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174화 - 잠시화복 (暫時禍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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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에 체류중인
한 나그네가 있었는데
9월이 되자
마음이 자못 심란하여
밤에도 전전반측(輾轉反側)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인집 노파가
그런 그를 보고 위로하며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한번 이야기해서
내 근심을 없애주시오."
"저는 본래 서울에 있는
사대부가(士大夫家)의
계집종이었지요.
부모 형제와 멀리 떨어져
서울에서 종살이를 하였는데,
제 나이 17세가 되던 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에
날아갈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는
남장을 하고서 도망을 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지요.
동작진에 이르렀는데
어떤 스님이 저를 뒤쫓아와
'수재(秀才)께서는 어디에 사시며
어디를 가시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호남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대답했지요.
스님은
'우연히 서로 만났는데
마침 제가 원하던 분이구료.
저 역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중이니
함께 동행하는 것이 어떻겠소?'
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스님의 용모를 보니
수려한데다 청춘이었습니다.
곧 바로 사모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나먼 남쪽 노정(路程)을
여자 혼자서 가는 것 또한
마음에 걸리는 바였던지라
더불어 동행하는 벗이 되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
갈산(葛山) 땅의
한 여각(旅閣)에 들어갔는데
마침 다른 나그네는 아무도 없고
단지 우리 두 사람만이 한 방에서
동숙(同宿)하게 되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스님은 저를 끌어당기더니
바야흐로 일을 벌이려고 하였습니다.
저 역시 정욕에 동요됨이
없지 않았던지라
다리를 벌려
그를 따뜻한 제 몸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스님은 풍류의 혈(穴)을
난생 처음 경험했던지라
그 즐거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부지불식중에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
'아! 이곳이 어느 곳이오?'
그때 마침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여각에서 일하는 사람이
몽롱하게 졸음에
빠져있던 참이었던지
그 소리를 여각에 찾아온
과객의 소리로 알아듣고는
깜짝 놀라 일어나
급하게 응대했지요.
'이곳은 갈산의 여각입니다.
방은 따뜻하고 이나 벼룩은 없습니다.
들어와 머물다 가십시오.'
이 어찌 포복절도(抱腹絶倒)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날 밤의 스님이
바로 파계환속하신
지금의 저의 서방님이지요."
하고는 이야기를 마쳤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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