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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17)우서(虞書)(17)대우모편(大禹謨篇)(3) 우가 제위를 사양하고 고요(皐陶)를 천거하다.

            <서경(書經)>(17) 우서(虞書)(17)         우서(虞書)는 요순(堯舜)의 치적을 기록한 것이라 한다. 우(虞)는 유우(有虞)씨라는 순(舜)의 씨족명(氏   族名)에서부터 유래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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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書經)>(17) 우서(虞書)(17)       

   우서(虞書)는 요순(堯舜)의 치적을 기록한 것이라 한다. 우(虞)는 유우(有虞)씨라는 순(舜)의 씨족명(氏

   族名)에서부터 유래했다. 내용은 요순의 치적을 위주로 하여 그 당시 큰공을 세웠던 신하들의 말이나 업

   적도 함께 수록하였다. 수록된 편으로는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

   (益稷)등으로 나뉘어 져 있는데, 실제로는 순(舜)의 사관(史官)이 기록한 것이 아니라, 춘추시대(春秋時

   代)의 사가(史家)들의 추기(追記)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대우모(大禹謨)는 보다 후세의 위작(僞作)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는 기원전 2333년 부터 2184년 까지로 잡고 있는데, 세계적으로는 바빌론의 건국시

   기와 인구민족(印歐民族)의 대이동기(大移動期)에 해당한다. 당시의 대륙은 씨족 사회의 발전단계에 있

   었다. 가장 큰 문제는 황하(黃河)의 범람이었다. 우리는 우서(虞書)로 통하여 요순(堯舜)을 비롯한 대정

   치가들이 어떻게 이를 극복했으며, 백성들을 어떻게 아꼈는가를 차근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제3편 대우모(大禹謨)(3)

                                              

   이 편은 앞의 두편과는 달리 <위고문상서>에만 수록이 되어 있다. 우(禹)는 곤의 아들로 그 아버지를 대

   신하여 홍수를 다스린지 30년 만에 마침내 성공하였다. 이에 순임금은 우를 사공(司空)의 벼슬에 임명하

   고 사(娰)라는 성(姓)을 하사 하였으며, 하백(河伯)에 봉하였다. 뒤에 우는 옛부터 중원을 침범하여 소란

   케 했던 묘족을 평정하고, 장강의 중류지역을 안정시켰으며, 다시는 묘족의 북침이 없게 하였다. 그래서

   그도 대우(大禹) 라고 하는 존칭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모(謨)는 모(謀)와 통용자로, ‘좋은 말씀, 훌륭한

   정책의 계책’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대우모는 우(禹)가 순임금의 신하로 있을 때 진언한 여러가지 계

   책, 곧 정치에 관한 의견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순임금과 우, 그리고 익과 고요의 정치

   적인 대담이라고 할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대우모는 중국의 고전인 <좌전(左傳)>, <국어(國語)>, <맹

   자(孟子)>등을 참고하여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앞에 나온 두편보다 문장의 구성이 훨씬 짜

   임새가 있고, 또한 유려한 필치로 엮어져 있다. 

 

[3] 우가 제위를 사양하고 고요(皐陶)를 천거하다.

 

 

   帝曰(제왈) : 순임금이 말하였다.

   格汝禹(격녀우) 朕宅帝位(짐택제위)

   "그대 우(禹)에게 고하노라, 짐이 제위에 오른 지도,

   三十有三載(삼십유삼재)

   어언 33년이나 되었고,

   耄期倦于勤(모기권우근)

   이미 늙어 백 살을 바라보게 되니 나라의 일에도 게으르게 되는구려.

   汝惟不怠(여유불태) 摠朕師(총짐사)

   그대는 게을리 하지 말고, 짐의 백성들을 잘 이끌어 주시오"

   禹曰(우왈) : 이에 우가 말하였다.

   朕德罔克(짐덕망극) 民不依(민불의)

   "저의 덕이 미치지 못하여,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皐陶邁種德(고요매종덕) 德乃降(덕내강)

   고요는 힘써 덕을 심었으니, 그 덕이 아래로 미치어,

   黎民懷之(여민회지)

   많은 백성들이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帝念哉(제념재) 念玆在玆(염자재자)

   임금께서는 잘 생각하옵소서. 그를 생각함은 그 공적이 있기 때문이요,

   釋玆在玆(석자재자)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 공은 남아 있으니,

   名言玆在玆(명언자재자)

   그를 부르고 그에게 말하는 것도,

   允出玆在玆(윤출자재자)

   진실로 그에 대한 믿음에서 우러 나오는 것도 그 공적이 있기 때문이니,

   惟帝念功(유제념공)

   임금께서는 오직 그 공적을 생각하옵소서"

 

 

   *순임금이 이미 노경(老境)에 접어들자, 혹시나 국사를 글칠까 염려하여,

우(禹)에게 선위(禪位)할 뜻을 말했다.    

이에 우(禹)는 고요(皐陶)를 천거하고,

고요의 덕과 공로가 크다는 사실을 상주하고 있다.

옛성인들의 겸양의 미덕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이처럼 우(禹)는 겸양의 덕을 발휘하여 고요를 천거하고, 그에게 선위할 것을 간하였지만,

그러나 우(禹)의 치수의 공이 너무나 위대하다고 여긴 순임금의 마음을 움빅이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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