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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中庸, 영어: Doctrine of the Mean, Middle Way)은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예기의 31편이다.
주자는 《중용》의 작자가 자사라고 단정했고, 사마천의 사기와 몇몇 서적에도 《중용》의 작자는 자사라고 언급했지만, 청대에 이르러 이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근래에는 《중용》은 자사에 의해 기초가 이루어졌고 이후 전한 시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유가 학자들의 보충과 해설이 더해져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주희가 《중용》을 정리하여 《중용장구》를 내어 놓았는데, 그 형식을 33장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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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庸
中庸/子思
예기 원본을 보면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중용 전편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예기 전체 49편 중 제31편이 바로 중용이다. 예기의 한편에 불과했던 중용이 유학의 핵심 과목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주자의 덕이다.
중용의 저자는 공자 손자 자사(子思)이다. 아버지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지나치던 공자 아들 공리(孔鯉, 즉 공잉어)의 외아들로 이름은 급(伋)이다.
그는 공자 사후 공자제자 증자에게서 배웠다. 맹자가 자사의 제자였으니 공자의 정통 학통은 자사가 없었더라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사는 유교의 4대 성인의 한사람으로 맹자와 동급으로 문묘에 배향되어 있다.
중용(中庸)의 용(庸)은 ‘쓸 용’이다. 설문해자에서는 庸用也(庸은 ‘사용한다’ 이다)라고 되어 있다. 庸은 更(庚)과 用의 합자이다. 정밀한 뜻은 ‘다시 사용하다’이다. 중(中)은 가운데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용의 중(中)은 가운데의 뜻이기 보다는 적중하다고 할 때의 포함된 center를 말한다. 그러므로 중용은 ‘중간을 사용함’이 아니라 ‘올바른 중앙을 사용함’이라고 할 수 있다.
中庸 1장
1-1.
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教。
천명지위성、솔성지위도、수도지위교。
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
도야자,부가수유리야;가리비도야。
<직역>
하늘의 명령(天命), 그것(之)을 성(性)이라 말한다
성을 따르는 (率性) 그것(之)을 도(道)라 말한다
도를 닦는 것(修道) 그것(之)을 교(教)라 말한다
도(道)라는 것(者)은 잠시(須臾) 떠남(離)도 가능치 않다(不可也)
떠남이 가능하다면(可離) 도가 아니다(非道也)
<해설>
해석에서 당장 之(갈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지시대명사 ‘그것’으로 해석할 것인가 조사 ‘~의’로 해석할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之를 조사 ‘~의’로 사용하면 ‘천명(天命)의(之) 일컬음(謂)은 성(性)’으로 해석된다. 약간 어색하다. 性다음에 ‘~이도다’의 뜻인 ‘也’가 첨가되어야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之를 ‘그것’으로 해석하고 ‘謂’를 동사로 파악하면 올바른 해석이 된다. 그래서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은 ‘하늘의 명령(天命), 그것(之)을 성이라(性) 말한다(謂)’로 해석되는 것이다.
庸(떳떳할 용) : 떳떳하다, 쓰다, 고용하다, 일정해 변치 않다, 보통
命(목숨 명) : 목숨, 성질, 규정, 생명, 명령
率(거느릴 솔/비율 률) : 솔/거느리다, 따르다, 쫓다, 가볍다 률/비율, 제한
須臾(수유) : 잠시
臾(잠깐 유) : 잠시, 잠깐
1-2.
是故君子戒慎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
시고군자계신호기소부도,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慎其獨也。
막견호은,막현호미。고군자신기독야。
<직역>
이런 까닭에 군자(君子)는 보이지 않는 그 장소(其所)에 대하여(乎) 경계하고 삼간다(戒慎)
들리지 않는(不聞) 그런 곳(其所)에 대하여(乎) 몹시 두려워한다(恐懼)
숨기는 것(隱)보다(乎) 잘 나타남(見)이 없다(莫) 미묘한(微) 것보다(乎) 더 드러나는 것(顯)이 없다(莫)
그러므로(故) 군자(君子)는 그 홀로 있음(其獨)에도 삼간다(慎也)
<해설>
이 구절은 천명인 성을 따르는 도(率性之謂道)에 대한 보충설명이다. 도는 잠시도 떨어질 수 없으며 떨어지게 되면 도가 아니다(可離非道)라고 말했다. 본성에 따르기 위해서는 경계하면서 자신을 속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늘의 명이 성(天命之謂性)이고 이 성을 따르는 것이 도(率性之謂道)인데 본성을 잘 따르기 위해 익히고 수련하는 것이 교(修道之謂教)라고 했다. 여기가 바로 맹자의 성선설이 탄생하게 되는 고향이다. 본성을 잘 따르기 위해 열심히 수련하자라고 하는데 만약 그 본성이 성악설에서 주장하듯 나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 본성을 따르고 닦을 수가 없게 되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위의 구절에서 희노애락 같은 기본적인 본성이 하늘이 내린 명령 즉 천명이라고 해놓고도 혼자 있을 때 그 것이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하고 있다. 천명인 성(性)을 따르는 것이 도라고 해놓고 본성이 드러날까봐 수양하라고 말하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유학이나 성리학의 대부분의 문제가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주자는 性이 理(이성)라는 황당한 설명을 내놓는다.
'性卽理也' - 성이 곧 理이다.'
중용집주에서 주자가 한 이 주장은 사실 정이(程頤)의 설을 따른 것인데 성즉리(性卽理)라는 주장에서 바로 성리학이 시작하게 된다.
마지막 구절을 천하가 이상하게 해석한다.
‘君子慎其獨’ - 군자는 홀로 있는 것을 삼간다.
이 해석이 말이 되는가? ‘其獨’을 목적어로 해석하니 저렇게 해석이 되는 것이다.
‘其獨’ 역시 마찬가지다. 목적어로 해석해서는 안되고 영어의 보어처럼 해석해야만 문맥과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모범 해석은 이것이다.
“君子는 신중(慎)해라. 혼자 있을 때(其獨)도”
是故(시고) : 그러므로, 이런 까닭에
戒慎(계신) : 경계하여 삼감
慎(삼갈 신) : 삼가다, 근신하다, 두려워하다
乎(어조사 호) : 於, 于와 동일 의미, ~에게, ~에 대하여, ~와 비교하여, ~이도다, ~인가?
睹(볼 도) : 보다, 가리다, 분별하다, 알다
恐懼(공구) : 몹시 두려워함
1-3.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
희、로、애、낙지미발,위지중。발이개중절,위지화。
<직역>
기뻐함(喜) 노여워함(怒) 슬픔(哀) 즐거움(樂)의(之) 발현되지 않음(未發) 그것(之)을 중(中)이라 말한다(謂)
발현(發)했으나(而) 모두(皆) 적절함(節)에 적중(中)하면 그것(之)을 화(和)라고 말한다(謂)
<해설>
희노애락이 표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중(中)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해석
'喜、怒、哀, 樂, 情也. 其未發, 則性也, 無所偏倚, 故謂之中'
(희노애락은 정이다. 그 것이 발현되지 않은 그것이 바로 성(性)이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기에 중(中)이라고 말한다. - 중용집주)
節(마디 절) : 마디, 관절, 절도, 알맞은 정도, 절제하다, 알맞다, 들어맞다, 검소하다
1-4.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직역>
중(中)이라는(也) 것(者)은 천하(天下)의(之) 큰(大) 근본(本)이다(也)
화(和)라는(也) 것(者)은 천하(天下)의(之) 지켜야할 도(達道)이다(也)
중화(中和)에 이르면(致) 천지(天地)가 자리 잡게(位) 된다(焉) 만물(萬物)이 길러지게(育) 된다(焉)
<해설>
達道(달도) : 도에 통달함, 꼭 지켜야 할 도
焉(어찌 언) : 어디에, 어찌, 이다, 인가?, 그래서,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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