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69화 - 재상의 아들 (宰相之子)

 

한 재상이 친구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모두들 조심하라고 이르면서 슬퍼했다.

 

이 재상이 일찍

영남지방 관찰사가 되어 부임했다.

그 때 이 재상의 아들이 따라가서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나이어린 기생 하나를 사랑하여

첩으로 삼아 즐기면서

정이 깊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재상이 관찰사의 임기를

다 마치고 돌아오게 되자,

아들은 부모 몰래

그 기생을 데리고 상경했다.

 

그리고는 수년 동안 숨기고 살다가

마침내 재상이 알게 되어,

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이렇게 꾸짖었다.

"젊은 나이에

창기를 첩으로 데리고 다니는 것은,

사대부의 자식이 할 바가 아니니,

속히 돌려보내도록 하라."

 

그러자 아들은

그 명을 거역할 수가 없어 고심하다가,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온 기생을

잘 타일러서 돌려보냈다.

그리고 부친에게 그 사실을 아뢰었다.

 

이에 재상은

아들이 기생과 헤어졌다는 말에

기특하기도 하고 수상하기도 하여,

그 기생첩이 헤어져 돌아가면서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특별한 말은 없었다면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도련님을 받들고 살다가

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렇게 이별을 하게 되니,

그윽한 회포를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운자(韻字)를 불러 주면

시를 짓겠다고 하기에,

잠시 생각하다가

'군(君)'자를 불러 주었다고 했다.

 

그러자 기생은 웃으면서

하필 '군'자로 하냐면서

시를 지어 주고는,

눈물을 흘리고

떠나갔다는 것이었다.

 

이에 재상이

그 시의 내용을 알고 싶다고 하니,

아들은 다음과 같이 불러 주었다.

 

洛東江上初逢君 낙동강 위에서 그대를 처음 만나

(낙동강상초봉군)

普濟院頭又別君 보제원 머리에서 또한 그대 이별하네.

(보제원두우별군)

桃花落地紅無跡 복숭아꽃 땅에 떨어져 붉은 흔적 없어져도

(도화낙지홍무적)

烟月何時不億君 어느 세월 어느 때라도 그대 기억하지 않으리!

(연월하시불억군)

 

재상이 들어보니

아무래도 그 기생이 죽으려는 듯하여,

급히 사람을 시켜 데려오라고 하자,

따라간 사람이 돌아와서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기생은 이미 누각의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사옵니다."

 

그러고 나서 재상의 아들도

곧 병이 들어 몇 달 만에 죽었고,

재상 역시 그 뒤 벼슬에서 물러나

시름 속에서 늙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다 마친 재상은

부자간에도 이토록 원한이 쌓이는데,

하물며 남과는 어떻겠냐고 하면서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일은

절대로 삼가하라고 당부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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