으로 명성이 높았다. 《연암집》 권3 필세설(筆洗說), 권7 관재소장청명상하도발(觀齋所藏淸明上河圖跋)에도 그에 관한 언급이 있다.
[주D-021]둥그재〔圓嶠〕 :
서대문 밖 아현동 부근에 있었던 고개로, 원현(圓峴)이라고도 한다.
[주D-022]철돌(鐵突) :
거문고의 명수로 알려진 실존 인물로, 김철석(金哲石)이라고 한다.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가기(歌妓) 추월(秋月) · 매월(梅月) · 계섬(桂蟾) 등과 한 그룹을 이루어 직업적인 연예 활동으로 자못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曰 “鐵突昆弟 方擅名.” / *擅(천)멋대로[마음대로]하다.

“철돌은 지금 그 형제가 다 유명하다네.”

曰 “然. 此金鼎七兒也. 吾與其父善.”

“그런가? 이는 김정칠(金鼎七)의 아들일세. 나는 제 애비와 좋은 사이였거든.”

復悵然久之曰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서글퍼하며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此皆吾去後事耳.”

“이는 다 나 떠난 후의 일들이군.” 하였다.

文斷髮猶辮如鼠尾

광문은 머리털을 짧게 자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쥐꼬리처럼 땋아 내리고 있었으며,

齒豁口窳 不能內拳云. / *窳(유)비뚤다.

이가 빠지고 입이 틀어져 이제는 주먹이 들락거리지 못한다고 한다.

語鐵柱曰

광문이 표철주더러 말하였다.

“汝今老矣. 何能自食?”

“너도 이제는 늙었구나. 어떻게 해서 밥을 먹고사나?”

曰 “家貧爲舍儈.”

“집이 가난하여 집주름이 되었다네.”

文曰 “汝今免矣. 嗟乎! 昔汝家貲鉅萬 /*貲(자)재물. *兜(두)투구.

“너도 이제는 가난을 면했구나.

아아! 옛날 네 집 재산이 누거만(累鉅萬)이었지.


[주D-023]너도 …… 면했구나 : 원문은 ‘汝今免矣’인데,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면궁(免窮)’이라 한다.


時號汝黃金兜 今兜安在?”

그때에는 너를 ‘황금투구’라고 불렀는데 그 투구 어따 두었노?”

曰 “今而後 吾知世情矣.”

“이제야 나는 세상 물정을 알았다네.”

文笑曰

광문이 허허 웃으며 말하기를,

“汝可謂學匠而眼暗矣.”

“네 꼴이 마치

‘기술을 배우고 나자 눈이 어두워진 격’

이로구나.” 하였다.

 

[주D-024]기술을 …… 격 : ‘복이 박하다’는 뜻의 우리나라 속담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권62 열상방언(洌上方言)에 “기술 익히자 눈에 백태 낀다.〔技纔成 眼有眚〕”는 유사한 속담이 소개되어 있다.

 

文後不知所終云.

그 뒤로 광문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민옹전(閔翁傳)

-초기九傳

 

閔翁者 南陽人也.

민옹이란 이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戊申軍興從征 功授僉使.

무신년 난리에 출정하여 그 공으로 첨사(僉使)가 되었는데,

後家居 遂不復仕.

그 뒤로 집으로 물러나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주D-001]무신년 난리 :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가리킨다.

 

翁幼警悟聰給

옹(翁)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였다.

獨慕古人奇節偉跡 慷慨發憤

유독 옛사람들의 뛰어난 절개와 위대한 자취를 사모하여 강개(慷慨)히 분발하였으며,

每讀其一傳 未嘗不歎息泣下也.

그들의 전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七歲 大書其壁曰 項橐爲師.

7세 때에는 벽에다 큰 글씨로

“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라고 썼으며,

十二書 甘羅爲將.

12세 때에는

“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고 하고,

十三書 外黃兒遊說.

13세 때에는

“외황(外黃) 고을 아이가 유세를 하였다.”

고 썼으며,

十八益書 去病出祈連.

18세 때에는 더욱 쓰기를

“곽거병(霍去病)이 기련산(祈連山)에 나갔다.”

고 했으며,

二十四書 項籍渡江.

24세 때에는

“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고 썼다.

 

[주D-002]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 항탁은 7세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감라(甘羅)가 여불위(呂不偉)를 설득하면서 한 말이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3]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
이본에는 ‘승상〔相〕이 되었다’로 되어 있다. 여불위는 진(秦) 나라 장수 장당(張唐)이 연(燕) 나라 승상으로 부임하기를 바랐으나, 장당이 이를 거부하자 감라가 그를 대신하여 장당을 설득하고 조(趙) 나라에 가서 유세한 것을 말한다. 감라는 진 나라 명장 감무(甘茂)의 손자로 여불위의 가신(家臣)이었다. 여불위에게 등용되어 12세에 조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조 나라를 설득하여 5개의 성을 할양받고 연 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영토를 획득하였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4]외황(外黃) …… 하였다 :
항우가 진류(陳留)의 외항을 공격하였는데 외항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 며칠 후 항복하자 항우가 노하여 15세 이상 남자들을 성의 동쪽에다 파묻으려 하였다. 이에 외황 영(外黃令) 사인(舍人)의 13세 된 아들이 항우에게 유세하여 외황 백성들을 살렸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5]곽거병(霍去病)이 …… 나갔다 :
곽거병이 18세에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표요교위(剽姚校尉)가 되어 흉노족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련산에까지 출정하여 공을 세운 것은 그가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된 21세 때의 일이다. 기련산은 중국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 경계에 있는 고산(高山)이다. 《史記 卷111 將軍驃騎列傳》 《太平寰宇記 卷191 匈奴篇》
[주D-006]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
항우는 24세 때 처음 기병(起兵)하여, 진(秦) 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조왕(趙王)을 구하기 위해 오강(烏江)을 건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至四十 益無所成名.

40세가 되었으나 더욱더 이름을 날린 바가 없었기에

乃大書曰 孟子不動心.

마침내

“맹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라고 크게 써 놓았다.

 

[주D-007]맹자는 …… 않았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나는 40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我四十不動心〕”고 하였다.

 

年年書益不倦 壁盡黑.

이렇게 해마다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벽이 다 온통 새까맣게 되었다.

及年七十 其妻嘲曰

70세가 되자 그의 아내가 조롱하기를,

“翁今年畵烏未?”

“영감, 금년에도 까마귀를 그리지 않겠소?” 하니,

翁喜曰 “若疾磨墨.”

영감이 기뻐하며,“당신이 빨리 먹을 가시오.” 하고,

遂大書曰 “范增好奇計.”

마침내 크게 쓰기를,

“범증(范增)이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였다.”

하니,

 

[주D-008]범증(范增)이 …… 좋아하였다 : 범증은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여, 나이 70세 때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을 찾아가 진(秦)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其妻益恚曰 /*恚(에)성내다.

그 아내가 더욱 화를 내면서,

“計雖奇 將幾時施乎?”

“계책이 아무리 기발한들 장차 언제 쓰시려우?” 하니,

翁笑曰

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昔呂尙 八十鷹揚.

“옛날에 강 태공(姜太公)은 80살에 매가 날아오르듯이 용맹하였으니

 

 

[주D-009]옛날에 …… 용맹하였으니 :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태사(太師) 상보(尙父)는 당시 매가 날아오르는 듯하였네.〔維師尙父 時維鷹揚〕”라는 구절이 있다. 강 태공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 나라를 정벌한 사실을 가리킨다. 단 그때 그의 나이가 80살이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설인지 알 수 없다.

 

今翁視呂尙 猶少弱弟耳.”

지금 나는 그에 비하면 젊고 어린 아우뻘이 아니오?” 하였다.

歲癸酉甲戌之間

계유 · 갑술년 간,

 

[주D-010]계유 · 갑술년 간 : 영조 29년(1753)과 영조 30년(1754)이다.

 

余年十七八 病久困

내 나이 17, 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劣留好聲歌書畵 古劒琴彛器諸雜物.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彝器)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益致客 俳諧古譚

더욱더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慰心萬方 無所開其幽鬱.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有言 閔翁奇士

이때 어떤 이가 나에게 민옹을 소개하면서, 그는 기이한 선비로서

工歌曲 善譚辨 俶怪譎恢

노래를 잘하며 담론도 잘하는데 거침없고 기묘하여

聽者 人無不爽然意豁也. /*豁(활):뚫린 골

듣는 사람마다 후련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기에,

余聞甚喜 請與俱至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 함께 와 달라고 청하였다.

翁來 而余方與人樂.

옹이 찾아왔을 때 내가 마침 사람들과 풍악을 벌이고 있었는데,

翁不爲禮 熟視管者

옹은 인사도 하지 아니하고 물끄러미 피리 부는 자를 보고 있더니

批其頰大罵曰

별안간 그의 따귀를 갈기며 크게 꾸짖기를,

“主人懽 汝何怒也?”

“주인은 즐거워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느냐?” 하였다.

余驚問其故.

내가 놀라 그 까닭을 물었더니,

翁曰 “彼瞋目而盛氣 匪怒而何?”

옹이 말하기를, “그놈이 눈을 부라리고 기를 쓰니 성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므로,

余大笑.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翁曰“豈獨管者怒也?

옹이 말하기를, “어찌 피리 부는 놈만 성낼 뿐이겠는가.

笛者反面若啼

젓대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리고 울 듯이 하고 있고

缶者嚬若愁

장구 치는 놈은 시름하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며

一座黙然若大恐.

온 좌중은 입을 다문 채 크게 두려워하는 듯이 앉아 있고,

僮僕忌諱笑語 樂不可爲歡也..”

하인들은 마음대로 웃고 떠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러고서야 음악이 즐거울 리 없지.”하기에,

余遂立撤去 延翁坐.

나는 당장에 풍악을 걷어치우고 옹을 자리에 맞아들였다.

翁殊短小 白眉覆眼

옹은 매우 작은 키에 하얀 눈썹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自言 “名有信 年七十三.”

그는 자신의 이름은 유신(有信)이며 나이는 73세라고 소개하고는

因問余 “君何病? 病頭乎?”

이내 나에게 물었다.“그대는 무슨 병인가? 머리가 아픈가?”

曰 “不.”

“아닙니다.”

曰 “病腹乎?”

“배가 아픈가?”

曰 “不.”

“아닙니다.”

曰 “然則君不病也.”

“그렇다면 병이 든 게 아니구먼.”

遂闢戶揭牖 風來颼然.

그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余意稍豁 甚異昔也.

마음속이 예전과는 아주 다르게 조금은 후련해졌다.

謂翁

그래서 옹에게 말하기를,

“吾特厭食 夜失睡 是爲病也.”

“저는 단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병입니다.” 했더니,

翁起賀.

옹이 일어나서 나에게 축하를 하는 것이었다.

余驚曰 “翁何賀也?”

나는 놀라며,“옹은 어찌하여 저에게 축하를 하는 것입니까?” 하니,

曰 “君家貧 幸厭食 財可美也.

옹이 말하기를,“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으니 재산이 남아돌 게고,

不寐則兼夜 幸倍年.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 사는 것이니 남보다 갑절 사는 턱이 아닌가.

財美而年培 壽且富也.”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갑절 살면 오복(五福) 중에 수(壽)와 부(富) 두 가지는 이미 갖춘 셈이지.” 하였다.

須臾飯至

잠시 후 밥상을 들여왔다.

余呻蹙不擧 諫物而嗅.

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음식을 들지 못한 채 이것저것 집어서 냄새만 맡고 있었더니,

翁忽大怒 欲起去.

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余驚問 “翁何怒去也?”

내가 놀라 옹에게 왜 화를 내고 떠나려 하는지 물었더니,

翁曰“君招客 不爲具

옹이 대답하기를,“그대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식사를 차려 내오지 않고

獨自先飯 非禮也.”

혼자만 먼저 먹으려 드니 예(禮)가 아닐세.” 하였다.

余謝留翁 且促爲具食.

내가 사과를 하고는 옹을 주저앉히고 빨리 식사를 차려 오게 하였더니

翁不辭讓 腕肘呈袒

옹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 올린 다음

匙箸磊落.

수저를 시원스레 놀려 먹어 대는데

余不覺口津 心鼻開張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돌고 막혔던 가슴과 코가 트이면서

乃飯如舊.

예전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夜翁闔眼端坐.
밤이 되자 옹은 눈을 내리감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余要與語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였으나,

翁益閉口 余殊無聊.

옹은 더욱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아 나는 꽤나 무료하였다.

久之 翁忽剔燭 謂曰

이렇게 한참이 지나자 옹이 갑자기 일어나서 촛불을 돋우면서 하는 말이,

“吾年少時 過眼輒誦 今老矣

“내가 어릴 적에는 눈만 스쳐도 바로 외워 버렸는데 지금은 늙었소그려.

與君約生平所未見書 各涉三再乃誦.

그대와 약속하여 평소에 못 보던 글을 두세 번 눈으로 읽어 보고 나서 외우기로 하세.

若錯一字 罰如契誓.”

만약 한 자라도 틀리게 되면 약속대로 벌을 받기로 하세나.” 하기에,

余侮其老曰 “諾.”

나는 그가 늙었음을 업수이 여겨,“그렇게 합시다.” 하고서,

卽抽架上周禮

곧바로 서가 위에 놓인 《주례(周禮)》를 뽑아 들었다.

翁拈考工 余得春官.

그래서 옹은 고공기(考工記)를 집어 들고 나는 춘관(春官)을 집어 들었는데

小閒翁呼曰 “吾已誦.”

조금 지나자 옹이,“나는 벌써 다 외웠네.” 하고 외쳤다.

余未及下一遍 驚止翁且居.

그때 나는 한 번도 다 내리 읽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놀라서 옹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더니,

翁語侵頗困 而余益不能誦

옹이 자꾸만 말을 걸고 방해를 하여 나는 더욱 외울 수가 없었다.

思睡乃睡.

그러는 사이에 잠이 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天旣明. 問

다음날 날이 밝자 옹에게 묻기를,

“翁能記宿誦乎?”

“어젯밤에 외운 것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翁笑曰 “吾未嘗誦.”

옹이 웃으며,“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를 않았다네.” 하였다.嘗與翁夜語.
하루는 옹과 더불어 밤에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翁弄罵坐客 人莫能難.

옹이 좌객들을 조롱하기도 하고 매도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도 막아 낼 사람이 없었다.

有欲窮翁者問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옹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여 옹에게 물었다.

“翁見鬼乎?”

“옹은 귀신을 본 일이 있소?”

曰 “見之.”

“보았지.”

“鬼何在?”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翁瞠目熟視 有一客坐燈後 遂大呼曰

옹이 눈을 부릅뜨고 물끄러미 둘러보다가 손 하나가 등잔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외치면서,

“鬼在彼.”

“귀신이 저기 있지 않소.” 하였다.

客怒詰翁.

그 손이 노하여 따져 들자,

翁曰 “夫明則爲人 幽則爲鬼.

“밝은 데 있는 것은 사람이요, 껌껌한 데 있는 것은 귀신인데,

今者處暗而視明 匿形而何人

지금

어두운 데 앉아 밝은 데를 보고 제 몸을 감추고 사람들을 엿보고 있으니,

 

[주D-011]지금 : 원문은 ‘今者’인데, 이본에는 ‘今子’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지금 그대는’ 이다.

 

豈非鬼乎?”

귀신이 아니고 무엇이오.” 하니,

一座皆笑.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又問 “翁見仙乎?”

손이 또 물었다.“옹은 신선을 본 일이 있소?”

曰 “見之.”

“보았지.”

“仙何在?”

“신선이 어디에 있던가요?”

曰 “家貧者仙耳.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지.

富者常戀世 貧者常厭世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厭世者 非仙耶?”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翁能見長老者乎?”

“옹은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을 보았소?”

曰 “見之. 吾朝日立林中 蟾與免爭長.

“보았지. 내가 아침나절 숲 속에 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서로 나이가 많다고 다투고 있더군.

免謂蟾曰

토끼가 두꺼비에게 하는 말이

“吾與彭祖同年 若乃晩生也.”

‘나는

팽조(彭祖)

와 동갑이니 너는 나보다 늦게 태어났다.’ 하니,

 

[주D-012]팽조(彭祖) : 800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등에 소개되어 있다.

 

蟾俛首而泣.

두꺼비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더군.

免驚問曰

토끼가 놀라

“若乃若悲也?”

 

‘너는 왜 그처럼 슬퍼하느냐?’

하고 물으니,

 

[주D-013]너는 …… 슬퍼하느냐 : 원문은 ‘若乃若悲也’인데, 이본에는 ‘若乃何悲也’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너는 어째서 슬퍼하느냐?’이다.

 

蟾曰

두꺼비가 말했지.

“吾與東家孺子同年.

‘나는 동쪽 이웃집의 어린애와 동갑인데

孺子五歲 乃知讀書

그 어린애가 5살 먹어서 글을 배우게 되었지.

生于木德 肇紀攝提 迭王更帝

그 애는

목덕(木德)으로 태어나서 섭제격(攝提格 인년(寅年))으로 왕조의 기년(紀年)을 시작한 이래

여러 왕대를 거치다가,

 

[주D-014]목덕(木德)으로 …… 이래 : 《십팔사략(十八史略)》 첫머리에, “천황씨(天皇氏)는 목덕으로 왕이 되니 세성(歲星 : 목성)이 섭제(攝提), 즉 인방(寅方)에 나타났다.”라고 하였는데, 《십팔사략》에서는 천황씨를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전 중국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초학(初學) 역사 교과서인 《십팔사략》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統絶王春 純成一曆

 

주(周) 나라의 왕통(王統)이 끊어짐으로써 순수한 역서(曆書) 한 권이 이루어졌고,

乃閏于秦 歷漢閱唐

 

마침내 진(秦) 나라로 이어졌으며,

한(漢) 나라와 당(唐) 나라를 거친 다음

 

[주D-015]주(周) 나라의 …… 이루어졌고 : 상고(上古)부터 주 나라 때까지의 정통 왕조의 역사를 섭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춘추(春秋)》에서는 일 년의 첫 달을 “춘(春) 왕정월(王正月)”이라 표기하여 주 나라의 왕통을 받들고 있음을 나타냈다. 순수한 역서란 《춘추》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16]마침내 …… 이어졌으며 :
원문은 ‘乃閏于秦’이다. 진 나라와 같이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왕조는 윤달과 같다고 해서 윤통(閏統)이라 폄하(貶下)한다.

 

暮朝宋明

아침에는 송(宋) 나라, 저녁에는 명(明) 나라를 거쳤지.

窮事更變 可喜可驚

그러는 동안에 갖가지 일을 다 겪으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으며,

弔死送往 支離于今.

죽은 이를 조문하기도 하고 장례를 치르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루하게 이어져 왔지.

然而 耳目聰明 齒髮日長

그런데도 귀와 눈이 밝고 이와 머리털이 갈수록 자라나니,

長年者 乃莫如孺子

나이가 많기로는 그 어린애만 한 자가 없겠지.

而彭祖乃八百歲蚤夭 閱世不多

팽조는 기껏 800살 살고 요절하여 시대를 겪은 것도 많지 않고

 

[주D-017]팽조는 …… 요절하여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요절한 아이보다 더 오래 산 자가 없으니, 그에 비하면 팽조도 요절한 셈이다.〔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라고 하였다.

 

更事未久 吾是以悲耳.”

일을 겪은 것도 오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나는 슬퍼한 것이다.’

免乃再拜郤走曰 /郤(극):원망하다.

토끼가 이 말을 듣고는 거듭 절하고 뒤로 물러나 달아나면서

“若乃大父行也.”

‘너는 내 할아버지뻘이다.’ 하였네.

由是觀之 讀書多者 最壽耳.”

이로 미루어 보건대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될 걸세.”

“翁能見味之至者乎?”

“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보았소?”

曰 “見之. 月之下弦 潮落步土

“보았지. 달이 하현(下弦)이 되어 조수(潮水)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耕而爲田 煮其斥鹵

그 땅을 갈아 염전을 만들고 소금흙을 굽는데,

粗爲水晶 纖爲素金

알갱이가 거친 것은 수정염(水晶鹽)이 되고 가는 것은 소금염(素金鹽)이 된다네.

百味齊和 孰爲不鹽?”

온갖 음식 맛을 내는 데에 소금 없이 되겠는가?”

皆曰 “善.”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然不死藥 翁必不見也.”

그러나 불사약(不死藥)만은 옹도 못 보았을 것입니다.” 하니,

翁笑曰

옹이 빙그레 웃으며,

“此吾朝夕常餌者 惡得而不知?

“그거야 내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大壑松盤 甘露其零 入地千年 化爲茯靈

깊은 골짜기의

반송(盤松)에 맺힌 감로(甘露)가 땅에 떨어져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靈)이 되지.

蔘伯羅産 形端色紅

삼(蔘)은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이 으뜸인데

모양이 단아하고 붉은빛을 띠며,

四體俱備 雙紒如童

사지를 다 갖추고

동자처럼 쌍상투를 틀고 있지.

 

 

[주D-018]반송(盤松)에 …… 되지 : 복령(茯靈)은 곧 버섯의 일종인 복령(茯苓)을 말한다. 송진〔松脂〕이 땅에 스민 지 천 년이 되면 변하여 복령이 되고, 복령이 변하여 호박(琥珀)이 된다고 한다. 《廣東通志 卷52 寶》
[주D-019]삼(蔘)은 …… 으뜸인데 :
원문은 ‘蔘伯羅産’인데, 우리나라 인삼 중에서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을 나삼(羅蔘)이라 하고, 영동(嶺東)에서 나는 것을 산삼(山蔘)이라 하며, 강계(江界)에서 나는 것을 강삼(江蔘)이라 하고, 집에서 재배하는 것을 가삼(家蔘)이라 한다. 《心田考 3 應求漫錄》
[주D-020]동자처럼 …… 있지 :
쌍상투〔雙紒〕는 고대 중국의 예법에 따른 남녀 아동의 머리 모양이다. 《居家雜服攷 卷3 幼服》 조선 시대의 아동은 변발(辮髮)을 하고 있었는데, 연암은 정온(鄭蘊)이나 송시열 등의 선구적 시도를 계승하여 이를 쌍상투로 개혁하고 싶어했다. 《過庭錄》

 

枸杞千歲 見人則吠.

구기자(枸杞子)는 천 년이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 하네.

吾嘗餌之 不復飮食者皆百日

내가 이것들을 먹은 다음 백 일가량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지냈더니

喘喘然將死.

숨이 차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네.

隣媼來視歎曰

이웃 할머니가 와서 보고는 한숨을 지으며 하는 말이,

“子病饑也.

‘그대는 주림병이 들었소.

昔神農氏嘗百草 始播五穀.

옛날 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을 맛본 다음에야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였소.

夫效疾爲藥 療饑爲食.

무릇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이 되고 주림병을 고치는 것은 밥이 되니,

非五穀 將不治.”

그대의 병은 오곡이 아니면 낫지 못하오.’ 하고는

遂飯稻梁而餌之 得以不死

밥을 지어 먹여 주는 바람에 죽지 않았지.

不死藥莫如飯.

불사약으로는 밥만 한 것이 없네.

吾朝一盂 夕一盂 今已七十餘年矣.

나는 아침에 밥 한 사발 저녁에 밥 한 사발로 지금껏 이미 70여 년을 살았다네.” 하였다.” 翁嘗支離其事 遷就而爲之
민옹은 말을 할 때면 장황하면서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주D-021]이리저리 둘러대지만 : 원문은 ‘遷就而爲之’이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서, 대신(大臣)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그에게 분명히 죄가 있어도 그 죄상(罪狀)을 직접 가리켜 말하지 않고 “둘러대어 말함으로써 이를 덮어 준다.〔遷就而爲之諱也〕”고 하였다.


莫不曲中

어느 것 하나 곡진히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內含譏諷 蓋辯士也.

그 속에는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그는 달변가라 할 만하다.

客索然問無以復詰. 乃忿然曰

손이 옹에게 물을 말이 다하여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이 올라 하는 말이,

“翁亦見畏乎?”

“옹도 역시 두려운 것을 보았습니까?” 하니,

翁黙然良久 忽厲聲曰

옹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可畏者 莫吾若也.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만 한 것이 없다네.

吾右目爲龍 左目爲虎.

내 오른 눈은 용이 되고 왼 눈은 범이 되며,

 

舌下藏斧 彎臂如弓.

혀 밑에는 도끼가 들었고 팔목은 활처럼 휘었으니,

念則赤子 差爲夷戎

깊이 잘 생각하면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겠으나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되놈이 되고 만다네.

 

[주D-022]내 …… 되며 : 위엄이 있거나 무시무시한 모습을 용정호목(龍睛虎目)이라 한다.
[주D-023]갓난아기처럼 …… 보존하겠으나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그의 갓난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不戒則將自噉自齧 . /*噉(담):씹다. 齧(설):물다.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장차 제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自戕自伐. /*戕(장):죽이다.

쳐 죽이거나 베어 버릴 것이야.

是以聖人克己復禮

이 때문에 성인은 사심(私心)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 것이며

閑邪存誠

사악함을 막아 진실된 자신을 보존한 것이니,

未嘗不自畏也.”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네.” 하였다.

 

[주D-024]사심(私心)을 …… 것이니 : 원문은 ‘克己復禮 閑邪存誠’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고, 한사존성(閑邪存誠)은 《주역》 건괘(乾卦) 풀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語數十難

수십 가지 난제(難題)를 물어보아도

皆辨捷如響 竟莫能窮.

모두 메아리처럼 재빨리 대답해 내 끝내 아무도 그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自贊自譽 嘲倣旁人
자신에 대해서는 추어올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 반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롱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하였다.

人皆絶倒 而翁顔色不變.

사람들이 옹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어도 옹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或言 “海西蝗 官督民捕之.”

누가 말하기를, “황해도는 황충(蝗蟲)이 들끓어 관에서 백성을 독려하여 잡느라 야단들입니다.” 하자,

翁問“捕蝗何爲?”

옹이, “황충을 뭐 하려고 잡느냐?” 하고 물었다.

曰 “是虫也 小於眠蚕

“이 벌레는 크기가 첫잠 잔 누에보다도 작으며,

色斑而毛

색깔은 알록달록하고 털이 나 있습니다.

飛則爲螟 緣則爲蟊 / *螟(명);마디충. 蝥(모):집게벌레.

날아다니는 것을 명(螟)이라 하고 볏줄기에 기어오르는 것을 모(蟊)라 하는데,

害我嫁穡 號爲減穀

우리의 벼농사에 피해를 주므로 이를 멸구〔滅穀〕라 부릅니다.

故將捕而瘞之耳.” /瘞(예):묻다.

그래서 잡아다가 파묻을 작정이지요.” 하니,

翁曰 “此小虫 不足憂.

옹이 말하기를,“이런 작은 벌레들은 근심할 거리도 못 된다네.

吾見種樓塡道者 皆蝗耳.

내가 보기에 종루(鐘樓) 앞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황충이오.

長皆七尺餘 頭黔目熒

길이는 모두 7척 남짓이고, 머리는 까맣고 눈은 반짝거리고

口大運拳

입은 커서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인데,

咿啞偊族 蹠接尻連 /*咿啞(이아):조잘대다. 偊(우):혼자 걷다. 蹠(척):밟다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줄줄이 몰려다니며

損嫁殘穀 無如是曹.

곡식이란 곡식은 죄다 해치우는 것이 이것들만 한 것이 없더군.

我欲捕之 恨無大匏.”

그래서 내가 잡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큰 바가지가 없어 아쉽게도 잡지를 못했네.” 하였다.

左右皆大恐 若眞有是虫然.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말로 이러한 벌레가 있는 줄 알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一日翁來 余望而爲隱曰
하루는 옹이 오고 있기에, 나는 멀찍이 바라보다가 은어(隱語)로 “春帖子啼.”‘춘첩자방제(春帖子狵啼)’라는 글귀를 써서 보였더니,

翁笑曰

옹이 웃으며,

“春帖子榜門之文 乃吾姓也. /*門之文:閔.

“춘첩자(春帖子)란 문(門)에 붙이는 글월〔文〕이니 바로 내 성 민(閔)이요, 老犬 乃辱我也. 방(狵)은 늙은 개를 지칭하니 바로 나를 욕하는 것이구먼.

啼則厭聞

그 개가 울면 듣기가 싫은데,

吾齒豁 音嵲兀也. /* 嵲(얼):산이 높다. 兀(올):우뚝하다.

이 또한 나의 이가 다 빠져 말소리가 분명치 않은 것을 비꼰 것이로군. 雖然 君若畏 莫如去犬.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대가 늙은 개를 무서워한다면 개 견(犬) 변을 떼어 버리면 될 것이고,

若又厭啼 且塞其口.

또 우는 소리가 싫으면 그 입 구(口)변을 막아 버리면 그만이지.

夫啼者 造化也. 尨者大物也.

무릇 제(帝)란 조화를 부리고 방(尨)은 큰 물건을 가리키니,

著帝傳尨 化而爲大

제(帝) 자에 방(尨) 자를 붙이면 조화를 일으켜 큰 것이 되니

其惟[帝尨]乎?

바로

용(

)

이라네.

 

[주D-025]용(

)이라네 : ‘龍’ 자를 ‘

’ 자로 쓰기도 한다. 원래는 얼룩덜룩할 ‘망’ 자로 읽어야 한다.

 

君非能辱我也 乃反善贊我也.”

그렇다면 이는 그대가 나를 욕한 것이 아니라, 그만 나를 좋게 칭송한 것이 되어 버렸구먼.” 하였다.

 

明年翁死.
다음 해에 옹이 죽었다.

翁雖恢奇俶蕩 性介直樂善.

옹이 비록 기발하고 거침없이 살았지만 천성이 곧고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한 데다,

明於易 好老子之言

《주역(周易)》에 밝고 노자(老子)의 말을 좋아하였으며,

於書 蓋無所不窺云.

책이란 책은 안 본 것이 없었다 한다.

二子皆登武科 未官.

두 아들이 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은 받지 못했다.今年秋 余又益病 而閔翁不可見.
금년 가을에 나의 병이 도졌으나, 이제는 더 이상 민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遂著其與余爲隱俳詼 ․ 言談 ․譏諷하여

이에 나와 함께 주고받은 은어와 우스갯소리, 담론(談論)과 풍자 등을 기록하여

爲閔翁傳.

민옹전을 지었으니,

歲丁丑秋也..

때는 정축년(1757, 영조 33) 가을이다.

余誄閔翁曰,

注]誄:생전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
나는 민옹을 위하여 뇌문(誄文 추도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嗚呼閔翁

오호민옹, 아아! 민옹이시여

可怪可奇

가괴가기,

괴상하고 기이하기도 하며

可驚可愕

가경가악, 놀랍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可喜可怒

가희가로, 기뻐함직도 하고 성냄직도 하며

而又可憎

이우가증, 게다가 밉살스럽기도 하구려

壁上烏 

벽상오, 벽에 그린 까마귀

未化鷹

미화응, 매가 되지 못하였듯이

翁蓋有志士

옹개유지사, 옹은 뜻 있는 선비였으나

竟老死莫施

경로사막시, 늙어 죽도록 포부를 펴지 못했구려

我爲作傳

아위작전, 내가 그대 위해 전을 지었으니

嗚呼死未曾

오호사미증, 아아! 죽어도 죽지 않았구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초기구전

 

蟬橘子有友曰穢德先生.

선귤자(蟬橘子)

에게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벗이 한 사람 있다.

在宗本塔東 日負里中糞 以爲業

그는

종본탑(宗本塔)

동쪽에 살면서 날마다 마을 안의 똥을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지냈는데

里中皆稱嚴行首.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엄 행수(嚴行首)라 불렀다.

嚴行首亦夫老者之稱也 嚴其姓也.

‘행수’란 막일꾼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칭호요, ‘엄’은 그의 성(姓)이다.

 

[주D-001]선귤자(蟬橘子) : 이덕무의 호(號) 중의 하나이다.
[주D-002]종본탑(宗本塔) :
미상(未詳)이다. 현재 서울 종로의 탑골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圓覺寺址)의 석탑〔白塔〕을 가리키는 듯하다. 박제가(朴齊家)의 《정유문집(貞蕤文集)》 권1 백탑청연집서(白塔淸緣集序)에 의하면, 한때 그 부근에 연암과 이덕무, 이서구, 유득공 등이 살았다고 한다.

 

子牧問乎蟬橘子曰
자목(子牧)이 선귤자에게 따져 묻기를,

“昔者 吾聞友於夫子曰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벗의 도를 들었는데,

‘不室而妻 匪氣之弟.’

 

‘벗이란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아우와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D-003]벗이란 …… 같다 : 윤광심(尹光心)의 《병세집(幷世集)》에 수록된 이덕무의 적언찬(適言讚) 찬지칠(讚之七) 간유(簡遊)에 나오는 말이다.

 

友如此其重也.

벗이란 이같이 소중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世之名士大夫 願從足下

세상의 이름난 사대부들이 선생님을 따라

遊於下風者 多矣

그 아랫자리에서 노닐기를 원하는 자가 많았지만

夫子無所取焉.

선생님께서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夫嚴行首者 里中之賤人役夫

그런데 저 엄 행수라는 자는 마을에서 가장 비천한 막일꾼으로서

下流之處 而恥辱之行也.

열악한 곳

에 살면서 남들이 치욕으로 여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주D-004]열악한 곳 : 원문은 ‘下流’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그러므로 군자는 하류(下流)에 거처하기를 싫어한다. 천하의 더러운 것이 모두 모여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夫子亟稱其德曰先生 /*亟(극)빠르다, 삼가다.

선생님께서는 자주 그의 덕(德)을 칭송하여 선생이라 부르는 동시에

若將納交 而請友焉

장차 그와 교분을 맺고 벗하기를 청할 것같이 하시니

弟子甚羞之. 請辭於門.”

제자로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러하오니 문하에서 떠나기를 원하옵니다.” 하니,

蟬橘子笑曰

선귤자가 웃으면서,

“居. 吾語若友.

“앉아라.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 주마.

里言有之曰 ‘醫無自藥 巫不己舞.’

속담에 ‘의원이 제 병 못 고치고 무당이 제 굿 못 한다.’ 했다.

人皆有己所自善

사람마다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는 것이 있는데

而人不知愍然 若求聞過.

남들이 몰라주면, 답답해하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해 듣고 싶은 체한다.

徒譽則近諂 而無味

그럴 때 예찬만 늘어놓는다면 아첨에 가까워 무미건조하게 되고,

專短則近訏 而非情. /*訏(우)크다, 속이다, 과장하다.

단점만 늘어놓는다면 잘못을 파헤치는 것 같아 무정하게 보인다.

於是 泛濫乎其所未善 逍遙而不中.

따라서 잘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얼렁뚱땅 변죽만 울리고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다면

雖大責不怒

제아무리 크게 책망하더라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니,

不當其所忌也.

상대방의 꺼림칙한 곳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偶然及其所自善 比物而射其覆* /射其覆*물건을 점쳐서 알아내듯이.

우연히 자신이 잘한다고 여기는 것을 언급하되, 은근슬쩍 비슷한 물건을 늘어놓고 숨긴 것을 알아맞히듯이 한다면,

中心感之 若爬癢焉.

진심으로 감동하기를 마치 가려운 데를 긁어 준 것처럼 할 것이다.

爬癢有道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

拊背無近腋 /拊(부)어루만지다, 치다.

등을 토닥일 때는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지 말고

摩膺無侵項

가슴을 어루만질 때는 목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成說於空 而美自歸

뜬구름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결국 자신에 대한 칭찬이 들어 있다면,

躍然曰“知. 如是而友 可乎!”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을 알아준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벗을 사귄다면 좋겠느냐?” 하였다.

 

子牧掩耳卻走曰 /*卻=却(각):물러나다, 물리치다.

자목은 귀를 막고 뒷걸음질치며 말하기를,

“此夫子敎我以市井之事 ․ 傔僕之役耳.”

“지금 선생님께서는 시정잡배나 하인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가지고 저를 가르치려 하시는군요.” 하니,

蟬橘子曰

선귤자가 말하기를,

“然則 子之所羞者 果在此 而不在彼也.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전자에는 있지 않고 후자에만 있구나.

夫市交以利 面交以諂.

무릇 시장에서는 이해관계로 사람을 사귀고 면전에서는 아첨으로 사람을 사귀지.

故雖有之懽 三求則無不疎

따라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 손을 내밀면 누구나 멀어지게 되고,

雖有宿怨 三與則無不親.

아무리 묵은 원한이 있다 하더라도 세 번 도와주면 누구나 친하게 되기 마련이지.

故以利則難繼

그러므로 이해관계로 사귀게 되면 지속되기 어렵고,

以諂則不久.

아첨으로 사귀어도 오래갈 수 없다네.

夫大交不面 誠友不親

훌륭한 사귐은 꼭 얼굴을 마주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훌륭한 벗은 꼭 가까이 두고 지낼 필요가 없지.

但交之以心 而友之以德

다만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하면 되는 것이니,

是爲道義之交.

이것이 바로 도의(道義)로 사귀는 것일세.

上友千古 而不爲遙

위로 천고(千古)의 옛사람과 벗해도 먼 것이 아니요,

相居萬里 而不爲疎.

만리(萬里)나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귀어도 먼 것이 아니라네.

 

彼嚴行首者 未嘗求知於吾

저 엄 행수란 사람은 일찍이 나에게 알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吾常欲譽之而不厭也.

나는 항상 그를 예찬하고 싶어 못 견뎌했지.

其飯也頓頓 其行也伈伈 /*頓(돈):조아리다. 伈(심):두려워하다.

그는 밥을 먹을 때는 끼니마다 착실히 먹고, 길을 걸을 때는 조심스레 걷고

其睡也昏昏 其笑也訶訶

졸음이 오면 쿨쿨 자고, 웃을 때는 껄껄 웃고 ,

其居也若愚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마치 바보처럼 보인다네.

築土覆藁 而圭其竇* / 藁=槀(고):마르다. 圭(규):홀, 모서리. *모서리에 구멍을 내고

흙벽을 쌓아 풀로 덮은 움막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入則蝦背 眠則狗喙

들어갈 때는 새우등을 하고 들어가고 잘 때는 개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지만

朝日熙熙然起 荷畚入里中餘溷 . /*畚(분):삼태기. 溷(혼):뒷간, 어지럽다.

아침이면 개운하게 일어나 삼태기를 지고 마을로 들어와 뒷간을 청소하지.

歲九月天雨霜 十月薄氷

9월에 서리가 내리고 10월에 엷은 얼음이 얼 때쯤이면

圊人餘乾 皂馬通(말똥) /*圊(청):뒷간.

뒷간에 말라붙은 사람똥, 마구간의 말똥,

閑牛下(쇠똥) 塒落鷄狗鵝矢

외양간의 소똥, 홰 위의 닭똥, 개똥, 거위똥,

苙豨苓(돼지똥)․ 左盤龍(人糞)․ 翫月砂(토끼똥)․ 白丁香(참새똥)

돼지똥, 비둘기똥, 토끼똥, 참새똥을

取之如珠玉 不傷於廉

주옥인 양 긁어 가도 염치에 손상이 가지 않고,

獨專其利 而不害於義

그 이익을 독차지하여도 의로움에는 해가 되지 않으며,

貪多而務 得人不謂其不讓.

욕심을 부려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해도 남들이 양보심 없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네.

唾掌揮鍬 磬腰傴傴 /*鍬(초)가래. *傴(구)구부리다.

그는 손바닥에 침을 발라 삽을 잡고는

若禽鳥之喙也.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 꾸부정히 허리를 구부려 일에만 열중할 뿐,

雖文章之觀 非其志也.

아무리 화려한 미관이라도 마음에 두지 않고

雖鍾鼓之樂 不雇也.

아무리 좋은 풍악이라도 관심을 두는 법이 없지.

夫富貴者 人之所同顧也.

부귀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非慕而可得 故不羨也.

바란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지.

譽之而不加榮

따라서 그에 대해 예찬을 한다고 해서 더 영예로울 것도 없으며

毁之而不加辱.

헐뜯는다 해서 욕될 것도 없다네.

 

枉十里蘿蔔 箭串菁

왕십리(枉十里)의 무와

살곶이〔箭串〕

의 순무,

石郊茄窳․水瓠․胡瓠

석교(石郊)의 가지 · 오이 · 수박 · 호박이며

延禧宮苦椒․蒜․韭․葱․薤

연희궁(延禧宮)의 고추 · 마늘 · 부추 · 파 · 염교며

靑坡水芹 利泰仁土卵 田用上上

청파(靑坡)의 미나리와 이태인(利泰仁)의 토란들은

상상전(上上田)

에 심는데,

皆取嚴氏糞 膏沃衍饒

모두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으며,

歲致錢六千.

그 수입이 1년에 6000냥이나 된다네.

 

[주D-005]살곶이〔箭串〕 : 현재 서울 성동구에 있는 뚝섬의 옛 이름 중의 하나이다. [은자]중량천 아래쪽 한양대 언덕 아래에 왕이 활ㅆ기 연습을 하였다는 살곶이 공원이 조성되었다.
[주D-006]상상전(上上田) :
토지의 질에 따라 차등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토지를 상 · 중 · 하로 나누고, 각각을 다시 상 · 중 · 하로 나누어 모두 9등급을 두었다. 상상전은 최상급의 토지를 말한다.

 

朝而一盂飯 意氣充充然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及日之夕 又一盂矣.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勸之肉 則辭曰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下咽則 蔬肉同飽矣.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奚以美爲?”

맛을 따져 무엇 하겠느냐고 대꾸하고,

勸之衣 則辭曰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衣廣袖 不閑於體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衣新不能負塗矣.”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

歲元日朝 始笠帶衣屨

해마다 정월 초하루 아침이나 되어야 비로소 의관을 갖추어 입고

遍拜其隣里

이웃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는데

還乃衣故衣 復荷糞入里中

세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헌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삼태기를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네.

如嚴行首者

엄 행수와 같은 이는

豈非所謂穢其德 而大隱於世者耶?

아마도

‘자신의 덕을 더러움으로 감추고 세속에 숨어 사는 대은(大隱)’

이라 할 수 있겠지.

 

[주D-007]자신의 …… 대은(大隱) : 한(漢) 나라 때의 동방삭(東方朔)이나 위진(魏晉) 때의 죽림칠현(竹林七賢)과 같은 인물을 가리킨다.

 

傳曰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素富貴 行乎富貴

‘부귀를 타고나면 부귀하게 지내고

素貧賤 行乎貧賤.’

빈천을 타고나면 빈천한 대로 지낸다.’ 하였으니,

夫素也者 定也.

타고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네.

詩云

《시경(詩經)》에,


夙夜在公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공소(公所)에 있으니, 寔命不同 진실로 명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命也者 分也.

명이란 그 사람의 분수를 말하는 것이네.

夫天生萬民 各有定分

하늘이 만백성을 낼 때 정해진 분수가 있으니

命之素矣 何怨之有?

명을 타고난 이상 무슨 원망할 까닭이 있으랴.

[주D-008]이른 …… 때문이라 : 《시경》 소남(召南) 소성(小星)의 한 구절이다.

 

食蝦鹽 思鷄子

그런데 새우젓을 먹게 되면 달걀이 먹고 싶고

衣葛 羨衣紵.

갈포옷을 입게 되면 모시옷이 입고 싶어지게 마련이니,

天下從此大亂

천하가 이로부터 크게 어지러워져

黔首地奮(疑奪) 田畝荒矣.

백성들이 들고일어나고 농토가 황폐하게 되는 것이지.

陳勝 ․ 吳廣 ․ 項籍之徒

 

진승(陳勝) · 오광(吳廣) · 항적(項籍)

의 무리들은

其志豈安於鋤耰者耶?

그 뜻이 어찌 농사일에 안주할 인물들이었겠는가.

易曰

《주역》에 이르기를,

“負且乘 致寇至.”

 

‘짐을 짊어져야 할 사람이 수레를 탔으니 도적을 불러들일 것이다.’

한 것도

其此之謂也.

이를 두고 말한 것이네.

故苟非其義

그러므로 의리에 맞지 않으면

雖萬鍾之祿 有不潔者耳.

만종(萬鐘)의 녹을 준다 하여도 불결한 것이요

不力而致財

아무런 노력 없이 재물을 모으면

雖埒富素封 有臭其名矣.

막대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그 이름에 썩는 냄새가 나게 될 걸세.

 

[주D-009]진승(陳勝) · 오광(吳廣) · 항적(項籍) : 진승과 오광은 진(秦) 나라 때 함께 농민 반란을 일으켰다. 항적은 곧 항우(項羽)이니, 그의 자(字)가 우(羽)이다.
[주D-010]짐을 …… 것이다 :
《주역》 해괘(解卦) 육삼(六三)의 효사이다.

 

故人之大往 飮珠飯玉 明其潔也.

그런 까닭에 사람이 죽었을 때 입속에다 구슬을 넣어 주어 그 사람이 깨끗하게 살았음을 나타내 주는 걸세.

夫嚴行首 負糞擔溷以自食 可謂至不潔矣.

엄 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然而其所以取食者는 至馨香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其處身也는 至鄙汚나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而其守義也는 至抗高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推其志也는 雖萬鍾可知也.

그 뜻을 미루어 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

繇是觀之 潔者有不潔

이상을 통해 나는 깨끗한 가운데서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고

而穢者不穢耳.

더러운 가운데서도 더럽지 않은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네.

故吾於口體之養 有至不堪者

나는 먹고사는 일에 아주 어려운 처지를 당하면

未嘗不思其不如我者.

언제나 나보다 못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

至於嚴行首 無不堪矣.

엄 행수를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었지.

苟其心無穿窬之志 /*窬(유):협문, 속이 비다. 穿窬(천유):도적질하다.

진실로 마음속에 좀도둑질할 뜻이 없는 사람이라면

未嘗不思嚴行首.

언제나 엄 행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

推以大之 可以至聖人矣.

이를 더 확대시켜 나간다면 성인(聖人)의 경지에도 이를 것일세.

故夫士也 窮居達於面目 恥也.

선비로서 곤궁하게 산다고 하여 얼굴에까지 그 티를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旣得之也 施於四體 恥也.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其始嚴行首 有不忸怩者 幾希矣. /*忸怩(뉵니):부끄러워하다.

엄 행수와 비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거의 드물 걸세.

故吾於嚴行首 師之云乎

그래서 나는 엄 행수에 대하여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네.

豈敢友之云乎?

어찌 감히 벗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故吾於嚴行首 不敢名之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엄 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而號 曰穢德先生.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것일세.” 하였다.

 

[두타산 &삼척 죽서루]

'한문학 > 연암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지원, 광문자전/ 초기 九傳  (0) 2008.09.16
박지원, 민옹전(閔翁傳) -초기 九傳  (0) 2008.09.15
박지원, 마장전/ 초기 九傳  (0) 2008.09.14
4.허생후지(許生後識) Ⅱ  (0) 2008.09.07
허생후지1  (0) 2008.09.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