往十里(왕십리)
ㅡ 김소월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루 삭망이면 간다고 했지.
가도가도 왕십리 비가 오네.
웬걸, 저 새야
울랴거든
왕십리 건너가서 울어나다고,
비 맞아 나른해서 벌새가 운다.
천안에 삼거리 실버들도
촉촉히 젖어서 늘어졌다네.
비가 와도 한 닷새 왔으면 좋지.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서 운다.
www.youtube.com/watch?v=pLHA1hjQzxw
1924년 이후에 발표한 ‘나무리벌노래’ 외에 연대미상의 작품 ‘봄’, ‘남의 나라 땅’, ‘전망’, ‘물마름’, ‘옷과 밥과 자유’, ‘가을 맘에 있는 말이라고 다 할까보냐’ 등의 시편과 유일한 소설 [함박눈] 등을 보면 민족적 저항의식이 은근히 깔렸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중 빼앗긴 땅에 대한 회복을 염원하는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이 눈에 띈다.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ㅡ 김 소 월
나는 꿈 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지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다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 손에
새라새롭은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가나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가임은, 별빛이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갈. 나는 나아가리라
한걸음 한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새벽 동무들 저 혼자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바라건대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개벽>, 1923
ko.wikipedia.org/wiki/%EA%B9%80%EC%86%8C%EC%9B%94
김소월(金素月, 1902년 9월 7일 (음력 8월 6일)[1] ~ 1934년 12월 24일)은 일제 강점기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인 소월(素月)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관은 공주(公州)다.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 자택에서 향년 33세로 병사한 그는 서구 문학이 범람하던 시대에 민족 고유의 정서에 기반한 시를 쓴 민족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16년 오산학교 재학 시절 고향 구성군 평지면의 홍시옥의 딸 홍단실과 결혼했다.
3·1 운동 이후 오산학교가 문을 닫자 경성 배재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서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본래 예민했던 그는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친척들한테도 천시를 받았고 일본의 압박으로 부인과 동반자살 기도까지 했다.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하다가 1934년 12월 24일 평안북도 곽산에서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2] 향년 33세였다. 이틀 전, "여보,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것 같구려." 라면서 쓴웃음지으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소월이 자살한 거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www.youtube.com/watch?v=eWdDSpaZmhU&feature=emb_title
도읍지를 찾던 무학대사에게 한 도인은 십리를 더가서 도읍지를 정하라고 일러줌. 이곳이 한강과 북한산 사이에 성곽을 세우고 축조한, 경복궁이 위치한 난공불락의 城인 漢城(한성) .
왕십리의 유래
주제 : 사찰전설 국가 : 한국 시대 : 조선 지역 : 경기도 참고문헌 : 한국지명연혁고
조선 건국초. 송도 도창관에서 등극한 이성계는 조정 대신들과 천도를 결정하고 무학대사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무학대사는 옛 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알려진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아무래도 도읍지로는 적당치 않았다.
발길을 북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뚝섬 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지세를 자세히 살핀 스님은 그곳이 바로 새 도읍지라고 생각했다.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가 뜻을 펼만한 길상지로구나.」
무학대사는 흐뭇한 마음으로 걸어오는데 한 노인이 소를 몰면서 소리쳤다.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순간 무학대사의 귀가 번적 뜨였다.
고개를 들고 돌아보니 길 저쪽으로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이 채찍으로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었다.
스님은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갔다.
「노인어른,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셨는지요?」
「미련하기가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의 말씀이신지요? 」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 다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공손히 합장하고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미련한 무학이옵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가 있으면 이 나라 천년대계를 위하여 일러 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채찍을 들어 서북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10리를 더 들어가서 주변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노인어른, 참으로 감사합니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www.youtube.com/watch?v=k0Y1SCpTrDQ
www.youtube.com/watch?v=7DtP8UABKdA
www.youtube.com/watch?v=pKLg0YoGE5I
www.youtube.com/watch?v=NpIpXFUmvVY
www.youtube.com/watch?v=1cE-e7rQzMc&t=301s
www.youtube.com/watch?v=Z7Yd-bCU470
www.youtube.com/watch?v=XinziAE58p4
www.youtube.com/watch?v=y6X7mvk7b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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