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10 년에 나는 구강군사마로 좌천되었다. 다음해 가을 손님을 배웅하러 분포강(湓浦江) 포구에 나갔다가, 배 속에서 비파 타는 소리를 들었다. 쟁쟁(錚錚)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들으니 전에 서울(京都)에서 듣던 소리였다. 그 사람을 찾아보니 원래 장안에서 노래하던 여자였는데, 일찍이 유명한 穆, 曹 두 선생에게서 비파를 배운 비파의 고수였다고 한다.
나이 들어 모습이 쇠퇴하게 되자 장사꾼에게 시집가서 의지하게 된 것이라 한다. 끝내 술상을 차리게 하고 몇 곡 청해 들었는데, 연주를 끝내고 참담해 졌다.젊고 예뻤을 시절엔 웃고 즐기기만 하다가 이제는 시골구석으로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고.
나(백거이)도 이 시골로 쫓겨 온지 2년, 스스로 편안하게 마음먹으려 했지만,오늘 밤 이 여인의 말에 끝내 감격해서 비로소 멀리 귀양살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하여 긴 長句의 노래를 지어 이 여인에게 보낸다. 모두 612 字인데, <琵琶行> 이라 부른다.
44세 때인 원화(元和) 10년(815년), 백낙천(白樂天)은 어처구니 없는 죄명으로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강주(江州)는 지금의 구강시(九江市). 천하 명산 여산(廬山) 아래인 관계로 그리 싫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사마(司馬)란 관직은 요즘으로 이야기해서 군대의 문관(文官) 자리여서 역시 한적한 자리였다. 관청에 나가봐야 뚜렷하게 할 일이 없었던 그는 그냥 빈둥거렸다. 백낙천(白樂天)이 뒤집어쓴 죄명은 일종의 월권죄였는데 시말은 이러했다.
장안(長安)에서 역시 낮은 자리에 있었을 당시 재상 무원형(武元衡)이 자객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속히 서둘러 범인을 체포하지 않는 조정의 처사에 의분을 느낀 백낙천은 황제에게 상소했다. 그런데 그 당시는 상소(上疏)도 아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司諫 자리에 있는 사람만이 가능했다. 백낙천은 의분에 못이겨 나섰던 것인데 평소 백낙천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반대파들은 간직(諫職)을 통하지 않고 직접 상소한 것을 빌미로 이역만리 객지로 폄적(貶謫)시켜 버린 것이다.
졸지에 장안(長安)에서 내쫒긴 백낙천은 혈혈단신 이역만리 객지로 추방당한 까닭에 울분을 삭이지 못한채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듬해 가을 어느날 저녁, 마침 손님을 배웅하러 강주(江州) 나룻터인 분포구(湓浦口)에 나섰다가 마침 애절하게 들리는 비파(琵琶) 가락을 듣게 된다. 그 주인공을 찾아 자리를 함께 해보니 이미 나이가 들어 장안에서 물러난 퇴기(退妓)였다. 지금은 늙고 시들어 장사꾼의 아낙으로 전락했지만 한창 때는 장안(長安)에서 비파와 노래로 이름을 날렸던 여인이었다. 어쩐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며 좌중의 가슴을 파고 들었던 것이다. 다시 술자리를 마련하고 정중하게 한곡을 청하자 그녀는 비파 소리에 젖어 영고성쇠가 무상했던 자신의 신세를 떨어 놓았다. 유랑하는 그녀의 신세는 마침 2년째 객지에서 쓸쓸하게 지내는 백낙천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가슴에 저미는 동료의식을 못견딘 백낙천은 마침내 616자 장편 서사시 <비파행(琵琶行)>을 지어 그녀에게 바치게 된다. 백낙천은 작품에서 그녀와의 만남을 이렇게 서술했다:
同是天涯淪落人우리는 똑같이 하늘가에 떠도는 신세
相逢何必曾相識설령 초면인들 그게 무슨 상관이랴
바로 그날 밤 양자강 강나루엔 빨갛게 단풍이 불타고 하얗게 갈대가 흔들릴 때, 강물에 풍덩 명월(明月)이 잠겼고 더구나 소쩍새 피를 토하고 원숭이 슬프게 울었을 때임에랴. 자리를 함께 했던 나그네와 동료 관리들은 비파 소리에 얼굴 묻고 흐느꼈는 바 그중에서도 소매자락이 가장 흥건했던 자는 누구였을까? 작품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座中泣下誰最多座中에 어느 누가 가장 서럽게 울었느뇨?
江州司馬靑衫濕江州司馬의 푸른 소매자락이 제일 흠뻑 젖었어라.
<비파행>의 배경이자 현장이던 심양 강가에 당나라 때 강주(江州) 사람들은 비파정(琵琶亭)을 지어 백거이 명작의 산실을 기념했다. 이 비파정은 1천여년 강물을 굽어보며 백거이 문학을 증언하다가 청나라 말기 병란(兵亂)에 소실되었다. 그후 새로 건립한 비파정(琵琶亭)이 양자강 장강대교(長江大橋) 옆에 서있다.
❙ 注 疏1)夕展(석전):밤의 궁전. 悄然(초연):외롭고 쓸쓸함. 2)孤燈(고등):단 한 개의 등불. 3)遲遲鐘鼓(지지종고):鐘鼓는 시각을 알리는 종과 북. 遲遲는 밤을 새우는 현종에게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표현한 것임. 4)耿耿(경경):반짝이는 상태. 星河(성하):은하수.
❙ 注 疏1)鴛鴦瓦(원앙와):원앙새 모양의 기와. 霜華(상화):서리. 2)翡翠衾(비취금):물총새 깃털을 수놓은 이부자리. 翡는 물총새 수컷이고 翠는 암컷. 부부의 의가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3)悠悠(유유):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 4)曾(증):일찌기 ~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경험을 나타내는 말. 때문에 不曾은 일찍이 ~한 일조차 없다는 뜻. 현종은 꿈에서 양귀비의 혼백이라도 만나고자 하였으나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4단
사천의 한 도사가 서울로 와 그 법술로 양귀비의 꽃다운 혼을 찾을 수 있다며 선산에 들어가 그녀와 만난 이야기.
❙ 注 疏1)臨邛(임공):蜀의 지명. 道士(도사):신선의 일을 수도한 사람. <양태진 외전>에 의하면 촉에서 도사 楊通幽가 왔다고 기록되어 있음. 鴻都客(홍도객):한나라 때부터 있던 홍도문 안에 나그네로 거하던 손님. 2)精誠:진심을 다한 정신력. 致魂魄(치혼백):죽은자의 혼백을 불러 내는 일. 3)輾轉(전전):잠자리에서 뒤척거림. 思(사):사모의 정. 4)方士(방사):道士와 같음. 殷勤(은근):정성을 다해. 覓(멱):찾다. 시는 이제 다시금 전개되어 새로운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간다. 이 새로운 전개는 현종의 슬픔을 없애주려는 한 인물에 의하여 시작된다. 그 사람은 신비로운 초자연 세계에 능통한 道士, 곧 도교의 수도자였다.
❙ 注 疏1)排雲(배운):구름을 헤치다. 馭氣(어기):바람을 타다. 2))碧落(벽락):푸른 하늘. 도교에서 말하는 동방의 제1천은 푸른하늘로 碧霞(푸른안개)가 차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함. 黃泉(황천):대지 깊숙한 곳으로 황색물이 솟는 곳. 저승. 3))茫茫(망망):끝없이 넓은 상태. 이리하여 위로는 하늘 끝까지, 아래로는 황천까지 찾아 보았으나 ‘兩處’ 모두 망망하기만 할 뿐 양귀비는 보이지 않았다.
❙ 注 疏1)太眞(태진):양귀비가 여자 도사였을 때의 이름. 양귀비가 현종의 애인으로 신분을 바꾸면서 세상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일단 여자 도사가 되었던 때의 이름이 태진이었다. 2)雪膚(설부):눈과 같이 새하얀 피부. 花貌(화모):꽃과 같이 아름다운 얼굴. 參差(참치):잘 어울린다. 원래는 길고 짧고 들쑥 날쑥하여 가지런하지 못한 상태. 3)西廂(서상):서쪽에 위치한 방. 玉扃(옥경):옥으로 장식한 자물쇠. 扃(경):빗장, 문, 출입문. 4)轉敎小玉報雙成(전교소옥보쌍성):소옥이 우선 쌍성에게 보고하고 쌍성이 태진에게 보고하는 순서를 취하는 것.
이 대목에서 시는 아주 간단하면서 또한 고사를 사용하여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난해한 감이 있다. 진홍의 <장한가전>에 의하면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수도자의 찾는 소리에 따라서 문으로 나온 것은 두 여자였는데,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잠시 뒤에 이번에는 푸른 옷차림의 하녀가 나와 어디서 왔는가 물었다. 당나라 천자의 사자라고 하며 찾아온 뜻을 말하자, 지금 주무시고 계시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자는 문밖에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구름에 가리워지며 해가 저물고, 문은 닫힌 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수도자는 숨을 죽이고 손을 모은 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소옥이 전교하여 쌍성에게 보하다”란 구절은 위와 같은 상태를 노래한 것이다. 소옥은 처음에 나왔던 여자요, 쌍성이란 나중에 나왔던 푸른 옷차림의 시녀이다. 소옥이나 쌍성은 모두 한 무제와 관계 있는 선녀 이야기 속에 선녀의 시녀로 나오는 이름인데, 그것을 여기서 빌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이윽고 푸른 옷차림의 시녀는 여주인이 눈뜨기를 기다려 그 사실을 보고하였다.
3)珠箔(주박):옥으로 장식한 발. 銀屛(은병):은졍풍. 迤邐(이이):이어져 계속되고 있는 상태.
우선 옷을 손에 집어 들었다. 衣란 언제나 치마(裳)와 상대되는 말로서 저고리를 의미한다. 뒤이어 베개를 밀쳐 치웠다. 그리고 일어났다. 일어난 뒤 침실 안을 거닐어 배회하였다. 잠시 뒤 놀라움에서 깨어나자, 사자를 만나겠다고 하여 침실을 나오는데 침실을 중심으로 여러 겹으로 드리운 진주 발과 은병풍이 깊숙한 안쪽에서부터 점점 차례로 열렸다. 여주인이 접견소로 가기 위한 준비이다. ‘이리’는 의음어로서, 여러 겹 겹쳐진 것이 뒤이어 변화를 일으키는 형용의 말로서 부사이다. 푸른 옷의 시녀는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수도자에게 말했다. “이리 오시지요.” 수도자가 접견소 앞에 엎드려 있자 진주 발이 걷어 올려지는 가운데 한 여인이 대여섯 명의 시녀를 거느리고 나왔다.
백거이의 에로티시즘은 공상 세계에서는 한층 활발하게 작용한다. 잠에서 막 깨어 일어났기 때문에 머리카락은 한쪽으로 치켜져 있다. "화관"은 선녀의 관인데 그것 역시 단정하지 못하다. "堂"은 건물의 높은 곳인데, 거기서 이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흩어진 자세지만 단정하게 가꿀 경황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자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 注 疏1)人寰(인환):인간 세계. ‘환’은 지역 또는 영역의 뜻. 2)舊物(구물):그 옛날 받은 물건. <장한가전>에 의하면 귀비는 현종과 맺어지던 첫날밤 사랑의 징표로 금차와 전합을 받았다고 함. 3)鈿合(전합):나전으로 手工한 작은 상자. ‘合’은 ‘盒’과 같다. 金釵(금차):황금비녀. 한 쌍으로 되어 있음. 寄將去(기장거):가져 가게 함. 아무리 인간 세상을 살펴보아도 그리운 장안, 폐하께서 계시는 장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그저 주위에 자욱한 먼지와 안개뿐. 태진은 푸른 옷의 시녀에게 명했다. “그것을 가져 오너라” 시녀가 가져온 것은 두 개의 물품이었다. 하나는 나전 상자였고, 또 하나는 금비녀였다. 그 두 가지는 모두 결혼날 현종이 기념으로 준 물건이었다. “이것을 폐하께 드리시오. 옛 사랑의 추억입니다.”
❙ 注 疏1)一股(일고):비녀의 한 쪽. 一扇(일선):뚜껑 달린 상자의 뚜껑 또는 상자 중 한 쪽. 2)天上人間(천상인간):지금은 천상에 있는 나(귀비)와 인간계에 있는 현종이지만. 뒤이어 여인은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이 금비녀와 나전 상자처럼 지금은 비록 천상과 인간 세상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서로의 마음이 이 금비녀의 황금처럼 또한 나전 상자의 조개처럼 굳세기만 하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폐하에게 전해 주시오.’ 수도자는 다시 한번 엎드리며 말하였다. “잘 알겠습니다. 이 두 가지 물품도 틀림없이 전하겠습니다.
❙ 注 疏1)寄詞(기사):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함. 2)兩心知(양심지):현종과 귀비 두 사람의 마음만이 알고 있다. 3)長生殿(장생전):화청궁 안에 있는 궁전. 4)私語:비밀스런 속삭임.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폐하께서 믿지 못하실지 모릅니다. 혹시 폐하만이 아시는 비밀된 말씀이라도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을 증거로 폐하께 복명하겠습니다.” 선녀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보 10년 칠월 칠석 날, 우리는 이산에 있는 이궁 장생전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 년에 단 한번 만난다고 하는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축복하였습니다. 밤이 깊어 시종들도 옆에서 떠났을 때 폐하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둘은 저 천상의 연인들처럼 다음 세상에서도 그리고 또 그 다음 세상에서도 부부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맹세는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말씀드리십시오.” 이것이 이별에 즈음한 선녀의 말이었다.
❙ 注 疏1)比翼鳥(비익조):남쪽 나라에 사는 새. 암컷과 수컷이 날개가 붙어 있어 언제나 함께 난다고 하는 새. 금슬 좋은 부부에 비유함. 2)連理枝(연리지):나무 밑둥은 두 개의 나무이지만 가지 부분이 하나로 달라붙어 있는 나무. 부부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유함. 3)天長地久(천장지구):老子에 나오는 말. 4)綿綿(면면):오래오래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상태. 이 마지막 두 구절에서 “장한가”라는 제목이 나왔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음과 동시에 불행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의 불행은 모든 사랑의 행복을 사라지게 하고 한스러움만 남긴다. 그래서 “천장지구”지만 “차한면면”하여 “다함없는 한스러운 노래” 곧 “장한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장안의 기녀들은 “저는 백 학사의 장한가 전부를 암송하고 있답니다. 때문에 다른 사람과 같은 수준의 화대로는 안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시인 자신이 그의 친구인 원진에게 보낸 편지 속에서 말하고 있다. 즉, 이 노래는 발표되자 즉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애송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