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179화 - 선비의 버릇은 종의 고민 (士習慣奴壅癖)
한 선비가 두 벗과 만나
더불어 앉아 있다가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고상한 버릇이 있기 마련이니
우리 각자 말해 보기로 하세."
한 벗이 말했다.
"나는 바야흐로
봄이 되어 따뜻해지면
나이 젊은 몰이꾼 몇 명과 더불어
팔뚝에 해동청 보라매를 올려놓고 나아가
산마루에 서서
방울을 찬 개를 놓아
채색빛 깃털에 아름다운 꿩을 찾아
수풀에서 날아오르게 하지.
그러면 금빛 눈동자와
칼 같은 깃을 가진 매가
번개처럼 날아
비단결 같은 꿩의 목을
푸른 절벽이나 푸른 시냇가에서
잡아채어 날아올 때
꿩을 수습하고
다시 팔뚝에 올려놓지.
이것이 나의 버릇일세."
다른 벗이 말했다.
"나는 천금을 쏟아
한 마리의 준마를 마련했네.
용과 같은 몸과 봉황의 가슴에
안개 바람 같은 갈기를 휘날리며
귀는 마치 깎아놓은 대쪽 같고
눈은 샛별 같지.
거기에 금색 굴레를 매달고
옥 안장으로 단장한 뒤에
손에는 산호로 만든 채찍을 들고
번화한 거리를 치닫지.
이것이 나의 버릇일세"
이윽고 선비가 말했다.
"나에게도 한 가지 버릇이 있는데
자네들이 가진 버릇과는 다르네."
두 벗이 물었다.
"무슨 버릇인가?'
"나에게는 종(奴婢)이 있는데
그의 아내가 무척 아름답다네.
진실로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 같고
두엄자리에서 피어난 흰 꽃 같지.
그녀를 대하면 마음이 미혹해지고
그녀를 생각하면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라네.
밤이 깊어
사람의 자취가 조용해진 곳에서
북두칠성이 기울 시각에
남몰래 그녀와 더불어 즐기니
그 즐거움이란
필설로 표현할 길이 없다네.
이것이 내 버릇일세."
이때 선비의 종이
이 말을 몰래 엿듣고는
급작스럽게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주인 선비님의 버릇이
소인에게는 진실로
옹벽(壅癖)이옵니다."
대개 "옹벽"이라 함은
속된 말로
몹시 고민스럽다는 뜻이었으니
이 말을 들은 두 벗은
배를 움켜잡고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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