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eLLuuJePD58 

 

 

朝發白帝城

조발백제성 <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며>

-李白

朝辭白帝彩雲間

(조사백제채운간) 이른 아침 안개 낀 白帝城 떠나

千里江陵一日還

(천리강릉일일환)천리길 江陵을 하루만에 이르렀네.

兩岸猿聲啼不住

(양안원성제부주)  양 언덕 원숭이의 울음소리 그치잖고

輕舟已過萬重山

(경주이과만중산) 경쾌한 배는 이미 삼협의 만첩산 지나왔네.

[韻]

 

https://www.youtube.com/watch?v=OX_CNT6IGUM 

 

楓橋夜泊

풍교야박 <풍교에서 밤에 자다>

- 張繼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 지고 가마귀 우는 하늘에 서리는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강가의 단풍나무와 고기잡이횃불을 시름겨워 바라본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에선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한밤의 종소리 배에까지 들리네.

[先韻] ․泊(박);배를 대다,머물다

◇字眼:愁. 宋 葉少縕 <石林詩話> 歐陽修가 일지기 그 한 밤중에는 종을 치지 않을 때라고 하여 병통으로 여겼지만 대개 公이 일지기 吳中에 가보지 못하여서 그렇게 말한다.지금도 吳中의 절에서는 실제로 한밤에 종을 친다. 장계는 과거에 낙방하고 귀가 중 한산사 근처 풍교에서 자다.

 

[삼협]/ 사이즈가 큰 사진은 운영자의 서툰 솜씨 사진임.





 

 

<중복 특선여행 선물 세트>[무료]

계림 팔각채
http://blog.daum.net/guideman/14050397

무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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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계 천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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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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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山九曲歌 10수

-율곡 이이

http://www.jongryul.com/Package/program_basic/default/ex_default.php?type=read&bbscode=bbs4_men2sub105&num=10

[1]
高山 九曲潭(고산구곡담)을 사람이 모로더니
誅茅卜居(주모복거)하니 벗님내 다 오신다
어즈버 武夷(무이)를 想像(상상)하고 學朱子(학주자)를 하리라

[2]
一曲(일곡)은 어드매오 冠岩(관암)에 해 빗쵠다
平蕪(평무)에 내 거든이 遠近(원근)이 그림이로다
松間(송간)에 綠 (녹준)을 녹코 벗 온 양 보노라

[3]
二曲(이곡)은 어드매오 花岩(화암)에 春滿(춘만)커다
碧波(벽파)에 곳츨 띄워 野外(야외)에 보내노라
사람이 勝地(승지)를 몰온이 알게 한들 엇더리

[4]
三曲(삼곡)은 어드매오 翠屛(취병)에 닙 퍼젓다
綠樹(녹수)에 山鳥(산조)난 下上其音(하상기음)하난 적의
盤松(반송)이 受淸風(수청풍)한이 녀름 景(경)이 업새라

[5]
四曲(사곡)은 어드매오 松岩(송암)에 해 넘거다
潭心 岩影(담심 암영)은 온갓 빗치 잠겻세라
林景(임경)이 깁도록 죠흐니 興(흥)을 계워 하노라

[6]
五曲(오곡)은 어드매오 隱屛(은병)이 보기 죠희
水邊 精舍(수변 정사)은 瀟灑(소쇄)함도 가이업다
이中에 講學(강학)도 하려니와 詠月吟風(영월음풍) 하리라

[7]
六曲(육곡)은 어드매오 釣峽(조협)에 물이넙다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즐기는고
黃昏(황혼)에 낙대대를 메고 帶月歸(대월귀)를 하노라

[8]
七曲(칠곡)은 어드매오 楓岩(풍암)에 秋色(추색) 좃타
淸霜(청상) 엷게 치니 絶壁(절벽)이 錦繡(금수)ㅣ로다
寒岩(한암)에 혼자 안쟈셔 집을 닛고 잇노라

[9]
八曲(팔곡)은 어드매오 琴灘(금탄에) 달이 밝다
玉軫 金徽(옥진 금휘)로 數三曲(수삼곡)을 노는말이
古調(고조)을 알리 업쓴이 한자 즐겨 하노라

[10]
九曲(구곡)은 어드매오 文山(문산)에 歲暮(세모)커다
奇巖 怪石(기암괴석)이 눈속에 무첫셰라
遊人(유인)은 오지 안이하고 볼껏 업다 하드라


● 해설
<고산구곡가>는 이이가 선조 10년 42세의 나이로 해주로 퇴거하여 선적봉과 진암산 두산 사이를 흐르는 구곡 유수의 제오곡인 고산 석담에 복거하고 그 다음해 여기에 은병정사를 세워 은거하면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서 지었다는 총 10수로 된 연시조이다.
16세기 사림파들은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조선조를 개혁코자 하였는데 그 실천 요강은 주자에 집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의지가 좌절되면 서슴없이 강호로 돌아 갔는데 그들에게는 주자의 삶과 그의 학문, 그리고 그의 문학이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주자의 무이구곡에서의 삶이 동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가 지은 <무이도가>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무이도가>는 지고의 시로 인식되어 깊은 천착이 있었는데, 이황은 <무이도가>에서 차음하여 <한거독무이지차구곡자가운>을 지었고, 율곡 이이는 시조의 형식을 빌어 <산구곡가>를 지었다. 조선조의 주자학적 지식인들이 <무이도가>를 수용함에 있어 이황의 경우처럼 거의 한시로 차음한데 반해 이이는 시조의 형태로 변용하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고산구곡가>는 연시조의 유산중 구조와 내용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작품인데 같은 강호 자연을 노래한 퇴계의 <도산십이곡>이나 입암의 직립불기, 높은 기상과 강건함, 묵묵한 기상을 읊어 자연에의 몰입을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머도록'과 '먼 빗치'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고산의 <어부사시사>와도 다르다.
<고산구곡가>는 첫수를 서사로 시작하여 1곡에서 9곡까지 노래하는 구곡체 시가라 할 수 있는데, 퇴계.율곡 이후 17세기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적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애송되기도 하고, 자연을 소재로 한 많은 한시 창작에 영향을 미쳐 20세기 초엽까지 많은 구곡체 시가가 지어졌다. 그러나 한문 구곡체 시가의 작품 수는 많으나 국문 구곡체 시가는 율곡의 <고산구곡가>와 이것의 영향을 직접 받은 권섭의 <황강구곡가>, 가사 형태의 시가인 채헌의 <석문정구곡도가> 등 몇 편에 불과하다.
구곡체 시가 가운데 <고산구곡가>는 형태상 구곡을 읊었다는 점에서 <무이도가>의 영향을 받았으나 의미상 구조나 내용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栗園九谷>율원구곡

-중봉 조헌

天成老嶽悶精靈 하늘이 오랜 옛날에 깊은 골짜기 만들어 사람을 걱정스럽게 하나

嶽下泉流步步淸 산 아래 흐르는 샘물 한결같이 맑구나

行到栗原奇勝處 그 물 율원에 이르러 빼어난 경치 이루니

武夷須續棹歌聲 모름지기 무이계곡의 노 젓는 뱃노래가 이어지는구나

[무이구곡]






[주]시조 도산육곡은 전후육곡이어서 전12곡이 된다. 그래서 도산12곡이라고도 한다.

도산육곡(陶山六曲) 12수

-퇴계 이황

http://blog.naver.com/csi1199/50000464206

[하단에 아래아자 사용한 원문 있음]

발(跋) 부문 전문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와(淫蛙)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와 방탕에다 설만(褻慢)과 희압(戱狎)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瞥)이 지은 '육가(六歌)'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傳)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溫柔敦厚)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

('한림별곡'이나 이별의 '육가'는 온유돈후의 실이 적음 )

노인이 본디 음률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음악을 듣기에는 싫어하였으므로, 한가한 곳에서 병을 수양하는 나머지에 무릇 느낀 바 있으면 문득 시로써 표현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시는 옛날의 시와는 달라서 읊을 수는 있겠으나, 노래하기에는 어렵게 되었다. 이제 만일에 노래를 부른다면 반드시 이속(俚俗)의 말로써 지어야 할 것이니, 이는 대체로 우리 국속(國俗)의 음절이 그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시는 노래 부를 수 없으므로, 노래로 부르기 위해서는 우리말로 지어야 함 )

그러기에 내가 일찍이 이별의 노래를 대략 모방하여 '도산육곡'을 지은 것이 둘이니, 기일(其一)에는 '지(志)'를 말하였고, '기이(其二)'에는 '학(學)'을 말하였다. 아이들로 하여금 조석(朝夕)으로 이를 연습하여 노래를 부르게 하고는 궤를 비겨 듣기도 하려니와, 또한 아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노래를 부르게 하는 한편 스스로 무도(舞蹈)를 한다면 거의 비린(鄙吝)을 씻고 감발(感發)하고 융통(融通)할 바 있어서, 가자(歌者)와 청자(廳者)가 서로 자익(資益)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도산십이곡'을 지으니 가자나 청자 모두 자익이 있을 것임 )

돌이켜 생각컨데, 나의 종적이 약간 이 세속과 맞지 않는 점이 있으므로 만일 이러한 한사(閑事)로 인하여 요단(鬧端)을 일으킬는지도 알 수 없거니와, 또 이것이 능히 강조(腔調)와 음절에 알맞을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일 건(一件)을 써서 서협(書莢) 속에 간직하였다가, 때때로 내어 완상(玩賞)하여 스스로 반성하고, 또 다른 날 이를 읽는 자의 거취(去取)의 여하(如何)를 기다리기도 한다.


가정(嘉靖) 44년(1565) 을축년 3월 16일 도산 노인은 쓴다.

(도산십이곡'을 읽는자의 거취의 여하를 기다리기로 하고 도산십이곡에 대한 감회)

<도산육곡之一> /言志

1. 기일(其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렇다 어떠하리
하믈며 천석고황(泉石膏황)을 고쳐 무슴 하료.

2. 其二
연하(煙霞)에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病)으로 늘거나뇌
이 중에 바라는 일은 허물이나 업고쟈.


3. 其三
순풍(淳風)이 죽다하니 진실(眞實)로 거즈마리
인성(人性)이 어지다 하니 진실(眞實)로 올한 말이
천하(天下)에 허다 영재(許多英才)를 소겨 말솜할가.

4. 其四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듯이 됴희
백설(白雪)이 재산(在山)하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5. 其五
산전(山前)에 유대(有臺)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有水)ㅣ로다.
때 만한 갈매기는 오명가명 하거든
어디다 교교 백구(皎皎白鷗)는 멀리 모습 하는고

6. 其六
춘풍(春風)에 화만산(花萬山)하고 추야(秋夜)에 월만대(月萬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믈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야 어늬 그지 이슬고.


<도산육곡之二> /言學

1. 其一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완락재 소쇄(瀟灑)한뒤
만권 생애(萬卷生涯)로 낙사(樂事)이 무궁(無窮)하여라.

이 중에 왕래 풍류(往來風流)를 닐어 모습 하고

2. 其二
뇌정(雷霆)이 파산(破山)하여도 농자(聾者)는 못 듣느니
백일(白日)일 중천(中天)하여도 고자(고者)는 못 보느니
우리는 이목 총명 남자(耳目聰明男子)로 농고같이 마로리

3. 其三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 못 뵈
고인을 못 뵈도 가던 길 알펴 잇내
가던 길 알펴 잇거든 아니 가고 엇덜고

4. 其四
당시(當時)에 가던 길을 몃회를 보려 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아 도라온고?
이제야 도라오나니 너의 모습 마로리.

5. 其五
청산(靑山)은 엇찌하야 만고(萬古)애 프르르며,
유수(流水)  엇찌하야 주야(晝夜)에 긋디 아니는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

6. 其六
우부(愚夫)도 알며 하거니 긔 아니 쉬운가?
성인도 못다 하시니 지 아니 어려온가?
쉽거나 어렵거나 중에 늙는 주를 몰래라.

해석 참조

http://blog.daum.net/kumho1983/11788113

[도산구곡 중 제8곡]






https://www.youtube.com/watch?v=rEOiI7Qfinw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

한가로이 지내며 <무이지>를 읽고 <무이도가> 를 차운하다 10수

 

퇴계 이황

http://thugjong1.cafe24.com/bbs/view.php?id=list1&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2

<무이도가(武夷櫂歌)> 를 차운하여 시를 짓고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 를 감상하고

<무이지(武夷志)> 를 읽고 무이구곡(武夷九曲)을 상상하는

본격적 삶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퇴계는 어느 날 <무이지>를 읽고 <무이도가> 를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이 시의 제목은 <한거독무이지차구곡도가운십수(閒居讀武夷志次九曲櫂歌韻十首)> 인데

이를 풀이하면 ‘한가롭게 지내면서 <무이지> 를 읽고 <구곡도가> 를 차운한 10수’이다.

시의 제목에서 이 시가 어떻게 지어졌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서 <무이지> 는 중국 무이 지방의 풍물을 기록한 책이다.

물론 무이산과 무이구곡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실려 있다.

퇴계는 이 책을 읽고 상상 속에서 무이구곡을 유람하고 그 감회를 주자의 무이도가 의 형식을 그대로 계승하기 위하여 차운을 하였다.

퇴계가 지은 구곡시(九曲詩)의 대상은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강호(江湖)가 아니라

그 옛날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구곡이었다.

그는 이 시를 지으면서 무이구곡이 가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이렇게 읊었다.


不 是 仙 山 託 異 靈 신선산은 신령에게만 알려지는 게 아니니
滄 洲 遊 跡 想 餘 淸 주희 선생 발자취맑고 시원히 떠오르네
故 能 感 激 前 宵 夢 그러므로 어제밤 꿈에 감격하여
一櫂갱 歌 九 曲 聲 노를 두드리며 구곡가를 이어서 부르네 [갱(庚+貝)]

 

我 從 一 曲 覓 漁 船 
내가 일곡에서 고깃배에 찾아 오르니

天 柱 依 然 瞰 逝 川 
천주봉이 의연하게 서천을 굽어보네

一 自 眞 儒 吟 賞 後
주희 선생한 번 음상한 후로부터는

同 亭 無 復 管 風 烟 
동정에 다시 풍광을 관장하지 못했네


二 曲 仙 娥 化 碧 峰 이곡이라 선녀가 변화한 푸른 봉우리
天 姸 絶 世 정 修 容타고난 미모를단장한 얼굴이라 [정 靑+見]
不 應 更 妛 傾 城 薦 다시는 경국지색 추천 바라지 마시게
閭 闔 雲 深 一 萬 重하늘궁궐 구름 깊어 만겹이나 쌓였다오

三 曲 懸 厓 揷 巨 船 삼곡이라 높은 벼랑에 큰 배가 걸려 있어
空 飛 須 此 怪 當 年 어기서 공중을 날다니 그 때 일 괴이하다
濟 川 畢 竟 如 何 用 내를 건널 땐그렇다면 어떻게 쓰였을까
萬 劫 空 煩 鬼 護 憐 오랜 세월 부질없이 귀신 보호 받았나

四 曲 仙 機 靜 夜 巖 사곡이라 선기암은 밤이 되어 고요한데
金 鷄 唱 曉 羽 毛 敀 금계에 새벽 되니 깃털이 길게 보이네
此 間 更 有 風 流 在 이 사이에 참으로 풍류가 있으니
披 得 羊 구 釣 月 潭 양구 벗고 월담에서 낚시를 하리라 [구 求아래 衣]

當 年 五 曲 入 山 深 그 때 주희 선생 오곡의 산 깊이 무이정사 지으시고
大 隱 還 須 隱 藪 林 대은이 도리어 수풀 속에 은거하셨네
擬 把 瑤 琴 彈 夜 月 요금을 빗겨 안고 달밤에 타 본들
山 前 荷 궤 肯 知 心 산 앞의 삼태기 멘 사람 이 마음 알겠는가

六 曲 回 環 碧 玉 灣 육곡이라 푸른 옥빛 물굽이 둘러 있고
靈 踪 何 許 但 雲 關 신령한 자취는 어디인가 구름관문뿐이로다
落 花 流 水 來 深 處 꽃잎 뜬 물 따라 깊은 곳찾아오니
始 覺 仙 家 日 月 閑 비로소 알겠네 선가의 세월 한가로움을

七 曲 撑고 又 一 灘 칠곡이라 상앗대 잡고 또 한 여울 오르니[고 竹+高]
天 壺 奇 勝 最 堪 看 천호봉의 기이한 풍경 가장 볼 만하네
何 當 喚 取 流 霞 酌 어찌하면 신선 불러 유하주 란 잔얻어먹고
醉 挾 飛 仙 鶴 背 寒 취하여 비선을 끼고 학의 등을 타볼꼬?

八 曲 雲 屛 護 水 開 팔곡이라 구름병풍호수 둘러 펼쳤는데
飄 然 一 棹 任 旋 廻 표연히 노에 맡기고 물 위를 선회하네
樓 巖 可 識 天 公 意 고루암은 조물주의 뜻을 아는가?
鼓 得 遊 人 究 竟 來 나그네 꼬드겨 끝까지 찾아오게 하네

九 曲 山 開 只 曠 然 구곡이라 산 열리니 눈 앞이 확 트이고
人 烟 墟 落 俯 長 川 인가촌락이긴하천굽어 보네
勸 君 莫 道 斯 遊 極여보시게 이곳에서 유람 끝났다 말하지 말게
妙 處 猶 須 別 一 天 절묘한 곳엔 오히려 모름지기 별천지가 있다오

 

(이황, 퇴계전서 권1)

퇴계는 도산(陶山)의 북쪽에 한서암(寒棲庵)을 지어 처음 은거지로 삼았다가 후에 도산의 남쪽에 도산서당(陶山書堂)과 농운정사(朧雲精舍)를 세우며 구곡원림을 경영하였다.(이황,吾家山誌 권1, 陶山雜詠幷記)

그가 지은 희작칠대삼곡시(戱作七臺三曲詩) 중에 3곡으로 석담곡(石潭曲), 천사곡(川沙曲), 단사곡(丹沙曲)이라는 명칭이 보이고 그 주(註)에도 “월란암은 산이 가깝고 물이 임하여 잘린 것이 누대의 형상과 같은 것이 무릇 7곳인데 물이 산을 둘러 굽이를 이룬 것이 무릇 3곳이다.(月瀾庵 近山臨水而斷 如臺形者 凡七水繞山成曲者 凡三)”31) 라고 한 것을 볼 때에도 당시 이미 어느 정도 구곡원림이 지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청량산(淸凉山)의 계곡을 따라 낙천(洛川)이 굽이굽이 흐르면서 절경을 이루는 도산구곡 원림은 오가산지(吾家山志) 에 의하면

제1곡이 운암(雲巖),

제2곡이 월천(月川),

제3곡이 오담(鰲淡),

제4곡이 분천(汾川),

제5곡이 탁영(濯;),

제6곡이 천사(川砂),

제7곡이 단사(丹砂),

제8곡이 고산(孤山),

제9곡이 청량(淸凉) 등이다.

퇴계는 도산서당을 제5곡에 마련했는데 이는 주자가 무이구곡의 제5곡에 무이정사를 건립한 것과 같이 역(易)의 구오(九五), 즉 비룡재천격(飛龍在天格)인 양오(陽五)를 택했으니 성리학자로서의 주도면밀함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퇴계는 도산 구곡원림을 대상으로 구곡가를 짓지 않았으나

정조 때의 하계(霞溪) 이가순(李家淳)이 도산구곡가 를 지어 오늘날에 전하고 있는데 이 시에서 도산구곡의 대체적인 경관을 짐작할 수 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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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육곡 陶山六曲 12수 -퇴계 이황

[주]시조 도산육곡은 전후육곡이어서 전12곡이 된다. 그래서 도산12곡이라고도 한다.도산육곡(陶山六曲) 12수-퇴계 이황http://blog.naver.com/csi1199/50000464206[하단에 아래아자 사용한 원문 있음]발(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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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 안동 도산서원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npi9&logNo=22141400633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안동관광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안동관광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과 도산서당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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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무이도가(武夷櫂歌)- 武夷九曲歌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70907.010220742500001 [九曲기행 .3] 주자의 무이구곡가...산수 풍광 읊었나, 도학사상 담았나…무이구곡가 해석 분분 조선에 찬란한 구곡문화를 낳게 한 무이도가(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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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곡원림과 구곡시가의 전개(展開) -김문기

노도(櫓島) 서포 김만중 유배 집터에서 바라본 바다풍경.     ◈ 구곡원림과 구곡시가의 전개(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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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풍경]

 

 

 

 



 

https://www.youtube.com/watch?v=CHDf51bUR8c 

 

 

https://www.youtube.com/watch?v=mhtLoB62B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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