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9화 - 서로 마주 볼 뿐 할 말을 잊다 (相顧無言)

http://blog.joins.com/kghkwongihwan/10479782

 

어떤 사람이 이튿날,

조상의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기로 작정하고는

여종에게 새벽밥을 지으라 분부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이튿날, 여종은 일찍 새벽밥을 지어놓고

상전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나

동녘 하늘이 밝아와도 아무런 동정이 없는지라,

몰래 창밖에서 엿들어 보니

상전 부부는 교합(交合)을 하느라 한창이었다.

 

여종은 감히 조반을 드시라는 말도 못하고

한숨만 내쉬면서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떠올랐다.

 

그 때 집안에 있는 닭들이 뜰 아래로 내려와

여종이 보는 앞에서 교합을 시작했다.

 

이에 여종이 분기가 탱천하여

교합하는 닭들을 걷어차면서,

"너희 닭들도 산소에 벌초하러 가려고 이 짓을 하느냐?" 하고 일갈하니

방안에 있던 상전 내외가 그 소리를 듣고는

부끄러움에 서로 얼굴만 마주 볼 뿐 할 말을 잊었더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