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84- 고양이가 망건을 쓰고 도망치다 (脫網着猫)

 

조선시대 때

금군(禁軍)1)이 처음 설치될 때는

오로지 당하(堂下)에 해당하는 사람만

차출하여 임명했다.

1)금군(禁軍) : 왕의 행차 때 호위를 하여 가는 무인.

 

그리고 금군에 임명된 사람이

당상으로 승진하면,

자동으로 등급이 낮아져

당하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한 금군이 활쏘기를 시험하는 시사(試射)에서

5발의 화살을 모두 명중시켜

당상으로 승진했는데,

규정에 따라 다시 당하로 강등되었다.

그리고 다른 부서로

옮겨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급료가 적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어떻게 하여

쌀 한 되를 얻어 밥을 짓고,

소금에 절인 생선 한 마리를 사와

구워 밥상에 올린 뒤

막 상을 들고 나오는데,

이웃집 고양이가 와서

그 생선을 물어가 버렸다.

 

그러자 이 사람은 어찌나 통탄스럽고

고양이가 얄밉든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양이 잡는 틀을 설치하여

미끼를 넣어 두니,

이튿날 그 고양이가

틀 속에 갇혀 있었다.

곧 그 고양이를 꺼내

노끈으로 네 발을 묶은 다음,

자신의 망건을 풀어

고양이의 머리에 씌우고 동여맸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고양이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 이 옥관자(玉貫子)를 쓰고 있는 동안

거의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으니,

고양이 너도

내 이 옥관자를 쓰고 있으면

얼마 안 있어

반드시 굶어 죽게 될 것이니라.

네가 내 생선을 훔쳐 먹지 않았느냐?

그래 미워서 이러는 것이니,

원통하게 여기지 말지어다."

이렇게 꾸짖고는

묶었던 발을 풀어 내보내 주었다.

 

이 고양이가 망건을 쓰고서

자기 주인집인 이웃집으로 건너가니,

그 집에서는 까닭을 몰라 궁금해 하다가

금군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

손뼉을 치며 한바탕 웃고는

그대로 놓아 두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이 고양이가 우연히

병조판서 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에 병조판서가

고양이 머리에 씌어진

옥관자를 보고

의아하게 여겨

집안사람들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종들이 이웃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기를

그대로 아뢰었다.

 

이에 병조판서는 그 일을 가엽게 여기고

조정에 나아가 계품(啓稟)1)하여 건의하자,

마침내 금군에 대한

규정이 바뀌기에 이르렀다.

1)계품(啓稟) : 왕에게 아룀.

, 금군 중에서 당상으로 승진한 사람은

다시 강등되지 않도록 규정을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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