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본따서 현무암으로 만든 할그림스키르캬 천주교회가 높이에서나 시내관광명소로나 1순위였다. 내게는 그 교회 8층에선가 쇠창살 너머로 바라보는 동화 같은 도시 풍경 조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호주의 시드니타워328.4m(지상에서 안테나까지)나 오페라하우스 조망을 위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당장 조망대를 만들어 세계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렸겠지만 아마도 존엄한 교회를 망칠까봐 4면 벽에 군데군데 설치한 쇠창살을 사이로만 조망이 가능했는데, 지붕과 벽면을 알락달락한 채색으로 동화같은 도시를 창출했으니 그들의 창의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원시의 자연을 보러온 이들에게 이보다 더한 풍경은 없을 듯했다. 빙하가 살아 있는 국립공원이 있고, 바다를 떠내려 가거나 해변에 떠 내려온 류빙까지 있는데 무슨 덧칠을 더하랴. 그래서 고안한 것이 높아야 고작 2-3층 건물이지만 여기에 색채를 더하여 아이슬란드 고유의 수도를 만들어 본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운영자는 사면 벽을 돌며 거듭 그 풍경에 도취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우선 몇 장만 선보인다. 하긴 그 사진이 그 사진이니 더 보여드려도 지루함만 더할 것 같네요.
[참고]
지명 비크는 작은 만 (灣)을 뜻하며 바이킹과 연관된다.
"바이킹"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작은 만"·"후미"를 뜻하는 고대 노르드어의 "vík"에 접미사 "-ing"이 붙은 데서 유래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작은 만의 거주자",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카테가트 만 쪽비켄(Viken) 지역의 거주자라는 뜻이다.
위는 사전의 설명이고, 첨언하면 한국인들은 해적을 바이킹으로 이해하는데, 위 사전의 설명처럼 '작은 만'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생존의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지나가거나 정박한 어선들의 수확물인, 심해에서 포획한 바다의 물고기들을 약탈했을 가능성이 크다. 육지에서도 못잡는 도적들을 바다에서 무슨 수로 수갑을 채울 수 있겠는가? 더구나 말도 소통되지 않는 관계에서 헬기를 실은 몇 만톤급 잠수함이 있었을 리 만무하니.
한국인들은 흔히 중국인들이 시끄럽다고 하는데, 동영상에서 들리는 시드니 조망탑에 모인 사람들도 되게 시끄럽군요. 흥분한 탓도 있겠지만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끄러운 것만 기억하나 봅니다. 중국인들은 唐詩 시절부터 시의 운률을 맞추기 위해 四聲을 발달시켜 온데다 의사전달을 명료히 하기 위해 일상어에서도 사성이 유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말뜻을 이해하면 매우 리드미칼하게 들립니다. 특히 옆자리 이쁜 아가씨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가슴이 설렙니다. 말뜻을 몰라도 노래하는 것 같아서.
따라서 책으로 번역만 읽었다면 시의 외형적 아름다움인 운률, 곧 리듬을 내팽개치고 시각적 표현이나 철학성 가운데 시적 아름다움의 3분의 1은 놓치고 감상한 것이 되는 셈입니다. 그럼 너는 사성에 달통했냐고요? 천만에요. 나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한 平上去入 중 한국한자발음으론 四聲의 원칙에 의거해 대충 짐작이 가지만 적확한 중국어 발음은 잘 알지 못합니다. 물론 평성과 입성은 쉬운 편이죠. 唐詩를 만나면 속상한 게 바로 그 점입니다.
남북통일을 얘기할 때 우리는 상징적으로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백두와 한라의 분화구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처음부터 북에 지고 들어가는 꼬락서니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의 분화구를 비교할 천치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 케리드분화구는 한라산 분화구보다 현편없이 작지만 얼음이 채워져 있어 부러웠다. 한라산분화구는 위용 뒷편에는 물이라곤 분화구 한 구석에 조금 깔려 있는 게 항상 불만이었다. 위용이라고는 했지만 인위적으로나마 중국과 북한 두 나라를 가르는 국경이 된 백두산 천지와 함께 거론하기엔 부끄럽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