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66화 - 아랫사람 사정을 생각하지 못하더라 (不通下情)

성품이 매우 강직한 재상이 있었다.

그에게는 종형(從兄)이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렵게 사는 종형수가

한 분 있었는데,

그 아들인 당질(堂姪)이

관직을 얻지 못해

무척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당숙부의 성격을 아는 터라,

그는 차마 아무 부탁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 재상이

고생하는 종형수의 모습을 보다 못해,

자진하여 이조판서에게

당질의 외임(外任)1) 자리를 하나 부탁했다.

1)외임(外任 : 지방 관장

 

이에 당질이

어느 고을의 관장으로 발탁되었다.

그 당질이 조정에 나가

임지로 떠나는 인사를 올리고,

이어 당숙부인 재상에게 와서

작별 인사를 드렸다.

 

이 때 재상은

당질에게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전별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당부했다.

"네가 임지에 가서는

오로지 모친 봉양에 필요한 비용만

고을에서 조달하고,

개인 주머니를 채우기 위한

비리는 결코 있어서는 아니 되느니라.

이 점 명심하여 잘 수행하기 바란다."

이에 당질은 감사를 표하면서

명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는 식사를 끝내자,

재상은 남은 음식을 모두 거두어

당질과 함께 임지로 떠날 하인들에게

먹도록 내주는 것이었다.

이는 당질이 관직 생활을 해보지 않아

아랫사람을 배려할 줄

모를 것으로 짐작하고

배우라는 뜻에서 한 일이었는데,

당질은 전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리하여 당질은

자신의 식사가 끝나자,

곧 행장을 수습하여

당숙에게 절을 하고 떠나려 했다.

이 때 하인들은

미처 식사를 다 끝내지도 못했는데,

호령을 하여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이 모습을 본 재상은

다시 당질을 불러 앉혀놓고 말했다.

"너는 불통하정(不通下情)2)이로다.

2)불통하정(不通下情) : 아랫사람의 사정을 생각하지 못함.

아랫사람의 사정을 살필 줄 모르니,

백성들을 다스리는

지방 관장으로 나갈 자격이 없느니라.

 

내 조정에 상신하여

관장 발령을 취소하도록 할 터이니

떠나지 말도록 해라."

이러고는 당질을 떠나지 못하게 막았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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