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1화 - 거짓으로 져 준 내기 장기 (佯輸納奴)

 

옛날에 서울에 사는 한 재상이

장기를 잘 두어

감히 적수가 될 사람이 없었다.

날마다 내기 장기를 두어

얻은 재물 또한 적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자기보다

장기를 잘 두는 사람은 없다고

자신만만해 했다.

 

이러던 중 영남에서 올라왔다는

젊은 선비 한 사람이 찾아와서

인사를 올리는 것이었다.

"소생은 장기를 잘 두어

시골에 살면서

장기 병에 들렸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금번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서 풍문에 들으니,

대감께서 장기 수가 매우 높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이 참에 소생과 한판 두시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오! 젊은이, 좋구려.

그런데 장기는

재물을 걸고 두는 내기 장기라야

재미가 있지 않겠나?"

"예, 대감. 소생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그러나 소생은

먼 시골에서 올라온 선비로서

가진 재물이 없으니,

소생이 지면 타고 온 말과 종을

모두 대감께 드리고,

만약 대감께서 지시면

거기에 합당하는 재물을 알아서

소인에게 주시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는지요?"

"응!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구먼.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러고 두 사람은

장기를 두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세 판을 겨루어

두 판을 재상이 이겼다.

이에 선비는 크게 절을 하고서,

"대감의 높은 수에는

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고,

종과 말을 남긴 채 떠나갔다.

재상이 말을 보니

매우 건장하고 좋아 기뻐하면서

집안 사람들에게 잘 먹이라 당부하고,

말을 몰고 온 종에게도

특별히 잘 해주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10여 일이 지나자,

선비가 다시 나타나

인사를 올리고 아뢰었다.

"소생이 이번 과거에

낙방하고 내려가면서

대감께 작별 인사라도

드리고 가려고 찾아왔습니다.

이 참에 다시 한 번 소생과

장기를 두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기 장기를 두어 대감이 지시면

소생의 말과 종을 돌려주시고,

소생이 지면 시골에 있는

5일 갈이 전답 문서를 가져와

즉시 바치겠사옵니다."

이에 재상은 기뻐하면서 허락하고

장기를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 판을 두어

내리 세 판을 재상이 지고 말았다.

그러자 크게 놀란 재상은 한탄을 하면서

선비의 손을 잡고 물었다.

"참으로 모를 일일세.

그 짧은 동안 어디서

수를 배워 이렇게 늘었을꼬?

그것 참 기이하고 신통하구려."

"대감! 그게 아니옵니다.

소생의 장기 수준은

그야말로 고수입니다.

애초부터 대감의 실력으로는

차 포(車包)를 더해야

소생에게 미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골의 가난한 선비로서

서울에 와보니

종과 말을 맡길 곳이 없어,

일부러 져드리고

저들을 맡아 주시도록

속인 것이옵니다.

이제 장기에 지셨으니

종과 말을 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자 재상은 한동안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다가,

집안사람들에게

말과 종을 선비에게 돌려주라고

이르는 것이었다.

선비는 절을 올리면서,

이들을 잘 먹여주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갔다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깊은 생각에 잠기더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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