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92화 - 도둑의 자루를 빼앗다 (反奪盜袋)
한 금군(禁軍)이 마침
급료로 쌀을 받아와서,
마루 한 구석에 놓인
궤 속에 담아 두었다.
거기에는 집안에서 쓰는
되도 함께 넣어 두어
쌀을 퍼낼 때 사용했다.
그런데 쌀을 받아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
이 도둑은
집안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
며칠 전에 쌀 한 섬을 급료로 받아
궤 속에 넣어 두었고,
그 궤는 마루한 구석에 놓여 있는 것까지
훤히 알고 들어온 것이었다.
이에 도둑은 곧장 마루로 올라서서
궤의 문을 여니,
나무 판자가 움직이면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조금 났다.
피곤하여 곤히 잠든 금군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으나,
선잠이 들었던 아내는
문득 잠에서 깼다.
그리고 가만히 듣자니
틀림없이 도둑이 들어
쌀 궤의 문을 여는 것 같아,
조용히 남편을 흔들어 깨우면서
귀에 대고,
"여보! 도둑이 들었나 봐요.
지금 마루의 쌀 궤를 열고 있어요."
라고 말했다.
이에 금군이 잠에서 깨어
가만히 들어 보더니,
옷을 챙겨 입고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내가 애가 타서
남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여보, 얼른 도둑을 쫓아내야지요.
왜 그냥 앉아 있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 봐요.
저 놈이 가져온 자루는
분명히 잘 기워진
튼튼한 것일 테니까,
내 그 자루를 뺏어
한 10년 쓰려는 거요."
이렇게 말하면서 금군은
손가락을 놀려
도둑이 퍼 담고 있는 회수를 셌다.
그 궤 속에 넣어둔 되로
쌀을 퍼 담을 경우
10번이면 한 말이 되고 3
0번이면 서 말쯤 되니,
사람이 급히 들고
도망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아,
그 회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도둑이 30여 차례
퍼 담았을 때,
금군은 문을 밀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마루로 뛰어나갔다.
그러자 도둑은
자루를 묶어 챙길 겨를도 없이
그냥 버려둔 채 몸만 내빼고 말았다.
곧 불을 밝히고 살펴보니,
쌀을 가득 담은 자루는
두 폭 삼베로
아주 조밀하게 잘 기운 것이었다.
보통 곡식을 도둑맞으면
그 낟알이 떨어진 것을 추적하여
집을 알아내므로,
곡식 도둑들은 자루가 새지 않도록
튼튼하게 잘 기워 만들었다.
금군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튼튼한 자루를 얻으려 했던 것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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