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86화 - 신부의 자만이 죽음의 원인이 되다 (婦慢死因) )

 

어느 고을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

문장이 매우 뛰어났다.

마침 혼인할 나이가 되자,

 

명문의 선비 집안 규수와 정혼이 되어

혼례식을 잘 올렸다.

그리하여 첫날밤을 맞이했는데,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던 신부가

신랑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제의했다.

 

"서방님! 학문을 연마하는 일이

여인들에게는 숭상하는 바가

못 되는 줄 아옵니다만,

소녀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지라

독서를 하여 문장을 지을 줄 아옵니다.

일찍이 면화 솜을 부풀리느라

활로 솜을 퉁기면서

한 구절의 글귀를 얻었사온데,

아직 그 대구(對句)를 짓지 못했사옵니다.

 

오늘밤 서방님께서

그 대구를 지어 주셔야

소녀는 서방님과 동침할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낮에 혼례식을 올렸으나

지금 서방님과 동침할 수 없사옵니다.

하오니 서방님께서

그 대구를 지어 주시겠는지요?"

 

이에 선비는 다소 불쾌했으나

글공부를 한 대장부로서 자존심이 있기에,

그리할 터이니

지은 글귀를 한번 불러 보라고 했다.

 

그러자 신부는

활로 솜을 퉁기어 부풀리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면서

이렇게 읊었다.

"彈綿弓響 白雲堆邊生夏雷

(탄면궁향 백운퇴변생하뢰)

솜을 퉁기는 활 소리는

흰 구름 쌓인 하늘가에서 일어나는

여름 우레 소리 그것이로다."

 

이에 선비는 깊이 생각했으나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밤을 꼬박 세웠지만

결국은 적당한 대구를 지을 수 없자,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명색이 글공부를 한 선비로서

평소에 뛰어나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거늘,

지금 한 여자의 글에

대구를 짓지 못하고

부끄러움을 당하니

어찌 분하지 않으리오.

혹시 내 공부가

덜 되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니,

반드시 독서를 더 해야겠다.'

 

이렇게 결심한 선비는

새벽에 신부를 보고 말했다.

"내 절에 가서 글공부를 더하여

대구를 지으면 돌아오리다."

 

이런 말을 남기고

방을 나와 곧바로

절을 향해 떠나갔다.

 

그리하여 여러 서책을 두루 섭렵하여

주야로 독서를 하는 동안

여러 해가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해 가을 달밤에

역시 절에 들어와서 독서를 하고 있는

여러 선비들과 함께

연못가를 배회하며

달빛을 감상하고 있는데,

문득 신부가 지은 글귀의 대구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곧 선비는 너무나 기뻐 손뼉을 치면서,

다른 선비들에게

첫날밤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대구가 생각났다면서

자랑스럽게 읊었다.

"食葉蠶聲 綠樹陰中灑秋雨

(식엽잠성 녹수음중쇄추우)

누에가 뽕잎 먹는 소리는

푸른 나무숲을 적시는

가을비 소리 그것이로다."

 

이렇게 선비가

자신의 첫날밤 이야기와

신부가 지은 글귀,

그리고 자신이 방금 지은 대구를

모두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동안,

절에서 함께 독서를 하고 있는 선비 중에

한 선비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집으로 내려가 약을 먹어야겠다면서

절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 앞서 얘기하던

선비의 처갓집으로 가서,

밤중에 신부가 자는 방문을 두드렸다.

"내 연전에 떠난 신랑인데,

그 글의 대구를 지어 돌아왔소."

 

이러면서 방으로 들어가

신부와 마주앉은 채

이야기를 한 뒤 대구를 읊자,

신부는 훌륭하다고 하면서

잠자리를 하자고 했다.

 

아무리 영리하고 야무진 신부일지라도,

첫날밤 신랑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여러 해가 바뀐 지금에 와서,

지난날 그 글귀를 말하며

대구까지 읊어대니

믿지 않을 수 없었고,

가짜 신랑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이에 그 가짜 신랑과 신부는

뒤늦게 첫날밤의 기분을 내면서,

맨살을 맞대고

한없는 정감에 사로잡혀

구름 속을 헤매었다.

 

그런데 날이 새고 아침이 되니

진짜 신랑이 나타났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신부는

어젯밤에 온 선비가

비로소 가짜임을 알고

땅을 치며 한탄했다.

 

이리되니 온 집안에 소동이 벌어졌고,

신부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다.

이 때 신부가 그 부친에게 말했다.

 

"혼례는 저 쪽 선비와 올렸는데,

몸을 허락한 것은 이 쪽 선비이니

예절의 중요함도 어길 수 없고,

그렇다고 몸을 맞댄

의리의 중요함도 잊을 수는 없습니다.

이에 소녀가 오직 한 가지 택할 길이 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옵니다."

 

신부는 이렇게 말하면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피를 쏟으며 즉사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슬픈 비극은 끝이 났고,

신랑 노릇을 한 선비는

남의 신부를 속이고

겁탈한 죄를 물어

국법에 따라 사형에 처했으니,

지금까지 닦은 공적이

허사로 돌아간 셈이었다.

 

이 이야기를 기술한 본 설화를 기술한

'파수록'의 편저자 김연(金淵)1)은

이야기 끝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1)김연 金淵(1682년생- ) 호(號)는 부묵자(副墨子).

 

"아! 슬픈 일이로다.

본래 신부의 의도는

자신의 문장력을 과시하여

신랑으로 하여금

학문에 더욱 정진하기를

권장하려는 뜻이었건만,

이 무슨 부당한 악한의 행동으로

은밀히 신부의 정절을 빼앗았으니,

마침내 비명의 슬픈 죽음으로 몰고 갔도다.

애석한 일이구나!

 

애초에 이 신부에게 음식과 바느질 등

여자의 행실만 잘 하도록 가르쳤더라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이는 글공부에 관심을 갖는 여인들에게

가히 경계가 될 만하도다.

게다가 자신의 일을 함부로 떠벌린 신랑

또한 경계로 삼을 만한 일이로다.

 

이에 시경(詩經)에는

'명석한 부인은 나라를 망친다'는

말이 있고,

나아가

'말을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말도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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