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87화 - 도둑놈을 뭐라고 부르나 (何呼盜漢)
한 마을에 장사를 하면서 살고 있는
상놈이 있었다.
하루 저녁에는 밥을 먹고
마루에 앉아 있자니,
밑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리하여 주인은
이상하게 여기면서,
'이건 분명 도둑놈이 든 게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마루 판자 틈새를 가만히 내려다보니,
과연 한 사람이
엎드려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그는 베를 재는 기다란 자를
마루 밑으로 넣어 휘저어 보았다.
그러자,
"장난이 너무 심하구나.
내 눈을 상할까 두렵도다."
하는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아니, 이 놈이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도둑놈과 장난을 해?"
주인은 이러면서 더 심하게 휘두르니,
마루 밑에 엎드려 있던 사람이
다급하게 소리를 쳤다.
"내 비록 네 집 마루 밑에
엎드려 있긴 하다만,
근본이 양반이니라.
그런데 너는 상놈이면서
감히 나를 보고 버릇없이
'도둑놈'이라 불렀느냐?
네 놈이 양반을 모욕했으니
마땅히 벌을 받을 것이로다."
이 말에 주인은 웃으면서,
그렇다면 뭐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묻자
도둑은 이렇게 일러 주었다.
"음, 당연히 '도둑양반'이라 불러야지."
이에 주인은 어이가 없어
화를 내면서 크게 소리쳐 말했다.
"남의 집 물건이나 훔치는 도둑놈이
되레 큰소리를 치는구나."
그러자 도둑은 더욱 화를 내면서
주인을 꾸짖었다.
"네가 또 나를 보고
도둑놈이라고 했것다.
내 비록 네 집 마루 밑에
엎드려 있으나
물건을 훔친 게 없으니,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느니라.
그런데 너는 상놈으로서
양반을 보고
감히 도둑놈이라고 욕했으니,
내 마땅히 관아에 고발하여
벌을 받게 할 것이로다."
이에 주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도 맞는 듯해,
도둑에게 잘못했다고 빌고는
그냥 내보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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