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516- 기어이 먹지 못한 국수 (打杖覆麵)

한 절에 매우 부지런한 스님이 있었다.

이 스님은 염불이 끝나면

잠시도 쉬지 않고

절 옆의 산비탈을 일구어,

채소도 가꾸고 곡식도 심어 거두었다.

어느 해에는 밀을 심어

싹이 자라서 이삭이 많이 맺히니,

스님은 흐뭇해하면서 말했다.

"내 금년에는 이 밀로 만든

국수를 많이 먹을 수 있겠구나."

이에 한 동자승이

쳐다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스님! 국수가 스님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 되옵니다."

이에 스님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지만,

어린 사람의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잠자코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밀을 수확하기에 이르니,

스님은 자랑삼아 말했다.

"이제 바야흐로 국수를

먹을 때가 된 것 같구나.

내 배불리 실컷 먹어야겠다!"

"스님!

국수가 스님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 되옵니다."

밀을 수확하고 흐뭇해하는

스님의 말에,

동자승은 역시 앞서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좋아할 때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며칠 후,

수확한 밀을 가루로 내어

반죽을 해서는 칼국수를 끓였다.

그리하여 큰 그릇에 가득 담아

상에 올리니,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이에 스님은 보란 듯이

국수 그릇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이제 국수를 끓여 놓았으니

어찌 배불리 먹지 않겠느냐?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이제 먹게 되었도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자승이 또다시,

"스님! 국수가 스님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 되옵니다."

라고 말하니,

스님은 몹시 화가 나서 이번에는

크게 역정을 내며 꾸짖었다.

"이것아!

국수를 끓여 앞에 놓고

배불리 먹으려는 이 마당에,

또한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라고 하니

무슨 말버릇이 그리

고약하단 말이냐?

내 더 이상 너를

그냥 둘 수가 없구나."

이렇게 소리치면서

동자승을 때려 주려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순간,

그 끝이 국수 그릇을 치는 바람에

그만 상에서 떨어져 엎어지고 말았다.

이에 동자승이

매를 피해 달아나면서 소리쳤다.

 

"스님! 보십시오.

소인이 국수가 스님의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 된다는 그 말은,

바로 이런 때를 두고 한 말이옵니다."

그러자 이를 보고 있던

다른 스님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더라.

흔히 속담에

'입에 들어가야 먹은 것이 된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