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바신의 나라 인디아

Lord Shiva ( Awesome Bhajan )

[은자주]인구 83%의 신도분포를 가진 힌두교는 인디아의 대표 종교이고 그들의 사상은 힌두이즘이라 하여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아래 주소창에서 인디아의 종교를 일정 부분은 요약하여 싣는다.

힌두를 대표하는 세 신은 브라흐만, 비쉬누, 쉬바이다. 차례대로 창조, 현실유지와 행운, 파괴를 대표하는 신들이다. 창조신은 이미 역할이 다했으므로 민간인들의 신앙의 대상에서 멀어졌고 절대적 권능을 행사하는 신은 파괴의 신인 쉬바신으로 일반인들의 숭배와 신앙도 쉬바신에게 집중된다. 어딜 가나 코끼리 코를 지닌 얼굴이나 흉상을 만나는데 쉬바신이 오해로 목을 친 둘째 아들의 화신에서 쉬바신의 권능은 쉽게 이해된다.

관음보살이 자비를 배풀기 위해 천수(千手)관음이 되었듯이 쉬바신도 파괴를 위해서는 무기를 든 여러 개의 팔이 돋아난다고 했다. 이슬람사원 첨탑에는어김없이 신월(新月,초승달)이 걸린 삼지창을 조각해 놓았는데알라신의 캐릭터도 쉬바신의 영향으로 더욱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첨언하면 석탈해가 토함산에서 바라본 반월성을 초사흘달 같다고 했는데 이는 마린보이 석탈해가 이슬람계 출신이 아닌가 하는 가설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고타마 싯다르타마저도 비쉬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이라 칭한다고 했다.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category_id=DJK&qid=33Dkd&q=%C0%CE%B5%B5%C0%C7+%C1%BE%B1%B3&srchid=NKS33Dkd



1. 힌두교

'종교의 나라'로 불리우는 인도는 힌두교와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의 발상지이며, 수세기에 걸친 회교도 및 영국의 지배에서 회교와 기독교가 전파되어 각종 종교가 공존해 왔다.


인구 대비 분포비율은 힌두교 83%, 회교 10%, 시크교 3%, 기독교 2%, 불교 1%, 자이나교 1%로서[주, 백과사전에 의거 분포비율을 수정함], 힌두교가 압도적이며 이중 회교와 기독교는 외래종교로 인식되고 있다.
힌두교는 오늘날 인도 인구 가운데 80% 이상의 추종자를 갖고 있는 가장 중요한 종교로서 기원전 1500년경 인도 대륙에 침입하기 시작한 아리안들의 종교인 브라만교가 민간신앙을 흡수, 대중화한 것이다.

10세기경 이슬람군이 인도 델리지방을 점거하면서 전파되기 시작한
이슬람교는 현재 인도북부지역(잠무 &카시미르지역)을 중심으로 교인들이 집단분포하고 있는데, 이들 교인들은 대부분 카스트제도하에서 하층계급에 속하는 바이샤 및 수드라 계층이었다.

1947년 파키스탄의 분리독립에도 불구하고 인도에는 아직 약 11%가 넘는 이슬람교도들이 있다. 이슬람교도가 절대다수인 카시미르지역의 귀속을 둘러싸고 파키스탄과 두 차례 전쟁을 치렀고, 이슬람교도 밀집지역인 인도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에서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15세기경 회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힌두교 개혁종파로 창시된
시크교는 푼잡주에 교도가 밀집되어 있으며, 1980년대초 과격파 시크 분리주의자들이 소요를 야기하기도 했었다.

기독교는 인도 남부지역에 약간의 기반이 있고 동북부지역에서는 중심종교이나(주민의 80%이상) 정치적 세력을 형성하지는 않고 있다.

불교는 인도에서 수백년간 융성하다 1세기 경 힌두교에 흡수되어 현재 인도의 불교는 신앙으로 보다는 유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형편이다. 1950년경 인도 하층계급의 지도자 Dr. Ambedeka 가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인도 마하라슈트라 주의 20여만명의 하층민들을 데리고 불교로 개종한 일이 있으나 종교, 정치적 세력으로는 미미한 상태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동시대에 힌두교의 일파로 창시되었으며, 교리 및 관행등 여러 면에서 힌두교 및 불교와 유사함. 교도들이 주로 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인도 서북부지역의 상업계에 어느정도 세력을 가지고 있다.

2. 자이나교

인도의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자이나교도 삶을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끝없는 윤회와 속박으로 보며, 그 원인은 개개인이 지은 행동(카르마)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윤회에서 해방되려면 카르마를 소멸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카르마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이나교에 있어서 구원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개인 각자의 노력에 의해서만 달성되므로 신은 자이나교에서 중요시되지 않는다.

A.D. 8세기에 자이나교는 북인도를 중심으로 마하비라의 가르침을 보다 자유롭게 해석하여 여성의 출가나 구원을 인정하는 보다 대중적인 Svetambara파(
백의파 : 나체를 거부하고 흰옷 착용을 인정한데서 오는 명칭)와 남인도를 중심으로 보다 보수적이고 수도승은 옷을 입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Digambara파(공의파)로 나뉜다. 그러나 순수한 형태의 자이나교도는 현재 약 200만명 정도에 불과하고 주로 봄베이와 구자라트주에 거주하고 있다.


자이나교도는 종교적 실천방식에 따라 (1) 출가하여 엄격한 고행을 하는 소수의 수도승, (2) 가정을 유지하는 승려 등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자이나교의 경전은 아가마(가르침) 혹은 싯단타라고 불리우며 자이나교도들은 이를 제자에게 베푼 마하비라의 직접적인 교시라고 믿고 있다. 자이나의 아힘사(불살생)와 고행에 대한 강조는 힌두교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마하트마 간디의 아힘사 사상에도 반영되었다.

철저한 불살생 교리 때문에 자이나교도에게는 생명을 살해하거나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직업, 즉 군인, 도살업, 피혁공, 심지어는 농업까지도 금지되어 이들은 상업에 종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들은 정직성과 도덕성에 대한 신용으로 뛰어난 상인이 되었는데, 역설적으로 고행과 자발적 가난을 중시한 자이나교도들은 생명에 대한 존중 교리로 지금은 인도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이 되었다.

3. 불교

불교는 B.C 6세기경 고타마 싯다르타(Gotoma Siddhartha)에 의해 창시되어 세계 종교로 확대, 발전되었다. 인도문명의 구심점이 서북부 지역으로부터 갠지스강 중류지역으로 옮겨지면서 인도는 브라만 중심의 봉건적 농업경제에서 전사와 상인계급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는데, 종교적으로도 종래의 제식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사상과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자유사상가 내지 사문그룹이 대두하였다.

고타마 싯다르타도 이런 사문의 한 사람으로 출발하여 마침내 독자적인 사상과 실천을 통해 붓다의 경지를 실현하였다. 붓다의 사상은 삼법인, 사성제, 팔정도, 12연기설로 집약된다.


인도불교에 있어 최대의 사건은 마우리아 왕조 아소카왕의 불교귀의와 포교사업으로서 이를 계기로 인도불교는 세계적 종교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스리랑카에 불교가 전파되어 오늘날 남방불교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굽타왕조 등을 거치면서 북방불교(대승불교)로 발전, 오늘날의 중국, 한국, 일본 불교의 기원이 되었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점차 힌두화되어 갔고, 다른 한편 이슬람세력에 의한 사원의 파괴와 재정적 지원자의 소멸로 그 세력이 약화되어 갔는데, 근래 스리랑카의 포교활동과 암베드카르의 신불교운동으로 약 3백만 정도의 불교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시크교

600만 정도의 추종자를 가진 인도의 소수종교로서 주로 북인도의 펀잡지방 주민들에 의해 신봉되는 시크교(Sikhism)는 16세기경 구루(Guru,지도자) 나낙(Nanak, 1469-1538)에 의해 창시되었다. 오늘날 시크교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 인정받고 있지만 본래는 힌두교에 있어서의 하나의 개혁운동으로 볼 수 있으며, 자이나교나 불교와 달리 이슬람교로부터 중요한 요소를 병합한 일종의 힌두-이슬람의 종합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평화적 성격을 띠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핍박에 저항하기 위한 전사조직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르고 머리에 터번을 두르며, 짧은 바지, 손목에 철제팔찌를 끼고, 단검을 차는 지금의 시크교도의 특징이 만들어졌다. 주로 펀잡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총 종교인의 약 3%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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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6각형 원통으로 지어진 호텔 건물 한가운데는 5층 지붕 끝에 닿는 보리수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가지 사이에는 불두(佛頭)까지 얹어 보리[깨달음]에의 유혹을 부채질했다. 붓다께서는 고집멸도에 이르는 인생을 진리를 깨치고 설파하셨는데 나는 무엇을 깨칠는지 두려움이 앞섰다. 작지만 선량한 서원(誓願) 하나라도 세우고 인디아를 떠났으면 하는 것이 은자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자이나교의 한 유파 사람들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고 평소 팬티 한 장조차 걸치지 않고 생활한다는데 내 트렁크 안에는 끌고 다니기에도 벅찬 옷가지와 충전기같은 것들이 들어 있지 않은가? 여행기간 내내 낮에는 20도를 넘는 날씨여서 여름 등산셔츠에 여름 등산바지를 유지하긴 했지만 기온의 변화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너무 많은 걸 소유한다는 건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바라나시의 노숙자들은 날이 밝으면 담요 한 장으로 전신을 가리고 구걸에 나섰다가 해가 자물면길가 담벽 아래에다 몸 가리개로 사용하던그 담요를 뒤집어쓰고 드러누우면 이불이 되었다. 그러니가 먼지가 잔뜩 낀 그 담요는 옷 겸 이불이엇다.

식당에서 빈 자리를 찾다가 은자는 인디아에서의 첫날 아침부터 보리수 둘레에 마련된 수조에 한 발을 빠뜨려 드라이기로 트래킹화 운동화를 말리는 건수를 한 건 올렷다. 식당과 검정 대리석 수조 사이를 차단하지 않은 건 정말 의외였다.





http://www.youtube.com/watch?v=EYxv-PgjnEA

http://www.youtube.com/watch?v=eeXZ-liLS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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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3시간반의 시차 때문에 유리통 안에서 샤워를 마치고 한참을 기다려도 아침이 오지 않아 호텔종업원의 도움으로 TV채널을 돌려 보았다. TV는 두 개의 모니터로 작동되었다. 24인치(?) 삼성 LCD모니터여서 동영상 촬영이 가능했다. 잠시 인디아 TV 음악 프로그램을 담아 보았다.



http://www.youtube.com/watch?v=LbyWT7_yUks

http://www.youtube.com/watch?v=KLyaD22NF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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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비핼기는 제주조 남단에서 상해쪽으로 선회하여 4시간이 넘도록 중국 남단을 통과한 후 인도의 콜카타[10여 년전까지는 캘커다라 칭함]에서 인도의 지붕 히말라야산맥 아래를 2시간 반 동안 뉴델리를 향해 비행했다. 대충 1,100m 고도를 유지하며 800 m 속도로 꼬박 8시간을 비행했다. 하강을 위해 고도를 낮추니 3,000m 고도에서는 기압의 차이 때문에 고막이 통증을 호소해왔다.

원거리이긴 하지만 2시간 반 동안 말로만 듣던히말라야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강변의 아파트 행렬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산맥이 단속적으로 이어졌긴 하지만 좌석앞 모니터에 에베레스트산이 떠오를 적이면가슴 밑바닥에서 진한 감동이 치밀어 올랐다. 육안으로 저 산맥과 히말라야가 거느린 영봉들을 확인한다는 건 뜻밖의 수확이었다. 붓다께서 수도 득도하신 땅이 저 설산이 아닌가?

이제 내일부터는 맨아래 지도에 나타난 대로 뉴델리 - 바라나시 - 카주라호 - 자이푸르 - 뉴델리로 버스투어를 하게 될 것이다. 인구 13억의 나라 인도[공식적 집계 인구는 11억]의 극히 일부분인 인도 동북부 지방을 7일간 주마간산격으로 엿보게 될 터이다.

기장은 인도의 시차는 한국시간보다 3시간 반 늦고, 뉴델리공항의 현재 기온은 섭씨 22도임을 공지해 주었다. 뒤에 들은 바로는 12월과 1월이 혹한기인데 1월 하순이면 혹한은 없다고 했다. 혹한이래야 영상 섭씨 4-5도 기온이지만..... 그래서 인도에는 난방시설이 빈약한 대신 부자들은 냉방시설을 잘 갖추었지만 자주 중단되는 단전으로 인해서 호텔에서는 자체 발전시설을 갖추는 것이라 했다. 실제로 호텔에서 자주 단전이 있었지만 전력은 금방 공급되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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