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72화 - 아내 자랑 싱겁도다 (良妻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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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봄놀이 하던 여러 선비들이
산사(山寺)에 모여
우연히 아내 자랑을 하면서
서로 우열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곁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노승(老僧)이
한참만에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였다.
"여러 높으신 선비님들은 말씀을 거두시고
소승(小僧)의 말을 들어 보시오.
소승도 옛날에는
한다하는 한량이었소.
처(妻)가 죽은 후
재취(再娶)를 하였더니
어떻게 고운지
차마 잠시도 떨어지지 못하고
다정하게 지내다가
마침 되놈들이 쳐들어와
크게 재물을 노략질하는데,
사랑하는 아내에 빠져
무기를 들고 싸우지 못하고
아내를 데리고 도망치다가
끝내 되놈들에게 붙잡혔소.
되놈 장수가
아내의 아름다움을 보자
소승을 붙잡아
장막 밑에 묶어놓고
아내를 이끌고
장막 안으로 들어가 자는데,
깃대와 북이 자주 접하여
운우(雲雨)가 여러 번 무르익어
사내도 좋아하고 아내 역시 기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아내가 되놈 장수에게
'본 남편이 곁에 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하기 곤란하니
죽여 없애는 것이 어떻겠소?' 하자
사내가 '네 말이 옳다.
좋다! 좋다!' 하고
대답하므로
소승이 그녀의 음란함에
분통이 터진데다
또한 이 말에 놀래어
있는 힘을 다해서 팔을 펴
묶은 오라를 끊고
장막 안으로 뛰어들어
청룡도를 찾아
남녀를 모두 베어버린 다음
몸을 피하여 도망한 후
머리를 깎고는
지금까지 구차하게
생명을 보존하고 있소이다.
이로 인하여 말씀드리건대
선비님들의 아내 자랑을
가히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이 말을 들은 선비들은
묵연히 말이 없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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