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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090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김소월, 진달래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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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2000년대 초, 한 시(詩)전문 계간지에서 시인과 평론가 백 명에게 지난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시인 열 명을 선정해달라는 설문을 낸 적이 있다. 그 전문가 집단의 설문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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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정시의 원류, 혹은 민족시의 발원지

잠시 <영대(靈臺)>의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1925년, 소월은 살아 있을 때의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을 펴낸다. 이때 발표된 시편들은 거의 오산학교 시절, 그의 나이 불과 17, 8세에 쓰인 것들로 여기에 나타난 민요의 가락, 한과 슬픔의 정조, 설화성 등은 당대 문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그의 스승인 안서 김억은 1939년 봄에 [소월시초(素月詩抄)]를 펴내며 “나이가 불과 17, 8세라고 하면 아직도 세상을 모르고 덤빌 것이거늘 이 시인은 혼자 고요히 자기의 내면생활을 들여다보면서 시작에 해가 가고 날이 저무는 것을 모르고 삼매경에 지냈으니 조숙(早熟)이라도 대단한 조숙이외다.”라고 소월에 대해 쓰고 있다.

문단의 성향이 카프 중심으로 한창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한편에서 묵묵히 우리 고유의 언어와 정서를 빚어내던 김소월이 이해 펴낸 이 시집은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의 시를 가리켜 “민요적 리듬과 부드러운 시골 정조 외에는 보잘 것 없다”라는 평가도 없지 않았지만, 그는 이 시대 다른 작가들과 달리 서구사조의 모방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색채와 목소리로 노래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진달래꽃’, <개벽>, 1923 ('진달래꽃' 해설과 함께 감상하기)

시집의 표제로 삼은 ‘진달래꽃’은 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이별이 처절할 만큼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래에 있을 이별을 예감하면서, 가는 님을 잡지 않고 고이 보내드린다거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린다고 말하는 것은 어느 서구 유행 사조도 흉내 낼 수 없는 한국식 사랑이다. 이러한 이별의 표현법은 ‘진달래꽃’ 외에도, ‘못 잊어’,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님의 노래’, ‘먼 후일’, ‘초혼’, ‘왕십리’, ‘산유화’, ‘엄마야 누나야’ 등 열거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작품에서 계속된다. 이것은 당시의 식민지 시대를 거쳐 해방, 전쟁으로 끊임없이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되는 우리 민족사 전반에 걸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먼 훗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애창된다.

그의 전반적 작품 경향은 우리의 전통적인 시편인 ‘정읍사’, ‘가시리’와 맥이 닿아 있다. 그는 님과의 사랑, 이별, 한 등을 향토적, 민요적 언어와 율격에 담아 표현해낸다. 그 때문에 수많은 주옥같은 시편이 있음에도 ‘유교류의 휴머니스트’라든가 ‘과거 지향적 수동주의’라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유교적 과거지향은 도덕이나 규범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님이 원할 때면 언제라도 기꺼이 보내드릴 용의가 있는 융통성, 즉 현대적 자유가 부여된 복고주의로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또한, 1924년 이후에 발표한 ‘나무리벌노래’ 외에 연대미상의 작품 ‘봄’, ‘남의 나라 땅’, ‘전망’, ‘물마름’, ‘옷과 밥과 자유’, ‘가을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등의 시편과 유일한 소설 [함박눈] 등을 보면 민족적 저항의식이 은근히 깔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중 빼앗긴 땅에 대한 회복을 염원하는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이 눈에 띈다.

나는 꿈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다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새롭은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가임은, 별빛이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갈.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 혼자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개벽>, 1923

[네이버 지식백과] 김소월 [金素月] - 한국 현대시인의 대명사 (나는 문학이다, 2009. 9. 9., 장석주)

 

 

한국 근대詩의 시작은 최남선 아닌 김소월 '진달래꽃'이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2/2020052202278.html

 

한국 근대詩의 시작… 최남선 아닌 김소월 '진달래꽃'이었다

“한국 문학 교육에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은 심각한 오독(誤讀) 속에 방치되어 왔다.”정과리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김소월 새롭게 읽기’..

new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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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시(新體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愛國歌類型),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唱歌)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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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愛國歌類型),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唱歌)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신시가(新詩歌) 또는 신체시가(新體詩歌)라고도 불린다. 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기점으로, 1919년 『창조 創造』 창간호에 실린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 이전의 『학지광 學之光』·『청춘 靑春』·『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 등의 잡지나 그밖에 발표된 이광수(李光洙)·현상윤(玄相允)·최승구(崔承九)·김여제(金輿濟)·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 등의 초기 시들이 ‘신체시’ 또는 ‘신시’의 범주에 든다 하겠다.

신체시라는 용어는 일본의 『신체시초 新體詩抄』(메이지 15)에서 메이지시가(明治詩歌)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借用)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격수의(調格隨意), 즉 ‘어수(語數)와 구수(句數)와 제목은 수의(隨意)’라는 장르 개념을 의식한 『소년』지의 ‘신체시가대모집(新體詩歌大募集)’ 광고와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광고에서 ‘신체시가’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신시’라는 용어는 최남선이 「구작삼편 舊作三篇」(소년, 1909.4.)의 창작 동기를 밝힌 후기(後記)에서 ‘신시의 형식을 시험하던 시초’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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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에게서 소년에게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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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저자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파륜[1],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고려가요 <가시리>의 이별의 정한를 계승한 주제적 측면에서도 <진달래꽃>을 최초의 근대시로 문학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과리 교수의 주장은 정당성과 당위성을 지니는 것으로 공감한다. 계몽성에 치중한 <에게서 少年에게>는 시가적  형식은 구비했으나, 내용면에서 환기하는 계몽성의 격정 말고는 서정시로서의 정서의 빈곤성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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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시리

[달천] 10.가시리 󰋬[樂章] [時用]歸乎曲,俗稱 가시리 󰋬(怨詞)→ [樂章歌詞]가시리→ [時用鄕樂譜]歸乎曲,俗稱 가시리 󰋬박병채;怨詞로〈禮成江〉추정. 唐商 賀頭綱이 바둑두어 고려인의 美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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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4聯

 

 

https://www.youtube.com/watch?v=8_-F6pCNPa4&t=303s

 

 

https://www.youtube.com/watch?v=iRfmRbjd_jA

 

 

https://www.youtube.com/watch?v=u-5KQ0Au_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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