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91화 - 홍생이 굶어 죽다 (洪生餓死)

 

서울 소의문(昭義門) 밖에

홍씨 성을 가진 선비가 살았는데,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아직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선비는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으니,

끼니를 거르는 날이 더 많았다.

 

마침 선비가 사는 집 근처에

메주를 만들어 말리는

훈조막(熏造幕)이 하나 있었다.

그리하여 선비는 매일 거기로 가서,

일꾼들이 저마다

한 숟갈씩 덜어주는 밥을 얻어다가

겨자 잎에 싸서

두 딸과 함께 먹으며 겨우 연명했다.

 

하루는 선비가 밥을 얻으러

그 훈조막으로 가니,

술 취한 일꾼 하나가 선비를 보고

욕을 하며 꾸짖는 것이었다.

"생원은 우리 훈조막의

부군(府君) 신령이라도 됩니까?

아니면 우리 상전의 아들쯤 됩니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무슨 염치로 매일 와서

우리 일꾼들이 먹는 밥을 얻어갑니까?"

 

이 말에 선비는 큰 모욕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나서 선비가

밥을 얻으러 나타나지 않으니,

여러 날 후에

훈조막의 마음 약한 일꾼 하나가

그 선비집을 찾아가 보았다.

그리하여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가 보자,

선비는 두 딸과 함께 힘없이 누운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에 일꾼이 가엾게 여기고

급히 달려나와

죽 한 그릇을 끓여다 주자,

선비는 열세 살 된 큰딸을 보고 말했다.

 

"너는 이 죽을 먹으려느냐?

우리 세 사람이 굶어 죽기로 작정하고

지금껏 6일을 참아

이제 곧 죽음을 앞두게 되었는데,

이 죽을 먹고 다시 기운을 차리면

지난 6일간의 노력은

허사가 되느니라.

 

저 사람이 우리한테

계속 죽을 끓여다 준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또

참기 어려운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

그러니 네가 알아서

먹든지 말든지 결정을 해라."

 

이 때 다섯 살 난 작은 딸이

죽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큰딸은 동생의 머리를 눌러 재우면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이튿날 그 일꾼이

다시 선비의 집으로 가보니,

세 사람은 나란히 누운 채 죽어 있었다.

이에 일꾼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막사로 돌아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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