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 팔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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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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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천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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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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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주희(朱熹,朱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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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 / 주희(朱熹)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 주희()가 무이산()에서 노닐며 지은 한시(漢詩)이고,
무이산은 중국 복건성() 숭안현()에 있는 명산으로 옛날 신인()
무이군()이 이곳에 거주했다고 하여 붙은 이름인데,무이산()이라고도 한다.
무이구곡(武夷九曲)은 청계구곡()이라고도 하는데, 36개의 봉우리와 37암()
사이로 흐르며 계곡과 양안의 절벽은 복건 제일의 명승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구곡(九曲)은 승진동()•옥녀봉()•선기암()•금계암()•철적정()•
선장봉()•석당사()•고루암()•신촌시() 등의 아홉 명소를 일컸는다.

 

山無水不秀 水無山不淸

산무수부수 수무산부청

曲曲山回轉 峯峯水抱流

곡곡산회전 봉봉수포류

산은 물이 없으면 수려하지 않고

물은 산이 없으면 맑지 못하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산이 돌아가고,

봉우리 봉우리마다 물이 감아돈다.

 

武夷山上有仙靈 山下寒流曲曲淸
무이산상유선영 산하한휴곡곡청

欲識箇中奇絶處 櫂歌閑聽兩三聲
욕식개중기절처 도가한청양삼성

무이산 위에 신선 영혼이 있으니
산아래 한류가 굽이굽이 맑고 맑다

그 가운데 절승지를 알고자 할진댄
즐거운 뱃노래를 귀기우려 들어보게

 

一曲溪邊上釣船 만亭峰影잠晴川
일곡계변상조선 만정봉영잠청천
虹橋一斷無消息 萬壑千巖鎖翠煙
홍교일단무소식 만학천암쇄취연

한 굽이 시냇가 낚싯배에 오르니
만서봉 그림자 맑은 내에 잠겼더라
홍교가 한 번 끊어져 소식이 없으니
만학천봉이 푸른 놀에 잠겼더라.

 

二曲停停玉女蜂 揷花臨水爲誰容
이곡정정옥녀봉 삽화림수위수용

道人不複荒(作陽)臺夢 興入前山翠幾重
도인불복황(작양)대몽 흥입전산취기중

이곡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옥녀봉아 꽃처럼
예쁜 단장 누구를 위한 꾸밈인고

도인은 황대몽(荒臺夢)을 다시 꾸지 않는데
흥에 겨워 앞산드니 푸르름이 첩첩이네

三曲君着袈壑船 不知停櫂幾何年
삼곡군착가학선 부지정도기하년

桑田海水今如許 泡沫風燈敢自憐
상전해수금여허 포말풍등감자련

삼곡에 매어둔 배를 그대는 보았는가
노젓기를 그만둔 지 몇 해인지 모르겠네

상전이 바다 된 것이 지금부터 언제런가
물거품 풍등 인생 가련하기 그지없다.

 

四曲東西兩石巖 岩花垂露碧氈참 (毛+參)
사곡동서양석암 암화수로벽전참

金鷄규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금계규파무인견 월만공산수만담

사곡의 양쪽에는 바위산이 두곳인데
바위틈속 꽃들에는 이슬 맺혀 더욱 곱고

금닭(金鷄) 울어 아침온다는데 본 이는 없었나니
달은 빈 산에 가득하고 물은 못에 가득하더라

 

五曲山高雲氣深 長時煙雨暗平林
오곡산고운기심 장시연우암평림

林間有客無人識 欲乃聲中萬古心
임간유객무인식 욕내성중만고심

오곡의 산은 높고 구름 기운 깊은데
긴 때에 안개비 평림에 어둡더라 숲사이

나그네를 알아보는 사람 없고
사공의 노래 소리 세상 근심 여전하네

 

六曲蒼屛繞碧灣 茅茨終日掩柴關
육곡창병요벽만 모자종일엄시관
客來倚櫂岩花落 猿鳥不驚春意閒
객래의도암화락 원조불경춘의한

육곡의 굽이에 푸른 병풍이 푸른 물굽이를 둘렀으니
띠집에 끼인 이끼 종일토록 사립문 닫혔는데
노젓는 나그네 옷에 꽃잎은 떨어지고
원숭이와 새들은 놀래지 않고 봄 뜻이 한가하더라.

 

七曲移船上碧灘 隱屛仙掌更回省
칠곡이선상벽탄 은병선장갱회성

却憐昨夜峰頭雨 添得飛泉幾度寒
각연작야봉두우 첨득비천기도한

칠곡에 배를 몰아 푸른 여울 올라가서
은병봉과 선장암을 다시금 돌아보니 가히 아름답다

어젯밤 봉우리에 내린 비여
비천은 얼마나 찬 것을 얻었는고

 

八曲風煙勢欲開 敲樓岩下水濚廻
팔곡풍연세욕개 고루암하수영회

莫言此處無佳景 自是遊人不上來
막언차처무가경 자시유인불상래

여덟 굽이 바람에 연기 형세 열리고
고루암(鼓樓巖) 바위 아래 맑은물 돌아드네

이곳에 좋은 경치 없다고 말 말게나
여기부터 속인은 올라갈 수 없다네

 

九曲將窮眼豁然 桑麻雨露見平川
구곡장궁안활연 상마우로견평천

漁郞更覓桃源路 除是人間別有天
어랑갱멱도원로 제시인간별유천

아홉 굽이 장차 다해 눈이 훤히 열리니
뽕나무 삼나무 비이슬이 평천을 보누나

어랑이 다시 무릉 도원 찾지만은
이게 바로 인간 세상 천하 절승 별천지네








 

 

[주]젊은 시절 아미산에서 도술울 연마했던 이백에게 달은 평생 동안 그의 반려이고 이상의 지표였다.

峨眉山月歌(아미산월가) : 아미산의 반달을 보며

- 李白 (701-762)

峨 眉 山 月 半 輪 秋 가을밤 아미산에 반달 걸리니

影 入 平 羌 江 水 流 달그림자는 평강에 떠 강물 따라 흐르네

夜 發 淸 溪 向 三 峽 밤에 청계를 떠나 삼협으로 향하니

思 君 不 見 下 逾 州 그대를 그리며 만나지 못하고 유주로 내려가네

 

[해설] 소월의 시에서처럼 고유명사인 지명이 모두 '어머니', '대지', '고향' 처럼 강력한 서정성을 자극하며 보통명사화한다. 아미산, 평강강, 청계, 삼협, 유주.

 

 

夜思<밤에 그리워하다>

- 李白

 

牀 前 明 月 光 평상 앞의 밝은 달빛

疑 是 地 上 霜 지상에 내린 서리인 듯.

擧 頭 望 明 月 고개 들어 밝은 달 쳐다보고

低 頭 思 故 鄕 머리 숙여 고향 그리네.

[陽韻] /․牀(상);평상,침상,마루

 

아미산 주소창. 아름다워라. 모두 정부의 관광사진이군요.

http://blog.naver.com/nahoii/40046008721

 

 

 

중국 삼산(三山)

* 안휘성 황산(安徽省 黃山) * 徽 아름다울 휘

* 강서성 려산(江西省 廬山) * 廬 농막집 려, 농막집 여

* 절강성 안탕산(浙江省 雁蕩山) * 雁기러기 안, 蕩 넓고크다 탕

  중국의 3산은 황산, 려산, 안탕산이다. 황산은 중국 명산의 장점이 황산이 다 모였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산으로 꼽힌다. “황산을 보고나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려산은 이태백의 자취가 서린 산이고, 안탕산은 동남부 최고의 명산이다.

 

중국 오악(五岳)

* 岳 : 큰산 악. 오악(五岳)은 중국의 다섯 이름난 산을 말한다.

* 동쪽 — 동악태산(東岳泰山, 산둥 성, 1545 m)

* 서쪽 — 서악화산(西岳華山, 산시 성, 1997 m)

* 남쪽 — 남악형산(南岳衡山, 후난 성, 1290 m)

* 북쪽 — 북악항산(北岳恒山, 산시 성, 2017 m)

* 중앙 — 중악숭산(中岳嵩山, 허난 성, 1494 m)

 

중국 4대 불교명산(佛敎名山)

* 지장보살(地藏菩薩)의 구화산(九華山)

*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의 보타산(普陀山)

* 보현보살(普賢菩薩)의 아미산(峨眉山)

*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오대산(五臺山)

 

[주]한국한시의 최고봉은 누가 뭐래도 정지상의 <송인>이다.

送人

-정지상

雨 歇 長 堤 草 色 多 비 개인 긴 뚝에 풀빛이 진한데

送 君 南 浦 動 悲 歌 남포에서 임 보내니 노랫가락 구슬퍼라.

大 洞 江 水 何 時 盡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마를건가.

別 淚 年 年 添 綠 波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에 더하는데.

(<동문선> 권19)

동국여지승람 권51평안도 평양부 산천 남포924쪽,6책 352쪽/동문선19.

*제목을 <파한집>에는 送友人,<성수시화>에는 西京, <대동시선> <동시정수>에는 大同江으로 나타냄.<파한집>에는 送君南浦를 南浦千里로, 添綠波를 添作波로 표기함.

[해설]

그의 탁월한 서정성 내지 감수성을 들 수 있다. 등과하기까지의 고독했던 젊은 날들은 그의 뛰어난 감수성을 갈고 닦아 名器로 단련했을 것이다. <13.送人>의 大同江水何時盡 別淚年年添綠波에서 보여주는 곰살궂은 표현은 그 작품을 천고의 절창으로 떠받들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시구의 내용을 부등식으로 나타내 보기로 하자. 강물을 R이라 하고 눈물을 ‘α’라 하면, 언제나 ‘α> 0’이다. 따라서 ‘R+α>R’이다. 눈물 한 방울로 불어나는 강물, 해마다 강나루에서 이별하는 연인들의 눈물로 강물이 마르지 않는다니 이런 억지가 없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과학적으로도 사리에 딱 들어맞는 이러한 상상력을 표출한 이가 없으니 정지상은 단연코 천고의 절창 자리를 차지하였다. 남포 나루의 강물은 이미 자연의 강이 아니라 시적 화자의 마음 속에 자리한 또 다른 강이다. 이 마음 속의 강물은 눈물 한 방울에도 광풍을 만난 듯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는 그런 강물이다.

[김영동, 정지상 한시의영원한 생명력, 東岳語文論集 31집,東岳語文學會,1996.12.]

정지상 [鄭知常]

?~1135(인종13).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시인.

서경(西京)인으로 초명은 지원(之元).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다. 서경에 두었던 분사국자감시(分司國子監試)에서 진사가 된 후, 서울인 개경(開京)으로 올라와 최종 고시인 예부시(禮部試)를 준비한 듯하다. 1112년(예종 7)에 과거에 급제하여 1113년에 지방직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1114년 중앙관리로 개경에 올라와 벼슬을 했는데, 이 무렵에 사신의 일행으로 송(宋)나라에 가서 해를 넘기고 체류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1127년(인종 5)에 척준경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그것을 인종이 받아들여 척준경을 유배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부터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인종의 총애를 받게 되었다. 척준경을 유배시킨 그 날로 왕명에 의해 기린각에서 〈서경〉을 강론하고 주식(酒食)을 하사받았다. 1130년 선왕(先王)의 벗이자 총신이었던 곽여가 죽자 왕명에 의해 제문과 〈동산재기 東山齋記〉를 짓기도 했다. 시에서 뿐만 아니라 문(文)에서도 명성을 떨쳐 당대에 김부식과 쌍벽을 이루었다.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자는 논의와 서경천도(西京遷都)를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을 때 묘청과 함께 서경천도를 주장했는데, 중앙문벌귀족의 중심세력인 김부식은 이를 강력히 반대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서로 대립했다. 1135년 묘청은 인종의 서경천도의 뜻이 미약해지자 성급하게 난을 일으켰다 (→ 묘청의 난). 관군 총사령관으로 반란진압에 나선 김부식은 먼저 국론을 통해 정지상·김안·백수한 등이 반역에 가담했으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개경에 있었던 그는 즉시 체포되었다. 체포되어온 그는 김부식의 사명(私命)에 의해 궁문 밖에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이런 처사를 두고 후에 이규보는 〈백운소설〉에서 "시중(侍中) 김부식과 학사(學士) 정지상은 문장으로 한때 이름을 나란히 했다. 두 사람은 알력이 생겨 서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라고 적고, 김부식이 자기에 의해 피살되어 음귀(陰鬼)가 된 정지상에 의해 죽었다는 일화를 실었다.

그는 불교와 도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지니면서 풍수도참설에도 관심이 많았다. 결국 묘청의 난에 연좌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계속 격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시인으로서의 재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문집으로 〈정사간집 鄭司諫集〉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고 20수가량의 시와 7편의 문장이 〈동문선〉·〈파한집〉·〈백운소설〉·〈고려사〉 등에 실려 전한다.

시는 절구에 능했다고 하나 현재 전하는 것은 율시가 더 많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표현에 뛰어났다. 문자의 수식과 조탁(彫琢)에 비중을 두는 만당시풍(晩唐詩風)을 이루면서도 세속의 번거로움과 갈등을 초월한 맑고 깨끗한 세계를 그렸다. 고사의 인용이 적으며, 감각을 통해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그의 시세계를 두고 후에 홍만종은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했다(→송인). 그러나 시어(詩語)가 너무 다듬어져 만당시풍의 시가 가지는 단점도 지니는데, 이를 두고 최자는 "웅휘(雄輝)하고 깊은 대작(大作)은 없다"라고 평했다. 최치원 이후 고려 전기 한시문학을 주도했던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s=B&i=184936&v=47

[부벽루 & 대동강 & 맨아래가 새벽을 맞은 남포 앞 바다 ]















送陳章甫<陳章甫를 보내며>

-李頎(이기)

四月南風大麥 사월 남풍에 보리는 익어가고

棗花未落桐陰 대추꽃 남아 있고 오동잎 그늘 짙었구나.

靑山朝別暮還見 아침에 이별한 청산 저녁에 다시 보고

嘶馬出門思舊[陽韻]문을 나서다 말 울음소리에 고향을 생각한다

陳侯立身何坦 진후 그대 입신하여 얼마나 도량이 넓었던가?

鬚虎眉仍大 용의 수염에 범의 눈썹, 大人의 이마일레.

腹中貯書一萬卷 뱃 속에 쌓은 책 만 권이라

不肯低頭在草[上聲 養韻]초야에서 굽신거리기 싫겠지

東門酤酒飮我 동문에서 술을 사 우리들에게 먹이고

心輕萬事皆鴻 마음의 가볍기가 온갖 일 기러기 깃털 같았지.

醉臥不知白日暮 취하여 누우면 해 지는 줄 모르고

有時空望孤雲[豪韻]때때로 부질없이 높이떠가는 외론구름 바라보네

長河浪頭連天 황하의 물결 하늘에 닿아 까마득한데

津口停舟渡不 나룻가에 배를 대니 건널 수도 없구나.

鄭國遊人未及家 정나라 나그네는 고향집에 이르지 못했는데

洛陽行子空歎[入聲 職韻]낙양의 나그네는 공연히 탄식하노라.

聞道故林相識 듣건대 고향에는 친구가 많다지

罷官昨日今如[歌韻]벼슬 그만두었으니 지난 날과 오늘 어떠할까?

⋅棗(조);대추. ⋅嘶(시);울다.⋅坦탄;평평하다,넓다.蕩탕;쓸어버리다.

(규);뿔달린 룡. 顙(상);이마.⋅肯긍;수긍하다.莽망;풀,초원,거친 풀.

⋅酤고;술사다. 曹(조);무리,떼⋅鴻(홍);큰 기러기,번성하다.

⋅罷(파);그치다,쉬다,그만두다.

서호 주소창

http://blog.naver.com/nahoii/40045728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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