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85화 - 선비가 잊지 못하는 여인 (士不忘女)
옛날에 어느 이름난 선비가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상경하다가,
마침 길가에서 사당패를 만나
가사(歌詞)를 노래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되었다.
비록 고운 옷을 입었거나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청순한 웃음과 아름다운 눈매에
구름 같은 머리를 하고 있어,
언뜻 보기에 사랑스러워 정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선비는
자신을 수행하는 종자들에게,
"너희들은 저 여인의 노래를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지 않으냐?"
하고 묻자 모두들 이렇게 대답했다.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진실로 들어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좋다.
가야 할 길도 얼마 남지 않았고
봄날의 해도 기니,
여관에 들어가 잠시 쉬도록 하자구나."
선비는 이렇게 말하고,
그 사당패도 함께
여관으로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자 여인이 당 아래에 와서
절을 하기에 노래를 시키니,
그 태도가 요염하고
노래의 절주와 음률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었다.
곧 선비는 그 여인을 당 위로
올라오라고 하여 앉히고
한문을 아느냐고 묻자,
여인이 대답했다.
"글을 조금 배웠습니다만,
조잡하여 감히 안다고는 못 하옵니다."
이에 선비가 시험삼아
운자(韻字)를 부르며
시를 지어 보라고 하니,
여인은 이렇게 읊었다.
三月離家九月歸 삼월에 집을 떠나 구월에 돌아가니
(삼월이가구월귀)
楚山吳水夢依依 초나라의 산과 오나라의 물이 꿈속에 아련하네.
(초산오수몽의의)
此身恰似隨陽鳥 이 몸 떠돌아서 철새와 흡사하니
(차신흡사수양조)
飛盡南天又北飛 남녘 하늘 다 날고 또 북녘으로 날아가네.
(비진남천우북비)
이에 감탄한 선비는
그 여인의 손을 잡고,
"네가 지은 시를 보니,
보통 천한 신분의 여인이
아닌 것 같구나.
너의 내력을 한번
말해 줄 수 있겠느냐?"
하고 넌지시 묻자 여인이 대답했다.
"비록 사족(士族) 집안의 출신이오나
지금은 사당(舍堂)의 행차를 따라다니니,
그저 사당으로만 이해하시면 되옵니다.
구태여 그 내력은 알아 무엇 하시렵니까?"
선비는 필시 이 여인의 집안이
누구한테 죄를 지어
떠돌게 된 것이라 생각하면서
후하게 돈을 주고 그 곳을 떠나왔다.
이후로 선비는 사람들을 만나면,
늘 이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잊지 못해 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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